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광장 주변을 빙 돌아가니 이제서야 하늘이 조금씩 맑아집니다.
비가 신나게 오고 나서는 쨍한 하늘을 기대하는데, 장마철이다 보니 그게 잘 안보이는군요.
그런 하늘도 길어봤자 하루 정도밖에 안간다는게 더욱 서글픈 일이지만.
열심히 공 차고 있는 아이 모습도 한 장 날려주고 잔디광장을 뒤로합니다.
뭔가 폼이 제대로 잡힌 듯 하네요. 앞으로 뭐가 될려나.
제 카메라는 프레스 기기만큼 셔터랙이 짧은 편이 아니라서,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를 담을 때는
예측사격이라고 할까요. 원하는 동작보다 좀 더 일찍 셔터를 눌러야 합니다. 물론 움직임에 따라 그 순간이 바뀌니까
사실상 룰렛 돌리는 기분으로 잘 찍혔으려나 하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화면에 사진이 뜨기를 기다리게 되죠. 그것도 재미있습니다.
해가 조금씩 옆으로 넘어가고 있어서 빛의 분위기도 금새 변해버리는군요.
자전거 타고 나오신 분도 참 많은데, 저나 나침반님이나 저렇게 자전거 편히 타고 가는 모습을 보면
여러가지 상념이 떠오릅니다. 딱히 물어보지 않아도 비슷한 생각 하고 있을 듯.
제 자전거는 장거리 여행용이라, 사이드백 전부 다 떼어버려도 상당히 덩치가 크고
타이어 역시 속도보다는 내구성 중시로 되어 있어서, 아무리 열심히 밟아도 15km/h 이상 속도가 나오긴 힘들죠.
폭이 좁은 녀석으로 바꾸면 좀 더 나오겠지만, 제 자전거에는 좀 언벨런스한 느낌입니다.
산책으로 자전거 타고 나가는 것도 좋긴 한데, 그런 건 이제 만족감보다 아쉬움이 더 크군요.
공원이라서 참새 보기는 쉽네요. 단지 사진 찍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서.
저 혼자만이라면야 시간 들여서 얼마든지 접근하겠습니다만, 수많은 사람이 움직이고 있으니
제가 아니라도 참새는 금새 날아가 버려서, 적당히 한 장 남기고 걸어갑니다.
자전거 여행중, 100km는 넘는 속도로 썡쌩 달리던 자동차에 슬쩍 부딪치자마자 죽어버린 참새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군요.
사진도 찍었습니다만 여기 그런 걸 올려서 뭐하나 싶습니다.
보라매공원은 원래 공군기지가 있던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 쓰던 전투기들이 전시되어 있더군요.
주요 부품들은 떼어버렸겠지만, 실제 전투에 사용되던 녀석들이라 생동감 있습니다.
그래도 그 위에 앉아서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는 비둘기들의 모습을 보니
전투기도 이제 맘 편히 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화로운 모습이네요.
한 백년쯤 지나면 F-117 이나 B-2 나 F-22 같은 최첨단 전투기들도 이런 곳에서 느긋하게 만나볼 수 있을지.
금속덩어리 조차도 자기 시대가 끝나면 이렇게 공원에서 노후를 즐기는데
막상 전쟁의 주역이었던 병사들은 이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늙어가고 있는 현실이 비참합니다.
뭐, 가스통 들고 설치는 늙은이연합 같은 족속들도 있으니... 딱 그수준이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바이크에 관심이 많은 나침반님이라서, 이런 모델도 금새 알아보시더군요.
직접 타보질 않으니 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비싸고 좋은 녀석이라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어제 엄니하고 슈퍼 나간 사이에, 아파트 단지 사이로 귀엽게 줄 맞춰 달리는 십여 대의 할리를 봤는데
아파트 앞이라서 20km 도 내기 힘든 골목길을 그 우람한 할리들이 줄맞춰 기어가는 모습을 보니
한국에서 신나게 드라이빙 즐기는 것도 참 고역이구나 싶더군요.
단체로 달리는 애들 중에는 정신나간 녀석들도 많아서...
한 바퀴 돌도나니 처음 출발했던 분수대 쪽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때는 35mm 단렌즈를 들고 있었고, 중간에 70-300 망원으로 바꿔 끼웠으니
같은 장소라도 담는 사진은 전혀 다른 느낌이군요. 산책을 두 번 하는것 같아서 좋습니다.
여행지에서도 사실 제일 이상적인 방법이 다른 렌즈를 끼고 한번 더 돌아오는 것인데
체력적, 시간적으로 문제가 있는 방법이라서 그리 자주 시도하지는 못하는군요.
음악에 맞춰서 움직인다고 하는 분수입니다. 시원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건 좋은데
너무 멀리 있어서 시원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군요. 가까운 곳에서는 살짝살짝 피부에 시원한 느낌이 들 정도가 좋은데.
화단의 꽃들은 제철이 조금 지난 듯 합니다만, 그래도 힘내서 피어있는 꽃들이 있습니다.
한참 가물었다가 이제 비가 좀 왔으니 꽃들도 활기가 나려나 싶네요.
본가 아파트 베란다의 꽃들은 조금 말랐다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을 확 주고나면
놀랄 정도로 잎이 반짝반짝해 지는게, 생명력을 느낄 수 있어서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오전부터 이렇게 쩅쩅하면 사진 찍는 맛도 더 났을텐데
해가 막 지려고 할 무렵이 되서야 겨우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약간 아쉬웠습니다.
흐린 날씨에도 덥긴 꽤 더웠으니, 쨍쨍했다면 즐거운 사진촬영 대신 땀으로 샤워을 했을테지만.
공원을 걸어나오는 길에는 나이 지긋하게 드신 분들이 윷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더군요.
편견 때문인지, 화투치는 모습보다는 뭔가 보기 좋은 느낌이 드는데
다들 해보셨겠지만 분위기 험악해 지기로는 사실 윷놀이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는데 말입니다.
겹쳐진 말이 한꺼번에 잡히거나 하는 날엔 끓어오르는 분노를 추제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밤엔 나침반님 댁 근처에 있는 나즈막한 산을 올라갔습니다.
가는 길에는 나침반님이 다니셨던 초등학교도 볼 수 있었군요.
전 대구 안에서긴 하지만 이사를 여러 번 다녀서, 사실 제가 다녔던 초등, 중등, 고등학교 가려면 꽤나 멉니다.
세월을 생각하면 아마 돌아가신 담임 선생님도 몇 있을 듯 하군요.
쉬는 시간마다 국딩 3학년 남녀 학생들을 무릎위에 앉혀놓고 토닥토닥하던 늙은 담임선생님은
아마 요즘 그랬으면 당장 성추행이라고 난리가 났겠지만, 그 때는 그런 일이 아무 문제없던 시절이었죠.
산은 산이라고 부르기는 뭣할 정도로 가볍게 산책할만한 높이여서 기분이 좋았는데
가로등이 없는 길이라서, 자전거 여행때 생긴 맷돼지 트라우마 때문에 조금씩 긴장되기도 했습니다.
한밤중에 5m 정도 앞에서 제 여행용 자전거만한 덩치의 맷돼지와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때의 섬찟함이 쉽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게 되는군요. 그래도 곰이 아니었으니 다행은 다행이지만.
날씨도 그렇고, 삼각대가 없어서 장소 지정하기도 쉽지 않아 야경을 멋들어지게 찍는건 힘들었지만
시대가 흐를수록 블레이드 러너의 화면과 닮아가는 서울의 밤모습은 단순히 화려하다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군요.
시간이 좀 널널하면 이 곳에서 관악산까지 쭈욱 갈 수 있다고 하니, 날 잡아서 산을 좀 타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근데 관악산쪽에 야간 산행은 가능할런지? 서울 벗어나서 지리산 종주라고 하려면야 걱정할 필요도 없는데
야간 산행은 관악산 정도라도 준비없이 갔다가는 생명줄 놓아버릴 가능성이 있으니, 그냥 낮에 가는걸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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