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대구시내 동성로에 친구보러 나갔습니다.

전 어린이는 아니고 어른이라고 불리는 키덜트라서, 생각하는건 역시 고딩때와 별로 변한 것도 없군요.

지식과 경험은 쌓이고 좀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근본적인 건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이먹으면 철든다는 이야기도 절대 믿지 않는 편이죠.

젊을때 덜된 녀석은 나이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이 노력하지 않는 이상.

 

일 관계로 일본 가기 전에 또 부탁받을게 좀 있어서 고교동창 친구와 그 동생분을 만났습니다.

만날 때마다 만화책을 비롯해서 여러가지 서적을 듬뿍듬뿍 주고 받기 때문에 유익하죠.

동성로는 어린이날과는 그닥 관계가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바글바글합니다.

고딩때나 지금이나 그런 분위기에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라서, 딱히 나이먹었다는 느낌도 들진 않는군요.

 

일단 밥이나 먹자고 골목길 구석에 위치한 고기집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가게 이름이 '고기 굽는 남자'였던가...

 

 

 

싼 것도 아니고 비싼것도 아닌, 시내치고는 무난한 돼기고기가 나무판때기 메뉴에 적혀있군요.

시내 음식점이란 워낙 치열한 전쟁터라서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인상을 심어줘야 하겠죠. 나무판에 손글씨로 적인 메뉴는 재미있었습니다.

가게 이름은 고기 굽는 남자인데 오늘 서빙해 주시는 분은 여자사람이시네요.

 

그 여자사람분이 동생분의 넥삼 카메라를 보고 자기도 그거 쓴다고 잠깐 대화를 나눴습니다.

 

 

 

산지 일년도 되지 않아서 단종되어버린 비운의 NEX-C3 녀석.

소니는 아무튼 신제품 바디를 너무 빨리빨리 찍어내서, 자기 제품의 감가상각에 신경쓰는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합니다.

동생분은 어차피 이녀석으로 끝장을 볼 생각이라 단종되었어도 그닥 데미지는 입지 않은 듯.

저걸로도 뭐 못찍을 사진은 없으니까요. 이제 카메라 성능 탓에 사진 못 찍을 시대는 아닙니다.

 

 

 

점심시간은 지났고, 저녁시간까지는 꽤나 남은 어중간한 시간이라서 가게 안에 손님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일부러 이런 시간대를 선택했죠. 시내에서 사람들에게 치여가며 밥먹는거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에.

예전에 한 번 가봤을때 그 독특한 모양새를 한 돼지고기가 인상적이라서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젊은 주인장분이 열정적이고 친절하게 손님들을 대접해 주기도 해서, 힘든데도 열심히 하는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죠.

스테이크처럼 매우 굵은 고기 한점을 뚝 떨어트리고 한참을 굽습니다.

 

 

 

본인이 직접 하겠다고 말하지 않는 한, 이곳에서는 점원들이 시간에 맞춰 고기를 구워주러 옵니다.

보통 고기집에서 보기 힘든 모양새를 하고 있어서 어떻게 구워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꽤나 시간이 흐른 후에 면을 뒤집습니다. 한쪽은 적절하게 구워졌네요.

 

이런 식으로 돼지고기를 구우려면 지방층도 어느 정도 붙어있어야 덜 타고 씹히는 맛도 좋습니다.

 

 

 

두께가 상당히 놀랍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1인분당 150g 밖에 안되기 때문에 양은 좀 적네요.

저런 두께를 어떻게 익히나 걱정도 되지만, 사실 아주 깊숙히까지 칼집을 세세하게 넣어놨기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잘 익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다떨다가도 점원분이 고기 구우러 오는 순간 전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어버리고 고기만 노려보는 것이 좀 난감하긴 해도.

 

 

 

양쪽 모두 적당히 구워졌다 싶으면 썩둑썩둑 잘라줍니다.

이게 자르자 마자 찍은 사진인데, 그 두께에도 불구하고 거진 다 익어있는게 보이실 겁니다.

그래도 돼지고기니까 살짝만 더 구운 후에 맛있게 흡입해 줍니다.

 

아무래도 세명이서 3인분은 너무 적은것 같아서 조금 더 시켰네요.

굵기 문제에 따른 퍼석함을 해결하기 위해 부위 선택을 신중하게 한다는 쥔장 말마따나

상당히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것이, 이 정도 가격이라면 훌륭하다고 평가해도 될 듯 합니다.

 

 

 

밑반찬의 수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지만 이 곳의 특별 반찬이라고 하면 이 녀석이죠.

색깔은 무시무시합니다만 그렇게까지 많이 매운 건 아닙니다. 살짝 씁쓸한 콩나물의 맛이 돼지고기와 잘 어울리는군요.

저는 매운걸 좋아는 해도, 먹었다 하면 위장이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바람에 이번에도 훗날 화장실 신세를 좀 졌습니다.

이런 걸 먹는건 아주 가끔이니, 먹게 되었을 때는 그냥 각오하고 먹는 편이죠.

 

 

 

생활정보지의 쿠폰을 사용하면 이런 오뎅탕을 서비스로 줍니다.

돈 주고는 절대 시켜먹지 않는 음식이기도 하죠.

 

맛이라 할 만한 건 없는 평범한 술안주지만, 뜨거울때 먹는 오뎅과 국물은 역시 정감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흡입해 버리고 추가로 주문한 녀석. 처음과는 다른 부위를 주문해 봤습니다.

가브리살이라고, '등겹살' 부위를 말하는데 이거 被る 라는 일본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네요.

'덮어쓰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 쉽게 말하면 그냥 '겹살'과 똑같은 뜻이고, 등겹살이라는 부위와는 그닥 관계는 없습니다.

 

돼지 한마리당 20g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희귀부위지만, 여지껏 전혀 인기가 없어서 따로 분류되지도 않았다고 하네요.

그냥 가브리살이라고 이름붙이고 희귀부위라는 마케팅을 이용한 덕에, 요즘 들어서야 가격이 조금 오른 케이스입니다.

자주 먹는 삼겹살이나 목살과 맛은 확실히 다르기 때문에 한번쯤 먹어볼만은 하군요.

 

 

 

좀 진득하게 식사를 하고 시간을 한참 보낸 후, 다시 시내를 정처없이 걸어다니면서 소화를 시킨 후에 호프집에 들어갑니다.

대학생때 자주 들어갔던 호프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더군요. 자주 안나가는 시내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던 호프집이었는데.

 

시내 지리를 모르기 때문에 대충 눈에 들어오는 가게에 들어가서 적당히 시켜봅니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거의 없어서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서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네요.

 

 

 

전 코로나 한 병 시켰습니다.

사실 밖에서 술을 거의 안마시기 때문에, 저렇게 레몬 한조각을 넣은 코로나는 처음 보네요.

원래 코로나는 이렇게 마시는 걸까요?

 

레몬덕에 탄산이 쏴~ 하고 올라오는게 보여서, 맥주가 더 시원하게 보이는 착시현상이 돋보입니다.

 

 

 

동생분은 과일맥주인 후치를 주문했습니다.

어떤 과일맛이 맛있을까 고민중이었는데, 주문 받으러 오신 분이 '사과맛이 맛있어요'라고 하셔서 그걸로 결정.

전 마셔보지 않았으니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사과맛 음료 매우 좋아하니 아마 맛있었겠죠.

 

과일맛 술을 마시는 사람은 술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는걸로 아는데

동생분은 사실 마음먹으면 상당한 주당이라고 합니다. 편견을 버립시다.

 

 

 

코로나속에 빠져있는 레몬이 신기해서 한장 더 찍어봤습니다.

매실주속에 들어있는 매실은 반드시 뜯어먹는 습관이 있는데, 이녀석은 꺼내기도 힘들고 레몬을 씹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포기.

 

두 번째 주문때는 동생분도 이 코로나를 주문해서 레몬에 심취했습니다.

저는 시원한 코로나를 마셨으니 독일 밀맥주의 부드러움을 느껴보려고 마이셀을 주문하려 했지만

마이셀은 재고가 없다는 말을 듣고 그냥 무난한 독일맥주인 뢰벤브로이를 한 병 주문해서 꼴딱꼴딱 마셨네요.

 

 

 

뭐든 사람으로 붐비기 전에 느긋하게 즐기자는게 모토라서

한적한 호프집에서 일행들끼리 신나게 즐기다가 일찍 빠져나왔습니다.

그 후로 노래방에서 오랜만에 목도 좀 혹사시키고 집까지 산뜻하게 걸어서 귀환했네요.

밤이 되도 그리 서늘하진 않지만 바람이 불어서 야간 산책하기엔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도 돌아오니 땀이 흠뻑 나는군요.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답게(?) 놀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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