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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2  히로시마 여행기 14편 - 원폭 돔, 우산 감사 6
아침에 일어나니 내릴듯 말듯 흩뿌리는 빗방울이 걱정된다.
오늘 호텔은 뷔페가 아니긴 하지만 무려 조식까지 포함되어있어 느긋하게 즐기다 나갈 예정.

오늘은 짐을 로비에 맡겨두고 오후까지 열심히 돌아다닌 후 5시쯤에 히로시마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면 종료.
히로시마 시내엔 원폭 관련 자료 말고는 그닥 볼게 없는 터라 사실 시간은 많이 남을 것 같다.

물론 지갑이 두둑하다면 쇼핑을 해도 되고 오코노미거리에 가서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도 되고 하는데, 난 거지다. ㅡㅡ;


프리패스를 이용해 히로덴을 타고 원폭 돔 앞(原爆ドム前)역에서 내리는데
아뿔싸, 걱정했던 일이 벌어졌다. 비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한 것.

카메라가 없다면야 비 쫄딱 맞고 돌아다니는건 아무렇지도 않은데...
일단 원폭 돔 옆의 화장실 처마에 들어가서 비가 약해지길 기다린다. 오전 11시가 되기 전이고, 평일이라 사람은 별로 없다.

비는 30분이 넘게 쏟아부었다. 남아도는게 시간이라 별로 초조해 하진 않았다. 오늘은 정말 할 일이 없거든. ㅡㅡ;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 사이에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에는 청소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주머니라기 보다는 할머니에 가까운 나이의 두 분은 특이하게도 한 사람이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면 한 사람이 관서사투리로 대답하고 있다?
것도 대화가 전혀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본어 전공한 나를 훨씬 뛰어넘는 실시간 번역채팅인가.
빗소리때문에 잘 들리진 않았지만 자식 이야기라던가 일 이야기라던가 소소한 잡담같은 내용이 얼핏얼핏 귀에 들어왔다.
나도 경상도 사투리로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지만 소심덩어리라서 먼저 말을 걸진 못하고 그냥 웃으면서 듣고만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던 경비원 아저씨가 몇 번인가 내 모습을 보더니 어디론가 가서 낡은 비닐우산 하나를 건네준다.
오랫동안 화장실에 갖혀있는 모습이 안스러웠나 보다. 고맙다고 말한 후 다 쓰고 어디 가져다 주면 되겠냐고 하니 그냥 가지라고 하신다.
확실히 60m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거 우산업계 용어다. 모르는 분은 패스) 크기에 부분부분 녹이 슨 것이 어디 처박혀 있는거 가져다 주신거겠지만
그래도 여행중에 이런 호의는 정말 고맙기 그지없다. 여러번 감사의 인사를 하고 드디어 화장실을 벗어났다.

기념사진도 찍고, 원폭 돔 관리사무소에 그 사진과 감사의 인사를 담은 편지라도 보냈을걸 하는 생각이 비 그치고 나니까 들더라. ㅡㅡ;
감사의 인사 역시 기회를 놓치면 마음을 표현하기 힘들다. 감사할 수 있을 때 많이많이 감사하자.

비가 쏟아져서 사진 찍는데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원폭 돔이란 곳은 확실히 우중충한 날씨가 어울린다.
위령비 앞에서는 경건한 얼굴로 참배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간단히 목례만 하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한국이 전쟁과 분단의 후유증을 겪고 있듯이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심지어 여행 후 울 엄니께서는 '히로시마에 이제 사람은 살고 있나?' 라고 물어보셨으니... (그럼 자식이 도대체 어디 갔다온걸로 생각하신걸까)
세계 최초로 원폭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히로시마의 트라우마가 사라지려면 앞으로도 긴 시간이 걸릴 것.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이름은 '리틀 보이'
이 녀석은 사실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 맨'의 절반밖에 안되는 위력이었지만, 사망자는 히로시마쪽이 2배 가까이 많았다.
리틀 보이는 정확히 히로시마 시내 중심을 직격했고, 팻 맨은 산 쪽으로 비켜가는 바람에 후폭풍의 영향을 덜 받은 탓.


세계 최초의 원폭은 히로시마시 인구 35만명중 14만명을 수십 초만에 태워버리고 20만명을 죽음의 질병에 노출시켰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피폭 당시 건물인 이 원폭 돔은
폭심지에서 아주 가까운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196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당시에도 여러가지 논란에 휩싸인 이곳은
일본 내부에서도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보존하는데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을 뿐더러
투하 당사자인 미국에서도 원폭 돔의 세게문화유산 등재를 극렬 반대해 왔었다.

하지만 과거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고... 블라블라 해서 어쨌든 보존으로 가닥이 잡혔는데
미국의 고집스러운 반대로 결국 '세게 최초로' 라는 단어는 세계문화유산 기록에서 삭제되고 말았다.


이거 해체해 버렸으면 어쩔 뻔 했나... 히로시마에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엄청난 재원으로 맹활약중인데.
원폭 돔은 펜스가 꽤나 넓게 둘러져 있고 곳곳에 '담을 넘어가면 경보가 울린다'고 엄중히 주의를 주고 있다.
(그래도 히로시마 홍보 행사엔 연예인들이 그 담을 넘어서 잘만 찍더만)

기분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한 곳인데,
상큼발랄한 일본의 젊은 관광객 커플들은 입가에 함박웃음을 띄우며 원폭 돔을 배경으로 서로서로 사진 찍어주기에 여념이 없다.

나이 지긋하게 든 일본인 할아버지가 잔뜩 침울한 얼굴로 그들의 즐거운 한때를 바라보고 있는 걸 제 3자인 내가 보니 뭐라 할 말이 없더군.
마치 서해교전 참전용사 위령비 앞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기념사진 찍어대는 사람을 봤을 때의 기분이랄까.


건물 중에서 유일하게 반대쪽과 통해 있는 곳.
글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가지 복잡한 상념이 교차하는 기분이다.


젓가락처럼 휘어버린 철골과


고열에 유리처럼 결정화 되어버린 콘크리트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게 해 준다.


원형 구조물의 창틀을 잘 보면 새가 한 마리 앉아있다.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이 지나간 곳이라, 저런 녀석이 앉아있는 모습만 봐도 감상에 젖는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디자인을 맡은 유명 건축가의 위령비.
일본인들이 여기서 추모하는 모습이나
미국인들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추모하는 모습이나

나에겐 동정심과 뻔뻔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복잡한 심경.


그렇게도 비가 쏟아지더니 금새 멎었다. 그래도 우산에 대한 감사함은 그대로.
하지만 비행기안에 가지고 돌아가려니 왠지 아까워서 호텔 로비에 맡겨두고 필요한 사람 쓰라고 건네주기로 마음먹었다.

비가 그치고 적당한 시간이 되니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저 사람들이 오기 전에 거의 혼자서 비를 맞으며 원폭 돔을 둘러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느낌.
이곳은 말로 설명하기 보다는
그냥 혼자 저 앞에 서서 본인이 느끼는 그대로 감상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눈에 보이는 현실 객체보다
그 객체가 간직한 관념적 가치가
보는 사람의 정신을 압도하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의미를 가진 건축물'이라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