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대구의 최고온도는 37도 정도였습니다.
체감온도 약 43도... ㅡㅡ;
차방에 들어박혀서 에어콘 틀고 차마시고 책보고 빈둥거리면서도
잠깐 방문 열고 나가면 펼쳐지는 핀란드식 사우나의 향연이 아주 인상깊은 하루였죠.
대구가 덥다덥다 하지만 요 근래 정말 이만큼 더운 날이 일주일 가까이 지속되는건 신기합니다.
그래도 하늘이 워낙 좋아서 한참을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우방타워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우방타워는 높긴 높아도 유리창에 막힌 곳이라서 아쉽긴 한데
아파트 옥상이 닫혀있어서, 큰맘먹고 하늘 좀 제대로 담아보려고 각오 단단히 하고 출발.
역에서 내려서 150m 남짓한 우방랜드 입구까지 걸어가는 것만 해도 이미 온몸은 땀으로 샤워를 하는군요.
십여년만에 와 보는 곳인데, 오늘같은 날에도 일단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는게 신기하긴 했습니다.
애들은 역시 더위보다 노는게 더 중요하겠죠. 부모들은 아마 죽을 상이겠지만.
우방랜드는 이름이 E 랜드로 바뀌고, 우방타워는 83타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방타워는 만들어질때 대단한 이슈거리였지만, 전 아직 태어나서 한 번도 올라가본 적이 없군요.
기념으로 한장 찍는데도 뷰파인더 안으로까지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환상적인 날씨입니다.
자전거 여행때 가장 더웠던 날씨와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때는 뭐랄까, 떠도는 인생이라서 땀이 아무리 흘러도 그냥 흐르는구나 하고 놔뒀는데
문명인의 생활을 영유하는 현재로서는, 순식간에 거지꼴이 되어가는 모습이 조금 신경 쓰이기도 합니다.
낮은 곳에서 항상 보이는 방식으로 사진 좀 남겨놓고, 좀 있다가 높은 곳에서 본 풍경과 비교해보고 싶더군요.
매표소에 물어보니 타워에 가려면 산을 팽이처럼 한바퀴 돌아 올라가야 한답니다.
공원 입장료를 끊고 들어가면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런데 돈 쓸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동차를 가져와야 했다는 후회를 하며 나즈막한 산을 빙글빙글 둘러 올라가는데
이건 뭐, 땀이 흐르는게 아니고 후둑후둑 떨어지는게... 지금 땅 위에 있는건지 물 위에 있는건지 모르겠더군요.
카메라 가방과 장비만 5kg 정도 나가니 이런 날에는 정말 죽음입니다.
차라리 여행중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냥 그런거지 하고 넘어가겠는데, 마음가짐이 틀리네요.
산책나온 개한테 목줄 안매달았다고 이 더운날에 목청이 터져라 싸워대는 아줌씨 두명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며
펜스 너머로 보이는 꽃밭이 참 보기좋아서, 떨어지는 땀에 굴하지 않고 망원렌즈로 갈아끼워 사진 좀 담고 다시 출발합니다.
10여분만 올라가면 되는 언덕이긴 한데, 이런 날씨에는 그것도 만만히 볼 수 없습니다.
간신히 타워 앞에까지 도착하고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슬슬 해가 질려나 말려나 할 시간이었는데
기왕 폭염속에 나오는 것이라, 푸른 하늘과 해질녘 하늘을 둘다 담아가고 싶어서 시간을 조절했죠.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83타워는 처음이군요. 참 볼품없게 생겼지만 완공 당시엔 굉장한 흥미거리였습니다.
그때 뉴스에서는 전망대 올라가려고 한시간 넘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행렬이 가득했었는데
지금은 거의 고대 유적지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죠.
사실 이제와서는 고층아파트보다도 낮은 녀석이라.
한숨 돌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희희락락하게 올라오는 케이블카가 보입니다.
돈의 힘을 빌리면 저렇게 쉽게 이곳까지 올 수 있는데, 역시 돈이란 대단하군요.
휴일이라서 혹시 자동차가 막히는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곳은 거의 텅텅 비었습니다. 차 가져오는게 나을뻔 했네요.
걸어서 산 올라오는 시간을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좀 늦었지만
운 좋게도 크고 아름다운 구름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버린 태양이 폭발하듯이 빛을 방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광경이라서, 온 몸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도 셔터를 계속 누를 수 밖에 없었네요.
이미 타워 올라가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풍경을 즐기고 있다고 자각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올라가지 않으면 아마 평생 올라갈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구사람으로서 경험이나 해보자는 생각에 들어가 봅니다.
이 타워가 개장된게 90년대 중반이었나 그럴텐데...
조금 과장하면 이제는 오사카의 통천각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버린 듯 하네요.
하늘에 맞닿는 탑이라는 의미의 통천각이지만, 가 보신분들은 아마 피식 웃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냥 들어가기는 아무래도 아쉬워도 한장 더 남깁니다. 정말 멋들어진 구름이군요.
이런걸 빛내림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보면 이건 빛올림이라고 하는게 더 들어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곳은 꿈속이고, 현실의 나는 복날 가마솥에 들어가 끓고있는 영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날이었지만
이런 풍경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이 짜증과 더위는 충분히 그 값을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매표소에서는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더군요.
전망대는 5천원이지만, 그보다 더 높은 83층 까페에서 음료수 주문하면 전망대는 무료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뭐라도 마실 생각이었으니 당연히 83층에 가서 음료수를 주문. 조그만 레몬에이드가 8천원이었지만 입장료 생각하면 뭐...
까페에서도 당연히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대강 사진을 남겨봅니다.
아주 작은 까페지만 그래도 날씨때문인지 여기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타워엔 거의 올라가지 않는 편이라서 신선하기도 했고, 대구라는 녀석이 참 특이한 지형이라는걸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한바퀴 빙 돌아도 주위는 전부 산으로 둘러쌓인 분이이긴 한데, 대구 면적이 정말 넓기는 넓더군요.
하늘과 좀 더 가까워지니 하늘 풍경도 평소와는 많이 다릅니다.
유리창에 전등빛이 계속 반사되다 보니 하늘 여기저기에 UFO가 날아다니고는 있지만...
아까 봤던 구름도 이곳에서 보니 그 모양이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군요.
결심하고 올라올 만큼 날씨가 좋았던 날이라서, 이런 날씨라면 입장료따윈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더위에 오버히트된 머리탓인지 멍하게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조금씩 현실감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도 드네요.
24mm 광각렌즈는 전망대에서 또 써보기로 하고, 망원렌즈로 여기저기 도촬을 시작해 봅니다.
잘 알고있는 곳이라면 이렇게 전망대 위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는게 또다른 재미이기도 하죠.
특히 이곳은 제가 수십년간 자라온 곳이다 보니 보기만 해도 여기가 어디다 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 많습니다.
도넛구멍안에 빡빡하게 멋없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형상의 대구지만, 빙 둘러싼 산세만큼은 참 멋진 곳이죠.
사진이 많아서 다음 포스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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