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로 정신없는 가운데, 일본에 가게 됐습니다.

이건 육아하고 관계없을 한참전에 예약해 놓은거라서 안 갈수도 없네요.

저가항공 에어아시아 취항기념으로 세금만 부담하는 공짜표에 당첨이 되었는데 부산서 도쿄 왕복 6만원 정도로 저렴합니다.

도쿄는 이제 놀러갈 이유가 없는 곳이지만 일 관계로 갈일도 있고 하니.

 

저는 조카 백일날 까지만 돌봐주면 된다고 해서 서울 올라왔는데

왠걸, 백일이 다 되도 상황은 전혀 진전되는게 없이 계속 육아중이었죠.

근 1주일간 도쿄로 떠나게 됩니다만, 형수님 혼자서 예민하기 그지없는 조카 돌보며 살림살이를 전부 맡아야 하는게 걱정되네요.

형님은 새벽 2~3시는 되어야 돌아오는 날의 연속이니... 하지만 뭐 저도 백일까지만이라고 속아넘어가서

예정을 다 잡아버린 상황이라 어쩔수도 없습니다. 그냥 조카가 얌전히 있어주기를 바랄 뿐.

 

 

 

여행관련 짐을 전부 대구에 놔두고 온 터라, 모자라는 장비 조금 보충하기 위해서 오늘 밖에 나섰습니다.

타이밍도 좋게 서울은 어마어마한 폭설이 하루종일 쏟아지더군요.

 

사진이라도 좀 찍자고 카메라 들고 나왔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우산따윈 없습니다.

물에젖은 생쥐꼴이 되었지만 전 신경 안쓰니 뭐...

그런 마인드 덕분에 대학생때는 경찰의 검문에 자주 걸리곤 했지만, 지금와서 잡으려면 대판 싸워줘야죠.

 

 

 

대구는 원래 눈이 별로 내리지 않아서, 눈이 좀 반가운 편이긴 합니다만

이번 눈은 정말 대단하군요. 12월 초에 이렇게까지 쏟아지던가 싶을 정도로.

 

구두가 미끄럽고, 고가의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자연히 발걸음이 신중해집니다.

 

 

 

1차 목표지인 코엑스에 도착. 역앞 광장은 이미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줄을 쳐 놨더군요.

워낙 미끄러우니 사람들이 돌아다니다간 참사가 벌어질 것 같습니다.

 

직원분들이 열심히 광장의 눈을 삽으로 퍼내고 있지만, 이렇게 쏟아붓는 눈 앞에서는 허무할 따름입니다.

사실 이번이 첫 눈은 아니지만, 살짝 내린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엔 구멍이 뚫릴 정도로 쏟아붓기 때문에

다들 휴대폰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느라 바쁩니다.

 

저도 서울시내에서 카메라 꺼내보는거 참 오랜만인데, 막상 찍고나니 일반인들의 휴대폰 카메라에 비해서 그리 잘 찍지도 못하네요.

실력도 없는게 장비병에나 걸려서 이런거 들고다니는구나 하는 자괴감이 살짝 드니 눈으로 씻어내려야 하겠습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지 1시간쯤 지나서 아직 높이 쌓이진 않았지만

내리는 양으로 봐서는, 제가 볼일 마치고 돌아갈 때쯤이면 발목 높이까지는 충분히 쌓이겠더군요.

 

운전하는 사람들은 똥내린다고 싫어하겠지만, 전 역시 눈이 좋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왠지 가슴도 시원하고 추위에 무감각해지는 손끝에서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다들 여기저기 좋다고 움직이면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담고 있네요.

휴대폰 카메라도 워낙 좋아져서, 일반적인 사진 생활은 그걸로도 충분할 듯 합니다.

 

전 당연히 대구에서 여행준비를 하고 내려갈 예정이었던 터라

지금 이 시기에 입을만한 따뜻한 다운 계열의 옷은 하나도 가지고 오지 않았죠.

추위에 꽤나 강한 편이긴 합니다만, 어쩄든 여행중에 몸살이라도 나면 안되니 최대한 따뜻한 녀석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엄니한테 속았어... 백일지나면 애가 변신한다더니.

 

 

 

사실 눈내리는거 좋아하지만 눈사진 찍는건 정말 어렵네요.

눈이 가득한 풍경에서는 계조나 DR이 거의 한계까지 가 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찍어봐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녀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촬영도 아쉬움의 연속.

 

그래도 눈 자체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셔터를 누르니 나름 마음에 드는 녀석이 나왔습니다.

아마 오늘 건진 유일한 사진이 아닌가 싶네요.

 

 

 

여긴 분명 지붕이 있는 곳인데, 어째서 이렇게 소복히 눈이 쌓인건가 싶었습니다.

좀 관찰하다보니 뒤편의 정원 쪽에서 바람을 타고 계속 눈이 쌓여가더군요.

직접 내리는 눈이 아닌데도 워낙 펑펑 쏟아지고, 바람도 거세서 이런 곳에까지 눈이 덮혔습니다.

 

카메라 들고 왔다갔다하니, 어디 잘못 부딪히다가는 손가락이 똑 부러질 듯이 얼어버렸네요.

도쿄가 이정도로 눈이 온다면 장갑이라도 하나 있어야 여행사진을 담을 수 있을 듯 한데...

짐을 많이 꾸리는걸 매우 싫어해서 장갑도 넣어가고 싶진 않습니다.

 

 

 

평상시에 찍어도 소화전은 침침한 한국 길거리에서 색이 돋보이는 녀석인데

눈속에 파묻힌 녀석은 더더욱 사람의 눈을 잡아끄는군요.

 

그냥은 담을 수 없는 위치라서, a99 로 바꾼 득좀 보려고 손을 높게 들고 LCD로 촬영했습니다.

 

 

 

도쿄쪽 날씨가 좀 신경쓰이긴 하네요. 눈이 오면 아무래도 활동 반경이 줄어들어서.

지난 주 까지만 해도 반팔에 잠바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버틸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이번주부터는 날씨가 아주 매섭게 변하네요.

 

 

 

눈의 장점은, 원래 존재하지 않던 풍경을 만들어 준다는 것일까요.

분명 수백 수천번 음료수 캔이 놓여있었을 장소인데

눈이 내리니 그 흔적이 드러나 보입니다. 과거를 시각적으로 구현화 해 주는 이 느낌이 좋군요.

 

 

 

몇 시간째 내리고 있는데 눈발은 그치긴 커녕 하늘 전체를 덮어버리는군요.

저 묘한 지붕에, 인위적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무늬가 생겨났습니다.

 

아마 물리적인 이유로 저 부분의 눈만 내려앉은 것일텐데, 이래서 자연이란 예술가가 굉장한 것이죠.

 

 

 

눈이 와서 감수성이 폭발하는건지, 제 옆구리와 손가락이 너무 시려서 정신이 나간건지

찰싹 붙어있는 두 자판기가 왠지 사이좋게 서로의 체온으로 한기를 녹이고 있는 듯이 보이는군요.

 

 

 

눈이 조금만 더 오면 이 소화전은 보물상자처럼 눈 속에 파묻혀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이런 날씨에도 불은 나는건가 싶네요. 사람이 만든 건축물이라면 이런 폭설 속에서도 잘 타오르겠죠.

 

 

 

코엑스 소니센터에서 손을 녹이면서 신제품 구경합니다.

똑딱이 사이즈에 최초로 필름 판형과 동일한 센서를 박아넣고

칼 짜이스 35mm F2.0 렌즈를 박아넣은 컴팩트 카메라 RX1 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다작다하는 미러리스 카메라도 센서가 필름크기의 1.5배 정도 작은데

이 녀석은 미러리스보다도 훨씬 작은 크기에 필름크기 센서를 박아넣었군요. 참 뭘 어떻게 만들면 이런게 나오는지.

 

하지만 렌즈붙박이라서 그런지, 작게 만드느라 힘들어서 그런지 가격은 제 카메라 본체와 같습니다.

한마디로 요즘 나오는 일반적인 미러리스 카메라의 3배가 넘는 가격. 꽤나 넉넉한 취미생활 여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손대기 힘들겠네요.

 

 

 

이것저것 볼일 보고, 형수님 먹을것도 좀 사고 해서 다시 역으로 돌아가려는데

어째 가면 갈수록 눈이 더 신나게 날립니다. 이쯤 되면 지금 몇시인지도 모를 정도더군요.

 

그래도 평소 담을 수 없는 풍경이니 이때다 싶어서 마구 셔터를 누릅니다.

서울 시내에선 참 카메라 안꺼내는 성격인데, 오늘은 왠지 마구 꺼내들고 다녀도 신경쓸 사람이 없을 듯한 느낌입니다.

저처럼 육중한 녀석은 아니지만, 가는곳마다 다들 휴대폰 꺼내들고 사진 찍느라 바빴으니까요.

 

 

 

남들은 다들 눈사진도 멋지게 담아내는데 저는 왜 이렇게 불만만 쌓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짐을 많이 들고 다시 건대입구역에 내려 그마트에 기저귀하고 분유사러 가는데

이건 또 이때가 아니면 담을 수 없는 희귀종이 줄줄이 늘어서 있어서 주렁주렁 달린 짐과 지친 팔을 뒤로하고 카메라를 꺼냅니다.

 

 

 

약 4시간 조금 넘게 내린 눈인데, 이 정도면 정말 기록적인 강설량이 아닐까 싶네요.

꼬마들은 신나게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부모들도 그 모습을 사진 찍고 합니다.

아이가 넘어져서 다치지만 않으면 참 훌륭한 놀이터로군요.

 

이 자전거들은, 어차피 여기 방치되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렇게 애정을 받은 건 아니겠지만

이 정도 눈에 노출되고나면 성한 곳이 몇 군데나 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자전거 몇장 찍고 만족하면서 카메라를 집어넣었는데

건물 외벽 모습이 왠지 설탕파우더 뿌린 빵 같은 모습이라서 또 다시 따가운 손으로 카메라를 꺼냅니다.

 

아예 그마트 들어갈때까지는 카메라를 넣지 말자고 결정했네요.

짐이 많아서 매우 거치적거리지만, 어차피 찍고싶은 녀석 발견하면 또 꺼내들어야 하니.

 

 

 

왠지 머핀에 박힌 초콜릿 같은 느낌의 꽁초들이네요.

눈 따위로는 애연가들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던 걸까요.

 

 

 

마크로 렌즈가 있었다면 의도했던대로 담을 수 있었을 듯한 모습입니다.

자연이란 녀석은, 자칫 심심해질 수도 있는 순백색 세상에서 이렇게 탁점을 남기는 능력이 있네요.

 

 

 

일본에서도 많이 보던 장면입니다.

한국에서 안지키는거야 뭐,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말이죠.

 

자세히 보니 자전거가 두 대로군요. 사이좋게 퍼질러 진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의 예술정신이란 건 참 대단하네요.

아마 우산 끝 같은걸로 새기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마트 앞에 저렇게 호갱님이라고 적어놓으면 영업방해일려나요.

 

 

 

마치 폭포 끝에서 산화되는 물줄기같은 느낌이 들었던 유리창 표면입니다.

눈은 그저 내릴 뿐이고 바람은 그저 불 뿐인데, 그것들이 남기는 모습은 아름답군요.

 

탄산수 거품같기도 하고, 여름바다의 파도같기도 해서 왠지 조금 시원해졌습니다.

하긴 영하의 날씨에 눈보라 맞아가며 촬영했으니 시원하지 않을리가 없네요.

 

 

 

건대앞 롯데백화점 입구엔 난리가 났습니다. 직원들이 출동해서 열심히 삽질중인데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보니 이미 대부분의 인도가 얼어붙어버렸죠.

 

삽으로 얼음을 깨어가며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는 모습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집니다.

눈 오면 제일 고생하는게 저 삽이 아닌가 싶네요. 사람이야 뭐 조심해서 움직이기만 하면 되고

그 댓가로 평소와는 다른 들뜬 기분을 받았으니 짜증날 일도 없지 않나 합니다.

 

다음 포스팅은 귀국후에 이어가기로 하죠. 추운데 다들 몸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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