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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조 라이트 감독에 대해 특별히 흥미가 동하진 않는다.
내가 보는 영화 스타일과는 동떨어진 면이 있어서 그럴까.
실제로 이 작품을 보게 된 이유도, '2차대전'과 '경이적인 롱테이크'가 주된 이유였으니 말이다.

다 보고 나니 그 2가지 말고도 여러가지 얻은 게 많아서 뿌듯했다.
그런데 뿌듯하긴 해도 그리 즐겁지는 않은 기분인 것이,
사실 사건의 강도를 줄여본다면 인생에서 이런 실수, 혹은 무지에 의한 고의 등은 누구나 경험해 보는 것 아닌가.

나도 분명 중학교 2학년때 한 친구를 크게 다치게 한 적이 있고,
여전히 그 친구한텐 미안한 마음 뿐이며,
지금도 잠자리에 들었다 혹여 머릿속에 그 일이 떠오르면 그 죄책감에 진저리를 치고 밤잠을 설치곤 한다.

자신에게 속죄를 내려줄 구원자가 사라져 버린다면 그 죄는 영원히 댓가를 요구한다.
이러한 죄책감의 사슬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데 적절한 직업이 바로 작가라는 부류.
자기 몸을 스스로 채찍질하는데 지친 사람들이 그 죄의식을 벗어버리기 위해 하는 행동은 한국의 '굿판'과 비슷하다.
그와 더불어 어느 정도 사회적인 명성과 지위도 함께 즐길 수 있는게 작가라는 부류가 아닐까.
무당이 굿을 하면서 유령을 성불시키면 미X놈 널뛰는 짓이 되지만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그들의 명복을 빌면 (덤으로 자기 자신의 죄책감도 덜어버린다면 일석이조) 베스트셀러가 된다.

감독 자신이 코멘터리에서 밝혔듯이 이 작품은 '작가와 작가의 정신에 관한 영화'다.
작가를 위한 정신적 지침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실된 작품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로 치장해서 증명해 주니까.

이렇게 행복한 거짓말로 가득 찬 작품에 신세대 장르인 영화의 매력을 가미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는 매우 성공적이다.
영상, 음향, 배우 모두 나무랄 데가 없으며,
그 모든 것 보다 더 놀라운 점은 감독이 관객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할 줄 안다는 것이다.

굳이 장면을 분석적으로 보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앞으로 일어날 사건과,
카메라의 시선 앞에 놓인, 보이지 않는 불안감을 기대하게 만드는 편집 능력은 가히 탁월하다 할 수 있다.
조금씩 삐걱대는 이야기의 흐름조차도 결국 마지막엔 납득할만한 무대장치의 하나쯤으로 만들어버리는 감독의 힘은 대단하다.

나처럼 로맨스 영화 안좋하는 사람들. 이거 봐도 된다. 로맨스 영화 아니니까.
감독은 해피엔딩이라고 밝혔고, 현실에서의 행복도 이런 씁쓸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 더욱 납득이 간다.
영상, 음향에 파고드는 매니아적인 취미를 가진 분들에게도 큰 흥미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던커크 해변의 롱테이크 씬은 '칠드런 오브 멘'의 그것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덤으로

시어샤 로넌(Saoirse Ronan)이 연기한 어린 브라이오니는 작품 내 모든 배우들을 압도할 정도로 환상적이다.
입술의 떨림과 눈썹의 움직임만으로도 지금 내가 쓰는 장황한 글보다 훨씬 뛰어난 설득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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