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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12  킨키 방황 - 우메다에서 마지막 화풀이 17

 

 

약이란 건 곰곰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이 조그만 자갈같은 녀석이 배 속에 들어가면 묘한 성분으로 분해되어

사람을 고통에서 구원해 주는 건지. 어릴적에 이런 호기심이 들었다면 아마 의사나 약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누워있거나 앉아있으면 그닥 통증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약효가 돌고 있다.

물론 평소처럼 걷기는 힘들고 여전히 절뚝거리지만, 이동 속도는 어제보다 조금 빨라진 느낌.

 

사실 어디까지나 응급 처치일 뿐이라, 실제로 나은 건 아무것도 없다. 염좌도 통풍도 그냥 진통제의 효과로 고통을 잊고 있는 것일 뿐

여전히 왼쪽 발은 끈 전부 풀어헤친 280짜리 신발에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퉁퉁 불어터져 있는 상태.

무리하지 않으려고 아침 조식 먹으러 내려가지도 않았다.

이로서 조식 있는 호텔에 투숙한지 처음으로 3일동안 딱 하루밖에 조식을 먹지 않은 낭비의 업적을 달성하고 말았다.

돈 아까워서라도 조식은 절대 빠지지 않고 챙겨먹는데...

 

그나마 머리가 돌아갈 정도로 고통이 줄어드니 엉망이 된 여행 계획에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이번엔 좀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 일부러 예산까지 편성해 왔고, 각종 신뢰할만한 곳을 뒤진 끝에

후회는 없으리라는 오사카의 맛집을 두루두루 조사했기 때문에, 예정대로라면 어제와 오늘의 아침, 점심, 저녁은

나름 내 기준에서는 꽤나 호화스러운 음식을 마음껏 즐겨야 했다.

 

오사카 최대의 수산 도매시장에서 새벽 5시에 문을 여는, 100년 전통의 초밥집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회전초밥과는 비교도 안되고, 국내 일류급 초밥에 떨어지지 않으면서 가격은 나름 저렴한 곳이라서

이곳에서는 마음먹고 8만원 정도 소비할 각오를 했다.

하지만 수산시장에 위치해 있다보니 전철에서 내리더라도 꽤나 걸어가야 하는 곳인 탓에

지금 상태로 거기까지 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어제 먹으려 했던 맛집들도 당연히 전부 캔슬. 어제 먹은건 편의점 도시락밖에 없다.

마음껏 맛집 탐방을 하려 했던 계획이 물거품으로 변해버려,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고, 돌아갈 곳 없는 허탈감을 안은 채 10시에 호텔을 나선다.

짐은 다 맏겨놓고 공항 가기 전에 찾아가기로. 어제 스루패스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도 전철은 무료 이용이다.

출국시 이어폰의 수명이 다 됐기 때문에, 이어폰 하나 구매하려고 우메다(梅田)역으로 향한다.

 

오사카의 번화가는 남쪽의 난바(難波), 북쪽의 우메다(梅田)로 나뉘어 있는데

난바는 칸사이 국제공항과 연결되어 있고, 온갖 잡다한 소비와 유흥 쪽에 촛점이 맞춰진 곳이라면

우메다는 오사카의 거의 모든 시영, 국영 전철이 모여있는 교통의 중심이지며, 금융, 기업의 중심지라서

쇼핑이나 먹거리도 난바에 비해 좀 고급스러운, 고층 빌딩으로 아득하게 둘러쌓인 곳이다.

헝그리 여행자들은 저렴한 숙소가 많은 난바역을 이용하는 경향이 많은 듯. 우메다쪽의 호텔은 꽤나 비싸다.

 

 

 

오사카 최대의 전자상가 백화점 요도바시 우메다는 전철역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가기 편하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거대 전자상가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지만, 지금은 일단 이곳의 회전초밥집에 들른다.

맛집 순방을 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 비록 예정했던 곳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곳이지만.

 

그래도 회전초밥 치고는 그리 떨어지지는 않는 수준이다. 한국의 동일가격대 초밥과 비교하는건 말도 안되고.

 

 

보통은 이런 저렴한 회전초밥집이라도 접시 색깔을 따져가면서 먹는 편인데

이번엔 한을 풀지 못한 나의 위장을 위로해 주는 차원에서, 그런것 따윈 신경 끄고 마음껏 집어먹기로 결정.

그래도 생선쪽에 퓨린이 많이 들어있을 위험성이 있으니 가능하면 조개 등으로 메뉴를 조정하기로 한다.

 

회전초밥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곳이 오사카라서, 나름 자존심은 있는지 가격대비로 괜찮은 성능을 보여준다.

이렇게 2점에 100엔~200엔 하는 초밥은 일본에서 가장 싼 부류에 속하지만

그래도 한국 음식점의 초밥에 진저리가 나던 내 입장에서는 먹을만한 느낌.

 

 

 

먹고 먹으면서도 결국 가보지 못했던 최고급 초밥집이 눈 앞에 떠오르는게, 안타깝기 그지없다.

먹으면서 분명 맛은 있는데, 이 공허함은 뭘까.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남들 눈도 신경쓰지 않고 초밥들을 마구마구 카메라에 담는다.

원래 음식점에서 이렇게까지 사진을 남발하진 않는데, 그냥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위장에 들어가지 못한 고급 초밥들이 너무 아쉬워 할 것 같은 느낌.

 

사실 여기 초밥도 즐기기엔 충분히 맛있었다.

 

 

 

초밥집의 실력을 알아보는 가장 기본적인 척도가 되는 계란말이.

먹어보면 '역시 회전초밥'이라는 느낌이 들긴 한다.

소위 말하는 초밥 장인이 만드는 계란말이 초밥은, 생크림 가득 들어간 카스테라를 먹는 듯한 느낌.

 

 

 

찍다가도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건가 싶다.

예정되어있던 초밥집에 갔다면 그 야들야들하고 빛나는 초밥의 자태를 즐겁게 담았을 텐데

지금은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마구 담아낼 뿐이니.

 

포스팅의 대부분을 이런 초밥사진으로 도배하는 것도 참 특이한 경우.

사실 마지막날은 담아온게 거의 없으니 이렇게라도 분량을 채우려는 속셈이다.

 

 

 

점심시간 근처라서 사람들은 꽤 많았지만

어째 나보다 뒤에 온 사람들도 전부 일어서는 모습이 보인다.

슬쩍슬쩍 계산하는 사람들을 보니 한 사람당 6~7접시 정도가 평균인 듯.

 

내 경우 보통 이런 회전초밥에서는 배가 불러서 그만둔다기 보다

더 이상 입맛이 당기는 초밥이 없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해도 최소 10접시는 기본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시 내가 많이 먹는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징어회는 대체로 한국이나 일본이나 초보자용이라고 인식되어 있는지

원래 오징어 초밥은 그리 비싼편이 아니지만, 타계책으로 위에 연어알을 뿌린 녀석이 있다.

초밥 장인의 집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퓨전적인 방법인데,

이런 걸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맛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잘 모르겠다.

오징어회는 맛과 향보다 씹는 재미가 있지만, 연어알의 짭쪼름한 느낌이 조금 보충해주는 느낌?

 

 

 

싱싱하고 두툼한 가리비도 좋지만 겉만 살짝 구운 가리비는 달달한 맛이 더욱 살아난다.

접시 색깔을 보면 알겠지만 생가리비나 구운 가리비나 가격은 같다. 취향에 따라 먹으면 될 듯.

조개류를 너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둘다 만족.

 

 

오징어 초밥의 또 다른 바리에이션. 고급 재료에 들어가는 성게알이다.

저렇게 성게알 눈꼽만큼 올려놓고 가격을 올리니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기본적으로 오징어가 맛과 향이 옅은 편이라서 위에 뭘 올려도 괜찮은 조합이긴 한데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먹었기 때문에 이런 것도 척척 집어먹었지

생각하면서 먹기에는, 맛이 궁금하지만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묘한 녀석이다.

 

 

 

대충 만족했다는 느낌으로 식사를 마치고 나온다. 계산금액은 약 1700엔 정도.

평소같으면 무리 좀 해서 먹었구나 하는 금액이다. 초밥이 아닌 경우엔 500엔 정도면 배를 채우니까.

하지만 원래 예정했던 고급 초밥집의 예산이 6000엔이었기 때문에 왠지 지불후에도 아쉬운 기분이다.

 

예상보다 돈 적게 썼다고 아쉬워하는 이 모습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도 매우 희귀한 케이스.

아픈 다리를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긴만큼, 대가가 돌아오게 되는 느낌이다.

 

사실상 맛있는 거 찾으러 다니는 행동은 이걸로 끝. 더 이상 무리해서 여기저기 옮겨다닐 상태도 아니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한층 내려오면서 친구에게 부탁받은 것들을 구매한다.

각 카메라 회사의 최신 플래그쉽 기종도 전부 전시가 되어 있어서, 어차피 쓰지도 않을 것들 신나게 경험해 본다.

요즘 기종들을 만져보면, 내가 쓰고있는 녀석은 확실히 몇 세대 전의 기기적 성능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1층까지 내려와서 이어폰을 골라보려는데, 예전처럼 시착용 이어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게 아니라

본인의 MP3 플레이어에 직접 꽂아서 테스트 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쪽이 마음에 드는데, 익숙하게 들어오던 음원으로 테스트 하는게 자신에게 맞는 이어폰을 찾기가 쉬우니까.

한국에서는 이어폰을 마음껏 테스트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데, 이곳에는 적당한 보급형부터 각 사의 최고급 이어폰까지 청음이 가능하니

왠지 굉장히 행복한 기분이다. 한국서는 남들의 청음기만 줄기차게 들어보고 고민고민끝에 고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고나면 항상 '다른 기종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함이 남았기 때문에

 

여기서 약 2시간동안, 일단 청음용으로 준비된 녀석들은 거의 다 들어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어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약 17년 전, 20초 튕김방지 기능을 가진 휴대용 CDP가 인생의 보물이었던 시절.

그때 이후로 이어폰은 항상 7~9만원 정도의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단 귀가 길들여지니 보급형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확 나빠지기까지 하기 때문에, 한때 수십만원짜리 이어폰에도 손을 대 본 결과 그 정도 가격대가 무난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

아이팟이 등장하기 전 춘추전국이었던 한국 MP3 시장 당시엔, 몇몇 회사와 친분을 쌓아서 시중의 거의 모든 MP3P 를 사용하고 음질을 판단하기도 했다.

사용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오디오 전문회사 인켈이 출시한 오디오카드라는 플레이어는 지금까지 가끔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요도바시 우메다에서 만난 소니의 신형 이어폰은 상당히 놀라웠다.

새로 개발한 드라이브 유닛이 1개부터 4개까지 장착된 모델이 전시중이었는데

1개와 2개 장착된 모델까지는 그냥 그렇네 정도였지만, 3개가 장착된 모델은 하위모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굉장한 음질을 들려준다.

인이어 이어폰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해상력과 깔끔한 음 분리력이, 여지껏 7~9만원급에 만족해 왔던 나의 귀를 유혹한다.

중음까지는 무난하고, 저음이 조금 약한 느낌이었지만 무작정 울리는 저음보다 이런 느낌이 내 취향이다.

 

최고급 모델인 4개짜리 녀석도 청음해 봤지만, 같은 가격이라면 3개까지를 구입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저음부분이 확연히 보강된 느낌이 들긴 해도 내 취향과는 거리가 좀 먼 편이라서.

 

원래 사용하던 가격대의 제품들을 들어보면, 대강 이제껏 들어왔던 녀석들과 비슷비슷한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그냥 그걸 구입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음악생활을 즐길 수 있었겠지만

이 소니의 제품을 청음하고 나니, 매장을 몇 바퀴나 돌면서 청음하고 또 청음해도, 결국엔 이 녀석에게 마음이 가게 된다.

한참동안 5000엔 대의 제품 앞에 서서 '이 정도면 문제없는데'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또다시 소니 부스로 이동해서 이 녀석을 들어보는 행동이 반복되는 중.

 

한국에서는 여러 이어폰을 들어보지 못하고 물건을 고르게 되어서 불만이었는데

막상 마음껏 청음할 기회가 생기자, 내 귀의 솔직한 평가를 스스로의 마음이 부정하지 못하는 또 다른 난점이 생겨버렸다.

약 30분동안 하염없이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이 녀석을 선택해 버린 이유는

어이없게도 마음껏 먹고 마시려고 준비한 맛집 순방이 불발된 데에 대한 일종의 화풀이였다.

예정된 고급 맛집 순방을 완전히 망쳐버렸기 때문에, 그 남은 돈으로 에라 모르겠다 하고 구입해 버린 것.

 

위안이라고 한다면, 면세품목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 혜택까지 받으면 국내 판매가보다 7~8만원 정도 저렴하는 점 정도.

그 차액조차 왠만한 사람들이 구입하지 않을 중고급형 이어폰 가격이니, 구입하면서 잠깐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실 한참 이어폰에 빠졌을 때는 이거보다 훨씬 더 비싼 녀석도 사용해 보긴 했지만, 벌써 6~7년 전의 이야기고

그 당시 45만원쯤 하던 이어폰보다 이 녀석 성능이 확실히 더 좋다. 이제껏 사용해 본 인이어 이어폰 중 단연 최고의 음질.

 

 

 

맛집을 즐기지 못한 아쉬움도 이걸로 후련하게 날려버리고

남은 시간은 서점에서 책이나 읽을까 하고 안내센터 직원에게 길을 물어 서점 키노쿠니야(紀伊國屋)의 위치를 확인한다.

난바 역과 마찬가지로 우메다 역도 수많은 국철, 사철, 시영 전철이 얽힌 곳이고

운영사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처럼 이어져 있지도 않고 환승도 마음대로 안된다.

날씨는 덥고 왼발은 불안불안하지만 시원한 서점을 생각하며 조금씩 발걸음을 옮긴다.

 

 

 

우메다의 키노쿠니야 서점은 오사카에서 가장 큰 서점으로

빌딩 전체를 서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가장 큰 오프라인 서점의 6배는 넘는 규모다.

외국여행이란게 자금만큼이나 시간이 아쉬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널널하게 시간이 남는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왠종일 박혀있을 자신이 있는 서점.

 

유동 인구가 많은 우메다 지역에서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관광객 흉내 낸다고 외계인 머리 닮은듯한 환풍구를 찍어보기도 하는 등, 일반인 행새를 하며 이동한다.

뒤에 보이는 희한한 디자인의 건물이 한큐(阪急) 우메다 역. 저런 거대한 역이 이곳 지역엔 사방팔방 존재한다.

 

 

 

키노쿠니야 서점 근처까지 도달해서 다시 안내센터에 정확한 위치를 물어보니

'오늘 키노쿠니야는 휴무일입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땀 뻘뻘 흘리며 20분을 걸어 찾아왔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그냥 웃음이 나오지.

우메다 앞의 안내센터 직원은 오늘이 휴무일이란 걸 몰랐을까. 그렇다면 안내센터로서 좀 문제있는 것 아닌가.

되려 이곳 직원이 더 미안해 하는 듯 해서, 그냥 웃으면서 돌아나온다. 아무튼 이번 여행은 꼬이는 곳에서는 대책없이 꼬인다.

 

이렇게 된 이상 우메다에는 볼일이 없어서 다시 난바역으로 돌아간다.

난카이(南海) 난바역 광장 앞의 조각상을 기념으로 한장 남기고, 음료수를 마시며 잠깐 휴식.

친구에게 부탁받은 물건은 전부 구입했고, 사하라 멤버 나침반님에게 부탁받은 세븐스타 담배는 공항 면세점에서 구입예정이니

아직 공항 출발까지는 2시간쯤 남겨놓고 뭘 할까 생각중이다.

 

다리는 무리하면 할수록 통증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 돌아다니기는 힘들고

그냥 이 근처 덴덴타운에 가서 한국에서 팔지 않는 코믹스나 몇권 산 뒤에 까페에서 커피나 마시기로 한다.

다리 덕분에 오카사의 명물 간식인 타코야키 등은 먹질 못해서, 내 평생 이런 여행도 해 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새로 산 이어폰의 성능에 하염없이 취해있다가 4시쯤 호텔의 짐을 찾으러 출발.

 

 

 

하지만 진통제 덕분에 다리 상태를 너무 과신했는지, 30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호텔 왕복은

예상 시간을 훨씬 넘겨 50분이나 걸리고 말았다. 정상적인 몸이라면 15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는데.

비행기 출발이 6시 30분이라서 5시 30분까지는 공항에 도착하려 했고, 이곳에서 공항까지는 45분쯤 걸리니까

4시 30분까지 이곳에 도착하려고 했는데, 막상 와 보니 4시 50분이 넘어있다. 마음이 조금씩 조급해 지는 중.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플랫홈에 나가 보니 공항까지 연결되는 특급열차 '래피드-베타'가 약 5분뒤에 출발하려고 대기중이다.

이 녀석은 스루패스로 무료 승차가 안되고 추가요금 500엔을 내야 하지만, 발목 상태와 짐을 생각하니 전혀 아깝지 않아서 이녀석으로 결정.

양해를 구하고 사진도 한장 남겨본다. 일반 전철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편안한 좌석과 넉넉한 공간 덕에 아픈 발목에 큰 도움이 되었다.

걸리는 시간은 40분으로 일반 전철과 크게 차이나진 않지만, 모든 일반 전철이 45분 걸리는게 아니라 정차역이 적은 특급 이상만 그렇기 때문에

괜히 그 녀석 시간 맞추다가는 몇분 더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어서 마음 편하게 래피드를 선택했다.

 

 

 

간헐적인 통증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지만

일단 비행기가 이륙하니 이젠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나름 홀가분하다.

예정에 없던 축제도 즐기고, 예정에 없던 사고도 생기고, 예정에 없던 쇼핑도 즐기고...

어째 이번 여행은 거의 예정에 없던 이벤트들의 연속인 듯한 느낌.

 

두번다시 겪고싶지 않은 발목의 통증만 제외하면, 이런 의외성 충만한 여행도 내 취향이다.

그 의외성이란게 결국 발목 통증때문에 생긴 거라서 난감하지만.

 

 

인천공항 착륙 20분쯤 전에 대기가 불안정한지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비행기 수십 번 타본 나로서도 평생 처음 겪어볼 정도의 굉장한 흔들림. 엉덩이가 의자에서 들썩들썩 떨어질 정도로.

 

처음에 몇번 흔들릴 때는 승객들의 웃음소리도 간간히 들렸지만, 그 뒤 롤러코스터 정도의 흔들림이 발생하자

그 웃음소리도 사라지고 객실내는 음산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승무원은 괜찮다고 방송하지만 아마 다들 어지간히 긴장했을 듯.

사고 직전의 상황은 이런 것일까 상상해보며 굉장히 즐거운 기분으로 승객들의 분위기 변화를 감상한다.

 

마침내 흔들림이 진정되고나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잡담소리가 어쩐지 더더욱 흐뭇한 기분을 만들어 주더군.

오늘 밤은 남은 진통제로 어떻게든 버텨보고, 내일 서울에서 응급 처치를 받고, 대구 내려가서부터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할 것이다.

다음 여행부터는 이런 돌발 이벤트는 사양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력을 예전 수준으로 되돌려야 하니, 좋게 생각하면 이것도 훌륭한 계기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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