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코베'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2.04  엄니와 함께 - 코베 (2/2) 10
  2. 2014.01.29  엄니와 함께 - 코베 (1/2) 2

 

요즘 도쿄의 스카이 트리 같은 경우는 엄청난 관광객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하는데

코베의 포트타워는 야경이 좋긴 하지만 역시 높이도 그리 높지 않고 관광객도 그리 많이 찾지 않아서 좀 황량합니다.

 

낮에 찾아왔으니 더더욱 그런데, 딱히 주변엔 먹을만한 게 없더군요.

하지만 날씨는 쌀쌀해지고 배는 고프고 해서 근처 호텔의 뷔페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런치 뷔페가 1200엔으로 꽤나 싼 편이었는데, 사실 그걸 더 원했다고 할까요.

아침을 많이 먹어서 굳이 코베 스테이크 같은 고기요리를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뷔페 들어가면 많이 먹긴 하겠지만.

 

 

 

저렴한 뷔페다 보니 음식 종류는 꽤나 적었지만 하나하나가 먹을만해서 다행입니다.

밥하고 어울릴 반찬부터 간단한 닭고기와 돼지고기 요리 등등

작정하고 가게를 박살내러 갈 요량이 아니면 느긋하게 런치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네요.

 

코베까지 와서 이런 국적불명 뷔페나 먹나 싶기도 했지만

엄니께서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고, 바람이 매서워서 좀 쉬고 싶었으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긋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뷔페가 적당하다 싶더군요.

런치 영업시간이 3시까지였지만 어차피 2시간이 넘게 남았으니 문제 없습니다.

 

 

 

크게 비싼 요리는 없었지만 다들 음식이 깔끔해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직원분이 소고리를 끌고다니면서 원하는 손님들에게 조금씩 나눠주고 있습니다.

소금에 절인 후 겉만 살짝 익혀 보관한 듯한 녀석이로군요.

 

돼지고기는 이탈리아 등에서 이렇게 햄처럼 숙성시킨 녀석들 많이 먹는다는데

아무래도 단가가 비싼 녀석인지 그냥 놔두지 않고 요렇게 한 사람당 두 조각씩만 나눠줍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뷔페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인을 장식한 녀석은 이 전골이더군요.

일본에서는 이런 1인용 전골 냄비를 많이 사용합니다.

여행사 따라 여행할 때, 손님들에게 바로바로 내 줄 수 있는 장점도 있고 말이죠.

 

이곳은 뷔페다 보니 안에 들어갈 재료와 국물 종류를 자기가 선택해서 담으면 됩니다.

종업원 분들이 돌아다니다가 이걸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밑의 고체연료에 불을 붙여 주죠.

 

 

 

저하고 엄니는 벌써 꽤나 많이 먹은 후라서

한 냄비로 두 명이 나눠먹기로 합니다. 따뜻한 국물과 각종 해산물, 닭고기 등을 넣어서 시원하네요.

 

대구의 이리로 보이는 저 녀석은 볼 때마다 제가 엄니한테 물어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옛날엔 그냥 내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내장이 아니더군요.

궁금한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길.

 

뷔페 음식은 미리 만들어 놓아서 질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 있지만

이렇게 고체연료가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끓고 있는 냄비를 보면

왠지 그냥 뷔페보다 좀 더 괜찮아 보인다는 느낌이 듭니다. 머리 잘 썼네요.

 

 

 

아이스크림이 6종류가 있는데, 처음엔 그냥 맛만 보자 하고 가져왔지만

먹어보니 이게 빕스나 에슐리 같은 곳의 아이스크림과 레벨이 다른, 상당히 제대로 만든 녀석이라

안 먹고 가는건 아깝다고 모든 종류를 다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엄니께서도 처음엔 영 주저하셨지만 드셔보니 종류별로 맛과 향이 잘 드러나서 결국 조금씩 다 드시더군요.

똥색은 뭐 설명할 것도 없지만 푸른색은 라무네라는 일본식 레모네이드 사이다 맛이고 분홍색은 복숭아 맛입니다.

 

 

 

옅은 색은 요구르트 맛이고 노란 색은 망고, 녹색은 뭐 말할것도 없죠.

생각보다 괜찮은 퀄리티에 놀라는 동시에, 한국의 뷔페집 아이스크림 수준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세삼 깨달았습니다.

 

에슐리라던가 빕스라던가, 음식은 이제 그럭저럭 적응하고 맛있게 먹는 편이지만

아이스크림만큼은 그냥 애들 먹으라고 대충 선정한 듯한 그 낮은 수준이 영 적응이 안되고 있죠.

가끔은 아이스크림 값이 비싸니 그냥 맛없는거 놔 둬서 많이 못 먹게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엄니와 저도 꽤 오래 앉아있었지만 재미있게도 원래 앉아있던 모든 손님들이 저희보다 더 늦게 일어나더군요.

아주머니 몇 분이 언제부턴가 식사는 접어두고 줄창 음료수만 뽑아와 계속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1200엔 정도의 런치 뷔페란 일본에서 그냥 간단한 식사 한 끼 하는 정도의 금액이라

아주머니들 역시 아이들 학교 보내고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떨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75세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은 혼자 오셔서 천천히 음식 덜어먹고 커피 마시며 신문 읽고 계시네요.

걸음이 조금 불안하게 보일 정도로 몸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 분인데, 일본의 혼자 식사 문화에 어지간히 익숙해 진 저로서도

흔치 않은 광경이라 살짝 놀랐습니다. 10년쯤 뒤엔 한국에서도 이렇게 혼자 외식하러 나오는 70대 후반의 노인들이 많아질 듯 합니다.

 

그러고보니 저희 가족 중 혼자서 식당에 앉아 밥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기도 하네요.

부모님은 죽었다 깨어나도 혼자서 외식은 못한다고 고개를 흔드시는데,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긴 합니다.

 

 

 

조금만 먹고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는데 음식을 앞에 두면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결국 배가 터질 때까지 뷔페를 즐기다가 아까와는 달리 터질듯한 배를 움켜잡고 다니 돌아다녀 봅니다.

 

한국의 재래시장이 요즘 애를 써서 지붕도 만들고 하며 자구책을 고심하고 있는데

일본 역시 대형 마트의 난립으로 많이 힘들어졌다고 하지만 워낙 이런 상가가 발달되어 있어서 한국보단 여유가 있는 편이죠.

시대 흐름의 차이라고 할까, 이쪽은 같은 장소에서 몇 대를 이어 장사하던 사람들이 눌러앉은 곳이라서

마을 사람들과의 유대 덕분인지 망하지 않고 계속 장사할 정도는 되는 듯 합니다.

 

물론 한국처럼 점점 이웃 얼굴도 모르게 되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그 유대감이 끊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죠.

 

어느 가게에서 폐업 세일을 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어 엄니가 호기심에 들어가 봤는데

시장판 싸구려가 아니고 원래 50~60만원 하던 것을 15만원에 파는데다가 200만원짜리 가죽 가방을 60만원에 파는 굉장한 세일중입니다.

엄니도 보시고 가방 수준이 장난 아니라고 굉장히 눈여겨 살펴보시는데, 점원이 슬슬 바람을 잡아주더군요.

물론 엄니는 일본어를 모르시니 제가 알아서 커버했습니다.

 

가방의 품질로 본다면 이걸 60만원쯤에 구입하면 굉장히 잘 산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문제는 이 가게 독자적인 브랜드라서 소위 '명품'이라 잘못 불리고 있는 사치품 가방에 비해 희소가치가 떨어지는게 문제인 듯 합니다.

아마 가게 안에서 고민중인 많은 여성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엄니는 그냥 실컷 구경하다가 가방은 집에 많이 있다면서 그냥 나오셨습니다. 하나 구입하셔도 된다고 옆구리를 찔러봤지만 별 효과가 있었죠.

 

 

 

코베 관광에 꼭 들어가는 차이나타운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란히 늘어서 있습니다.

일반적인 시장 거리와 바로 한 블럭을 두고 늘어서 있어서 상권 경쟁같은거 일어나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파는 물건이나 음식도 그렇고 차별화가 아주 명확해서 크게 다툼은 없을 것 같더군요.

 

능숙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화교도 있고, 그냥 일본인이 장사하는 가게도 있고 그렇습니다.

일본 정도로 철처하게 고립된 사회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마을을 이루는 화교의 수완은 정말 놀랍기 그지없네요.

 

 

 

한국에서 꽤나 많이 찾아간다는 나가사키의 하우스 텐 보스도 그렇고

이곳에 와서도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딱 그겁니다. 왜 일본에서 중국풍 거리를 걷고 있는 걸까.

 

여기는 구경하러 왔다기 보다는 산책하는 길에 맛있는 거나 먹어볼까 싶어서 왔지만

하우스 텐 보스 같은 곳은, 어마어마한 돈을 써가며 일본에서 네덜란드를 구경할 필요가 있을까 항상 궁금할 따름이죠.

버블경제의 절정을 달리던 시기에 지어진 녀석이라 모든 건축자재를 전부 네덜란드에서 수입해 왔다는 점이 놀랍긴 합니다만.

 

각설하고, 저나 엄니나 배는 터질 것 같지만 차이나타운에 와서 먹을거리도 하나 즐기지 않고 돌아가기는 너무 아쉬워

터질 배를 움켜쥐고 조금이라도 신기해 보이는 거 먹어보려 애 씁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더군요.

 

검은색도 그냥 검은색이 아닌 암흑의 심연같은 만두가 눈에 띄여서 하나 사 봤습니다.

색깔은 맛에 크게 관련이 없는 듯 해서 아쉬웠지만, 육즙 가득 머금고 살짝 짭쪼름에 달달한 돼지고기 볶음 속이 맛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뷔페집에 간 걸 조금 후회하게 되었죠.

여기서 조금씩 조금씩 맛있는 거 다양하게 먹었어야 되는데 뷔페에서 그렇게 빵빵하게 하고 왔으니.

 

홀로 여행때는 자금을 아끼기 위해 고심고심해 맛있어 보이는 녀석 사먹고 했다면

지금은 배가 너무 부르기 때문에 고심고심해 맛있어 보이는 녀석을 골라야 하는 사치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엄니는 정말로 배가 부른지 아무리 나눠먹자고 말씀드려도 한 입도 드시지 않더군요.

 

일본식 교자도 맛있지만, 교자 하면 역시 원조는 중국이기 때문에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도저히 이것저것 먹을 배가 아니라 아쉽지만 좀 더 한국에서 먹기 힘든 녀석을 찾아다녀 보기로 합니다.

 

 

 

중국음식은 일단 기름을 사용하는 것들이 많고

특히 군것질거리는 뭐 말할것도 없이 칼로리 폭탄인 것들이 많아서...

 

확실히 저렇게 먹는게 맛있긴 합니다. 은근히 빡빡해 보이는 일본 군것질거리와 비교해서

한국적인 느낌도 나고 말이죠. 배만 고팠으면 아주 정복을 하고 다녔을 텐데.

 

 

 

진짜 중국 거리와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세계 어디든 차이나타운의 분위기는 아이덴티티가 드러나죠.

강렬한 붉은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거리의 모습은 일본의 거리와는 다른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겨울이고 평일이고 해서 코베 시내 전체는 꽤나 한산한 편이었지만

차이나타운엔 역시 관광객들 많이 오더군요. 차이나타운에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았다는 건 좀 신기하지만.

실제로 오사카에 있는 코리아 타운도 그렇고, 제일 많이 활용하는 건 재일한국인이었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이곳 코베의 차이나 타운에도 중국사람들이 실생활에 사용할만한 자국 식재료들 같은 거 많이 팔더군요.

 

중간중간 신라면이나 냉동만두 같은 한국어가 적혀진 녀석들도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코베의 소고기가 유명한 대신 차이나타운에서는 돼지고기 요리가 인기를 끕니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길게 줄서서 뭔가 사먹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엄니도 함께 있고 해서, 배만 안 불렀다면 줄 좀 서서 뭔가 먹어보기라도 했겠습니다만

시장이 반찬인 것처럼 배부름은 어떤 진수성찬도 길바닥의 개X처럼 보이게 만들죠.

 

 

 

먹는건 포기하고 그냥 재밌는 마스코트 앞에서 사진이나 찍습니다.

차이나타운은 왠지 아무렇게나 마구 사진 찍어도 별 문제없을 듯한 기분이 든단 말이죠.

쿄토 같은 곳에서는 기념품 파는 가게에서도 매의 눈으로 살펴보다가

'사진 찍으면 안됩니다!' 같은 소리로 사람 김 빠지게 만드는데, 이곳은 별로 그런 걱정은 없습니다.

 

 

 

먹는데 대한 미련은 별로 없어서, 못 먹어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저기서밖에 먹을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먹거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엄니는 중국에도 몇 번이나 여행을 다녀오셨고

이런 거리음식과는 다른 진짜 진수성찬도 먹어보고 하셨기 때문에 이곳에 별 미련이 없으신 듯 하네요.

간식거리 조금 맛이라도 보라고 말씀드려도 배부르다는 말만 하시고 전혀 손을 대지 않으십니다.

 

 

 

차이나타운을 빠져나와 산노미야 쪽으로 걸어가면 큰 백화점이 있는데

엄니가 학교 선생님한테 부탁받은 유아용 그림책과 함께

손자가 가지고 놀 만한 그림책이나 장난감 찾아보려고 서점에 들어가 보자고 하십니다.

 

키노쿠니야(紀伊国屋)라는 일본 최대의 서점체인이 마침 백화점에 입점해 있어서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놀랍게도 할머니 한 분이 이 강아지 두 마리를 자전거에 남겨놓고 그대로 백화점에 들어가 버리시는군요.

이곳은 아직 강아지 납치 같은거 걱정 안해도 되는 곳인가봅니다?

 

강아지들은 많은 사람들이 귀엽다면서 다가와 웃어줘도

할머니가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딱딱하게 굳어서 오직 백화점 문 앞만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몇 번 겪어본 일인지 뛰쳐나가지도 않고 가만히 기다리는게 대견하다고 할까 안스럽다고 할까.

 

10미터쯤 떨어진 백화점 앞 네거리에서는 젊은이들이 피켓을 들고 큰 소리로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싶어 들어봤더니 후쿠시마 지진으로 갈 곳을 잃은 강아지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돕자는 호소를 하고 있더군요.

단순히 애완동물만의 문제가 아니라 후쿠시마의 남겨진 동물들에 대한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한국의 다큐에서도 많이 나왔듯, 수만 마리의 소와 말, 개, 닭, 고양이 등이 방사능에 피폭당하는 동시에 굶어죽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이죠.

 

젊은 청소년들의 힘은 한계가 있으니 일단 애완견, 애완묘라도 돕자고 홍보를 하고 있는데

엄니께서는 역시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그냥 피식 웃으시더군요.

사람도 못 돕는데 동물은 뭔 동물이냐고. 하지만 손자가 커서도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을지가 걱정이네요.

사람이 동물도 못 도우면 사람답게 살 수나 있을까 싶습니다.

 

 

 

여기서밖에 못 먹어볼 듯한 녀석이라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하나 사 왔습니다.

창업 40년이 넘은 전통있는 가게에서 팔고 있던데, 조금 딱딱한 크로와상 같은 빵 속에 코베 소고기를 넣은 고기호빵 같은 느낌입니다.

만두처럼 부드러운 건 아니고 프랑스식 빵에 고기를 넣은 듯한 묘한 퓨전느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만족했던걸 보면, 춥고 배고픈 겨울날 하나 사먹으면 굉장히 맛있었을 듯 하네요.

무게감이 있고 크기도 작은 편이 아니긴 하지만 380엔이나 하는 비싼 군것질거리라 혼자 여행다닐 때 과연 먹을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점에서 부탁받은 그림책과 손자용 장난감을 좀 구입한 후 다시 밖으로 나옵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쉴새없이 걸었으니 엄니께서는 굉장히 피곤하실텐데

버스타고 가자고 해도 한 코스밖에 안되는 거 뭐하러 타냐고 하시며 계속 걷는군요.

 

저도 다리가 후들후들할 정도인데, 걱정을 하면서도 일단 코베에 왔으니 건질 건 건지려고 다시 포트타워 쪽으로 이동합니다.

 

 

 

엄니가 오늘 이곳만 세 번이나 왔다면서 웃으시더군요.

사실 제 사진 욕심때문에 괜히 엄니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닌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좀 마음에 걸리는 중이긴 했습니다.

 

포트 타워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서 엄청 놀라운 야경을 보여줄 정도는 아니죠.

밖에서 보는 모습이 더 재미있긴 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올라는 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전진 또 전진.

 

 

 

포트 타워 안엔 별하늘 아래를 걷는 듯한 조명이 사방에 깔려있어서

야경사진 담기엔 오히려 좀 귀찮은 구석이 있더군요. 밖에서 보는 것 만큼 조그마한 타워라서 별 감흥은 없었습니다.

하긴 이 타워의 4배가 넘는 높이의 스카이 트리에서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여기라고 별 수 있나요.

세삼스럽긴 하지만 타워 올라가서 구경하는 건 제 성격과 별로 맞지 않는 듯 합니다.

 

그래도 볼만한 것들은 많았는데요. 쿄토 산자락의 '大' 자를 본따 만든듯한 항구 표시가 저기 산 위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좀 멀어서 박력이 좀 줄었지만, 어쨌든 한 번쯤 신기하게 쳐다볼 가치는 있겠죠.

 

 

 

해양박물관은 밤이 되니 좀 더 볼만하네요.

포트 타워는 이름답게 바다를 끼고 있어서 다른 곳보다는 야경이 좋습니다.

밤이 되니 한번 더 20년 전의 모습이 상상속에서 일어난 듯한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제가 괜히 엄니를 싸구려 비지니스 호텔에 끌고 갔나 싶은 생각이 항상 남아있어서 그런지

여행중 멋진 호텔만 보이면 '돈만 많았으면 저기 묵을 수 있었는데' 하는 한숨을 쉬곤 했네요.

 

물론 엄니께서도 어차피 저녁에 잠만 잘거 뭐하러 그런 데 돈 쓰냐고 하시긴 합니다만.

저는 아직 호화스러운 여행을 가 본적이 없어서, 한번쯤 경험해 보면 그것도 재미있지 않겠나 상상만 하고 있습니다.

호화스럽다고 해도, 여행사 패키지에 들어있는 4성, 5성급 호텔 정도를 말하는 것이니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겠죠.

 

여담으로 부모님이 예전 여행갔을 때 여행사에서 착오가 있어 호텔 스위트룸에서 자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돈이 있어도 투숙할 수 없고, 국빈들에게나 제공하는 스위트룸이었는데 저희 집보다 두세 배쯤 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일박 수천만원짜리 그 스위트룸 역시 그냥 하룻밤 자고 일어나 떠나면 끝이었다고 허무해 하셨습니다.

 

 

 

포트 타워 근처는 해양박물관 쇼핑몰, 유원지, 유람선 등 즐길거리가 많지만

엄니나 저나 그런건 별로 안좋아하는 성격에다가, 오늘 이상하게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굉장히 음산한 느낌밖에 안들더군요.

 

포트 타워 야경 구경이라는 항목은 어느 여행 가이드에나 반드시 나와있는 정석 코스인데

막상 와보니 중국인과 한국인 관광객 무리들 말고는 동네 마실 나온 듯이 조용했습니다.

대학생 커플쯤 되는 아해들이 많이 와서 야경의 낭만을 즐기고 있던데

아무래도 저처럼 엄니와 둘이서 여행 온 일행은 없는 것 같아서 더더욱 군중속의 고독을 느낀다고 할까요. 물론 전 그런 거 매우 좋아합니다.

 

 

 

 

산노미야 주변에도 괜찮은 호텔이 좀 있긴 합니다만

이곳 코베 항 주변은 역시 경치 때문인지 척 봐도 고급스럽게 보이는 호텔이 많습니다.

코베는 지진 탓고 있고, 버블 붕괴 이후로 킨키 지방중 가장 경기가 안 좋은 편에 속하는 도시라서

이렇게 한적한 동네 풍경속에 유난히 빛나는 고급 호텔의 모습을 보면 왠지 안스러운 느낌마저 들곤 합니다.

 

실제로 차이나 타운 정도 말고는 거의 대구의 본가 근처 동네 산책할 때보다 사람이 더 없었던 하루였네요.

엄니도 우리 뭔가 관광 잘못온거 아니냐고 걱정하실 정도였고.

 

겨울이라 일본 중부지방은 관광 수요가 좀 줄어든 탓도 있습니다만

겨울에 돌아본 도시 중에서도 이 곳은 제 예상보다 좀 황량한 느낌이 드는군요.

 

 

 

타워 야경을 꼭 보라고 꼬드기는 세간의 흐름에 넘어가 억지로라도 올라간 포트 타워입니다만

엄니나 저나 피로가 상당히 많이 누적되어, 이젠 뭐가 어찌되든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들더군요.

 

그래도 1층에 내려오니 한국의 빼빼로와 비슷한 포키로 만든 타워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옆에는 일본 각지의 타워들을 소개해 놓았는데, 자전거 일주여행을 하다 보니 거진 한번씩은 지나가면서 쳐다본 것들이네요.

엄니는 우메다 공중정원 사진을 보고 신기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곳 코베보다 오사카 우메다가 더 가까웠기 때문에 살짝 뜨끔했습니다.

 

예전에도 가 봤지만 높은 곳은 그렇게까지 볼 만한게 별로 없어서.

 

 

 

코베에서 한 번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은 채 걸어다닌 저와 엄니입니다만

이제 지칠대로 지쳤고, 어차피 오사카행 지하철 타려면 산노미야 역에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코베 지하철을 한번 타 봤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역내에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네요.

 

엄니와 저는 둘이서 미나토 모토마치(みなと元町)역의 고요한 승강장에 서서 공포를 만끽했습니다.

인구 150만의 중소도시 치고는 너무나도 한적해, 왠지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물론 피와 살과 뼈가 날아다니는 상큼한 영화라서 진짜 긴장하고 있는 엄니한테 말씀드리긴 어렵죠.

코베에 관광와서 이런 한적함도 구경해 보는구나 싶어 사진은 재미있게 담았습니다.

 

일본은 전혀 관광 시즌이 아닌건지, 코베가 그냥 그런건지, 우리가 너무 늦게까지 돌아다닌 건지.

이러나 저러나 제가 코베를 관광 목적으로 다시 찾을 일은 거의 없을 듯 해서

느껴진 텅 진 승강장도 나름 재미있게 느껴지더군요. 어차피 산노미야 역은 붐비겠지만.

 

 

 

산노미야 역에서 난바까지는 40분만에 간단히 도착합니다.

기차 안에서 신나게 졸아댈 정도로 피곤했나 보더군요.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엄니가 가볍게 저녁 먹자고 하십니다. 숙소 안에서는 별로 먹을 게 없으니까요.

 

숙소 바로 옆이 상점가라서 먹을 건 많습니다만, 짜고 기름진 거 싫다고 하셔서 조금 더 발품을 팔아봤습니다.

그래서 10평도 안되는 허름한 가게 문을 무작정 열고 들어갔네요. 여기도 창업 40년은 넘었다고 적혀있습니다.

동네의 조그만 가게들은 대부분 술집도 겸하고 있는 형식이라, 들어가니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맥주 한 잔씩 들이키며 식사 중이로군요.

 

일본에서는 아직 실내 흡연도 인정되고 있어서, 술과 저녁식사와 담배까지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담배냄새가 좀 거북했습니다만, 이것도 동네 구멍가게의 저녁 풍경이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누그러진 마음으로 구경했습니다.

 

엄니는 계란과 버섯, 각종 야채를 얹은 덮밥을 주문하셨습니다. 이것도 좀 짜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담백해서 먹을 만 하다고 하시더군요.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할아버지와 서빙하는 할머니는 아무래도 부부인 듯 합니다.

엄니가 처음엔 자매가 아닌가 생각하셨다고 할 정도로 닮았는데, 역시 오랫동안 함께 하면 얼굴도 닮아가는 걸까요.

 

저는 중화소바를 시켰는데, 강렬한 라멘보다는 훨씬 옅은 국물맛에 숙주나물이 듬뿍 들어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늦은 밤이라서 너무 짜고 진하면 얼굴이 참 귀엽게 부풀어 오를거라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운 맛이라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옆에 후추통으로 보이는 깡통이 있어서 후추 좀 뿌릴까 싶어 집어들었는데

너무 가벼워서 빈 통인갑다 하고 다시 제자리에 돌려 놨습니다.

라멘 먹으면서 주위를 돌아보니 노인들이 담뱃재를 그 깡통에 털고 있더군요. 재떨이였습니다.

안에 무게감이 느껴졌다면 아마 그걸 라멘에다가 들이 부었을 텐데

그랬다면 라멘이 아까운 게 문제가 아니고, '라멘 잘먹다가 담뱃재 들어부은 괴인 출연'이라고 뉴스에 나갈 것 같아서 섬뜩하더군요.

 

미친놈 취급 받지 않고 안전하게 끝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숙소에서 목욕 후 2층 침대로 기어 올라가는데, 내일은 아무래도 여정을 좀 가볍게 해서 일찍 돌아와 쉬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7시에 조식 먹으러 로비로 내려갑니다.

슈퍼 호텔 조식은 저가 비지니스 중에서는 그래도 먹을만한 녀석이고

고기반찬 생선반찬, 달걀, 낫토, 된장국 등등 건강에 별로 나쁘지 않은 반찬이 나와서 나이 드신 분들도 잘 드시는 장점이 있죠.

 

잠은 잘 잤지만 엄니는 역시 좀 피곤하신 듯 합니다.

밥 먹고 소화 좀 시킨 후 나가려고 했는데 잠깐 TV보며 누워있으니 금새 잠이와서 9시 반까지 자 버렸네요.

여행사를 따라다니는 일정이 아니라 피곤하면 늦게 나가서 좀 덜 돌아보면 되고 이런 건 편합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도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엄니께서는 외국이니 도시도 괜찮다고 하셨고, 어차피 내일부터는 거의 대부분 고즈넉한 곳만 돌아다닐 예정이라

크게 관심은 없어도 오사카 옆의 코베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곳도 관광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을 들어서.

 

 

 

자전거 여행중 코베에 도착했을 때는 길거리에 사람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아서

대체 뭔 일인가 싶어 알아보니 타이밍 참 절묘하게도 1년에 한번씩 열리는 루미나리에 당일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한신 대지진을 잊지 말기 위해 매년 12월날 열리는 루미나리에는 코베 시내 전체 교통을 통제하고 보행자 천국으로 만드는

도시 최대의 행사였기 때문에, 자전거 역시 내려서 간신히 인파를 헤쳐나가야 했고, 당연히 노숙할 만한 장소따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호텔을 잡으려고 해도 이미 코베 시내 모든 호텔이 만실인 상황. 루미나리에를 보고 싶긴 해도, 자전거 세워두고 텐트 칠 장소도 없는 터라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하고 도망치듯 코베 시내를 빠져나왔던 기억이 있네요.

 

그 탓에 코베는 자전거 여행 중 별로 추억이 없는 도시라서, 이번에 한번 가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도망치듯 빠져나왔다는 일 자체도 소중한 추억이긴 하네요.

 

코베의 중심역인 산노미야(三宮)역에서부터 여기저기 걸어다니시며 엄니는 진짜 지진으로 쑥대밭이 난 곳이 맞나 놀라워 하셨습니다.

이미 지진의 참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고, 젊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점차 그 때의 악몽도 사라져 가고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콘크리트 건물처럼 쉽게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코베는 뭐, 자전거 여행 당시에도 별로 흥미가 없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코베 소고기가 유명하고, 차이나 타운이 유명하고 그렇고 그렇지만

도시 경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오사카와 크게 다른 점을 느끼기가 힘들었으니까요.

 

물론 파고들면 오사카와 다른 점도 많지만 이곳은 하루 이상 느긋하게 둘러볼 만한 구경거리는 별로 없는 곳입니다.

롯코산(六甲山)이라는 곳에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 보는 야경은 훌륭하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만

오사카를 거점으로 저녁에 돌아가야 하는 여행길에서는 꽤나 힘든 여정이라 그건 산뜻하게 포기합니다.

 

산노미야 역에서 바다쪽으로 주욱 이어지는 넓은 대로는 플라워 로드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정성들여 가꿔 놓은 꽃들이 안간힘을 다 하고 있어서 엄니가 매우 좋아하시더군요.

 

 

 

일본의 겨울 여행은 대부분 완전 남부 아니면 완전 북부로 갈라지는 경향이 있어서

중부지방인 코베는 생각만큼 여행객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길거리 걸어가다 보면 한국인 젊은 커플들의 목소리가 군데군데 들려오긴 합니다만.

 

빌딩 숲이라고 해도 확실히 한국과는 분위기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도 유심히 살펴보면 좋은 여행거리이긴 하죠.

엄니께서는 적당히 주변 둘러보며 구경하시다가 이 주변에 큰 서점 같은거 있으면 나중에 들어가보자고 하십니다.

 

엄니 학교 선생님이 유아용 그림책을 부탁한 게 있어서, 그거 사 줄겸 손자 책도 하나 구경해 보려고 말입니다.

형수님이 일본어를 살짝 읽을 순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일본에서 그림책을 사 줄 필요가 있는가 의아하지만

엄니는 그냥 외국까지 왔으니 손자 선물 사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설명을 하시더군요.

 

 

 

엄니께서는 제가 풍경을 찍던 엄니를 찍던 꽃을 찍던 그냥 갈 길을 가셔서

저는 엄니를 쫓아다니며 사진 담을만하다 싶은 녀석을 번개같은 순간에 캐치해서

촛점이 맞았는지 안맞았는지 확인도 못하고 그냥 후다닥 셔터 누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강행군을 해야 합니다.

 

아예 카메라를 가져 오지 않았거나, 스냅머신인 똑딱이를 가지고 왔거나, 최신 미러리스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지만 저는 가난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카메라가 벽돌만한 DSLR 과 방망이만한 렌즈밖에 없거든요.

 

이런 여행은 그리 자주 하지 않으니 참으면 될 일이지만, 역시 필요할 때 필요한 크기의 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코베에 오긴 했는데 조식을 든든히 먹어서 뭘 먹고싶은 생각도 별로 없고

도시 조성은 참 잘 되어있는데 그렇다고 딱히 유별나게 볼 만한 곳도 없어서

산책을 즐긴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이곳저곳 걸어갑니다. 그래도 하늘이 눈부시게 맑아서 그거 하나로도 만족.

 

 

 

공원같은 곳에 도착하자 수많은 방송 장비들이 바쁘게 뭔가 설치를 하고 있더군요.

뭘 하는가 궁금해서 주위를 슬금슬금 둘러보다가 늦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엄니와 함께 여행하는 점에 신경을 쓰다 보니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바로 다음 날인 1월 17일이 한신 대지진 19주년이었던 것이었죠.

 

추운 날씨에 그래도 외국 여행이라고 텐션을 좀 높여서 걸어가고 있던 엄니와 저는 잠깐 조용해졌습니다.

그래도 만약 내일 코베에 갈 예정을 잡아 놓았었더라면 이거보다 훨씬 더 어색한 기분이 되었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은 했네요.

내일은 아마 여행객들이 이것저것 돌아보면서 웃고 즐기고 맛있는거 먹고 할 만한 기분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일본 어느 도시를 가나 꼭 찍어보는 맨홀 혹은 소화전의 모습입니다. 관광에 조금이라도 신경 쓰면 꼭 재미있게 만들어 놓더군요.

코베는 좀 큰 도시라 그런지 지역별로 맨홀에 그려진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코베는 오사카, 쿄토, 히메지 등 굴지의 관광 명소에 포위되어 있는 도시라서 그런지

관광보다는 상업 중심의 도시이긴 합니다만, 항구로서의 기능이 뛰어나 서양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곳이라 그쪽 방면 볼거리는 좀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 본격적으로 여행 가기 전의 코베는 역시 NBA의 코비 브라이언트 선수의 에피소드로밖에 남아있지 않았죠.

코비 아버지가 코베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그게 너무 맛있어서 아들 이름을 코비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대체 무슨 의도로 채워 놓은 것인지 궁금했던 자물쇠.

자세히 보니 체인을 고리에 둘러서 고정시켜 놓은 것이더군요. 왜 이런 방법을 썼는지 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원래 혼자 여행가면 이런 '외국 관광'과는 전혀 관계없는 모습에 더 진지하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편이지만

이런 사진 한 장 찍는 순간에도 엄니는 축지법을 구사하시며 계속 앞으로 전진하고 있어서

역시 남과 같이 가는 여행은 바쁘구나 싶더군요.

 

엄니는 제가 어디 가는줄도 모르는데 저보다 먼저 앞서서 걷고 있으니 참 신묘합니다.

 

 

 

해안가 쪽 거리는 서양식 석조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백화점이나 은행 등으로 쓰이고 있더군요.

한신 대지진 당시에도 콘크리트 건물이나 석조 건물은 별로 무너지지 않아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듯.

 

점심시간이 다가와서인지 갑자기 건물들에서 양복입은 사람들이 우루루 쏟아집니다.

코베에서는 단연 코베 소고기가 유명하다고 하지만, 엄니는 먹는데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분도 아니고

조식을 든든히 먹어서 고기 먹고싶지는 않다고 하셔서 그냥 적당히 즐길만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일본쪽은 워낙 편해서 여행 기분이 들지 않는 탓도 있지만

딱히 어느 지역에 왔다고 해서 꼭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지방 특유의 요리 등을 먹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같은게 없습니다.

그래서 지역색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그냥 먹고싶다는 느낌이 드는 것만 먹는데, 엄니는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거리 이름이 해안거리입니다만

아무래도 건축 양식등을 보면 서양 문물에 크게 영향을 받은 거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겠더군요.

 

아무래도 실제 거주민들보다 저처럼 여행 관광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거리의 구석구석을 유심히 살펴보는 경향이 있으니

어디에서나 보이는 흰색 테두리에 푸른 색 철판으로 만들어 진 거리명 간판보다 이런 황동 간판이 훨씬 눈에 들어옵니다.

 

거리 자체가 옛 서양식 건물들로 이루어 져 있어서, 미관과의 조화를 생각해 만든 것이겠죠.

간판 하나가 인상을 깊게 만들 수도 있는게 여행이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좀 더 머리를 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건축 양식 자체가 한국에서는 별로 좋은 기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약간 기분이 어색하더군요.

며칠 전 서울 올라갔을 때도 여전히 구 서울역사의 모습은 묘하게 이질적이었습니다.

 

건축학적으로 의미는 큰 녀석들이겠지만 역시 일제시대의 잔재다 보니 좋게만 봐 줄수는 없는게 민족성이란 녀석일지도 모르겠네요.

조금 더 느긋하게 즐길 요량이었다면 저런 건물들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윈도우 쇼핑 같은 건 조금 더 몸이 지치고 나서 즐기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일단은 계속해서 해안쪽으로 이동합니다.

 

 

 

해안쪽으로 다가오자 사정을 알고 있는 저에게는 참 씁쓸한 모습이 눈 앞에 드러나더군요.

한신 대지진 당시 전 세계에 지진의 참상을 단 한장의 사진으로 표현했던 그 녀석입니다.

 

지금은 국도 2호선으로, 여기서 좀 더 움직여야 한신 고속도로와 연결됩니다만, 그 모습만큼은 19년 전의 악몽을 으스름하게 간직한 듯 하네요.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코베 하면 어쩔 수 없이 맨 먼저 떠오르는 사진입니다.

코베는 수백 년 동안 고진도 지진이 일어나지 않은 안전한 지대에 속해 있었고

이 고속도로가 완성될 1960년대 중반까지는 진도 7.0 이상의 강진에 견딜 수 있는 기술이 없었죠.

 

다시 재건된 고속도로는 진도 7 이상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재건 당시 이제 지진에서 안전하다고 자신감을 표하곤 했습니다만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진도 9.0 이라는 인류 역사상 5번째로 강력한 지진이 토호쿠 지방을 강타해 버렸으니...

진도 7.2 였던 한신 대지진의 1000 배가 넘는 위력을 가진 녀석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동일 국가에서 일어난 점을 보면

코베의 지진 후유증과 불안감이 사라지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코베는 지진 이후 거의 디폴트 상태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습니다만

세계 각지에서 엄청난 성금이 쏟아졌고, 그때까지는 부유했던 일본 정부의 국가 주요 정책으로 복구를 지원했기 때문에

지금은 일부러 기억하지 않는 한 그런 대지진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고도화 도시로 변신했습니다.

 

깊은 새벽에 일어난 지진이라 사상자가 6천여명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는 점도 어찌보면 다행이고...

제가 고가도로를 보며 엄니에게 설명을 드리니 한동안 주위를 둘러보면서 정말 여기에 그런 지진이 있었던 거냐고 물어보시네요.

 

 

 

아주 작은 구역입니다만 한신 대지진 당시의 피해 상황을 그대로 남겨놓은 메모리얼 파크입니다.

제 설명을 들어도 실감이 나지 않던 엄니께서도 이 모습을 보시자 깜짝 놀라시더군요.

 

참상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더욱 비참한 구역을 남겨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이상의 보존은 아마도 살아남은 코베 시민들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만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본 소고기중 최고라는 코베 소고기를 스테이크로 즐기고

차이나타운의 흥겨운 호객행위와 맛있는 군것질거리를 즐기고

거대 백화점과 상점가들 사이에서 쇼핑을 즐기며 코베 타워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그런 여행이라 하더라도

이 메모리얼 파크에서만큼은 그냥 웃고 즐길수 만은 없는 것이 코베라는 도시의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라고 하겠죠.

 

굉장히 복잡한 도시이긴 합니다만, 이쪽 해안가로의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

주민들이 운동복 입고 조깅을 즐기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이 보존 지역만 없다면 아미 미국의 해안가 공원을 연상시키는 아늑한 모습에 가슴이 시원해졌을 것 같네요.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나름 성공적인 복구가 이루어진 도시였기 때문에

매년 1월 17일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선 안된다고 촛불을 켜며 염원을 빌곤 했는데 말이죠.

이 비극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공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동일본의 대지진 때문에

이곳의 19주년 추모식은 더욱 숙연해 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좀 더 깊게 따지고 들어가면,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들의 근본적인 정서적 차이가

수천년 가까이 계속되어 온 이런 자연 재해에서 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인생관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은 그렇게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정말 큰 차이가 있죠.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전에는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차이 때문에 섣부른 판단과 추측이 어렵기도 합니다.

 

 

 

메모리얼 파크는 정말 산책하기 딱 좋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제 눈 앞에 나타나는군요.

코베가 대지진이라는 이름 하에서 어느 정도라도 벗어나려면 아직 수십 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풍경을 봐도 마음 속에는 항상 그 때의 고가도로의 모습이 떠오르니 말입니다.

 

 

 

해안가라서 빌딩들에게 방해도 받지 않고 하늘은 눈을 못 뜰 정도로 화려합니다.

코베에서 건진 가장 큰 볼거리가 이 시간대의 하늘이었다는 생각이 들어도 과하지 않겠더군요.

 

엄니는 벤치에서 잠깐 쉬도록 하고 자판기에서 따듯한 콘스프 하나 뽑아왔습니다.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 엄니는 처음에 얼굴을 찡그렸지만, 그게 음료수가 아니라 따뜻한 옥수수 스프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씨앗 하나 빠트리지 않고 쪽쪽 다 드시더군요. 저도 한모금 얻어마시려고 했는데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추운 초겨울까지 자전거 여행을 할 때, 자판기의 콘스프는 저한테도 큰 도움이 된 녀석이었죠.

 

 

 

아마 혼자 온 여행이었다면 이곳에서 최소 한두 시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즐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콘 스프에 힘을 얻은 엄니는 제가 사진 좀 찍고 있는 와중에 다시 저 멀리 출발해 버리시는군요.

 

하긴 엄니 가이드 역할로 온 것이라 사진을 너무 찍어댈 필요는 없으니, 사진보다는 엄니 꽁무니를 쫓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도 이 날 코베의 하늘은 정말 담아내는 실력이 부족한 것을 아쉬워 해야 할 정도로 대단해서

천천히 셔터 찬스를 기다려도 안타까울 판에 엄니가 계속 이동하셔서 그냥 대충 담아버릴 수 밖에 없다는게 조금 아쉽긴 했죠.

 

 

 

해안가 공원에는 코베 포트와 해양 박물관, 쇼핑몰 등 그럭저럭 볼 만한 것들이 꽤나 있습니다.

 

엄니는 해외여행 경험이 워낙 풍부해서... 안 가본 대륙이 아프리카와 남미, 호주 정도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죠.

그래서 여행사 따라가면 꼭 들어가게 되는 각종 박물관이라던가 수족관이라던가 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그래서 이곳 박물관들도 그냥 산뜻하게 패스하기로 하고, 신기한 건물 외관이나 사진으로 담아보고 있습니다.

 

 

 

지면에 떨어져 짜부가 된 롤케이크 처럼 생긴 저 건물은 해안가 호텔입니다.

제가 돈이 많았으면 저런 곳에서 하룻 밤 묵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자괴감에 빠지니 엄니가 피식 웃으시더군요.

 

뭐, 사실 일박 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지만... 엄니나 제 성격상 저런 데서 자 봤자 어차피 저녁에 잠만 자는데 돈 아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터이니.

 

 

 

원래 이쪽은 밤에 포트 타워를 올라가 야경을 즐기는 게 여행의 기본 코스로 알려져 있는데

시간이 남아서 그냥 낮에 한번 둘러보려 왔던 곳이, 찬란한 하늘 덕분에 그래도 가슴 시원하게 만들어 줘서 좋았습니다.

 

엄니는 추위에 약해서 빨리 이동하자고 계속 신호를 날리고 계셨지만, 전 찬바람을 좋아하는 터라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끌고 있었죠.

산노미야 역에서 이곳까지는 그렇게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서

아침부터 지금까지 전철 약 4코스 정도의 거리를 도보로 이동하고 있었죠.

 

저는 중간중간 엄니한테 어디 들어가서 쉬거나 버스타고 이동하지 않겠냐고 물어봤지만

겨우 한두 코스 이동하는데 뭔 버스냐고 계속 걸어가시는 바람에 조금 걱정도 되었습니다.

날씨도 춥고 하니 배가 많이 고프진 않지만 근처에서 휴식과 식사를 겸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죠.

 

'떠나자 > 近畿'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니와 함께 - 코야산 오쿠노인 (1/2)  (6) 2014.02.05
엄니와 함께 - 코베 (2/2)  (10) 2014.02.04
엄니와 함께 - 오사카  (14) 2014.01.28
킨키 방황 - 우메다에서 마지막 화풀이  (17) 2012.06.12
킨키 방황 - Give Up  (14) 2012.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