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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몬'에 해당하는 글들

  1. 2012.06.03  킨키 방황 - 코야산 다이몬 16

 

 

버스를 타고 코야산의 끝쪽인 다이몬(大門)으로 향한다.

시골인데도 비싼건지 시골이라서 비싼건지 관광지라서 비싼건지

아무튼 2km 남짓한 거리를 달리는데도 차등요금이 적용될 정도로 비싸다. 한국 돈으로 약 3천원.

 

오쿠노인의 출구에 해당하는 이치노하시(一の橋)앞에서 버스를 타고 다이몬으로 가는 관광객은 별로 없을거라 생각.

거리가 거리다보니 굳이 버스를 탈 이유가 없다. 칸사이 스루패스 덕에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고 해도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면서 주위 풍경을 둘러보는게 훨씬 이득이기 때문에.

 

그래도 나이 지긋하게 드신 분들이 버스를 타긴 하는데, 대부분 다이몬보다 두 정거장 앞인 단상가람(壇上伽藍)에 내리는 모습이다.

일단 진언종이 시작된 핵심지라서 오쿠노인과 함께 코야산 필수코스로 통하다 보니 그런 것일까.

다이몬은 주위에 아무것도 없이 정말로 대문역할을 할 뿐이라서, 결국 종점인 다이몬에 내린 건 나를 포함 딱 두 사람 뿐.

 

찢어질듯한 다리를 끌고 다이몬 앞의 자그마한 벤치에 앉아서 한숨을 돌린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사실 이곳이 코야산의 입구 역할을 한다.

해발 1000m 의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험난한 산길을 통과해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것이 이 다이몬.

수백년 전 사람들은 고행 끝에 다다른 이 거대한 대문앞에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런지.

 

높이가 25m에 달하는, 일본에서 가장 큰 목조 대문이라서 35mm 렌즈로는 전체를 담기가 힘들 정도.

다이몬 뒤는 바로 절벽이기 때문에 뒤로 물러날수도 없다. 광각렌즈를 가져왔다면 다 담았을 테지만, 이번엔 35mm 렌즈니까 힘들다.

사진 찍고 있는 관광객과 크기 비교를 할 수 있어서, 대충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가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단은 앉아서 쉬며 여기저기를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는 할아버지와 다이몬을 셋트로 구경한다.

 

 

 

소실된 것을 1705년에 재건해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 다이몬은

건축 양식으로 볼때, 불교 문화가 어디를 통해 전파되었는지 쉽게 입증해주는 산 증인이라고 볼 수 있다.

처마 밑쪽은 일본식 양식이 남아있지만 여러 부분에서 현재의 일본 건축양식과는 다른 면을 보인다.

 

도로를 지나 절벽 바로 앞의 덤불에까지 들어가서 겨우 전신사진을 한 장 남길 수 있었다.

크기만으로는 정말 일본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녀석이다.

 

여기서 500m 쯤 내려가면 딱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불상이 있긴 한데, 도저히 거기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당장 200m 떨어진 목적지 단상가람까지도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상상이 되지 않고 있으니.

카메라 장비가 더더욱 아픈 몸을 귀찭게 하지만, 그래도 이 녀석 덕분에 이렇게 즐길수나 있으니까 어쩔수 없다.

 

 

 

분위기 중시의 관광객이라면 이곳 다이몬에서부터 시작하는게 인상적인긴 한데

그렇게 되면 오쿠노인이 마지막 관광 코스가 되기 때문에, 그곳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최소한 아침 8시쯤에 도착해서 관광 시작해야 그나마 적절한 시간대에 구경이 가능하니, 부지런한 사람은 도전해 볼 만하다.

 

이 부근엔 다이몬을 필두로 진언종의 본당인 콘고부지(金剛峰寺)와 단상가람, 국보와 보물을 모아서 전시하는 영보관 등등

코야산의 주요 관광지가 대부분 모여있는 곳이라서, 제대로 둘러보려면 최소 6시간 이상은 걸리기 때문에

오쿠노인까지 전부 돌아보려면 사실 하루 일정은 너무나 빡빡하다.

 

거기다가 아픈 다리까지 겹쳤으니, 일단 입장료가 필요한 영보관과 좀 멀리 떨어져 있는 콘고부지는 넘겨버리고

이곳과 단상가람만 구경하기로 결정.

 

한번만 오고 끝낼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관광 내내 들었기 때문에, 이만큼만 보고 돌아가도 크게 아쉽진 않다.

 

 

 

당연하게도 문의 양쪽엔 금강역사상이 세워져 있다. 어느 곳의 역사상이든 자세는 비슷비슷.

예전에 친구 일행과 오사카 갔을 때,

시텐노지(四天王寺)의 역사상 앞에서 친구와 친구 동생분을 저 포즈를 시켜 사진찍던 기억이 나는군.

이 블로그의 오사카 항목에 들어가 보면 그 때의 사진이 아직 남아있다. 포즈 취해주는 일행이 있으면 여행이 좀 더 재미있다.

 

 

 

덩치도 거대하고 보존상태도 좋지만

일본서 본 금강역사상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나라(奈良) 호류지(法隆寺)의 역사상.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 사찰인 탓에, 그 시간의 흔적이 만들어내는 형언하기 어려운 매력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여행과는 관계없지만, 예전에 찍어온 호류지의 금강역사상을 비교삼아 올려본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금강역사상.

 

사실 2008년 자전거 여행은 어느 곳에도 포스팅 한적이 없기 때문에, 이 사진들을 올리는 건 이번이 처음.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워낙 사진찍는 실력이 형편없던 시기라서 별로 올리고 싶지도 않다.

 

 

 

다시 현재로 되돌아와서, 다이몬을 지나 조심스럽게 단상가람으로 이동한다.

지뢰밭을 통과하는 느낌으로 한 발짝씩 정성을 다해 움직이는 모습이 실로 애처롭기 그지없다.

발목이 워낙 부어있다 보니 이제는 신발에 압박을 받아서 앉아있어도 아프긴 마찬가지.

그렇다고 한번 신발을 벗으면 다시 신기도 어려우니 그냥 정신줄 살짝 놓은 채로 구경 마치고 오사카로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다이몬을 통과하면 바로 주택가가 나오는 이 광경이 여러가지를 생각케 한다.

문화유산에 둘러쌓인 생활이라는 게 이곳에서는 허언이 아니다.

 

꽤나 현대적인 건물임에도 코야산이 가지는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조화로움을 자랑한다.

관광을 위해서 무리하게 도로를 확장하지도 않아, 인도라는게 거의 없다시피 하다.

물론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리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이 천천히 사람들을 피해 달리니까 걱정할 건 없고.

이 곳의 제한속도는 40km 인데, 사실 40km 까지 달리는 자동차도 본 적이 없다.

 

걸어가다보면 조그만 식당도 몇개 보이고, 대부분 이 근방 재료를 사용해서 깔끔함이 자랑인 듯 먹음직스럽긴 한데

지금 도저히 뭘 먹을 기분이 아니다. 맛도 느낄 여유가 없는데 괜히 비싼 관광지 식사를 즐길 수는 없지.

 

그때 다리 상태를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주위 사람이 '여행에 미친 놈'이라고 욕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걷는다는 것 자체가 무모할 만큼 굉장한 통증이었는데, 스스로도 참 사람이 아프면 제정신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긴 한다.

 

 

 

100m쯤 걷다보니 건너편에 뭔가 대단해 보이는 건물이 보이는데, 가이드북에도 그닥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다.

사실 이런 사찰들은 코야산에 워낙 많아서, 이런것까지 하나하나 돌아보고 간다면 최소 3~4일 이상은 기간을 잡아야 할 듯.

입구쪽 풍경이 인상적이라서 셔터를 누른다. 그래도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때만큼은 그나마 통증을 순간적으로 잊을 수 있어서 좋다.

 

 

 

유명한 명소도 아니지만, 코야산 내부는 중간중간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풍경이 여기저기서 속출한다.

몸이 가뿐했다면 계단을 올라가서 저기 끝까지 한바퀴 돌아봤을 텐데.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길거리 풍경 하나하나도 허투로 해 놓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애초에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니, 어색하게 꾸미지만 않는다면 곳곳이 훌륭한 감상 포인트가 된다.

발목의 통증을 꾸준히 중화시켜주는 진통제 역할을 해 준다고 할까.

 

 

 

비록 인도가 없다시피해서 자동차에 조금 신경이 쓰이지만

화창한 날에 이런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

 

국보급 보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보관 같은 곳에서 지출이 있을수도 있지만

이렇게 마을 전체가 훌륭한 공원만큼이나 분위기 좋은 곳을, 돈 쓸 걱정없이 돌아다닌다는 건 멋진 일이다.

그렇게 아파도 찍을건 대충 다 찍고 오는구나.

 

 

 

지금도 사용하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옛 향기를 자연스럽게 간직한 이곳 마을의 모습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매일 아침 저곳에 들어가 있는 유우 한병을 가져오는 것에서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드라마를 보는 것 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분.

 

사람이 정성을 쏟으면, 오래된 집이라도 최첨단 아파트 못지 않게 아름답다.

 

 

이곳 코야산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분만 볼거리가 아니다.

역사와 문화를 가진 관광지가 어떤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해답을

마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건 한국에서 가장 소홀히하는 요소이기도 해서 더욱 대비되는 느낌.

 

속도 표지판 위에 올려둔 사찰 지붕 모양의 장식품 하나에서도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곳이 오사카 시내였다면 아마도 통증에 굴복해서 한두 시간 전에 관광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갔을 듯.

분명히 이곳의 풍경과 공기에는 천연 진통제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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