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관람을 마치고 한 켠에 마련되어 있는 체험학습관으로 이동한다.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은 내가 굳이 둘러볼 필요는 없지만

나로서는 체감하기 힘든 '아이들의 눈높이를 어른들이 맞추는 방법'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조카 크면 조금이라도 어른 행세를 해야 되지 않겠나 싶은데,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

 

마을 여기저기서 큰일이 벌어졌을 때 자동차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거대한 벽보.

노트 형식으로 되어 있는 곳을 넘기면 상황에 맞는 자동차와 함께 간단한 설명이 나온다.

 

그림은 아이들이 재미있게 넘기도록 놔두고, 나에게 재미있었던 부분은 중앙의 색색글자로 쓰여진 곳이다.

'이럴 때 어떤 자동차가 활약하는걸까?' 라는 뜻인데, 활약이라는 한자를 '活やく' 라고 한자와 히라가나를 섞어서 사용한 부분이 센스있다.

한국에서도 아마 저 한자를 다 쓸수 있는 젊은이가 거의 없을 듯. '活躍' 중에 뒷글자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읽기에 쉬운 녀석이 아니니까.

 

사실 뉴스에서도 상용한자에 들어가지 않는 어려운 한자가 포함된 단어는 히라가나와 병기하기도 한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活약'이라고 사용하는거나 마찬가지라 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한테는 좋은 배려가 되겠지만.

 

 

 

빈티지 자동차라고 해 봤자 아이들에게는 거기서 거기일테니, 이곳에서는 각종 현장에서 활약중인 자동차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쿠보타 트랙터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것으로 안다. 이거 한대만 있으면 수확철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국서나 일본서나 이런 것들은 꽤나 비싼 편이고

한국의 농협 역할을 하는 JA 역시 한국에서와 비슷하게 일본 농민들에게 별로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

작은 면 단위나 이웃 농가 몇몇이 돈을 모아서 계절별로 기계를 JA 에게 대여받아 공동사용하곤 하는데, 대여료가 너무 비싸다는 것.

 

 

 

각종 특수차량들에 맞는 제복을 아이들이 시착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물론 진짜 제복은 아니고 그냥 옷 위에 수술복처럼 걸칠 수 있는 녀석.

 

자동차 박물관이란게 상당히 어른을 위한 장소이긴 한데, 이런 식으로 아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 코너를 착실히 마련해 놓는다.

나갈때쯤 수많은 자동차 장난감들이 포진해 있는것 역시 아이들을 위해 지갑을 열게 만드는 착실함을 나타낸다.

 

 

 

외국인에게는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만큼 신기한 일본의 택시.

앞문은 수동이고 뒷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것도 신기하고

옆으로 누워서 데굴데굴 굴러가도 도착할만한 거리에도 놀랄만큼 쑥쑥 메터기의 금액이 올라가는 것도 신기하다.

 

일본의 택시는 사이드 미러가 차체 앞에 부착되어 있는데, 보기엔 볼품없지만 시야가 굉장히 넓어져 사고의 위험이 줄어든다.

숨은그림찾기는 아니지만 저기 택시의 사이드미러를 한번 찾아보길. 외관보다 안전을 중요시하는건, 손님을 태우는 택시의 미덕이다.

 

 

 

1898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동력자전거. 오토바이와 자전거와 자동차의 정중앙에 위치한 녀석이다.

작은 엔진과 체인으로 움직였으며, 페달 역시 달려있어서 인력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

 

 

 

연료통 위에 살짝 놓여진 조그만 가방이 인상적이다.

카울과 프레임이 얹혀지기 전의 가장 순수한 동력 이동수단에

세월 흐른 가죽 가방의 향수가 더해지니, 기술이란게 이렇게 발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법적인 문제만 없다면 지금도 타고 다닐만한 녀석인데, 한국선 몰라도 일본에서는 이런 거 불법이다.

 

예전에 일본서도 가솔린을 이용한 동력자전거가 사용되었는데, 개조 조금만 하면 60km 까지 속도를 낼 수 있어서

위험함 때문에 금지되었고, 지금은 전동자전거 역시 사람의 힘이 몇% 정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법률이 제정되어 있다.

 

 

 

3층에 올라가기 전에 조그만 암실이 눈에 들어온다.

르네 라리끄의 카 마스코트 전시실이라고 한다. 누군가 싶었는데 1920년부터 유명 자동차들의 마스코트를 제작한 유명한 디자이너라고.

 

 

 

자동차 마스코트로도 유명하지만 원래 시대를 대표하는 크리스탈 조각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미술이나 공예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들어봤을 법 하다.

 

지금도 기싸움을 벌리고는 있지만 자동차의 마스코트는 결코 싸구려 장식이 아니다.

롤스 로이스의 마스코트 '환희의 여신상'은 그거 한개만 6천만원이 넘는다. 백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때문인지 웃기게도 마스코트를 차체에 집어넣는 기능마저 있다고.

 

 

 

크리스탈의 영롱함을 드러내기 위해 실내는 매우 어두운 가운데 정확히 조각상에만 빛이 집중되어 있다.

카메라로 담기 쉬운편은 아니지만, 가공 기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감각에 있어서도 르네 라리끄라는 사람은 범인이 아닌듯.

 

 

 

그가 디자인한 자동차 마스코트는 지금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서양 사람들에게 자동차란 자신들의 역사와도 같은 것이라, 메이커들은 마스코트를 한번 정하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때문에 결코 쉽게쉽게 제작하지 않는데, 그런 마스코트를 29 종류나 의뢰받아 제작한 르네 라리끄는 장인의 대열에 들어가기게 부족함이 없다.

 

여담으로, 날개모양을 한 벤틀리의 마스코트는 무단도용 방지를 위해 양 쪽의 날개 갯수가 한개 차이나게 만들어져 있다.

한국에서는 제네시스 엠블렘이 벤틀리를 완전히 베낀거나 마찬가지인데, 당연하게도 양 쪽의 날개 갯수는 같다.

 

 

 

여기 전시된 르네의 작품들은 자동차 마스코트는 아니지만 그가 즐겨 제작했던 동물 조각들이고

사실 마스코트의 많은 부분은 동물들에게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한다. 동물은 기원전부터 상징성을 나타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으니.

 

 

 

2층 관람을 마치고 3층으로 올라간다.

똑같은 U 자 구조고, 자동차는 2층보다 더 빡빡하게 들어서 있는 듯한 느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몸으로 느끼는 밀도는 2층보다 낮다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2층은 전 세계를 주름잡은 빈티지 자동차들의 집합소였지만

3층은 어찌됐든 일본의 자동차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곳이기 때문. 일본인이라면 감회가 새롭겠지만 나로서는 좀 김이 빠진다.

 

일단 어지간한 녀석은 다 카메라에 담아오긴 했지만, 왠지 2층과 달리 그녀석들은 전부 소개할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확실히 귀엽고 인상적이었던 이 녀석은 토요탸 최초의 소형차 토요펫 SA 모델.

소형차 브랜드를 위한 이름을 공모해서 선택된 것이 TOYOPET 이라고 한다. 좋은 센스다.

 

 

 

앞선 SA 모델보다 훨씬 중후하게 만들어진 이 녀석 역시 토요펫 라인이다.

애완동물이 갑자기 늙어버렸나 싶었는데, 당시 소형차의 기준이 1000cc 에서 1500cc 로 바뀜에 따라 제작된 녀석이라고.

물론 성능이 그만큼 좋아져서 주로 택시기사들이 애용했다고 한다.

 

 

 

뭔가 덕지덕지 붙은 이 녀석도 토요펫 크라운 RSD.

1957년 일본 자동차로서는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 랠리에 참가해 47위를 기록한 모델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랠리는 19일간 14000km 를 달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랠리 경주.

 

랠리 경주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한번 찾아보길. 본인이 예전에 경험했던 사하라 사막 마라톤의 자동차 버전이라 생각하면 된다.

당시 이 랠리는, 완주만 달성해도 그 자동차의 기술력을 인정받을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다.

 

 

원래는 이런 녀석. 붉은색도 꽤나 잘 어울린다.

 

 

 

토요펫 코로나 RT40 모델. 적혀있듯이 1964년 제작된 녀석이다.

이 모델을 기점으로 토요타 자동차의 기술력이 세계의 메이커와 대등해졌다고 평가를 한다.

일본은 당시 고속도로 건설 붐이었기 때문에, 막 건설된 고속도로에서 10만km 를 연속으로 달려 성공적인 이미지 전략을 달성했다고.

 

 

 

3층엔 토요타뿐만 아니라 일본의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의 제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토요타와는 달리 3륜차에 중점을 두고 실용성을 강조한 메이커들이 많았다.

 

지금도 다이하츠 중공의 자동차들은 작고 튼튼한 직사각형 모양의 자동차를 중점적으로 생각중이고.

 

 

 

그중에서도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이 녀석은 후지 자동차에서 제작된 후지캐빈 5A 형 모델.

원래 오토바이 엔진을 만들던 회사였던 후지자동차에서, 극도의 저가격과 실용성을 무기로 내세워 출시했던 녀석이다.

 

디자인만큼은 귀엽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절륜함을 자랑하지만 무게를 위해 프레임을 FRP로 만들어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유리 섬유 플라스틱인 FRP는, 지금에서야 기술력이 좋아져서 항공기의 부품에도 쓰이지만, 당시의 FRP는 자동차 차제로 쓰기엔 역부족.

 

거기다 원래 오토바이용 125cc 엔진을 장착했고, 와이퍼를 운전자가 손을 내밀어 수동으로 작동시켜야 하는, 끝내주는 아날로그 삼륜차였다.

결국 모양외에는 별다른 장점도 없이 딱 85대만 생산되고 바로 단종되어버린 모델. 그래도 시도면에선 칭찬을 줘도 되지 않을까.

 

 

 

프린스 자동차공업이 1964년 발표한 고급형 세단 글로리아 수퍼6 모델.

현재 일본 내에서 토요타와 거의 대등하게 맞상대를 할 수 있는 닛산자동차의 전신이다.

이 당시부터 일본의 자동차회사들의 기술력이 점차 상향평준화 되어간다.

 

 

 

당시 일본은 놀랄 정도의 고도성장기였고, 자동차의 수요 역시 폭발적이었다.

넘치는 연구자금과, 끊임없는 해외 자동차의 연구 등을 통하면서 점점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시기가 1960~70년대.

 

사실 당시까지 토요타는 세계 시장에서 별달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않았고, 저렴한 가격에 쓸만하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70년을 넘어가며 오일쇼크가 터지자, 작고 연비좋은데다가 잔고장 일으키지 않는 미니멀리즘 공돌이의 자동차가 대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에 토요타의 이름을 각인시키게 된다. 사실 중남미나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70년대 자동차들이 멀쩡히 굴러가고 있다.

 

 

 

1964년 혼다가 개발한 최초의 자동차 S500.

혼다는 이전부터 오토바이 제작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자동차 시장에 뛰어드는건 힘들지 않겠냐는 전망이 많았는데

처음으로 출시한 이 모델의 엔진은, 연륜넘치는 메이커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굉장히 정교하고 고성능이었다고.

 

아주 작은 자체에 배기량도 그리 높지 않은 소소한 모델이지만, 엔진 기술을 자동차에 접합시키는데는 성공적인 한 걸음이었다.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세계적으로 자동차의 대량생산체제가 갖춰지고 나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초기 서양의 자동차 시장처럼 재기넘치는 도전정신보다는, 어디까지나 실용성을 우선으로 한 '튀지 않는' 모델이 많았다.

 

색깔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당시 동양권에서는 어찌됐든 무난한 디자인이 유행했던 듯.

 

 

 

하지만 물론 스포츠카나 레이싱용 모델은 여전히 콜로세움에서 열광하던 군중들의 심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해서, 스포츠카로서는 놀라울 정도의 저연비를 실현한 토요타 스포츠 800 UP15형.

 

일본에서는 아직도 가끔 도로에서 볼 수 있는 모델이다. 이 정도로 상태가 좋지는 않고 그냥 빈티지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지만.

 

본인도 솔직히 상태만 좋다면 몰고싶은 자동차 1순위기이도 하다. 일본서 이녀석이 달리는 모습을 봤는데

혼자나 둘이서 타기엔 이만큼 적당한 녀석도 없다는 느낌. 요즘 한국의 한 덩치하는 자동차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불만점을 전부 해결한 녀석이다.

힘은 요즘 것들에 비해 약해도, 스포츠카 디자인의 극히 몰기 편한 소형차가 연비는 또 죽여주게 좋으니까.

 

 

 

코로나 마크2 모델. 나이 조금 지긋한 일본인들에게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자동차다.

한국에서는 소나 탄다는 그 모델보다 조금 더 윗급이라고 할까.

 

원래 토요타 브랜드 중에서 코로나가 중급, 크라운이 상급기종이었는데

크라운을 탈 여력은 안되지만 코로나보다는 괜찮은 녀석을 타고 싶다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샌드위치 모델.

이게 소비자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바람에 한달에 2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확실히 비싼 녀석은 겉으로 느껴지는게 다르긴 하다. 이게 인격이나 인생의 성공척도로까지 이어지는 요즘 세태엔 좀 한숨이 나오지만.

토요타에서 작정하고 야심차게 제작한 최초의 프레스티지형 승용차 센츄리 모델이다.

 

프레스티지형이란 제작사의 기함급 모델을 말하지만, 브랜드 중에는 기함급이라도 프레스티지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내노라하는 명차의 대열에 대항할 수 있는 급수를 나타내는 모델이기도 하다.

 

 

 

센츄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평범하게 생각하면 나오는 그 이유가 맞았다.

자동차 회사는 아니었지만, 방직공장 창립자인 토요다 사키치(豊田佐吉)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녀석.

 

이 토요타라는 회사 이름은 사실 미묘한 부분에서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은데

원래 '豊田'라는 한자는 토요다 라고 읽는다. 창립자의 가문인 토요다 가문 역시 그렇게 읽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를 창립할 때는 '토요타'라고 읽었다.

서양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토요타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 발음이 서양인들에게 더 익숙하리라 생각해서 그렇게 지었다고.

 

이 때문에 토요타라는 회사가 원래는 토요다였는데 이름을 바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회사는 처음부터 토요타였다. 한자의 음독과는 다른 독자적인 단어. 실제로 토요타의 사명도 한자가 아니라 'トヨタ'라고 쓴다.

 

더욱 헷갈리는 것은, 원래 회사가 위치했던 코로모(拳母)시가 토요타시로 개명되었는데

이 토요타시는 한자를 "豊田'로 쓰지만 발음은 회사와 같이 토요타로 읽는다. 사람의 성씨가 아니라 회사 이름으로 개명된 경우기 때문에.

일본인들중에도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마 이대로 가다간 '豊田'라는 한자의 음독 자체가 토요타로 바뀌어 버리는게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