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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2  과거로의 여행 - 작은 마을 키소 20

 

다음날 여전히 화창날 날씨와 함께 짐을 챙겨 마츠모토 역으로 향한다.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 원맨 열차 시각이 아직 남아서 역사 바깥의 모스버거에서 모닝 세트를 주문해 놓고 시간을 때운다.

시간이 널널하리라 생각했는데 체감상 그 작디 작은 모닝세트를 허겁지겁 먹어치운다고 느낄 정도로 여유가 없다.

아마도 여전히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일 듯.

 

원맨 열차는 차량에 승무원이 한 명밖에 없는 열차로, 승객이 그렇게 많지 않은 구간이나 무인역이 많은 구간에서 운용한다.

한국과 달리 거리별 운임이 상당히 차이가 나는 일본 전철이기 때문에

무인역에서 정산할 수단이 마땅히 않은 바, 원맨 열차의 전철 끝 기관사쪽 문을 통해서만 내리게 되어 있다.

그 앞의 요금함 안에 본인이 내야 할 요금을 내는 방식.

 

그래서 무인역에서는 다른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열리는 경우는 타는 사람이 바깥에서 버튼을 눌렀을 경우 뿐.

은근히 요금 안내고 타는 사람과 타이밍 맞춰서 나갈 수도 있겠다 싶지만

철도원들의 승객 체크는 의외로 철저한 편이고, 한적한 곳인 만큼 한번 찍히면 자칫 벌금 크게 물 수도 있으니

그냥 이런 허술함 역시 시골의 여유와 낭만의 일부분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는게 좋을 듯 하다.

 

1시간 반 가까이 전철을 타고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은근히 기억이 날 듯한 모습이 차창을 스치고 지나가면 문득문득 가슴이 지려오는 기분이다.

중간에 나라이(奈良井)역에서는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한다. 대부분이 등산복 차림을 한 노인 관광객들.

 

과거 쿄토와 도쿄를 잇는 내륙도로 나카센도(中仙道)의 유명한 숙박지였던 나라이는

아직까지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중요 관광지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을 구경하러 온다.

 

나라이에 도착했다는 건 목적지와 가까워 졌다는 의미. 괜히 카메라를 꺼내 추억속의 풍경을 찍어본다.

 

 

 

하라노 역에 내리니 잠에서 깨어난 듯 신경이 예민해지는 기분이 든다.

처음 이곳에서 마츠모토나 나가노로 놀러 갔을 때는

전철역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고요하고 자연 풍만한 이곳 모습이 놀라고

한 시간에 한 대라는 차를 놓치면 어떻하나, 무인역이라는데 표는 어디서 뽑는건가 하면서 쓸데없이 긴장타던 기억이 난다.

 

그런 안절부절마저도 결국엔 아련한 아쉬움과 즐거움의 흔적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추억이란 녀석인 듯.

 

 

 

원래는 직원이 상주하던 유인역이었다.

매표소였음에 분명한 곳은 아크릴 시간표로 단절의 의사를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3년만에 이 모습을 다시 접하니 지브리 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海か聞こえる) 마지막 장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일본의 무인역이라 하면 이곳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북쪽 무인역인 홋카이도의 밧카이(抜海)역이 나에게는 추억의 장소.

밧카이 역에서는 먹을것에 낚여서 NHK 에 출연하기도 하고, 하룻밤 자고 가기도 했는데

이곳 하라노 역은 바로 옆에 쇼야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굳이 이 안에서 텐트 칠 일은 없었다.

 

 

 

역을 나오고 나서부터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추억의 집합체일 뿐이다.

첫 여행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새롭지 않은 평범한 풍경이지만

나의 이번 여행에는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가 있다. 그 위에 다시 색을 덧칠하는 마음은 각별한 것이다.

그래서 여행에 대한 나의 지론은 확고하다. '간 곳에 또 가도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 여행'이라고.

 

당시 자전거 여행중이다 보니, 동네 슈퍼를 가도 항상 자전거로 이동했었고

당연히 마츠모토나 나고야, 나가노에 놀러 가려고 이곳 역으로 올 때도 자전거를 타고 와서 이곳에 세워놓았다.

2~3일 동안 무인역 앞에 고가의 자전거를 세워 놔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 곳이었고

히로시마 근처에서 짐을 도둑맞은 적이 있는 나로서는, 일본에서 안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여행이란 건 남한테 자랑하려고 떠나는 것이 아님이 확실하지만

남들이 쉽게 가지 못하는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은근히 드러낼 때의 뿌듯함은 분명 인간의 본능이리라고 이해는 한다.

단지 그것이 소요되는 시간과 금전의 양에 좌우되어

그곳에 쉽사리 가지 못하는 부류와의 비교가치로서 이용될 때 구린 냄새를 풍긴다는 것이 문제일 뿐.

 

그런 면에서 이곳 하라노는, 나에게 있어서는 은근히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그런 비밀스러운 가치를 지닌 곳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관광객도 이곳을 일부러 찾아오거나 부러워 할 일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도리어 마음이 편한 곳이기도 하다.

 

하라노 역 바로 옆에는 이 부근에서 가장 활성화된 키소후쿠시마(木曽福島)가 있어 그곳에 온천, 여관 등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관광객이 이곳에 올 일은 없다. 단지 자동차나 바이크 여행을 즐긴다면 큰 휴게소가 있어서 자주 들르긴 하지만.

 

아무런 특징 없는 이곳 풍경이 나에게는 죽은 세포를 되살리는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걸음을 뗄 때마다 3년 전의 일상과 겹쳐지기 때문에 좀처럼 쇼야 가족네 집까지 도달하기가 힘들다.

하라노 역과 쇼야네 집 사이에는 나가노의 허리를 관통하는 주 도로가 나고야까지 주욱 이어지고 있는데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무서운 트럭들 사이를 조심하며 건너거나

조금 돌아가긴 하지만 도로 밑으로 난 터널을 살짝 통과해 건너거나 한다.

 

횡단보도쪽으로 건너가도 괜찮긴 하지만, 횡단보도 바로 앞 가게가 본인과 큰 인연이 있는 집이라서

가능하면 쇼야네 집 사람들과 인사하는걸 첫 번째로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부러 그곳을 피해 밑으로 건너갔다.

추억이란게 이렇게도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큰 원료가 되는 녀석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뭐하고 있는건가 싶기도 하다. 겨우 3년만에 만나는 사람들인데 말이지.

 

 

 

건널목을 건너면 휴게소가 보이는 저곳으로 올라오게 되고

터널을 지나 샛길로 올라오면 여기에서 합류한다. 쇼야네 집은 여기서 고개를 돌려 반대쪽 언덕으로 간다.

 

하지만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휴게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인과 만나는 것은 쇼야네를 처음으로 하고 싶지만, 나는 이곳에서도 혼자임을 즐기는 시간이 많았다.

나름 체력을 요하는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상당한 경사를 자전거로 올라 이곳 휴게소에 도착하는 저녁 무렵엔

항상 벤치에 앉아서 음료수 한 캔과 담배 한모금으로 노을에 취하는 게 일과였다.

 

 

 

3년 전은, 본인 뿐만 아니라 쇼야 군에게도 여러가지 변화와 고통을 감내해야 할 시기였다.

친구가 적었던 쇼야 군의 소울 메이트가 자위대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던 시기였고

여전히 일본 일주 도중이긴 했지만 쇼야 군 역시 스스로 변화해야 함을 인식해야만 했다.

 

섬세하고 예민한 쇼야 군의 심리에 나라는 정체불명의 외국인이 끼어들어 몇 달간을 함께 한 시간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나에게도 그의 고민과 고통은 무시할 수 있는 남의 감정이 아니었다.

키소의 풍요로운 풍경은 전혀 변함없이 나를 차분히 들뜨게 하지만

사람들끼리의 인연이란 시간과 공간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항상 변화하며 서로 맞물리고 때로는 흩어지며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시골은 정비가 워낙 잘 되어있어서

한국과 가장 이질감이 많이 느껴지는 지역 중 하나이긴 하지만

특히나 이곳 키소 마을은, 시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어색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아담한 주택이 많다.

 

당연히 빈촌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굉장한 부촌도 아닌듯 하고

그럼에도 2층 주택과 그 앞의 텃밭, 마당의 조합은 키소의 대자연에 위배되지 않는 제한선이라도 갖고 있는듯

과시라는 인간의 욕망을 거세해버린 느낌의 조화로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휴게소로 내려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자판기에서 싸고 양 많은 탄산 오렌지 쥬스를 하나 뽑아들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짐을 내려놓은 후 한숨을 한번 내쉰다.

 

인생에서 단 3개월간의 순간이었지만, 이곳은 나에게 있어서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아무리 더워도 그늘에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그냥 주위 모든 풍경을 다시 한번 시야에 담아낼 뿐.

이렇게 한숨이 자꾸 나오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버스나 자동차로 관광하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이곳 휴게소에 내리는데

그것은 앞서 말한 내륙도로 나카센도의 거리상 정중앙이 바로 이 지점이기 때문.

 

이 지점이 쿄토와 도쿄간 거리를 정확히 반으로 나누는 곳이기도 하고

마침 이곳에 서면 저 멀리 키소 8경중 하나로 유명한 키소 코마가타케(駒ヶ岳)의 석양을 즐길 수 있다.

 

코마가타케는 당시 한국인 등산객이 사망한 그 산과 인접해 있어서

저 아름다운 풍경이 그리 우습게만은 보이지 않게 되기도 했다. 해발 3천미터 산을 그렇게 쉽게 오르려 하다니.

 

관광객들에게는 그냥 중앙에 가족 세워놓고 한장 찍는 정도의 장소이겠지만

본인은 매일 저녁 이곳에서 눈으로 보면서도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풍경의 변화를 즐기고 또 즐겼다.

 

 

 

주차 공간은 매우 넓지만 크게 특색있는 휴게소는 아닌 이곳은

시골 휴게소들이 그렇듯 반쯤은 마을 주민들의 시장같은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다.

 

휴게소는 보통 지역의 유명한 먹을거리를 주무기로 삼는데

키소는 철마다 다양한 채소가 유명하긴 해도, 장사가 되는 요리를 꼽을만한 게 별로 없는 듯.

키소엔 일본에서 소바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라 휴게소가 소바 팔아봤자 느낌이 오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날부터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까지 이곳에 머물렀는데

해발 2천미터 산맥 양쪽의 계곡을 따라 형성된 이곳 마을과 도로는

일반적인 산보다 훨씬 대기의 흐름이 변화무쌍해서, 갑작스러운 비는 이미 갑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바다를 훨씬 좋아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계곡사이 마을인 키소라는 곳의 끝없이 다양한 모습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곤 했다.

 

3년 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힘겹게 휴게소까지 돌아와 벤치에서 쉬고 있는데

폭우와 동시에 찬란한 햇살이 옆에서 치고 들어오듯 반짝이는 그 풍경은

대체 여기가 어디인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초현실적이었다.

다행히도 아르바이트 하러 가면서도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녔기에 담을 수 있었던 사진.

 

 

 

스펙트럼이 원래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지개가 떠도, 무지개 위쪽과 아래쪽의 하늘색이 전혀 다른 이런 풍경도 신기했다.

이건 키소만의 특징은 아니겠지만, 사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떡하니 나타나는 무지개를 그만큼 본 적이 드물었다는 이유도 있고.

 

그 외에도 밤에 산책 좀 하려고 손전등 하나 들고 휴게소로 내려오면

음료수 자판이 위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청개구리떼가 너무 귀여워 흥분하던 기억도 난다.

20여년 전만 해도 비만 오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청개구리가 이렇게 반가워지는 시대다 보니

세삼스럽게 이곳 키소가 정겨워지는 이벤트였다.

 

 

 

나가노의 산들은 옷을 빡빡하게 입고 있는 편이다.

이곳 지역의 삼나무들은 매우 곳도 굴고 단단한 상품으로 유명해서

황제의 궁전이나 각지의 주요 신사의 기둥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국가 소유의 재산이었다.

 

당시엔 워낙 귀한 삼나무였고, 아무리 산골 깊숙히 위치한 이런 마을이라고 해도

땔감이나 가옥의 유지 보수 등 나무가 풍족하다고 할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에

몰래 삼나무를 베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탓에, 일본 정부에서는 당시 삼나무 숲을 관리 감독하는 직책을 만들고

그 감독관에게는 살인면허의 일종인 키리스테고멘(切り捨て御免)이라는 무사들의 권리가 주어졌다.

 

'키리스테고멘'이란 무례를 범한 상인, 농민계급을 무사가 칼로 죽여도 면책받을 수 있다는 법으로

상상과는 달리 매우 엄격한 규칙에 의거해 있고, 죽인 후에도 강도높은 조사를 받는데다가

설사 정당방위로 죽였다고 해도 칼을 압수당하고 무조건 20일간 구류를 당하는 등, 무식할 정도로 야만적인 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삼나무의 관리직은 생계가 힘들어 나무를 훔치는 서민들을 상대로 하는 무자비한 감독관이었기 때문에

지역 농민들에게 적대감을 많이 살 수 밖에 없는 관직이었다.

 

지금 만나러 가는 쇼야네 가족이 그 감독관의 후손. 물론 지금은 마을 사람들끼리 악감정 같은 거 없지만

가끔씩은 쇼야네 가족들 입에서 스스로 그런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때 불쌍한 사람을 죽이는 바람에 가문에 안좋은 화가 낀 건 아닌가 하고.

 

 

 

위쪽 사진 오른쪽을 보면 바위같은게 보이는데, 그걸 확대해서 찍어보았다.

뭐, 관광 상품으로 유명한 것은 아니고 사실은 이름도 없는 바위인데

쇼야 군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 정말 큰 비가 와서 산사태가 일어나고, 그 바람에 정상 부근에서 굴러 떨어져 박혀 버린 바위라고.

 

당시엔 마을 전체가 피난가야 하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큰 산사태였다고 하니

저렇게 어마어마한 바위도 굴러내려오고 그러는 거 아닌가 싶다. 주위 나무를 보면 알겠지만 집채만한 바위다.

 

쇼야 군은 집에 있을때 심심하면 저곳에 올라가 바위 위에서 풍경 바라보는게 일상이었다고.

나보고도 몇번 가보자고 꼬시긴 했는데, 사실 저 산은 등산을 위한 산이 아니라 제대로 나 있는 길이 없다.

특히 저 바위로 향하는 루트는 정상까지 올라가서 다시 내려가야 하는데, 거기는 이곳 토박이들이 아니면 지나갈 수도 없는 길이라서.

 

자전거 여행으로 많이 지쳐있을 때라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 혹시나 다시 산사태로 바위가 이사가기 전에 한번 올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약 30분간 휴게소를 거닐며 떠오르는 상념을 즐기느라 머릿속이 바쁘다.

소야네를 만나기 껄끄러워해서 일부러 시간을 끄는 건 아니고

그냥 생각했던 그대로의 풍경이 여전히 눈 앞에 펼쳐지는 걸 보고 굉장히 가슴이 벅차오른 탓.

 

다시 이곳을 찾아온 게 역시 틀린 판단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의 자연은 시시각각 나를 만족시켜 주고, 지루할 틈 없게 만들어 준다.

 

자전거 여행중 만난 인연이 이렇게 확대되고 확대되어

지금은 새로운 가족과 고향이 생긴 것 같은 큰 마음 속 덩어리가 되었으니

훗날 너덜너덜한 인생을 뒤돌아보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그때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래도 그런 일이 있었지' 라고 웃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