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잠깐 올라가서 일좀 보고 지인들도 좀 만나고 했습니다.

비는 첫날 저녁에 미친듯이 쏟아지고, 다음부터는 조금씩 흩날리는 수준이라서 다행.

 

막간을 이용해서 카메라 수리도 좀 하고, 기다리는 시간동안 까페에서 커피 마시며 책좀 읽었습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눈여겨 보고 있던 녀석인데

운좋게도 전자책을 50% 할인해서 고민없이 덥썩 구매해버렸네요.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열정과 노력없이는 절대로 체험할 수 없는 것들을

상당히 덤덤하게 해치워 버리는 작가분의 능력에 여러번 감탄해가며 읽었습니다.

 

10여년전 처음 그 이름을 접했을 당시의 공정무역은, 이런 대안도 있구나 하면서 즐거운 기분이었는데

그동안 쌓이고 쌓이는 의구심이 결국 이 책에서 현실이 되어 버린 것에, 마치 추억을 하나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드는군요.

 

 

 

나침반님과는 가볍게 산책 했습니다.

저희같은 부류에서 가볍게 산책이지만, 이게 일반적으로 가벼운 산책인지 아닌지는 논외로 하죠.

산책하기 좋은 강변길을 하염없이 걸을 뿐이었는데, 전날부터 속이 좀 안좋아서 중간에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곳은 뭐라고 할까... 달동네가 당연하게 서 있던 그 당시의 서울의 흔적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할까요.

깨끗하게 정비해놓은 강변 자전거 도로도, 수없이 교차되는 도로 아래에서 바라보니, 왠지 옛날 생각 납니다.

 

 

 

삐까번쩍한 강남이 서울의 얼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단 서울이라는 도시가 나아가려고 발버둥치는 방향이 그쪽이란 건 딱히 의심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강남의 외모에서 그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유리'라고 생각합니다.

대로에 줄지어 서 있는 번쩍번쩍 유리 건물들, 이것들에게서는 '전성기를 막 지나서 타락하기 시작하는 로마 제국'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음식의 맛만을 즐기기 위해 조금만 씹다가 뱉어버리던 로마 귀족들의 생활이 말이죠.

 

유리로 외장을 장식한 건물은 온도조절, 자외선 차단, 경제적 효율 등등 모든 면에서 최하위권을 달립니다.

자랑스러운 외관을 뽐내기 위해서 열나게 에어콘과 히터를 틀어야 하는 비효율적인 건물이죠.

한마디로 '난 이렇게 돈X랄 할 수 있지!' 라고 자랑하고픈 마음의 산물이랄까요.

 

 

 

이런 유행 전의 서울을 지탱하는 골격은 역시 콘크리트겠죠.

이곳 강변 산책로는 그 시절의 감성이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혼자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콘크리트라고 해 봤자 사실 시멘트보다 모래가 더 많이 함유되어 있지만

그 얼마 되지 않는 성분의 시멘트로 인해, 진짜 흙집에 비해 많은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바이오스피어 프로젝트를 근본적으로 박살내버린 이유가 이 콘크리트였다는걸 생각하면

이런 도시에 살면서 TV에서 흘러나오는 친환경, 에코 어쩌구 하는 세련된 수사들에 그냥 헛웃음만 나올 뿐이죠.

 

바이오스피어에 대한 내용은 제인 포인터의 '인간 실험'이 국내에도 나와있고, 꽤 재밌으니까 한번 읽어보시길.

 

 

 

혼자서 하는 산책도 아닌데 이런 생각이나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고, 좀 실례인 듯.

아무튼 담소를 나누면서 묘한 분위기의 산책길을 걸어갑니다.

 

서울엔 딱 하루 비왔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 얕은 곳은 위험할 정도였던 것 같네요.

물구경 불구경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있다고들 하지만, 막상 본인에게 닥치면 패닉상태가 되겠죠.

여긴 장마나 태풍때는 절대로 와서는 안되는 산책로인것 같습니다.

 

거의 터널처럼 길게 뻗은 산책로를 걷다 보니, 일본 자전거 여행때의 에피소드가 생각나서 나침반님과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그 에피소드는 여기서까지 썰을 풀지는 않겠습니다. 나중에 기분이 내키면 짧막한 에피소드를 올릴 순 있겠지만.

 

 

 

35mm 단렌즈를 마운트한 채 일정한 속도로 걷고 있으면 가끔 이런 사진을 담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수동시절에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기도 한데, 포인트가 될 만한 피사체에서 일부러 촛점을 떨어트리는 것이죠.

 

산책이란 건 양자 이론에 기반하는(!) 행동이라서 위치 특정이 불가능합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죠)

뭔가를 찍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게 아닌, 그냥 하염없이 걷기만 하는 이런 산책에서는

어느 특정 피사체에 시선이 집중되지 않는다는걸 많이 느껴왔기 때문에

일부러 아무것도 없는 곳에 포커스를 맞추는둥 마는둥 해서 스냅을 날립니다.

 

이게 산책중의 제 마음과 비슷한 것 같더군요.

 

 

 

나침반님의 서식처 근처에는 재개발만 기다리고 있는 고대의 아파트가 서 있더군요.

물론 대구에서도 이 정도 연식이 되는 아파트를 안 본것은 아니지만

이 녀석은, 재건축을 위해 대놓고 모든 하자보수를 거부한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사람이 안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데, 일말의 거짓도 없이 제 입장에서라면

저기 들어가서 사느니 텐트 하나 갖고 밖에서 노숙하겠습니다.

 

 

어릴적 살던 아파트 근처에서 이런 아파트는 많이 봤고

지금도 이런 곳에서 사는 지인들이 있기 때문에 그리 혐오할 것도 아니지만

 

이 녀석은 최소한의 보수조차 받지 않는다는 느낌이 외관에서 너무나 강렬하게 풍깁니다.

당연하게도 곳곳에는 붉은 글씨로 뭔가 무서운 구호들이 써갈겨져 있더군요.

예전 살던 곳 근처의 재개발 아파트도, 시공사 선정 당시 조합원들과 시공자 직원들이

용역 깡패 고용해서 대낮에 난투극 벌이는 모습도 생생하게 목격하곤 했으니.

 

그 짐승같은 욕망이야말로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요소일런지... 라는 생각도 듭니다.

 

 

 

군대 훈련소에서 독감 걸려서 뻗어있을 때 만병통치약이었던 링겔은 사람에게만 통하는 수단이 아닌 듯.

열나고 힘없을때 링겔 한방 꽂고 누워있으면 직빵이라는 말은 예전부터 들었는데, 정말 한번 꽂아보니 회복속도는 빠르더군요.

그리 오래된 나무도 아닌 듯 한데, 벌써부터 이러면 좀 서글픈 기분도 듭니다.

빨리 회복해서 든든하게 서울의 공기를 정화시켜 줬으면 합니다.

 

나침반님과는 보라매 공원도 산책 다녀왔지만 이번 포스팅은 일단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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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 2012. 7. 4. 10:41 Photo Di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