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해상자위대 박물관 '강철의 고래관(てつのくじら館)'
놀랍게도 이 해상자위대 박물관은 입장료가 없다!
볼거리는 야마토 박물관 못지않게 많은데 입장료가 없다!
헝그리한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여, 이곳을 놓치지 마라!
늙으막한 노인장 한분이 입구에서부터 길을 안내하고 있는데, 이곳은 대부분의 전시장이 매우 어둡고 좁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사진찍을때는 고생 좀 한다.
전시관의 대부분은 일본 해역을 위협하고 있는 기뢰의 위험성과 제거방법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잠수함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일본 자위대의 잠수함 건조능력에 대한 자화자찬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원폭의 악몽만큼이나 일본을 오랫동안 속썩인 것이 일본 근해에 무수히 뿌려진 수중 기뢰들이었다.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 후, 일본 열도의 거의 전 해역에 무자비할정도로 배치된 기뢰들 덕에 일본은 해상 통로가 거의 봉쇄되다시피 했고
무기보급뿐 아니라 통상무역조차도 불가능하게 된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사실 그 때쯤 이미 전쟁은 결판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신기한 장난감을 손에 쥔 미국이 그 손을 휘두르는 바람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호해져버린 결과를 제공하고 말았던 것.
이탈리아제 기뢰도
러시아제 기뢰도
일본 근해엔 온갖 나라들이 '세계 기뢰박람회'를 연일 개최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종전 후에도 30년이 넘도록 기뢰에 의한 피해는 계속되었고, 덕분에 일본 해상자위대의 전력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이 30여척의 기뢰제거함이다.
기뢰는 그 다양한 종류만큼이나 제거법도 다양한데
무인 또는 유인 잠수정으로 기뢰의 위치를 파악한 후 부표를 띄우는 등의 방식으로 기뢰의 위치를 고정시키는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물론 소리에 반응해 폭발하는 음파기뢰처럼 엔진을 사용하는 잠수정으로 다가갈 수 없는 경우에는
이러한 이동식 간이부표 역할을 하는 녀석들을 기뢰제거선 뒤에 쌍으로 달아놓고 바다를 훑는 방법을 이용해 위치를 식별한다.
위치가 발견된 기뢰는 잠수원이 직접 뇌관을 해체하기도 하고, 멀리서 이런 개틀링으로 폭파시키기도 한다.
세계 곳곳에서 지뢰라는 악독한 전쟁무기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처럼
수중기뢰 역시 전쟁과 상관없는 일반인을 휘말려 들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무자비한 무기인 만큼
위치가 파악된 기뢰를 인정사정없이 박살낼때의 성취감은 해상자위대 안에서도 특별한 것이겠지.
물론 지형적 특성상 지뢰보다도 작업위험도가 높은 기뢰제거다 보니 사상자도 많이 발생했다.
갑옷에 가까운 안전장비를 갖추고 들어가도 기뢰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니.
기뢰 제거에 혁혁한 전과를 세운 이 쌍끌이 부표도
운 나쁘면 이렇게 개발살이 나버리기도 한다. 하물며 사람이야...
일본 역사상 최대규모의 기뢰제거작업작전이 실시되던 도중 기록보관용으로 사용되었던 니콘의 F3 HP (High Eye Point) 모델.
애초에 이 모델의 수중용 뷰파인더는 이를 위해 개발된거나 마찬가지였는데, 의외로 일반 사용자들에게 엄청난 호평이었다고 한다.
일촉즉발의 바다 아래에서 3만 9천장이 넘는 컷수에도 꿋꿋히 제 역할을 다 하는 니콘 카메라의 바디 신뢰성은 정말 온갖 칭찬이 아깝지 않다.
그런데 디지탈로 넘어오면서 결과물 못뽑아주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니... ㅡㅡ;
이번 히로시마여행에 D3 를 갖고 갔는데, 이미지 퀄리티에서 만족하진 못하겠다.
아~ 필름 쓰고싶다.
기뢰제거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다음으로 나타나는게 잠수함의 구조와 역사.
특전 유 보트나 크림슨 타이드나 K-19, U-571 등의 잠수함 영화를 참 좋아하는게
장님들의 싸움이라 일컬어지는 잠수함이라는 전쟁 무기는, 옆에서 구경하기에도 살떨릴만큼 폐쇄적 공포로 가득 찬 곳이기 때문에.
물론 실제로 들어가서 싸워보라고 하면 죽기 바로 다음으로 하기 싫은 일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공간을 아껴야 하는 잠수함에선 이렇게 식탁 의자속에 식재료를 보관하는 등의 자잘한 아이디어가 절실히 필요했단다.
누워있어도 이마가 윗 침대에 닿을 만큼 아슬아슬한 높이를 유지했던 것도 결국 공간의 효율적 활용때문에.
유람선이 아닌 이상 잠수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투함은 통로든 뭐든 좁게 만들어져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제일 표현 못하는게 전함과 잠수함 내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건 내 사진찍는 능력이 허접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능력이 허접하다는 주장에 반박하려는게 아니고 의도적으로 이렇게 찍은 사진이란 의미.
찍으면서도 '화벨 보정해서 잘 나오게 만들어볼까' 싶었지만 그럼 이런 구경거리를 만들어놓은 의미가 없으니.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느냐 하면. 잠수함 내부에는 낮과 밤을 자각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므로, 밤엔 저렇게 붉은 등을 켜서 승무원들의 바이오리듬을 유지하도록 한 것.
어느 센스넘치는 사람께서 이러한 야간등 아래서 먹는 야식 메뉴를 정성스럽게 구경거리로 만들어 놓은 것은 정말 감탄 감탄.
원래 사람에게 어떤 상황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기 위해선 일단 음식과 결부시키는게 효과가 제일 좋기 때문에.
공짜관람인데도 상당히 볼만한 구경거리로 넘치는 곳이라 기분좋게 나가려고 하는데 드디어 이 박물관 비장의 카드가 나타났다.
건물 밖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던 잠수한 아키시오(あきしお)의 내부를 구경할 수 있게 해 놓은 것.
이 잠수함은 5년 전까지 실제로 취항중이던 진짜 잠수함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장교용 화장실도, 수백 명의 밥을 책임지는 주방도 조그맣기 그지없다.
실제 잠수함의 통로는 왠만한 남성 둘이 마주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디 좁았다.
육지에 올라와 있는 녀석이라도 그 안은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이녀석이 물 속에 들어있을때를 생각하면 참 잠수함이란 무기는 꽤나 비인간적으로 설계된 녀석인듯 하다.
실제 잠수함이라서 이녀석은 입장료가 필요한거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무료다.
그도 그럴것이 내부의 모든 장비가 실제 사용하던 것이다 보니 일반 관람객이 구경할 수 있는건 선두 중앙부분의 통로 조금과 잠망경이 있는 조타실 일부밖에 없는 것.
특히 조타실쪽은 실제 군인이 직접 경비까지 서 가며 '사진촬영엄금'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을만큼 보안에 신경쓰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잠망경을 실제로 써 볼 수는 있었는데, 엄청난 밝기와 선명함을 가지고도 정말 멀리 있는 쿠레 조선소 내부에 정박해 있는 배가 한눈에 들어온다.
카메라 렌즈를 만져보신 분이라면 이런 고배율에 이런 밝기가 가능이나 한가 싶을 정도로 고성능이었다. 군용이니 당연하겠지.
예정에 없었던 공짜 구경까지 실컷 하고 든든해진 배를 두드리며 (이건 정신적 욕구의 충족을 가리키는 고도의 은유법이라고 설명까지 할 필요는 없을듯) 히로시마시로 돌아가는 JR 전철을 기다린다.
날씨가 28도 정도로 꽤나 더웠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밥 한끼 못먹고 지금까지 돌아다니고 있으니 꽤나 채력이 달린다.
이놈의 카메라와 렌즈 무게만 3kg 인데, 전자책, 여권 등의 필수서류를 우겨넣은 숄더백은 내 체력을 소모시키는 큰 원인으로 급부상중이다.
원래 오늘은 그냥 공원 벤치 아무데서나 자거나, 만화까페 같은 데서 싸게 때울 예정이었지만 지금 히로시마로 돌아가면 4시쯤.
지금부터 엎어질 수는 없는 노릇인데, 짐 정리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구경거리를 찾아서 나가려면
그 전에 체력도 좀 회복하고 싶고, 뜨끈한 물에 목욕도 즐겨야 이 피곤함이 가실 것 같다.
적당히 싼 비지니스 호텔이라도 찾아볼까 싶네. 하루 이틀 해 본것도 아니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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