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갔던 곳을 또 가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듯 하다.

좀 전에는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도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양쪽을 두리번거리며 어지럽게 돌아다닌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얼핏 기억으로는, 좀 전보다는 많이 적혀있는 느낌이 든다. 축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니 처음보다는 많이 적혀있는 듯.

신사에 봉납하는 에마 모양의 낙서장인데 아이디어는 좋다고 본다.

아무데서나 낙서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배출구를 마련해 주는게 누이좋고 매부좋은 것이니.

 

 

 

에마에 소원적는건 역시 젊은층의 비율이 높은 듯 하다.

아직 살 날도 창창하고 하고싶은것도 많을테니 적고싶은것도 많을테지.

늙은 사람은 이룰거 대충 다 이뤘거나, 이런 데 적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고 자각할만큼 인생 경험해 왔으니 그럴수도 있고.

 

덕분에 뭐, 이런 에마를 훔쳐보는건 나름 재미가 있다. 절실한 사람보다는 가벼운 사람이 많으니까.

평범한 소원에는 관심이 없어서 약 좀 빤듯한 소원을 찾아보는데, 왠지 타카야마엔 솔로가 많은듯한 기분이 든다.

'남자친구가 청춘을 즐기고 싶어♡ 우햐~' 라고 수정선까지 넣어가며 적은 저차 3명에게 남친이 강림하시길.

 

 

 

일반적으로는 남자 비율이 높아서 여자가 남자 고르기 더 쉬운게 아닌가 싶은데

이곳 에마에는 이상할 정도로 여자쪽에서 남친 구하는 소원이 많다. 뭔 일일까.

 

BOB and RiN 이라는 여성도 남자친구가 갖고 싶다고 떼를 쓴다.

 

평범한 내용으로는, 축구가 인기 있는지 축구 잘하게 해 달라거나 대회 우승하게 해달라던지 하는게 좀 보인다.

 

 

 

1984년 8월 31일생 28세 남성은 욕심이 너무 많다.

 

지가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가 잘나나기를 바라는 등, 타인을 배려하는 따스한 소원도 있긴 하지만

'엄마가 휴대폰 돌려주기를'이라거나 '빨리 일본에 카지노가 생기기를'이라거나 '언젠가 카나자와 경마장에 갈수 있기를' 따위의

묘하게 실현가능성이 있을랑 말랑 한 소원들을, 그 이전에 소원을 빌 필요가 있나 싶을 것들을 장황하게 적어놓았다.

 

카나자와까지 가는 버스비는 3만원 정도밖에 하지 않으니, 그냥 가면 안되나?

 

 

 

세계일주 하고싶다는 소원에서는 눈길이 멈출 수밖에 없다.

이것도 베르테르 효과처럼 전염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똑같은 세계일주 희망이 나란히 적혀 있다.

 

하지만 진짜 세계일주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 희망과 염원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것을 이 사람들은 알려나.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짜 이상하다 이곳 에마.

아무리 찾아봐도 '여자친구가 필요해' 보다 '남자친구가 필요해'가 압도적으로 많다. 영어로 쓰인 문장까지.

 

물론 남자 여자 숫자만 맞는다고 덜렁 커플이 생기는건 아니겠지만, 여친이 필요하다면 일어 배워서 타카야마로 날아가는게 좋지 않으려나.

 

 

 

'가족 사이좋게 주욱 함께' 라고 적은 귀여운 아이는, 확실히 좋을 때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어느 순간부터 그 가족들이 '빨리 좀 시집가'라고 밀어낼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번 에마에서 가장 스트레이트 소원은 저 '金'이다. 반짝반짝 빛난다.

 

 

 

에마를 구경하고 다시 길을 걷는데, 정말로 가게들이 거의 파장 분위기다.

이러다가 더 이상 먹을게 없어지는게 아닌가 싶어서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눈에 익은 녀석이 들어온다.

모양은 타코야키지만 예전의 점보야키처럼 큰 녀석이고, 문어가 아니라 히다 소고기가 들어간 히다규 야키라고 한다.

 

고급 소고기의 맛을 살리는데 전혀 적합하지 않은 묘한 조합이지만, 어쨌든 혼자서 그 비싼 히다규를 먹을 생각은 없으니

이렇게라도 한번 맛을 볼까 싶어서 하나 주문한다. 타코야키와는 달리 접시에 간장과 파를 소스로 넣어준다.

 

속에는 히다규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타코야키와 달리 간이 거의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밑에 깔린 간장을 살짝살짝 찍어먹으면 나름 맛이 난다. 숙주나물도 들어가 있어서 식감도 나름 즐길 수 있고.

중요한 히다규는 예상대로, 이렇게 먹어봤자 맛을 음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타코야키 만큼은 아니라도 나름 이 지역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녀석으로 체험해 보기에 나쁜 편은 아니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것보다 맛있는 간식거리가 많으니 반드시 먹어봐야 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 하다.

 

 

 

축제 거리의 끝부분까지 돌아왔다. 역시나 여기도 좀 전까지는 볼수 없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어느 공연이나 아마추어의 향기는 지워지지 않아도, 그게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데 충분한 상승요건이 되는 곳.

 

라틴 전통무용 같은 춤을 보여주는 공연인 듯 한데, 네이티브도 있고 이곳 주민들도 섞여있는것 처럼 보인다.

아마도 어느 무용학원에서 나온 사람들 아닐런지.

 

 

 

밤이지만 날씨가 더워서인지 열정적이고 깔끔한 음악과 부채춤이 분위기에 녹아들어가는 듯 느껴진다.

뒤쪽에 서 있는 여성분이 직접 노래를 불러주는데, 굉장히 파워풀한 음량이 혼자서 댄서들 전부와 동등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무대 앞에는 신발 벗고 올라갈 수 있는 돗자리가 있었지만 의외로 앉아있는 사람은 적고 옆에서 서서 보는 사람이 더 많다.

나 혼자만 그런건 아니구나 싶어 약간 안도하는 기분. 왠지 무대 바로 앞의 자리는 부담스럽다. 돈 주고 보는 공연은 제외하고.

 

 

 

사실 앉아서 구경하면 카메라 화각이 너무 한정된다는 이유도 있다.

틸트 액정이 있어서 이럴 때 구도잡기는 편한 카메라라, 예전처럼 눈대중으로 촛점 맞추고 셔터 누를 필요가 없다.

사람이 여전히 꽤나 서 있어서 자리를 마구 옮겨다니기는 힘들어도, 나름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장점.

 

마지막에는 돌아가며 공연하던 팀이 한꺼번에 나와서 즐겁게 춤추기 시작한다.

함께 추실분은 올라와도 된다고 안내를 해 줬지만, 역시나 이 틈에 끼어들어서 춤을 출 만한 용사는 그리 많지 않은듯 하다.

좀 더 격식없고 막가는 춤이라면, 의외로 축제하면서 신이나 발광하는 일본인들이 꽤나 많은데

이런 식으로 동작이나 의상이 정해진 무대에 난입해 기분에 따라 몸을 흔들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적은 듯.

 

 

 

마지막 라틴댄스 공연이 끝나자 축제의 열기도 함께 진정되어간다.

길지 않은 시간과 길지 않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축제라, 사람들은 그다지 피곤한 기색 없이 즐겁게 원래의 길로 돌아간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2차를 위해 술집을 향해 걸어가기도 하고, 교복입은 학생들은 슬슬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마을 사람도 아니고 같이 여행온 사람도 없는 본인은, 그냥 아직 불이 켜진 공예점의 전시품이나 한장 찍고 숙소로 돌아간다.

예전 이즈모 여행때 들렀던 ANTWORKS GALLERY 정도로 흥미깊은 작품은 별로 찾을 수 없어서 살짝 아쉽다.

 

 

 

축제가 이뤄진 구간은 마을의 아주 짧은 한 구역만이었기 때문에

그 곳을 벗어나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하니, 이미 마을 전체는 어둠에 파묻힌 시골마을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도심지가 아니라면 일본의 상점들은 늦어봤자 9시 전에 문을 닫아버리니, 축제 구역 이외에서는 이미 하루가 끝나 있었던 셈.

 

쓸쓸하지 않은 적막함이 바람처럼 흐르는 관광마을의 밤거리를 걸으며

축제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오늘 오후 좀 더 많은 시간을 소유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술집 말고는 전부 문을 닫은 상가 거리지만 여전히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가로등이 밝게 켜져 있다.

축제의 인파가 진통제 역할을 한 것인지, 무뎌져 있던 피곤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 같아

밝은 가로수 아래서 음료수 하나 뽑아마시며 벤치에 앉아 카메라의 재생버튼을 눌러 본다.

 

호텔에 돌아가서도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지만, 왠지 호텔에 돌아가는 순간 남아있는 이 기분은 전소되어버릴것 같아서.

가정집 대문앞에 자연미 물씬 풍기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돌아가는 끝까지 흡족한 기분이 드는 것도 멋진 일이다.

과연 자연좋은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미술 작품 재료를 고르는 것도 대담하다.

 

더운 날 호텔로 돌아오면 또 하나 즐길거리가 있다.

에어콘을 켜고 나서 따뜻한 물로 목욕을 즐긴 후 수증기 가득한 욕조를 빠져나와 문을 열고 객실로 돌아가면

충분히 시원해진 방의 공기가 덥혀진 몸을 짜릿하게 만든다.

 

여기서 맥주 한캔 까서 마시면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광경이 되겠지만

본인은 술을 그리 즐기지 않으니 그냥 낮에 사놓은 콜라나 한잔 따라마시며 하루를 마감한다.

밤이 좀 늦었지만 일본까지 온 이상 TV 프로도 좀 챙겨보고 싶어서 잠깐잠깐 몸을 뒤척이며 남은 시간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