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내부는 U 자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 곡선구간에는 자동차 전시 대신 각종 연표와 악세사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토요타 박물관이니 토요타 자동차의 연표가 간단히 나와있는데
출발은 서양보다 늦었지만 무서운 추격으로 현재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회사로 성장한 걸 보면
저 연표가 아직은 조금 더 길어질 여지가 남아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은 자동차에는 어지간히도 관심이 없어서, 자기가 사고 싶은 자동차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도 없다.
차 살때가 되어서 들뜨고 고민스러운 마음으로 열심히 스펙과 가격을 비교하는 젊은이들에게
토요타는 어느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것일지.
별의 별걸 다 전시해 놓는다. 옛날 자동차들의 스피드 메터기를 떼어다가 전시중이다.
요즘에도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해 저런 모습으로 튜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걸 보면
자동차가 첨단 기술의 집약체이긴 해도 여전히 인간미를 갈구하게 되는 존재인 걸까.
유명 메이커들의 엠블렘을 전시중이다. 이건 주머니에 넣고 가져가기도 쉬운 녀석들이라
한 장의 유리가 관람객 사이에 놓여있다. 덕분에 본인 카메라도 오랜만에 자태를 뽐낼 수 있었다. 사실 한장 위의 사진에도 나와있다.
빈티지 엠블렘이다보니 다들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이런 녀석들만은 도난 방지를 위해 칸막이를 설치할 수 밖에 없었던 듯.
자동차 매니아를 제외한다면, 이 녀석들은 대부분 미국과 유럽의 초기 엠블렘들이라
동양인들에게는 좀 멀리 떨어진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2층 전시관의 나머지 한 쪽이다. 날 찍어달라는 듯한 녀석들이 끝도없이 포진해 있다.
차는 많고 구도 잡을 공간은 협소해서 24mm 광각렌즈를 주로 사용하고는 있지만
왜곡을 즐기다가 조금 싫증날 때도 있고 하니, 가끔씩 50mm 렌즈로 촬영도 한다.
50mm 렌즈는 40년 전쯤 생산된 늙은 녀석이라 보이는 대로 결과물을 담아주지는 않지만
그 덕분에 카메라를 통해서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주니 나쁘지 않다.
아직 3층에 이만큼의 자동차가 더 전시되어 있고, 이곳 말고 신관건물이 또 하나 더 있는데
이러다가 사진 찍다 내가 먼저 지쳐버리는게 아닐까 싶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정말로 자주 오기 힘든 곳이니 덧없는 사명감에 불타서 오늘 베터리 한번 확 죽여보자 하며 이리저리 서성인다.
'프랑스의 포드가 되고싶다'는 모토로 제작된 시트로엥의 1924년작 5CV 타입 C3 모델이다.
여러 부분에서 간소화에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디자인성을 깎아먹지 않은 듯한 느낌.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차를 참 마음에 들어한다. 특히 저 노란색.
요즘 자동차들은 노란색 칠하면 뭔가 촌티나는데, 이런 녀석들은 노란색이 정말 잘 어울린다.
꽤나 기품넘치는 이 녀석은 쉐보레 컨페더레이터 시리즈 BA 모델이다.
이름때문에 착각하는 사람이 매우 많겠지만 쉐보레는 미국 회사. 1910년부터 GM 소유였다.
공동 창립자인 루이 쉐보레는 장사 다 망하고 인생 말아먹었다는데, 아직 그 이름을 딴 회사는 남아있으니 아이러니.
여러가지로 원가 절감을 한 나름 대중을 위한 자동차였는데
디자인 여기저기서 캐딜락의 이미지를 가져왔기 때문에 '베이비 캐딜락'이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이 모델이 발매된 1932년엔 캐딜락 역시 GM에 인수되어 있었기에, 이런 자회사 카피품도 가능했던 것.
베이비 캐딜락의 바로 옆에 전시된 포드의 1934년작 모델 40.
포드와 GM 은 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100년이 넘은 앙숙이자 라이벌이니
박물관에서 일부러 이렇게 두 모델을 붙여놓은 듯 하다. 쉐보레 모델에 대항해 8기통 엔진을 장착한 녀석.
재미있는건, 캐딜락은 원래 1902년 포드에서 갈라져 나온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브랜드였다는 사실.
이걸 1909년 GM이 인수해 버려서, 포드로서는 참 기구한 인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자동차계에서도 막장드라마는 일어난다.
1934년 발매된 쉐보레 마스터 시리즈 DA 모델.
쉐보레 모델중 고급기종으로, 현대형 자동차의 원형이 되는 요소들을 몇군데 가지고 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여기서 살짝 눈치챘을 수도 있겠는데, 사실 이 녀석이 지난 번 포스팅에서 나왔던 토요타 최초의 승용차 AA형의 아버지격인 존재다.
다시 지난 포스팅으로 돌아가서 보게 된다면 꽤나 닮아있다는걸 느낄 수도 있을 듯.
물론 토요타로서는 최초로 제작한 자동차이다 보니, 한창 물오른 쉐보레의 기술력과 비교하기는 어려웠고
실상 성능은 이쪽이 훨씬 좋았다고.
달콤한 색깔에 엽기적인 앞모습의 이 녀석은, 미적 기준은 둘째치고 임팩트가 강하다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듯.
1934년 미국의 '데 소토'라는 메이커에서 출시한 에어플로우 시리즈 SE 모델이다. 물론 지금엔 들어볼 수 없는 브랜드.
거의 모든 면에서 당시 대중들의 허용인식수준을 뛰어넘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비운의 모델이라고 한다.
결국 그닥 인기없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이 모델이 가진 특징들은 다른 거대 메이커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고.
역사라는 곳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듯 하다.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몇 사람의 천재가 흘리고 간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형국이니까.
1938년 독일에서 생산된 폭스바겐 38 프로토 타입.
재질이나 디자인에서 서민용 자동차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아마 개발자의 의도가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히틀러가 고안했던 국민차였으니까. 이 모델은 오리지날이 아니라 레플리카다.
스페인의 이스파노-스이자 브랜드가 개발한 알퐁소 13세라는 모델.
1912년 제작되었고, 세계 최초의 스포츠카로 알려져 있다. 모델명은 국왕 알퐁소 13세에게 왕비가 선물로 줬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듯.
자동차가 전부 1:1 크기라는걸 생각해 보면, 이 박물관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처럼 거대한 DSLR 들고 다니는 사람 외엔 다들 휴대폰 카메라로 잘만 찍으며 나를 앞서간다.
덜 쪽팔리게도 나보다 더한 모델과 어마어마한 대구경 렌즈를 사이좋게 나눠 들고다니는 노부부 일행도 있어서
그닥 시선 신경쓰지 않고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그 노부부는 캐논의 1D 시리즈와 백통을 들고 있었는데
70은 넘어보이는 분들이 무슨 직종에 종사하는건지, 단순한 취미로 그러는 것인지... 자동차의 역사만큼이나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다.
친구 강군이 좋아하는 정열의 붉은색으로 떡칠되어 있는 멋진 모델, 대인기 브랜드 알파 로메오의 6C 1750 그란 스포르토.
여기까지 오니 문외한인 본인도 조금씩 경험치가 쌓이는 듯, 이 녀석 역시 레이싱용으로 개발된 스포츠카라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다.
서양은 1930년에 이런 녀석들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니, 1936년에 첫 발을 내딛은 토요타 역시 처음엔 좌절의 연속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거보다 더욱 열악했던 한국도 지금 세계 시장을 상대로 자동차들을 뽑아내고 있으니, 후발 주자의 노력은 아름다운 것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내가 횬다이 따위를 좋아할 일은 없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이것 또한 참 마초적인 디자인으로 내 눈길을 끈다. 레이싱용으로 개발되었음에 틀림없지만 이런 디자인 마음에 든다.
생긴건 좀 투박해 보여도 이 녀석이 세계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의 양대산맥 벤틀리의 4 1/2 모델이다.
현재 롤스 로이스와 함께 최고급 브랜드를 양분하고 있는 벤틀리는, 롤스 로이스의 귀족주의 경영철학과 달리
최고의 성능을 내는 자동차를 우선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스포츠성이 중시되는 브랜드라고 한다.
롤스 로이스가 최소 300억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만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과 달리
벤틀리의 최고 모델은 현존 차량중 가장 마력이 높은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지만 지향점은 좀 다르다.
고급차니 뭐니의 문제가 아니고, 이 모델의 디자인에서는 정말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수가 없다.
앞모습을 지긋히 바라보고 있으니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어느 꼬마자동차가 생각난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메이커 오스틴 힐리의 스프라이트라는 모델.
미려한 디자인과 달리 미니멀한 구성에 '오토바이 창고에도 처박아 놓을 수 있는 자동차'라는 모토를 달고 태어난
저가형 스포츠카였지만, 사실 성능면에서는 타 모델에 뒤쳐지지 않는 준수한 모습도 보여주었다고 한다.
배기량 950cc 에 43마력 정도의 아담한 녀석이지만, 지금도 이 녀석이 저가형으로 나온다면
사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몇 안되는 자동차로서 기억에 남을 수 있을텐데.
여담으로, 영국에서는 이 녀석을 '개구리 눈' 이라고 불렀고, 일본에서는 '게 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 박물관을 구경온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빼앗을 수 밖에 없는 최고의 볼거리 몇 가지중 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 법한 디자인에 한참을 넋놓고 바라보게 된다.
영화 소품으로 쓰인 녀석을 가지고 온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 녀석은 엄연한 시판 승용차.
1939년 프랑스의 '들라주'라는 메이커에서 출시된 타입 D8-120 이라는 녀석이다.
들라주는 1905년 루이 들라주가 시작한 회사로, 처음엔 자체 프레임을 만들어 파는 곳이었지만
자체 엔진도 제작하게 되고, 레이스에서 잇달아 우승하게 되자 점차 고급형 자동차 제작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전시된 모델은 D8-120 중에서도 당시 프랑스 최고의 자체 제작사인 피고니&팔라쉬 사에서 제작한 모델로
이 정도쯤 되면 이미 이건 자동차라기 보단, 엔진을 단 예술품이라 부르는게 더 어울릴 듯 하다.
영롱한 코발트블루가 자체를 감싸고, 유선형의 극치를 달리는 디자인은 시동걸기조차 아까워지게 만드는데
사실 자동차 본연의 용도 역시 외형에 걸맞는 수준이었다. 4750cc 배기량에 115마력의 엔진은 당대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이 녀석은 왠지 한참을 빙글빙글 돌아보며 감상하며 셔터를 눌러도 지겨워지지 않았는데
그게 바로 메이커의 명성이나 쌓아올린 지식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디자인의 매력만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현대에도 이런 자동차가 실존하길 바라는 것은, 이미 현대 디자인에 익숙해 진 반동으로 인한 산물인 걸까.
100년 전의 사람들에게 현대의 럭셔리 자동차와 이 녀석을 나란히 세워놓고 어느 쪽이 더 멋지냐고 물어본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돌아올 것인가. 확인할 수 없는 영원한 궁금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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