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본인에게 있어서 자동차 하면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데
이 녀석만큼은 내 감성을 자극하는 감성적 소재로서 자리잡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 컷이 나오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듯.
이 모델의 아이덴티티나 마찬가지인 비현실적인 테일핀. 전투기의 뒷부분을 참고로 해서 만들었다고.
자동차라는 기계의 실용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찌보면 솟아있는 테일핀 만큼 허무한 꿈과 같은 장식이지만
19세기 중반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정체성에 그보다 더 어울리는 이미지가 있을까.
엘비스 프레슬리가 즐겨 탔다는 이 녀석은, 그야말로 당시 미국 문화의 상징이었고
시대가 바뀌고 난 후엔, 그땐 그랬지라는 조금은 자조섞인 향수에도 더없이 어울리는 녀석.
사실 이녀석과 기종은 조금 다르지만,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도 끔찍할 정도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소재로 나오기도 했다.
자동차 한대가 이렇게 문화적 아이덴티티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녀석은 아마 전세계를 통틀어서도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이름을 말할 것까지 있을까 싶은데, 일단 이녀석은 캐딜락의 엘도라도.
그중에서 테일핀이 가장 높았던 1959년형 비아리츠 모델이다. 엘도라도는 다양한 버전과 다양한 색깔이 나왔었지만
아마 엘도라도 하면 이 핑크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거라 생각해 본다.
영화에서 한두 번쯤은 접할 기회가 있을 모델인데
워낙 길쭉한 자체를 하고 있어서, 조금이지만 'Blur' Song 2 앨범 자켓을 흉내내서 사진을 담아본다.
좀 더 비슷하게 흉내내려면 16mm 정도의 광각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찍어야 하는데, 여기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고.
앨범 자켓은 워낙 유명하지만, 혹시 궁금한 사람들은 한번 검색해 보시길.
타카키 마사오의 즐거운 한때를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포스터가 이 앨범의 자켓과 매우 닮아있기도 하다.
50년이 넘은 아직도 미국에서는 이 핑크색 엘도라도가 변치않는 로망의 일종으로 인식되어있다.
아마 이 박물관에 없진 않겠지 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깨끗한 보존상태의, 그것도 엘도라도 비아리츠 모델이, 그것도 핑크로 내 눈앞에 나타나자
토요타가 뭘 좀 알긴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수가 없다.
거진 15분 동안 엘도라도 주위를 빙글빙글 거리다가 어쨌든 다시 전진한다.
여전히 시리즈가 이어져 내려오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300SL 쿠페 모델.
원래 레이싱용으로 개발된 녀석을 상용화해서, 지금도 스포츠카의 대표주자로 활약중이다.
독일인의 특성일런지, 1955년 발매된 이 녀석에게서도 여전히 2013년형 모델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오리지날의 느낌을 해하지 않으며 어떻게든 발전을 거듭해 나가는, 각 대륙을 대표하는 공돌이 집단 독일과 일본의 닮은꼴이랄까.
이곳에서 시대 흐름에 따라 자동차를 구경하고 있으면
조금씩이나마 그 당시의 유행하는 디자인이라던가, 추구하고자 하던 방향을 살짝 느낄 수 있는데
가끔 그 흐름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묘한 녀석들이 중간중간 전시되어 있어 분위기 전환에 일조하고 있다.
터커라는 미국 회사가 만들어 낸 '48 모델. 물론 1948년 제작된 녀석이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운전자 안전 대책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고
미려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모델인데
개발비가 너무 많이 들었고, 법적인 트러블에 휘말리다가 결국 단 51대만 생산된 체로 회사가 도산하고 말았다.
이루어지지 못한 아메리카 드림의 단면을 보여주는 비운의 모델. 그런데 그 중 한대가 여기 놓여있다니.
특이한 외모로 치자면 이녀석도 빠지지 않는다.
얼핏 봐도 어디에 쓰이는 자동차인지 살짝 감이 오지 않는가.
이제껏 본 빈티지 자동차 중 가장 육중한 몸매를 자랑한다.
깃발 꽂혀있는 것도 그렇고,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알아서 중후함을 표현해 준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전용차 팩커드 트웰브 라는 모델. 의전용이다 보니 가격따위 생각않고 때려부었다는 느낌이 곳곳에 묻어난다.
성능이야 말할것도 없이 당대 최고였고, 장갑차를 방불캐하는 자체 강성과 방탄유리는 왠만한 자동소총의 총격에도 꿈쩍하지 않을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대통령의 암살 사건은 이런 자동차에 타고 있어도 꽤나 빈번히 일어났었다.
롤스 로이스의 펜텀 3 모델.
1937년에 제작된 녀석으로 항공기 개발의 노하우를 살린 직렬 12기통 엔진의 성능이 대단했다고 한다.
롤스 로이스는 정숙성을 자랑하기 위해 자사의 플래그쉽에 고스트나 팬텀 등의 유령 이름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이녀석도 부티가 줄줄 흐르긴 하지만, 예전 포스팅에 나왔던 실버 고스트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그냥 그렇다.
이것 또한 참 어느 별에서 출장온 녀석인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별난 디자인이다.
2013형 자동차라고 한들 어느 누가 촌스럽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인지.
물론 1934년 발매 당시에도 '미래의 자동차'라는 별명으로 격찬을 받았다고 한다.
쓰여진대로 코드라는 회사에서 출시한 프론트 드라이브 812 모델.
코드라는 회사는 원래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던 초기 미국 자동차 메이커인 어번사가
당시 세일즈의 귀재라고 불리던 E.L 코드를 영입하면서 새롭게 출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색다른 차는 팔린다'는 모토아래 제작된 코드의 자동차들은 그 혁신성과 미래적인 디자인 덕분에 단숨에 맹위를 떨쳤고
수년 후 독일의 천재 엔지니어 듀센버그 형제가 창립한 회사를 인수하며 최고급 자동차 계열에도 손을 뻗었다. 그 듀센버그 자동차도 좀 있다 나온다.
프론트 엔진, 강렬한 라디에이터 그릴, 수납형 헤드램프 등등 정말 미래에서 온 차가 아닐까 싶은 녀석이었는데
불행히도 불경기에 진입하기 시작한 미국 서비층의 경제적 여력에 비해 너무나도 비쌌기 때문에
810, 812 단 두개의 모델만을 출시한 채 코드 자동차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시대의 조류란 너무 앞서나가도 곤란한 듯. 그런 사례는 아마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500K 모델. 블랙과 레드를 강렬하게 조합했다는 의미는, 그만한 자신감이 있었다는 뜻으로 들린다.
1935년 제작되었지만, 당시 레이싱 자동차들마저 부러워할 최고시속 160km 의 고성능과
최고급 내외장재로 떡칠을 해서 상류층을 대표하는 장난감으로 시대를 풍미한 모델.
이곳 박물관에서는 위에 덮개를 씌워놔서 좀 더 고풍스럽게 보이지만
사실 덮개를 내린 상태의 모습은 굉장히 날렵하고 젊은 느낌이다. 당시에도 여성층이 많이 선호했다는 듯.
빈티지이긴 하지만 워낙 유명한 모델이라서 아직도 세계 자동차 전시회에서 종종 등장한다.
비록 배색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녀석은 한 눈에 봐도 귀족적인 향기가 물씬 풍긴다.
좀 전에 언급했던 코드 사가 인수했던 메이커, 듀센버그의 모델 J.
독일에서 이민온 듀센버그 형제는 뛰어난 제작기술로 여러 레이싱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는데
20대의 젊은 공돌이 형제는 기술개발엔 천재적이었지만 경영쪽에는 문외한이라서,
자금난에 시달리다 당시 승승장구하던 코드 자동차의 산하에 들어가게 된다.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은 코드 덕분에 듀센버그 형제는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쳐, 자동차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1929년 출시된 모델 J 는, 6800CC 265마력, 186km 최고속력을 자랑하는 꿈의 럭셔리 자동차였다.
당시엔 현재까지 이름을 날리고 있는 최고급 브랜드들보다 더욱 인기가 있었던 모델로
헐리우스 스타들의 두 가지 꿈이 오스카 상과 듀센버그 J 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렸던 시대였다.
당시 2만달러라는, 폭력적일정도의 고가 자동차였지만 발매 후 몇년간은 없어서 못팔 정도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경제 대공황 속에서 이 정도 자동차를 위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듀센버그 모델은 총합 1000대를 넘기지 못하고 그 운명을 다하고 말았다.
듀센버그 형제는 여러번 재기를 노렸으나 빈번히 실패하고, 제국이라 불리던 코드 자동차도 몰락해버려서
결국 듀센버그는 1930년대 세계 최고의 자동차라는 타이틀을 추억으로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현재 360대 정도가 남아있는데, 미국 미시간 주에 위치한 어번 코드 듀센버그 박물관이 여전히 매니아들을 맞이하고 있다고.
사진으로는 잘 전해지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곳 박물관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몇가지 자동차 중 하나다.
애초에 워낙 환상으로 남은 모델이라, 이 녀석만 대접이 좀 다르다. 옆에 계단이 설치되어 위에서도 구경할 수 있다.
드디어 길고 긴 외국 빈티지 자동차 전시관이 끝을 맞이한다.
하지만 아직 3층에 토요타 빈티지 자동차 전시관이 같은 규모로 위치해 있고
신관쪽엔 가보지도 않았으니, 오늘 하루 아주 원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있겠구나 싶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지겨워 질 만큼 체력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매번 눈을 놀라게 만드는 자동차들이 즐비해 있어서
무거운 숄더백이 그렇게까지 발목을 잡고 있지 않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발걸음을 좀 더 가볍게 할 필요는 있을 듯 하다.
외국 빈티지 중에서 마지막으로 파인더에 담은 이 녀석은 벨기에의 미네르바라는 메이커에서 1925년 제작한 30CV 타입 AC.
앞서 소개한 듀센버그 모델이 출시되기 전까지 전세계 왕족들과 대부호들이 즐겨 사용한 당대 최고의 럭셔리 모델이다.
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사회적 지위와 연결되는 것을 의미했다고. 요즘의 한국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인상적인 것은 역시 섬세한 조각의 여신상 마스코트와 미려한 곡선으로 빛나는 라디에이터부.
저 당시에 저런 디자인을 만들려면 대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오른쪽 눈의 촛점이 잘 맞지 않을 정도로 셔터를 눌러대고
2층 빈티지들을 점령했다는 묘한 만족감에 한숨을 쉬며 굳었던 어깨를 풀어본다.
3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아이들을 위한 조그만 체험 전시관이 있어서 숨도 돌릴 겸 들어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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