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연례행사인 김장.
저는 줄곧 서울서 자취를 하다 보니 김장을 도와본 적이 거의 없었지만
올해는 본가에 내려와 있는 고로
온 동네에 맛있기로 유명한 울집 김치의 비법을 전수받고자 한 몸 바치기로 햇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중, 고등학교때도 울집 김치가 맛있다고 소시지와 바꿔가는 친구들이 있었는가 하면
부모님 산악회 동기들도 산에 갈때마다 울집 김치좀 많이 가져와 달라고 할 정도로
울집 김치가 맛있긴 한가 봅니다. 전 쭉 울집 김치만 먹었고, 남의 집 김치는 거의 안먹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김장 전날 엄니께서 교장단 1박 2일 회의때문에 집에 안계셨던 관계로
아버지께서 배추를 씻어놓으셨습니다. 원래 저하고 같이 하려고 했는데 재즈 페스티발 갔다 오니 그새 다 해놓으셨더군요.


고춧가루와 찹쌀풀, 마늘, 액젓, 새우젓, 매실 원액 등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양념.
사실 만드는 전반적으로 도대체 다른 집 김치와 뭐가 다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함 그 자체인데
맛이 있다고 호평을 받는 건 역시 손맛이란 걸까요.


차례로 줄을 서서 김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김치냉장고 바구니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 먹고 본격적으로 김장 담그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엔 이 모든 일을 엄니 혼자서 하셨다고 하니 왠지 끔찍해 지는군요. ㅡㅡ;
작년엔 아버지하고 두분이서 했고, 올해는 저까지 가세했으니 그나마 좀 수월하게 끝날 듯.



양념이 뻑뻑하다 싶을 땐 다시마와 멸치를 우린 국물로 시원함을 더해주기도 합니다.


김치 사이사이에 집어넣는 각종 야채들. 이게 나중에 잘 익으면 김치와 동화되어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어진다죠.


마찬가지로 포기 사이사이에 집어넣는 무.
이것도 가만 놔두면 양념이 저절로 스며들어 맛있는 무김치가 됩니다.


양념에 빠지지 않는 청각. 시원하고 산뜻한 맛이 나게 합니다.
가끔 김치 먹다보면 지렁이 똥같이 생긴 것들이 나오는데 그게 이 청각의 숙성된 모습.


본격적으로 재미를 들이신건지, 힘든 일을 도맡아 하려는 의도였는지
아버지께서는 옆에서 도와드리려고 해도 혼자 한다며 소를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내년 먹을 김치는 엄니 손맛이 아닌 아버지 손맛이 담긴 녀석이 되겠네요.


사실 김장에 소 넣는것 말고도 할일이 태산같다는건 다들 아실테니.
저 역시 사진만 찍고 논게 아니죠.
여러 잡다한 장비들 이리저리 옮기고 어쩌고 저쩌고 잡일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성격이 원래 그런 분이라 아버지께서는 4시간 반동안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50포기 200쪽의 배추 속을 다 넣으셨네요.


배추 포기 속에 보이는 저건 뭘까요... ㅡㅡ;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묻혀버린 비운의 국자.


이제 맛있게 숙성되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물론 이 후에 새로 담근 김치와 돼지고기 수육으로 거하게 한판 벌였다는건 당연한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