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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풍'에 해당하는 글들

  1. 2012.06.10  킨키 방황 - Give Up 14

 

 

통증때문에 길어봤자 한 시간 정도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고 아침을 맞이한다.

 

어리석은 희망이었을까.

파스 좀 붙이고 있으면 나으려나 싶었는데, 아주 조금 통증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걸어다니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화장실 가는것도 힘들고, 의자에 앉아있는것도 힘드니, 유일한 해결책은 침대에 누워 있는 것 뿐.

무료 조식을 먹으러 가는것도 무리니까, 예정대로 새벽에 나라를 둘러보고 오는것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마에다 씨 부부와 한번 더 만날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이러나저러나 오후에 출판사와의 미팅만큼은 취소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최대한 회복을 해 놔야 한다.

파스는 여러 장 들어있었으니 2시간 간격으로 바꿔주면서 무조건 쉬고 또 쉬는 수 밖에.

쓰레기통과 사용후의 수건을 문 밖에 놔두면 청소하는 사람이 들어오지 않으니까

결국 오전 시간동안은 그냥 얌전히 누워있기를 선택한다. 나라의 호류지와 사슴을 한번 더 보고 싶었는데.

 

내일 귀국시간이 오후 6시 반이니까 시간적인 여유는 꽤나 있는 편이니

혹시 운이 좋아서 발목이 회복된다면 그때라도 좀 어기적거려볼까 싶다.

 

통증, 피로, 수면부족의 삼종세트가 어우러지니 어째 어젯밤보다 아침 7시부터 잠이 더 잘온다.

파스를 붙이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통증도 많이 줄어들기 때문에

오사카 도착후 거의 처음으로 달콤하다고 느껴질 만한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약 2시간 간격으로 살짝살짝 깨긴 하지만 짜증날 정도는 아니고, 기분좋게 뒤척이며 TV 보고 있으면 다시 잠이 들기를 반복.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하늘도 영 찌부둥하고, 오후부터는 강수확률이 80%에 달하기 때문에

결국 관광 하루 빼먹을만한 여러가지 제반 사정은 갖춰진 셈이니까 조금은 덜 아쉽다는 느낌도 든다.

 

오후엔 출판사에 들른 후 아무 미련없이 바로 호텔로 돌아올 예정이니까, 내일은 그럭저럭 돌아는 다닐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생긴다.

미도스지 페스타 당시부터 무리를 하긴 했는지, 엄지발톱 안쪽에 피멍이 들어있군.

이 정도 통증이면 이게 어느 부분이 아파오는지 구분도 못할 지경이 되기 때문에 피멍이 든 줄도 몰랐다.

걷는 자세도 엉망이었으니 피멍 정도는 충분히 들고도 남았을 거라고 납득.

저 피멍이 발톱 끝으로 밀려나오려면 수 개월은 충분히 걸리는데

결국 끝까지 밀려나온 피멍을 발톱과 함께 끊어버리면 꽤나 후련한 느낌이 든다.

 

오후 2시까지는 정말 편안한 느낌으로 푹 쉬었다. 슬슬 회복된다는 실감이 들 정도로.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2시에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서는 순간, 익히 경험해 왔던 느낌이 엄지발가락 관절에 돌연 나타난다.

작년 자전거 여행 귀국 직후, 여러가지 집안 사정과 떨어진 체력,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발병했던 통풍의 느낌 그대로다.

 

한동안 본인이 착각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때와는 달리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통풍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전엔 근 2주일 가까이 발가락 관절 부분이 조금씩 뜨겁고 살짝살짝 욱신거리다가 결국 악화되는 순서가 있었는데

바로 한두시간 전까지만 해도 평소와 전혀 다를바 없던 관절이 갑자기 눈에 띄게 느낌이 오는 것은

이제껏 알고 있던 통풍에 대한 지식과는 동떨어진 현상이라서 머리가 멍한 느낌이다.

 

혹시 염좌에서 발생한 염증이 통풍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싶었는데

훗날 귀국후 병원에 가서 물어보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는 대답을 받았다.

그래서 족구 신나게 하던 사람이 갑자기 통풍 증상때문에 병원에 실려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나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그저 신기할 뿐.

 

처음부터 통풍이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봤지만, 발목의 상태는 분명히 염좌가 확실하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통풍의 지옥같은 고통은, 한번 겪어보면 염좌와 확실히 구별이 되니까.

애초에 발목의 통증이 통풍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어제처럼 코야산을 걸어다닌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

통풍의 통증은 참을성으로 걸어다닐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움직이지 않아도 통증은 지속되고, 그 강도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

학문적인 신뢰성은 부족하다고 하지만, 평균적으로 급성 통풍의 관절 통증은 여성의 출산시 고통에 맞먹는다고 할 정도.

정말 심할 경우엔 스스로 관절을 잘라내 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냥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지발가락 관절의 통증은 통풍이 확실했기 때문에, 한동안 패닉에 빠졌다.

좀 있다가 출판사에 가야 하는데, 염좌는 둘째치고 통풍까지 겹친다면 어제와 비교할 수 없는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물론 이동거리는 훨씬 짧지만 통풍의 통증이 본격화되면 그때부터는 그냥 지옥이니까.

지금 욱신거리는 정도는 발목의 염좌와 비교해서 그리 심한 편이 아니지만, 일단 이런식으로 발병하고 나면

길어봤자 2시간 사이에 본격적인 통증이 시작된다는 것을 작년의 체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하지만 여기서 출판사와의 미팅을 캔슬시킨다면, 일본에 온 이유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서 그럴수는 없다.

 

잠시동안 멍한 눈을 하고, 현재 가능한 최선의 방법을 시뮬레이션 해 본 결과

최대한 빨리 일어나서 출판사와 미팅을 마치고 즉시 돌아오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동은 무조건 택시로. 왕복한다면 아마 한국 돈으로 8만원 정도는 깨질것이 틀림없었지만

이 상태에서 전철따위 탔다가는 중간에 그냥 주저앉아서 엠뷸런스에 실려가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재빨리 파스를 잘게 잘라서 발가락 관절쪽을 한바퀴 감싼 다음, 폭발물을 다루는 느낌으로 조심스럽게 양말을 신고 신발을 끼워넣는다.

 

통풍의 원인은 단백질 생성물인 퓨린 성분 때문이지만, 그 퓨린때문에 일어나는 염증이 격통을 일으키기 때문에

임시 방편으로나마 파스도 일단 진통제 역할을 하긴 한다. 통풍의 통증은 파스 정도로 해결할 수준이 아니긴 하지만.

왼쪽 신발은 줄을 다 푼 다음 최대한 느슨하게 해서 간신히 발을 집어넣는다. 왼발이 1.5배 가까이 부어있어서 그냥은 들어가질 않으니.

걸음걸이는 어제와 변함없이 질질 끌다시피 할 수 밖에 없지만, 최소한 걸을 수는 있는 지금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최대한 일을 보고 돌아와야 한다.

 

출판사 관련 일은 공개적으로 포스팅할 생각이 없으니 이 부분은 패스.

 

돌아와서 신발을 벗자 이제 통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감각이 느껴진다.

한번 겪어본 사람이라면 정말 치를 떨 정도의 극악한 통증.

초침에 맞춰서 바늘로 관절을 쿡쿡 찌르는 감각이다. 그런 것 같은 감각이 아니라 정말 찔렸을 때의 통증과 똑같을 정도로.

초 단위로 일정하게 바늘이 피부에 박히는 느낌을 몇 시간동안 계속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많던 파스도 거의 다 써버렸다. 발목 염좌도 치료된 게 아니라서 왼쪽 발은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

발가락 관절에 파스를 붙이면 단 몇초간 시원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걸로는 숭례문 화재시 오줌 한번 갈기는 수준밖에 안된다.

 

 

 

코야산에서 느꼈던 불교의 가르침을 몸에 새기고

부처가 된 듯한 느낌으로 처연히 고통에 몸을 맞기고 있었지만

입적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성인군자처럼 폼 잡고 고통을 이겨낼 수는 없다.

 

저녁 7시쯤 일은 잘 되었냐는 엄니의 문자가 도착해서, 몸 상태를 설명했는데

단호하게 당장 나가서 진통제 사먹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가는게 아무리 힘들어도 그 상태로는 밤을 못 견딘다고. 통풍은 밤에 더 심해지는게 맞다.

 

통풍 치료제는 퓨린의 생성을 억제하는 약과, 염증을 치료하는 소염제, 진통을 덜어주는 진통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단 염증으로 인한 통증이 심할 때에는 퓨린 억제제가 소용이 없기 때문에, 우선은 진통제와 소염제를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통풍용 진통, 소염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의사의 처방 없이는 구할 수 없는 매우 강한 성분이기 때문에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 진통제는 정말 일시적인 응급 처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간호사 경력이 풍부한 엄니가 강력하게 요구를 했기 때문에, 아무리 아파도 일단 나가서 진통제를 사오는게 정답이라고 생각.

밖엔 비도 오고 있고, 약국은 전철역 근처의 지하상가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지금의 나로서는 굉장한 도전이다.

호텔 로비에서 약국의 정확한 위치를 표시한 지도와 우산을 빌려서 조심조심 몸을 옮기기 시작.

극기훈련도 이런 극기훈련이 없지만, 어쨌든 이 방법밖에는 없다.

계단을 통해 지하도로 내려갈 때, 장애인의 서러움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40분만에 약국에 도착. 8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아슬아슬했다.

일본에서는 통풍을 뭐라고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한자 그대로 읽어보니, 다행히도 이곳 역시 똑같은 병명을 쓰고 있었다.

약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통풍약은 이런 곳에서 살 수 없다고 설명해 줬지만

내일 귀국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설명을 하자, 큰 효과는 없다고 하면서도 일단 제일 강한 진통제를 하나 골라주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왔는지 감탄도 하시던데, 통풍의 통증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사람이 없을때

이렇게 그 고통을 이해해주는 의사나 약사를 만나면 왠지 위로받은 것 같아서 살짝 마음이 놓인다.

 

탈진상태에 가까운 몸이지만 돌아오면서 편의점에 들렀다. 8시 30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은게 없었으니.

식욕이 있는건 아니라도, 뭐든 입에 집어넣어야 약효도 올라가기 때문에 의무감으로 도시락을 두개 산다.

2L 짜리 생수도 두 통을 구입. 의학의 힘을 빌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통풍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속적인 수분 섭취밖에 없다.

퓨린 성분은 대소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역시 많이 마시고 줄기차게 싸는 것이다.

 

호텔에 돌아오자 프론트 직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호텔엔 지금 이것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쓰시라고 파스 몇조각을 건네준다.

효과는 둘째치고 그렇게 신경 써 주는 것만으로 흡족한 기분이 되었으니, 큰 도움을 받은 셈이다.

당시는 통증때문에 여행시 빠지지 않고 쓰는 일기도 쓰지 못했지만, 훗날 그 호텔 체인점을 찾아갔을 때

고객용 설문지에 그 때의 배려에 대해 감사의 인사라도 한마디 써서 보내야 겠다고 생각.

 

 

 

커피의 카페인도 극히 미흡하긴 하지만 통풍의 통증 완화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프론트에서 염치 불구하고 커피를 세 봉지 가져왔다. 이곳 토요코 인은 몇개월 전까지 커피 수준이 별로였지만

이번에 갔을땐 커피가 꽤나 마음에 드는 즉석 드립방식으로 바뀐 덕에 나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드립 커피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한국의 몇몇 맛없는 대형 프렌차이즈 점포의 커피보다 더 낫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커피는 인스턴트 봉지커피 중에서는 꽤나 괜찮은 품질을 자랑한다. 이 녀석을 준비하는 호텔은 좀 센스가 있는 편이다.

 

하루에 두 알만 먹으라는 진통제를 6시간 간격으로 한알씩 먹는 극약처방까지 해 가며

없는 식욕에도 불구하고 도시락을 마구 입에 집어넣고 10분 간격으로 꾸준히 물을 마셔준다.

당연히 머나먼 화장실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눈물 찔끔 짜야 할 정도로 고생을 해야 하지만

내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서 최대한 상태를 호전시키려고 필사의 사투를 벌인다.

그 상황을 머릿속에서 재현해 보니, 총만 안들었다 뿐이지 전쟁터 한가운데 있었던 느낌.

 

다행히도 진통제는 진통제,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관절의 통증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잠은 잘 수 있을 정도의 진통 효과가 있다.

이런 약 없이 급성 통풍 걸린 사람이 밤에 잠을 잘 수 있는 확률은 아마 로또에 버금가지 않을까 싶다.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고통은 계속되지만 그래도 최대한 많이 싸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서 이를 악물고 왕복.

혼신의 힘을 다해 오줌누려고 화장실로 향하는 자신의 모습이 허탈해서 가끔 웃음도 나온다. 통증때문에 미쳐버린 건 아닐까 걱정도 되고.

 

자본주의의 노에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일본 병원에 가면 수십만원씩 깨지기 때문에

내일까지만 참으면 내가 이긴다는, 살짝 정신줄 놓은 생각 덕분에 병원을 찾지 않았으니까.

내가 백만장자였다면 느긋하게 택시 불러서 병원에 갔겠지. 그러고보니 백만장자라면 애초에 이런 식으로 여행도 하지 않을 듯.

 

진통제라는 든든한 아군의 지원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수분 보급과 호텔 직원의 정성이 담긴 파스의 도움을 받으며

타지에서 염좌와 통풍의 더블 어택이라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아 고군분투하며 마지막 밤을 보낸다.

그래도 TV 프로그램이 재미있어서 웃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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