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상한 일요일이라 그냥 엄니하고 차나 마시면서 뒹굴뒹굴하는게 낙입니다.

그러다가 예전부터 찍자 찍자 하면서 미루고만 있었던 가방 사진을 가볍게 담아보기로 결정.

원래 날씨 좋을때 찍어야 잘 나오겠지만, 이걸로 작품 남길것도 아니고 뭐...

 

자전거 여행동안 단짝이 되어줬던 NG 가방입니다.

원래 중보급형 카메라와 렌즈 한두개를 담을 정도의 아담한 크기인데

저는 세로그립 체결시 현존 카메라중 가장 큰 녀석을 쑤셔넣고

줌렌즈 2개에 단렌즈 하나, 거기다 여행중 최고 귀중품인 여권, 일기장 등등 마구마구 쑤셔넣고 다녔죠.

 

 

 

자전거 가방에 그대로 카메라를 넣으면 카메라 걸레되는건 시간문제라서

이 가방안에 카메라 장비를 전부 넣은 후 다시 그걸 자전거 가방에 넣고 달렸습니다.

 

그래서 사진 한장 찍으려면 한숨 한번 쉬어주고 자전거를 세워서

가방을 열어 이 녀석을 꺼내고 다시 이 녀석 안에서 카메라를 써내서 사진 찍은 후

꺼낼때 했던 행동 역순으로 다시 차곡차곡 가방 안으로 밀어넣어야 했죠.

 

그래서 보통 사진 한장 찍으려고 자전거 세우면 최소 5분에서 10분은 기본이고... 사진 좀 찍다보면 20분도 훌쩍 가곤 합니다.

 

자전거 여행중엔 어디서든 후다닥 꺼내서 찍을 수 있는 신속성이 매우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이 녀석의 결과물 퀄리티를 놓칠 수는 없어서, 각오 단단히 하고 1년여간 자전거에 넣고 다녔죠.

 

 

 

자전거로 몇 번이나 쓰러지고 뒹굴고 했으니 이 녀석 상태야 말할것도 없습니다.

세탁도 잘못하면 힘없이 축 늘어져 버린다고 들어서, 구입후 한 번도 씻은적이 없는 중후한 녀석.

 

끈 부분은 이제 조금만 더 메고 다니면 뚝 끊어질 것처럼 간당간당하군요.

카메라 가방 쓰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 어깨끈이 상당히 두터운 녀석인데, 세월의 흐름엔 장사가 없습니다.

하지만 관광지에 도착해서 자전거 세워놓고 이 녀석을 어깨에 메고 걷기 시작할 때는 이녀석만큼 든든한 아군이 없었죠.

 

 

 

어깨에 메고 다닐때 항상 스치는 부위는 이미 구멍이 나버렸군요.

처음에 조그맣던 구멍이 점점 커지는 걸 보고 이제 드디어 수명이 다됐구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2중으로 커버가 되어 있어서 겉면에 구멍나는걸로는 내용물이 흐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잘됐구나 생각하며 계속 사용하고 다녔는데...

엄니께서 도저히 그 거지같은 가방 못봐주겠다고, 생일때 카메라 가방 하나 사주셨네요.

저는 아직 몇년은 더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정색을 하시니 바꾸지 아니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고심끝에 구입한 이 녀석. Think Tank Photo 라는 회사의 레트로스펙티브 30이라는 모델입니다.

이 회사는 카메라 가방 제조사로서는 꽤나 유명하고, 원래 컨셉은 이런 타입이 아니라 강렬한 검은가죽 모델이 주축입니다.

편의성 좋고 용량 좋고 탄탄하기로 소문난 녀석인데, 프로 사진가들에게나 어울릴법한 너무 강한 이미지 때문에 망설여지는 회사였죠.

 

하지만 일단 고객층을 끌어들이려는 의미에서 출시된 레트로스펙티브 모델은, 예전에 제가 쓰던 NG 모델과 비슷한 재질로 만들어져

일상복과 함께 사용해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스타일이라 제 마음에 들더군요.

 

NG 모델은 뽀대는 좋았지만 내구성도 약하고 용량도 좀 작아서

이번엔 용량걱정없이 써보자는 의미에서 시리즈 중 가장 큰 30 모델을 구입했습니다.

사실 20이 제일 적당해 보였는데, 20과 30의 가격차이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기왕이면 30으로...

 

 

 

원래 쓰던 NG 모델과의 크기 비교.

 

거의 2배 가까이 커진 모습입니다. 처음엔 커서 편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좀 너무 큰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하지만 사실은 NG 모델이 너무 작은 편이었죠. 제가 쓰는 카메라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녀석이라서 억지로 구겨넣은 셈이니.

 

물론 다시 자전거 여행을 가게 된다면 레트로스펙티브 30이 자전거 가방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뒷좌석에 매어둔다던가, 아니면 그냥 NG 모델을 다시 사용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가방도 자전거 가방에 억지로 넣어버리면 걸레되는건 순식간이니, 이번엔 좀 아껴서 사용해야겠죠.

 

 

 

재질도 매우 두텁고 튼튼한 느낌이 전해지니 맘놓고 쓰기엔 좋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NG 모델과는 달리 뚜껑을 열기 전에 사용할 수 있는 주머니가 세개밖에 없어서

가볍게 이것저것 꺼내기에는 좀 불리합니다. 뚜껑을 열고나면 여기저기 매우 많은 주머니가 있긴 합니다만.

 

하지만 메인 뚜껑이 찍찍이 방식이라서 열고 닫는게 편리하니 크게 문제점으로 작용되진 않네요.

덩치 덕분인지 수납 주머니도 매우 커서, 어지간한 부품들은 다 들어가고도 한참 남습니다.

지퍼가 달린 몇몇 수납공간을 제외하면 전부 찍찍이로 여닫게 되어 있어서 사용시에 편리합니다.

 

 

 

근데 원래 모델보다는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이 회사 제품의 내구성은 상당한 수준이라서

찍찍이도 자꾸 쓰다보면 약해지는 그런게 아니라, 힘 약한 여자사람분은 한손으로 뗄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덕분에 소음도 굉장해서 가끔 뜯고있는 자신도 놀랄 정도죠.

 

센스있게 그 점에 대해서는 저렇게 무소음 버전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접착력은 약해지지만 부드럽게 뜯어지죠.

여기저기 섬세한 요소들을 많이 넣어놔서 좋긴 합니다만, 완전한 가죽 재질이 아닌 이상 카메라 가방은 소모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을 듯.

완전 가죽 모델은 오래 쓰면 쓸수록 유연해지고 내구성도 크게 줄어들지 않아서 좋긴 한데

무겁기도 무겁고 디자인도 뭔가 비밀요원이 쓸법한 모습이라서 여전히 눈길이 가질 않습니다.

 

 

 

어깨 보호도 나름 잘 되어 있긴 하지만

이 녀석을 사용할 때는 절대로 허용 용량을 꽉꽉 채워서는 안되겠더군요.

가방을 꽉 채울 생각이라면 세로그립 포함 바디와 줌렌즈 3개, 단렌즈 2개, 스트로보, 삼각대까지 넣을 수 있습니다만

그렇게 넣었다가는 어깨 부러집니다.

 

사용설명서에도 최대용량까지는 넣지 말라고 적혀 있을만큼, 느긋한 공간활용을 위한 녀석이지 마구 집어넣기 위한 녀석은 아닙니다.

이 녀석을 풀로 채울만한 장비는 어깨에 메는게 아니라 백팩을 사용해야겠죠.

 

렌즈 결합한 상태로는 들어가지도 않던 제 장비들이 그냥 가볍게 들어가고

옆에 공간이 텅텅 남아서 추가렌즈 하나 더 넣고, 전자책 등등 일상용품 넉넉하게 넣고도 공간은 충분합니다.

단지 그 이상 넣었다가는 어깨 빠질 각오를 해야 하니, 다 채우지 못하는 가방이라는 개념이 뭔가 어색하군요.

 

여행갈때 일단 마구 채워넣고, 숙소에 짐을 푼 후에 필요한 것만 챙겨 나갈때는 참 유용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방수팩도 들어있고, 방수팩이 없이도 왠만한 가랑비에는 속까지 젖지 않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재질이 상당히 두꺼워서 가방 무게만으로 1.6kg 정도 나가니... 미러리스나 보급형 카메라 사용자, 여자사람분들에게는 필요없는 모델이네요.

 

크기와 구조는 프로 카메라맨을 위한 녀석이지만, 외관 등은 가벼운 일상활동에 어울리게 만들어져 있는 묘한 녀석입니다.

장점이라기 보다는, 반대로 생각하면 어느 쪽에도 어울리지 않는 애매한 녀석이기도 하지만

제가 카메라 들고 나가는 상황 자체가 그런 애매한 때가 많기 때문에, 저같은 애매한 사람한테는 이 녀석이 어울릴 것 같군요.

 

저 자신은 험하게 쓴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NG 가방이 5년만에 걸레가 되어버렸으니

이 녀석은 과연 어느정도까지 버텨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전거 가방에 넣질 못하니 훨씬 오래갈 것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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