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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5.21  엄니와 함께 - 쿄토 금각사 / 은각사 16
  2. 2010.02.11  오사카(쿄토)여행기 9편 - 금각사 14

 

조식을 먹는데 중고등 학생으로 보이는 단체 손님이 주르륵 늘어서서 밥을 담는 중이더군요.

전부 체육복 입고 있는 걸로 봐서 뭔가 체전 같은데 출전하거나, 단순히 수학여행 온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비지니스 호텔은 거의 싱글 룸 아니면 많아봤자 두 사람 겨우 머물 수 있는 곳인데

학생들이 여기서 묵었다는 건 왠지 굉장해 보였습니다.

제가 수학여행 갔을 때는 그냥 넓직한 방구석에 한 반 전체를 몰아넣은 닭장같은 곳에서 자곤 했으니...

 

아침에 교토역 버스터미널에 가니 관광 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나이 지긋한 분들만 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젊은 커플이 몇몇 있더군요.

중국인 관광객도 조금 섞여 있었습니다. 오사카, 코베, 쿄토 등 당시엔 중국인 관광객이 안 보이는 곳이 없었죠.

 

버스가 천천히 출발하고 나면 가이드가 가는 도중까지 코스에서 보이는 이곳저곳을 설명해 줍니다.

외국인에게는 번역된 라디오 기기를 대여해 줍니다만 엄니는 그렇게 듣고 싶진 않고 그냥 저한테 설명해 달라고 하시네요.

쿄토는 그냥 버스타고 아무 길이나 달려도 설명할 꺼리가 넘쳐나는 그런 곳이라서 가이드 분의 설명이 그칠 시간이 없군요.

 

첫 번째로 간 곳은 키요미즈데라와 함께 쿄토에서 가장 유명한 금각사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서식할 때 근처에 있었던 서울숲 보다도 더 많이 가 본듯한 기분이 드는 금각사로군요.

원래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 입니다만, 저 금박이 워낙 유명해서 다들 금각사라고 부르죠.

참 볼때마다 어떻게 이런 녀석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합니다.

 

겨울이라서 전체적으로 색이 죽어있는 게 아쉬웠습니다. 봄, 여름, 가을엔 정말 별천지가 이런 곳이로구나 싶은데 말이죠.

원래 금각사 사진은 잔잔한 물에서 반영을 멋들어지게 잡는 게 최고라고 하는데

겨울이라 연못이 얼어있어서 반영은 무리였습니다.

 

엄니께서는 중국도 자주 가보셨기 때문에 화려함에서 감탄하실 만한 요소는 별로 없을 듯 하네요.

물론 일본의 사찰은 축소형 자연계라는 관점에서 매우 훌륭한 미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이쪽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즐거운 볼거리인 경우가 많고 말입니다.

 

 

저에게 금각사는 금박 건축물 자체보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쪽이 더욱 인상깊습니다.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인데

그 책을 파고들다 보면, 어째서 한 미친 승려가 금각사를 태워 버린 것인지 슬그머니 이해가 되는 기분이 듭니다.

 

실제로 금각사는 1950년 방화로 소실된 후 1955년 재건한 녀석이죠.

 

 

 

금각사는 사실 그렇게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닙니다.

봄이라면 한두 시간 정도 느긋하게 주변을 산책하는 재미가 있지만

추운 겨울인데다가 단체 투어 최대의 단점인 제한 시간이란 녀석이 있어서 사진 찍는데도 시간이 빠듯하네요.

 

사실 제가 단체 투어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제한 시간이죠.

전 한곳에서 시간 느긋히 두고 감상하는 걸 좋아해서, 여행 가면 여기저기 많은 곳을 가지 않는 편입니다.

오늘 버스 투어 볼거리도, 홀로 여행이라면 약 3일에 걸쳐 가 볼만한 곳들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엄니 체력도 생각해야 하니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야 하겠죠.

 

일본의 공원이나 정원에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인공 연못이 있고

그 연못 안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섬 같은 공간이 있습니다만

역시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 꼭 저런 녀석들이 유유자적 하고 있더군요.

 

 

 

저녀석은 카리스마 대빵큰오리라고 하는데, 겨울이라 추워서 그런지 한 발로 서 있습니다.

다리 부분은 털이 덮혀있지 않아서 체온을 뺏기기 쉽다고 하네요.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실제 이름은 왜가리입니다.

 

 

 

겨울이라 초목 색깔은 좀 우울합니다만 날씨는 좋아서 다행입니다.

실제로 이 정도 금을 본 적이 없어서 참 신기한 색깔이다 싶긴 하네요.

 

총 20kg 정도의 금을 사용해서 금박을 입혔습니다만

옛날엔 정말로 저 위에 올라가서 경치를 즐기고 했던 걸까요.

금을 발로 밟고 지나다닌다는 경험은 뭔가 새디스틱한 느낌이 듭니다.

 

 

 

산책로 자체가 금각사를 중심으로 빙 둘러나 있기 때문에 모든 시선이 금각사 쪽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죠.

은각사와 가장 차이가 나는 점이기도 한데, 정원으로서의 미적 완정도는 은각사 쪽이 월등한 편입니다.

 

이곳은 주변에 괜찮은 환경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금칠을 한 사찰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그것 외에는 집중하기가 힘든 편이네요.

 

 

 

일본의 사찰이나 정원에 혼자 올 때면 저는 보통 같은 길을 두 번 걷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갈아끼우고 첫 번째와 다른 시선으로 둘러보기 위한 경향도 있고.

한 번만으로 전부 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좀처럼 없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단체 투어는 시간이 촉박해서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습니다.

엄니는 사진을 안찍으시니 저를 추월해 거침없이 전진하시고

저는 안 굴리던 머리와 눈을 굴려가며 순간순간 들어오는 장면만 후다닥 담아내고 있네요.

 

금각사를 이렇게 헐레벌떡 둘러본 적은 처음이네요.

 

 

 

금각사 구경을 후다닥 마치고 은각사로 향합니다.

은각사는 쿄토 시내를 중심으로 반대편 산언저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버스가 천천히 지나가면서 가이드 아가씨가 여러가지 설명할 거리가 많죠.

 

재밌다 싶은 것만 골라서 엄니한테 설명해 드리며 은각사로 향합니다.

 

제가 한창 쿄토에 자주 가던 때, 공교롭게도 은각사가 보수기간에 들어간 터라

금각사를 6~7번쯤 갔다면 은각사는 2번 정도밖에 가지 못했었죠. 그래서 저 역시 오랜만에 기대됩니다.

 

 

 

면적 자체는 금각사가 훨씬 크고, 쿄토에서도 워낙 유명한 곳이라 주차장도 광활합니다.

반대로 그 덕분에 은각사는 관광객이 조밀조밀해 보이는 면도 있더군요.

 

 

 

은각사 누각에는 은박지가 없습니다. 단아한 느낌이 드는 소박한 누각 하나만 놓여 있죠.

 

눈이 좀 더 많이 내렸더라면 겨울에 볼 수 있는 최고의 풍경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엄니께서 이보다 더 추워지면 움직이기 힘들어 지실테니 이 정도로도 만족합니다.

 

 

 

은각사는 원래 지쇼지(慈照寺)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대칭되는 금각사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곳도 은각사라는 이름이 더욱 알려지게 되었네요.

 

휘황찬란한 금각사의 느낌과 비교하면 좀 수수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수수함과 더불어 정원의 미적 구성양식은 이 쪽이 훨씬 아름다운 느낌이 듭니다.

 

 

 

쿄토는 대구와 같은 분지 형태임에도 겨울에 날씨가 꽤 추운 편입니다.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정원이라 그런지 꽃도 살짝 움츠러 든 듯한 기분이군요.

 

 

 

금각사가 금으로 유명하다면 은각사는 이 모래 정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모래로 물과 산을 표현하는 이런 방식을 카레산스이(枯山水)라고 하는데

이곳의 완성도는 정말 굉장합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은 대체 어떻게 유지를 하는지 궁금할 정도로군요.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이 곳을 찾는 어른들이라면 카레산스이 쪽엔 발을 들이지 않도록 조심하겠죠.

뭔가 분위기를 망치면 큰일 날 것 같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모습입니다.

 

규모가 작은 사찰이지만 완벽하게 사람의 손길로 재현된 자연의 축소판이라는 느낌이 있어서

자연스러움과 엄숙함이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를 살리고 있습니다.

 

 

 

금각사야 땅도 넓고 금도 반짝반짝해서 관광객들의 셔터소리가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데

이곳은 가능하면 사람이 적은 상태에서 느긋하게 둘러보고 싶은 바램이 있습니다.

 

단체 버스로 오면 아무래도 그럴 기회가 적어져서 아쉽긴 하죠.

카레산스이 정원 멀리 보이는 볼록 솟은 녀석은 후지산은 형상화 한 것입니다.

때마침 눈이 살짝 쌓여있는 모습 덕분에 더욱 보기가 좋았네요.

 

 

 

눈이 내려도 비가 와도 말끔히 단장된 모래 정원의 모습을 보면

하루에 몇 번이나 이 녀석들을 관리하는 것인지 궁금해 지기도 합니다.

 

참 손이 많이 가는 손질일텐데, 적어도 제가 가 본 모래 정원 중에서 모습이 흐트러 진 녀석은 한 번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은각사의 전체적인 모습은 속세를 잊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데

 

쿄토라는 도시 전체가 관광객이 끊일 일이 없는 곳인데다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비경으로 유명한 곳이 이 은각사라서

좀처럼 홀로 유유히 산책을 즐길 만한 기회가 오지 않는군요.

 

더구나 봄이 되면 더욱 유려한 풍경으로 변모하는데, 그 때는 줄서서 이동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붐비니...

 

 

 

권력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 할까요.

금각사는 일본 역사상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 義満)가 만든 별장이었습니다.

 

이 은각사는 100년쯤 뒤에 그의 후손에 의해 세워졌는데, 자신의 고고조 할아버지 뻘 되는 일본 최고의 권력가가 세운 금각사를 생각하면

차마 그것보다 더 화려하게 지을 수는 없어서 '은'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실제로 은각사가 세워질 당시엔 예산 부족으로 은칠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는 말도 있고.

 

금각사나 은각사 둘 다 원래 사원이 아니라 쇼군의 별장으로 세워진 녀석이라

당대 건축양식의 정수를 그대로 담고 있으니, 이 별장을 혼자 소유하고 거닐던 당시 권력자들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와서야 소원 이뤄주는 연못에 동전이나 던지는 일반 시민들이 찾는 곳이지만

수직적 권력의 정점을 이루었던 당시 일본 지배층의 힘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겠지요.

 

만약 하늘 어딘가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거늬할배한테 적선하는 거지들을 보는 기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각설하고, 은각사는 정말 은칠을 했다면 금각사보다도 영 볼품없는 곳이 될 뻔 했습니다.

직접 가 보시면 알겠지만 은각사는 화려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잘 정돈된 초목근피와 인공미의 극치를 달리는 카레산스이, 누각 앞에 살짝 솟아있는 산책용 언덕까지

미니멀리즘의 정수라고 해도 될 만큼 일본 문화의 중요한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명소입니다.

 

 

 

언덕 쪽은 또 이끼가 자욱하게 덮여있어서 그 모습 또한 볼거리 중 하나죠.

 

엄니께서도 금각사는 그냥 금삐까 보는 재미로 보셨다면

이곳에서는 천천히 거닐며 이곳저곳 둘러보시고 있습니다. 이런 곳 참 좋아하시니 마음에 드셨으리라 생각.

 

 

 

은각사는 면적이 금각사의 절반도 되지 않지만 산책로는 이리저리 꼬아놓은 모습이기 때문에

실제로 산책에 소모되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거나, 좀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금각사에서는 금삐까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는 속도가 올라가는 경향이 있지만

이곳은 발걸음을 서두를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죠. 거의 모든 코스 코스가 아름다운 볼거리로 가득합니다.

 

 

 

시간이 살짝 촉박하지만 언덕 위를 둘러보지 않고 은각사를 떠난다는 건 너무나 아쉬운 일이기에

천천히 꾸준히 올라가시는 엄니를 뒤에서 찍어대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곳은 봄이나 가을에 오면 정말 별세계가 어떤 곳인가 느낄 수 있죠.

특히나, 입구가 아주 높은 나무들로 꽉 막혀 한번 꺾인채로 들어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들어오고 나면 현세와 분리된 듯한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은지 500년이 넘어가는 곳이라 정말로 나이들어 보이는 비석들도 군데군데 존재합니다.

일본식 정원은 보는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여기저기 들어가 보고 싶지만 참아야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네요.

 

 

 

쿄토가 지금 보면 그리 큰 도시가 아닌 듯 하지만 천 년 가까이 일본의 수도로 남아있다 보니

예전 기준으로 보면 정말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원래부터가 중국의 장안을 본따 만든 도시이기도 하고.

 

그래서 버스로 30분쯤 걸리는 금각사의 키타야마(北山) 와

은각사가 위치한 히가시야마(東山)는 생활 양식 자체가 전혀 다른 개별적인 공간이었습니다.

 

키타야마가 화려하고 귀족적인 문화의 중심지였다면

히가시야마는 세속을 벗어나 적막한 곳에서의 평안함을 추구하는 편이었죠.

금각사와 은각사는 그 대치점에서도 유독 두드러지는 대표적인 곳이니

이 두 곳은 꼭 페어로 묶어서 구경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눈사람에 코까지 만들어 놓는 센스가 재미있어서 찍어봤습니다.

이 당시엔 겨울왕국이 일본에 개봉하기 전이어서 당근이 사용되지 않았던 듯.

 

 

 

비단 일본식 정원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정원은 꼼꼼해야 합니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공간이다 보니 사소한 것도 단점으로 눈에 들어오기가 쉽거든요.

 

그런 면에서 일본은 정원 만드는데는 도가 튼 민족이라 할 수 있겠죠.

 

 

 

제가 은각사를 처음 봤던 때가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일본의 정원 정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거진 3시간 가까이 묵묵히 길을 거닐기만 하던 게 생각납니다.

 

외국까지 와서 입장료 내고 둘러본다면 기본적으로 신기하거나 웅장한 것들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 곳이 어떤 느낌을 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마음이 차분해지는 곳입니다.

 

 

 

쿄토엔 눈이 별로 오지 않아서 겨울엔 매력이 좀 떨어집니다만

눈으로 뒤덮힌 은각사는 정말 절경이라고 하더군요.

 

조금씩밖에 쌓여있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넓은 대지와 넓은 연못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찬란한 금각사와는 달리

이곳은 언덕을 올라가면 은각과 함께 쿄토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자랑합니다.

 

엄니는 금각사 은각사 둘 중 어느 것이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지만

전 그러지 않아도 보수공사 때문에 한참 보질 못했던 데다가

원래 은각사를 훨씬 더 좋아해서, 짧은 관람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뿐이었네요.

 

 

 

그래서 은각사에 비해 금각사 사진이 압도적으로 수가 적습니다만 그냥 찍사의 취향이라고 생각하시는게 좋을 듯.

 

돌다 보면 아무리 풍경이 좋아도 너무 좁은 듯한 느낌이 들어 가끔 답답하기도 했는데

조사해 보니 사실 원래 은각사는 훨씬 더 컸다고 합니다. 금각사처럼 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서 이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하네요.

 

이것도 물론 전쟁 때 폭격을 받지 않은 쿄토라는 도시의 축복 덕분이기도 합니다만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제가 쿄토 가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원의 완성도는 이런 소소한 곳에서 완성된다고 봅니다.

자연의 미를 인공적으로 구성하는 복잡미묘한 장소가 일본의 정원이기 때문에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금속 재료의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까지 자연의 형식을 유지하려 합니다.

 

여기에 금속으로 된 맨홀 뚜껑이 떡하니 들어서 있었다면 제 고취된 기분도 확 내려앉았겠죠.

 

 

 

교토 버스 투어는 당연히 모든 관광지의 입장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은 군것질거리 정도 밖에 없습니다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하룻만에 이런 곳들을 다 돌아다니려다 보니

실제로 한 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40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곳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야

20분만에 다 둘러보고 밖에 나와 담배까지 필 시간이 되겠지만

저로서는 내려가는 언덕길이 참 짧게 느껴지는군요.

 

 

 

처음에 연리지인가 싶어서 유심히 바라본 나무입니다.

뿌리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꼬인 녀석이로군요.

 

 

 

처음엔 왜 은이 없냐고 아쉬워 할 수도 있지만

산책을 한번 마치고 나서 다시 보는 은각은 '은박이 없길 잘했다'라는 느낌이 드리라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카레산스이 구조가 확립되기 이전의 일본 정원은

반드시 연못이 존재해야 했었기 때문에 건설 난이도도 상당히 높았는데

 

이곳은 그 당시 왕이나 다름없었던 쇼군의 별장이었기도 하고,

히가시야마라는 걸출한 산에 딱 붙어있는 위치라 물흐름을 당겨오기 어렵지 않았을 듯 합니다.

 

 

 

이번 여행은 엄니 가이드 형식으로 따라간 것이라 대부분 저한테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오랜만에 은각사를 와서 셔터를 누르다 보니 왠지 엄니와 제가 그냥 따로 구경한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살짝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만, 은각사 40분 만큼은 제 나름대로 즐겨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별관(?)에서 오랜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취한 후 아침 일찍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쿄토 당일치기 여행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빠릿빠릿하게 돌아다녀야 하는군요.
사실은 오사카 오고나서부터 빠릿빠릿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

쿄토와 오사카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당일치기가 어려운 편은 아니지만
사실 쿄토는 느긋하게 둘러볼려면 1주일은 잡아야 할 정도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오사카 관광이 주 목적이었던 이번 여행에서는 그냥 맛배기만 살짝 보여주는걸로 만족할 수 밖에 없네요.

숙소인 에비스쵸(恵美須町)역에서 아와지(淡路)역까지 간 다음 한큐쿄토선(阪急京都線)을 타고
쿄토 카와라마치(河原町)역까지 가는데 대략 45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아침시간이라 사람이 많네요.
아와지역에서 카와라마치역까지 가는 전철은 급행, 쾌속, 준급행 등등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에
잘 알아보고 타야 합니다. 모든 역에 다 정차하는 전철을 잘못 탔다간 1시간 이상 소요될 수도 있습니다.

열차가 올때마다 방송으로 '카와라마치역까지 가려면 다음 열차를 타는게 더 빨리 도착합니다' 라고 말해주는데
관광객들에게 그게 쉽게 들릴지는 의문이니까, 전광판을 잘 확인해가며 타는게 좋겠죠.


열차의 종작역인 카와라마치역은 JR 쿄토역에서 꽤나 가깝기도 하고, 쿄토 시내의 중심가중 한 곳이라서 이동하기도 편합니다.
쿄토 버스 1일 승차권을 구입한 후 바로 금각사행 버스를 탑니다.
1일 승차권이 있으면 하룻동안 쿄토 시영버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민영버스는 무료이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을... (이번에 한번 당했습니다. ㅡㅡ;)
왠만한 관광지는 시영버스로 충분히 쉽게 이동이 가능하기도 하고,
쿄토는 오사카에 비해 전철이 구석구석 뻗어있지 않기 때문에 버스가 최적의 이동 수단입니다.

아침부터 버스 안엔 한국인 관광객이 수두룩하네요. 방학이라서 그런가.
근데 이 친구들은 분명 금각사를 가는 길일텐데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려버렸습니다. 뭔가 착각한 듯.


2년만에 보는 쿄토의 풍경이 참 반갑더군요.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제대로 된 관광이나 해보자 싶어서 무작정 내려온 쿄토였는데
그땐 자전거 여행의 피로가 쌓인 터라 뭔가 몽롱한 정신으로 여기저기를 쏘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금각사(金閣寺)는 쿄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중에 한곳인데요.
사실 친구와 동생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면 굳이 제가 이곳을 찾아가진 않았을 겁니다.
평생 한 번만 와 봐도 충분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곳의 실제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인데, 금박을 입힌 정자가 워낙 유명해서 언제부턴가 금각사란 이름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쿄토 외각에 위치한 한적하고 조용한 사찰이라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쿄토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은터라 자칫하면 엄청난 인파에 쓸려다닐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이번 여행땐 관광객이 아주 적어서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었네요.
지난번 혼자 갔을 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아주 바글바글거려서 사진 한 장 제대로 찍기가 힘들었는데.


쿄토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는 금각사의 모습입니다.
조용한 연못과 철저하게 인공적으로 조경된 소나무들, 그리고 화려한 금빛 정자는
마치 별세계를 뚝 떼어다 놓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 아름다움 만큼이나 이 금각사에는 비극적인 역사가 살아숨쉬고 있는데요.
원래 금각사는 1397년 쇼군의 별장으로 만들어졌지만 1950년에 한 수도승의 방화로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건물은 1955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정말 세심하게 복원이 잘 되어있지만
역시 원 건축물과는 그 느낌상 아쉬운 부분이 많죠.


방화를 일으킨 수도승은 심한 정신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 사건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소설이 전후 일본문학의 최고봉으로 뽑히는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금각사(金閣寺)입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스승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미시마 유키오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다면 일본의 어느 작가가 그 자격이 있겠나'라고 그의 문학성을 극찬하기도 한 만큼
그의 탐미주의에 대한 깊은 고찰과 광기가 묻어나는 최고 대표작 금각사는 전후 일본문학의 정점을 찍은 최고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전후 일본문학을 공부하면서 금각사를 읽지 않으면 공부 헛한거나 마찬가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할 만큼
소설 금각사는 저기 보이는 실제 금빛 정자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훨씬 더 공포스러운 작품이니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말년엔 극우주의자로 여러 기행을 벌이다가 할복 자살을 선택한 미시마 유키오라 한국에서는 그냥 또라이 취급을 받기도 하는데
그런 광기어린 집착과 고집, 오만이 없이는 금각사와 같은 소설이 탄생할 수 없었기에 더더욱 연민의 정을 느끼는 작가입니다.
금각사를 불태우던 자신의 작품 속 승려와 결국 비슷한 최후를 맞이한 작가의 모습은,
어찌보면 그렇기 때문에 당대를 대표하는 문학가의 칭호를 받기에 손색이 없는 게 아닌가 싶네요.

일본을 대표하는 다른 탐미주의 작가인 타니자키 쥰이치로(谷崎潤一郞)의 페티시즘에 가까운 집착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른,
미에 대한 두려울 정도로 순수한 집착은 마치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 1902)이나
영화로 치자면 베르너 헤이조그의 아귀레, 신의 분노(Aguirre: The Wrath Of God, 1972)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입장권 명목으로 받은 부적(?)을 갖고 즐거운 기념사진을 찍는 일행들.
소설의 광기는 어디가고 훈훈한 모습이 연출됩니다.


금각사의 아름다움이야 뭐, 말로하면 쓸데없이 칼로리 소비하는 것 밖에 안되지만.
실제 문화 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쿄토 반대쪽에 있는 은각사(銀閣寺)가 훨씬 중요합니다.

은각사는 원래 치쇼지(慈照寺)라는 이름의 사찰로, 금각사를 세운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의 손자인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할아버지의 업적을 모방해서 만들었습니다. 요시마사는 절의 바깥을 은으로 감싸서 금각사와 대칭을 이루려고 했지만
그 후, 후계자 문제로 각 지방의 다이묘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혼란의 시대가 계속되는 바람에
결국 은각사는 은으로 덮히지 못하고 미완성된 채로 남아있게 됩니다.

이 은각사의 토쿠도(東求堂) 사당은 1485년 건립되어 지금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일본의 국보입니다.
진짜 은으로 덮혀버렸다면 오히려 빛이 바랬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할 만큼
금각사와 달리 아담하고 정갈한 조그만 정원과 연못이 어우러진 토쿠도 사당의 모습은
그야말로 일본 사찰문화의 정수라고 할 만큼 화려하지 않은 미의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2008년부터 토쿠도 사당은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간 터라
지금은 돈 내고 들어가도 제대로 된 감상이 힘들기 때문에 일부러 은각사는 코스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아쉬운대로 감상할 수는 있겠지만 기왕 감상하려면 최상의 상태에서 감상하는게 좋겠죠.
평생 쿄토에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것도 아니고, 아쉬워할것 없이 이번엔 금각사만 감상하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실제 승려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금각사는 비록 1955년에 재건되었다고는 해도
일본이 세계에 자랑할만한 유산 중 하나였기 때문에
정말 심혈에 심혈을 기울여 소실 전과 거의 100% 동일한 모습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당시엔 일본도 경제사정이 워낙 좋아서 거의 물쓰듯이 이런 문화제 수복에 돈을 퍼부을 수 있었죠.

따라서 현재 보는 금각사의 모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덕분에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네요..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곳입니다.
원래 별장으로 쓸 목적으로 이곳을 만들었던 아시카가 요시미츠 사후 사찰에 귀속되었지만
저런 곳을 만들어 노년을 보내려 했던 당시 일본 쇼군의 권력이란 참 놀라울 따름이네요.


저기엔 무엇이 적혀있었을까요.


금각사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이제 천천히 산책로를 따라 주변 풍경을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이곳은 금삐까가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실제로 산책로도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사람도 적어서 유유히 사진 찍고 놀면서 구경 잘했네요. 1년중 350일 정도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인데
용케도 이런 날에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성년의 날 덕분에 힘들었던 관광 일정을 이런데서 보상받는 듯.


사진 좀 찍어보라고 친구한테 맡겼던 디카는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동생분이 직접 갖고온 똑딱이로 열심히 찍었죠.

차라리 동생분한테 디카를 맡기는게 좋았을지도.


바람도 심하지 않고 날씨도 적당하고
어제 시텐노지에서 비 쫄딱 맞아가며 강행군 했던 기억이 승화되어 갑니다.


중요 문화재까지는 아니지만 예전 일본의 휴게소(?)같은 분위기의 별장입니다.
서양 관광객들이 와서 신기하다는 듯 이리저리 구경하고 사진찍고 하더군요.


안으로 들어가진 못하지만 이런 데서 포즈 잘 잡아주는 동생분의 사진도 좀 남겨줘야죠.


이런 곳에도 세전함이... ㅡㅡ;
한국 사찰도 뭐, 돈은 미친듯이 좋아하니 남 욕할 필요는 없지만.


금각사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아서 15~20분 정도면 무리없이 한 바퀴 돌 수 있습니다.
산책로가 끝나가면 이제 다양한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앉아서 차 한잔 할 수 있는 휴게소가 눈에 들어오는군요.
느긋하게 저기 앉아서 주변 경관을 만끽할 수도 있지만 오늘은 역시 좀 바쁘기도 하고...
15년 가까이 알고 지낸 친구지만 여기서 일본 역사와 미의식에 대해 담소를 나눌 만큼 내공이 출중하진 않은 고로
그냥 사진만 찍고 나왔습니다.


동생분은 기념품점에서 선물 몇개 챙겼습니다.
금각사를 빠져나와서 점심을 먹기위해 다시 카와라마치역으로 향합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한 컷. 뷰파인더에 구애되지 마라고 소리쳤던 아줌씨가 누군진 모르겠는데
다양한 구도와 재미있어 보이는 화각을 이용하는 막간의 장난도 카메라의 즐거움이죠.

근데 필름카메라라서 돈이... 돈이... ㅡㅡ;

버스가 한동안 오지 않아서 정류소 옆의 자판기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뽑아먹었는데
제거 한입 먹어보고는 친구도 다른 종류로 하나 뽑아먹었습니다.


지난번 자전거 여행때도 한번 신세를 졌었던 회전초밥집 무사시노(武藏野)입니다.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은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는,
한마디로 가격대 성능비가 뛰어난 초밥집이라 헝그리 여행자들이 마음먹고 한 번쯤 가기에 좋은 곳이죠.

한국의 회전초밥집과 비교하면 미안할 정도로 괜찮은 가격에 괜찮은 품질입니다.


시작은 언제나처럼 계란말이로.
계란말이의 폭신함과 탄력, 달달한 맛의 조화로 초밥집의 실력을 가늠한다는 말이 있듯이
요리사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초밥이 이 계란말이니까요.

가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


연어알도 튼실, 오이도 사각거리는게 적당히 풍미를 더하는군요.
한국 회전초밥집으로 따지자면 접시당 3천원~4천원 정도의 퀄리티입니다.
이곳은 접시 색깔별로 가격 차이가 있는게 아니라 모든 품목 균일가이고... 한국 돈으로 1800원 정도였던가?


아~ 강군이 이 사진을 보면 얼마나 괴로워할까. T_T
알면서도 여행기라는 명목으로 고문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나는 죄많은 인간이군요.


이곳에 돌아다니는 초밥은 거의 종류별로 다 먹어봤습니다.
생선이 힘겨운 친구는 문어초밥이나 새우초밥이나, 그냥 초심자용으로 알맞은거 주워먹고 있군요.
이번만큼은 지갑 신경쓰지 말고 뜻한 바를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먹고 먹고 또 먹었습니다.


그래도 조금 절제하긴 해서 요 정도로 끝을 봤네요.

그닥 많이 먹은것 같지도 않군요. 역시 무의식적으로 지갑 잔고에 대한 걱정이 앞선 탓도 있고.
하지만 아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참은 건 아니니까 만족합니다. 한국서도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 초밥을 먹을 수 있다면
아마 일주일에 세 번정도는 찾아가서 꼬박꼬박 먹어줄텐데 말이죠.

배도 채웠겠다 이제 쿄토에 와서 구경하지 않으면 안되는 대표 볼거리 키요미즈데라(清水寺)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