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토요타 박물관의 순회도 드디어 끝이 난다.
사실 시간이 별로 많이 걸린건 아니다. 넉넉잡아 세 시간 정도.
느긋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느긋하게 구경하고 휴식까지 취한 뒤 나고야로 돌아가도
볼거리 한두 군데는 더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듯 하다. 본인은 예정된 일도 없어서 그냥 쉬러 돌아가지만.
시간에 비해서 많이 지치는 느낌은 든다. 꽤나 열심히 설명까지 읽어가며 보는 것만으로도 체력소모가 꽤 되는데
찍은 사진만 200장이 넘으니 이게 또 쉽게 볼게 아니다. 미러리스였다면 좀 덜 피곤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신관을 나오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제임스 릿지라는 사람의 '트래픽'이라는 작품.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일부러 살짝 각도를 틀어서 담아본다.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 제목에 더 어울리는 듯한 복잡함이 매력적.
예술가에겐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밑에 가격이라도 적어놓으면 좀 더 맛을 음미해 보려고 노력할 계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식사까지는 할 생각이 없고, 일기를 좀 적으며 목이나 축이고 싶어서
아담한 까페에 들어간다. 까페 중앙엔 기념품 가게가 듬직하게 위치해 있어서
휴식을 위해 들어갔다가 아이들에게 이끌려 지갑을 열게 되는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의외로 아이가 없는 어른들까지 진지하게 둘러보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음료수나 한잔 마실까 했는데, 핫도그 세트가 100엔 정도 저렴하다고 선전중이라 그걸로 간다.
음료수값이 한국보다 비싸니 오히려 이런 세트메뉴를 먹으면 좀 손해를 덜 본다는 느낌일까.
창가 자리에 앉아서 느긋하게 밖을 바라보는데, 1920년대 자동차쯤 되어 보이는 녀석이 앞의 서킷에서 꾸준히 주행중이다.
정비를 마치고 시운전이라도 하는 것일까. 자동차란 녀석도 참치와 마찬가지로 달리지 않으면 죽어버릴 듯.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 일도 즐겁게 해낼 수 있을듯 하다.
팜플렛을 얼핏 보니, 좀 레어한 자동차가 시운전 할때는 미리 선전도 하고 해서 관람객이 많이 모이는 모양.
핫도그는 미국식이 아니라 아주 아담한 녀석이었는데,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는 탱글탱글한게 씹어먹는 맛이 있었다.
사실 여기서는 사진 찍을 생각이 없었지만 지친 몸을 추스리면서 일기 쓰고 찍었던 사진을 점검하다보니
문득 한장 찍고 싶어지는 바람에 핫도그의 자태를 담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정말 풍족한 여행이 아닌 이상, 남들처럼 맛집 찾아가서 증거사진 착착 남기는 멋들어진 행동은 못하고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동네 분식집에서 수백만원짜리 카메라 펼쳐놓고 심각하게 셔터 누르는 짓만 하고 있다.
여행의 먹거리라는게 꽤나 추억거리가 되기 때문에 납득은 하지만, 찍고 있으면 묘하게 초라해 보인다.
예정대로라면 예산이 꽤나 널널하기 때문에, 일부러 남겨오려 하지 않는 이상
한 번쯤은 돈 좀 들여서 제대로 식사를 즐길 기회가 있다. 그 때는 정말 인정사정없이 찍어줘야겠다고 생각중이다.
밖에 나오니 그래도 박물관 안은 시원한 편이었다고 향수에 젖을만큼 무덥다.
습도는 아직 조금 낮은 편이지만 36도에 달하는 낮시간 온도는, 어디서 솟아나는지 모를 정도로 땀을 송글송글 맺게 만든다.
2시쯤 되니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들어오는 편인데, 이곳 주차장이 워낙 넓어서 전체적으로 한산한 분위기다.
대도시에서 자동차로 30~40분 거리에 이런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는 건
나같은 여행자들에게만이 아니라 나고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소소한 축복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이 그리 싫어할만한 곳도 아니고, 그렇게 성장하다보면 첫 자동차를 토요타 제품으로 선택할 가능성도 높아질테니.
'돈만 있으면 어디 횬다이 따위를'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을 한국인 입장에서 본다면
자국 자동차 메이커의 근시안적인 발상은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잘 가꾸어진 조경을 한번 둘러보고 돌아가려다 오랜만에 깔끔한 녀석을 한 마리 만난다.
손가락으로 시야 앞에서 깔짝깔짝 거리면 양손으로 공격도 걸어온다. 물론 꽉 잡히면 조금 따끔하지만.
황색 사마귀보다는 이런 녹색 사마귀가 귀여워 보이는건 역시 색채의 이미지가 가지는 힘일까.
자전거 여행 도중 워낙 많이 짜부를 만들어버린 녀석이라서 미안한 마음도 없잖아 있다.
산길 언덕을 내려갈 때면 나나 저녀석이나 도저히 피할수가 없으니 그냥 밀어버리는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사마귀는 체형 자체가 뒤로 물러날 수 없게 되어 있어서, 빠른 물체를 피하는 능력이 전무하다.
그 덕분에 가진 공격성으로 포식자 위치를 점하고는 있지만, 사람에게도 덤벼드는 무모함은 사실 겁이 없어서라기 보다 도망갈수가 없어서이다.
주차장에는 전기 자동차를 위한 무료 충전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과연 자동차 박물관이다 보니 자동차에 대한 배려 역시 사람에 대한 그것 못지 않다.
외부 디자인은 그냥 조금 수수한 정도이지만 주위에 높은 건물이 없이 녹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푸른 하늘 아래서는 단정한 인상을 주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더워서 그런지 거의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자동차를 끌고 온 듯 하다.
들어올 때나 나갈때나 이렇게 걸어서 역 사이를 이동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따가울 정도의 햇살이 힘들긴 하지만, 덕분에 사진 담는것도 수월하니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나고야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 주위도 한적하고.
관광객 상대가 아닌 본토 사람들 상대하는 가게가 드문드문 보이는 것도 나에게는 즐거운 요깃거리다.
시 외곽에는 커다란 창고형 북오프나 잡화점, 파칭코 가게 같은게 들어서 있어서
의외로 정해진 코스만 이동하게 되는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재미있는 볼거리가 많다.
자전거 여행하면서 실컷 즐겼으니 그건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리니모에는 벌써부터 학생들이 많이 타고있어 소심한 나는 사진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
시간에 여유가 있는 관광객이라면 이 리니모를 타고 주변을 구경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하다.
가이드 역할을 할 일은 없겠지만, 이 블로그에 들어와서 이 정도 정보는 얻어가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고야역에 돌아오니 4시쯤 되는데, 호텔까지의 무료 셔틀버스는 오후 5시부터 운행한다.
1시간 일찍 들어가서 쉬어봤자 시간만 아까울 뿐이니 역 주변을 술렁술렁 돌아다녀본다.
여행중 가장 먹기 힘든것이 야채나 과일이다보니, 편의점 들어가서 야채주스 하나 마시기도 한다.
다행히도 역 근처에 부탁받은 물건을 살 만한 가게가 있어서 잠깐 들어가 구입해 온다.
사람이 너무 바글바글해서 오래 있고싶진 않았지만, 한국에 좀처럼 나오지 않는 코믹스가 있어서 그것도 서둘러 몇권 사고 나온다.
학생이 많이 몰려드는 시간대라서 그런 듯. 한번쯤은 더 갈 기회가 있으니 다음엔 오전에 일찍 나와서 조용하고 느긋하게 쇼핑을 즐기고 싶다.
일단 나고야에서의 초반 일정은 이걸로 끝이고, 내일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오늘밤엔 식초에 절인 문어라도 좀 뜯으면서 한 잔 마셔보려고 생각중인데
그래도 이거 한그릇 더 먹는다고 내 배가 포만감을 느낄 일은 없으니, 휴식을 겸해서 요시노야에 들어간다.
딱히 엄청 맛있다고 생각이 드는 녀석은 아니지만, 어째선지 일본에 오면 반드시 규동집에 들어가게 된다.
내 입장에서는 한 끼 식사라기보다, 휴식을 취하며 허기를 달래는 간식이라는 느낌이라서 그럴까.
한국서 규동 한번 먹어보고는 그 생각이 좀 더 강해졌다. 한국에서 규동 먹는건 돈이 아까운 행위다.
이미 40년 가까이 맛이 거의 변하지 않는 우직한 요시노야 규동은, 어딜 가도 꽝을 뽑을 일이 없어서 안심이니까.
나고야 역 안내센터에 가서 내일 목표인 히다 타카야마(飛騨高山)에 가는 방법을 물어본다.
처음엔 JR 전철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던데, 내가 좀 더 싼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자 버스 시간표를 알려준다.
20분쯤 더 소요되지만 무려 1500엔 정도나 저렴하다.
나고야로 돌아오는 하루 루트가 아니라 거기서 숙박할 예정이라, 20 분의 시간차 정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히다 타카야마가 굉장히 유명한 관광지이긴 하지만 나한테는 그곳 역시 그냥 전초기지 역할이라서.
호텔에 도착하니 6시가 넘어있다. 나고야 여행중에 하루 꼬박을 토요타 박물관 하나 돌아보는데 소비했다고 하면
아마 아까워 할 사람이 적지 않을거라 생각하는데, 홀로 여행의 즐거움이란 이런 느긋함에서 오는 것이다.
셔틀버스를 타기 전에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안주, 술을 좀 사왔다.
오늘은 세탁기를 돌려야 하기 때문에 아주 편하게 쉬기는 힘들지만, 이건 꼭 해야 하는 일이라서 어쩔수가 없다.
보통 호텔에 들어가면 옷이고 뭐고 다 벗어버리고 속옷 한장으로 뒹굴거리기 때문에.
1층에 위치한 코인 세탁기를 사용하려면 옷 입고 세탁 돌리고, 1시간 뒤에 내려와 건조기에 집어넣고, 또 한시간 뒤에 걷으러 가야 한다.
한마디로, 약 2시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방 안에서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 이거 나한테는 꽤나 불편한 일이다.
쥐꼬리만한 세제도 30엔씩 받아챙기기 때문에, 반드시 한국에서 세재를 비닐봉지에 담아온다.
매번 담으면서도 참 이 돈 아껴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의외로 여행이란, 수천 엔씩 들여서 맛있는거 먹고 수천 엔씩 버스비 내고 이동하는 것보다 빨래하는데 30엔 쓰는게 더욱 아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조리도구와 쌀과 반찬을 들여와 여기서 만들어 먹을수는 없지만 세탁세제는 충분히 갖고 올 수 있으니까.
그리 길지 않은 토요타 박물관 관람이었지만, 찍어온 사진을 보니 오늘은 만족감으로 충만하다. 이 정도면 하루 잘 보냈다는 기분이 든다.
도시락을 먹고 한 시간쯤 지나서 빨래 돌려놓고 냉장고에서 식혀놓은 캔을 꺼낸다.
나고야를 떠나는 날이라 기분이나 좀 낼까 싶어서 한잔 마셔볼 생각이었는데
아침에 TV에서 선전하던 녀석이 기억에 남아있어 일부러 이 녀석을 찾아 구해왔다.
한국에서는 분류되기 어려운 츄-하이(チューハイ)라는 주류인데, 증류주에 소다와 함께 각종 과일향을 첨가한 술이다.
발포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소주와 같은 증류주 계열이라도 거의 맥주 마시는 느낌으로 알싸하고 시원하게 즐길 수 있다.
일본에서는 물론 여성들이 좋아하는 술인데, 이게 마셔보니 한국의 왠만한 맥주보다는 낫다.
정통 맥주도 나쁘진 않지만, 이번에 기린에서 자사의 '빙결'주에 가장 원하는 과일 앙케이트를 했을 때
1위를 먹은 녀석이 이 복숭아맛이라고 아침 TV 에 광고가 나와서 구매해 봤다.
당연하게도 기간한정 제품이라 지금 한번 먹어보자 했지만
사실 기간한정이라고 이름붙이고 이제까지 셀 수도 없을만큼 다양한 과일종류가 나왔었기 때문에 반쯤은 그냥 상술.
증류주의 깔끔함과 탄산의 시원함, 달달한 복숭아맛이 아주 훌륭하다.
빙결이라는 이름의 이 술은 일본에서 매우 대중적으로
캔을 뜯으면 기압차로 인해 표면의 프리즘처럼 생긴 무늬부분이 자동적으로 구겨지기 때문에
마치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을 주게 만드는데, 이 아이디어가 대박을 터트렸다. 지금도 기린 빙결의 심볼과도 같은 녀석.
원래는 레몬이나 오렌지 빙결을 마시곤 했지만, 신경 좀 써서 만들었는지 확실히 맛과 향이 잘 조합되어 있다.
술이 그리 강하진 않아도 즐겁게 시큼한 문어다리를 뜯으며 술과 함께 TV 버라이어티를 시청한다.
여행와서 이렇게 초저녁부터 느긋하게 방에 틀어박혀 술과 TV를 즐긴다는건, 조금 사치러운 행동일런지.
내일도 버스가 10시 30분에나 출발하기 때문에 서둘러 잠자리에 들 필요도 없다.
세탁 때문에 계속 1층으로 왔다갔다 해야 한다는 귀찮음만 제외하면 후회없는 느긋한 하루였다고 자찬하며 한 모금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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