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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0  손이 많이가는 추어탕 19

 

 

한달쯤 전에 엄니 지인이 미꾸라지를 가득 선물해 주셨습니다.

자기 논에서 직접 잡은 귀한 오리지날이라고 자신만만하게 권해주셨는데요.

요즘 시중에 돌아다니는 건 99% 중국산이라서 확실히 귀한 녀석이 맞긴 한데...

 

잠깐 서늘해졌나 싶더니 다시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시작되는 대구라서

과연 추어탕을 해 먹을수 있을것인가 한참 고민했지만, 더 묵혀둘수도 없어서 일단 시작해 봅니다.

 

 

 

일단 각종 야채를 살짝 데쳐서 깨끗하게 씻는 일에서부터.

그냥 한두끼 먹을 정도만 해버리면 그럴 걱정이 없지만

미꾸라지 양도 상당히 많고, 여러번 해먹기가 영 귀찮아서 한꺼번에 큰 한솥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후반부엔 야채들도 곤죽이 되어버린다는 슬픈 전설이 있긴 하죠.

 

 

 

살짝 데치기만 하는 것이니 물을 바꿀필요 없이 그냥 계속 씁니다.

지금 보이는 저 큰솥에 추어탕을 끓일 예정인데, 저거 크기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아마도 4~5일간은 삼시세끼 추어탕만 먹게 될 듯. 중간에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먹어줘야 질리지 않겠군요.

 

 

 

일단 해감은 다 한녀석을 보내주셨으니 잘 씻어서 삶습니다.

만들어보신분은 아시겠지만, 원래 추어탕은 손이 상당히 많이 가는 녀석이라서

귀한 녀석 선물해주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받아놓고도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지역별로 만드는 방식의 차이가 큰 음식이기도 하죠.

이쪽에서는 뼈째로 갈아서 넣는 방식인데, 다른 곳에서는 갈아넣지 않고 그냥 통째로 넣는 곳도 있다고 하네요.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지만 왠지 통째로 국 속에 떠다니는 녀석을 보는 건 왠지 사양하고 싶습니다.

 

 

 

이 날도 35도까지 올라가고, 폭염경보 발령까지 나서 아주 쪄 죽습니다.

엄니와 저는 그냥 땀을 물처럼 쏟아내면서 열기 앞에 서 있죠.

 

미꾸라지 삶는 동안 삶의 활력을 위해서 복숭아 하나 깎아먹어줍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저한테 엄니는 뭔 식당홍보 사진 찍냐고 하시는군요.

 

 

 

재료도 대강 다 삶았습니다.

사실 여기서부터가 진짜 고역이었는데, 옛날엔 마늘 빻듯이 열심히 손으로 갈아버렸기 때문에

먹다가 잔뼈 안걸리게 하려면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열심히 갈아야 했으니까 말이죠.

 

엄니께서는 그거 힘들어서 추어탕 만들기 싫다고 하시니...

물론 요즘에야 제가 하겠습니다만,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 그짓 하고 있으면 이건 뭐 극기훈련이 따로 없죠.

 

 

 

그래서 문명의 이기를 빌리기로 했습니다.

믹서기가 아주 작아서 여러번 나눠서 갈아야 하지만, 손으로 빻는것보다는 훨씬 편하겠죠.

물을 약간 넣어서 갈면 더 잘 갈린다고 합니다.

 

왠지 저런 모양의 투명 컵에 넣어놓으니 음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좀 그로테스크하네요.

 

 

 

생각했던 것보다 잘 갈려서 다행입니다.

잔뼈 나오지 않게 멈췄다 돌렸다를 반복하면서 꼼꼼하게 갈아버립니다.

잘 삶은 녀석들이라 순식간에 죽이 되어 버리는군요.

 

 

그래도 꺼진 불 다시보자고, 체에 걸러서 남아있다 싶은 것들을 다음에 다시 넣어 갈아버립니다.

이걸 예전엔 전부 손으로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런지...

 

한때는 뼈를 발라버리고 속살만 넣기도 했는데, 건강 생각하는 엄니께서 칼슘덩어리 뼈를 버리는건 아까워 하시더군요.

어쨌든 예전보다는 편해졌지만 그래도 이 더위에 계속 작업을 하다 보니 샤워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미꾸라지를 다 갈아버리고 본격적으로 끓여내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에 추어탕에 꼭 필요한 다진 양념도 만듭니다. 추어탕 맛이나 냄새나, 사람을 좀 가리는 편이라

잡내를 없애줄 여러가지 양념이 꼭 필요하죠. 고추나 후추나 초피가루나...

 

여담으로 초피가루를 엄니께서는 제피가루라고 하시더군요. 사투리인 듯.

 

 

 

이제 신나게 끓이기만 하면 됩니다. 추어탕은 진득하게 오래 끓여내야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끓었다고 바로 먹을 수는 없죠. 최소 2시간 정도는 계속 끓여내야 겨우 첫 그릇 먹을 수 있을 정도.

 

엄니께서는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허기진다고 하십니다. 엄밀히 말자하면 전해질 불균형 때문에

식은땀이 나는 현상입니다만, 아무튼 추어탕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기엔 배가 너무 허하군요.

 

 

 

그래서 추어탕은 끓게 놔두고 대충 남아있는 반찬 후다닥 긁어모아서 밥 먹습니다.

저는 며칠전 순두부집에서 무료로 가져가라고 놔둔 비지로 만든 비지찌게를 먹었죠.

두부보다 비지를 좋아하는 타입인데, 시골에서 직접 만든 비지보다 영 맛이 없어서 좀 아쉽긴 합니다.

 

비지란 녀석이 워낙 빨리 상하고, 두부를 직접 만들어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귀찮은 녀석이라서

요즘 좀처럼 제대로 된 비지를 접하기가 힘드네요.

시골의 작은할머니가 많이 만들어 주셨는데, 이제 연세가 있으셔서 힘들고... 아파트에서 두부를 만들수도 없고.

 

 

 

결국 추어탕은 저녁 8시가 넘어서야 한그릇 할 수 있었습니다.

조미료는 일절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오리지날 추어탕이로군요.

 

식당의 추어탕과는 맛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미꾸라지 특유의 씁쓸한 맛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감칠맛 넘치는 가게 추어탕맛에 길들여져 있다면 아마 이건 맛없다고 못 먹을 사람도 있을 듯.

 

하지만 미꾸라지를 쏟아 부어서 만든 탕이 이 정도인데, 가게에서 조미료 없이 그 맛 내려면 한그릇에 15000원 이상은 족히 나가죠.

뭐라 말하기 힘든 묘한 맛이 추어탕의 특징입니다. 조미료를 넣으면 그런 조합된 맛이 싹 사라져 버리니 영 어색합니다.

후추 치고 초피가루 치고 다진 고추 넣고 밥 말아서 먹어주니, 지방 제로에 단백질 든든한 보양식이로군요.

 

8시라도 3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라, 땀 줄줄 흘려가며 극기훈련하듯이 먹어치우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한그릇 비우는 건 일도 아니고, 이게 소화가 워낙 잘되서, 몇시간만 지나면 배가 허전해지죠.

그래서 밤 12시쯤 한그릇 더 비웠습니다. 이 날은 잠을 잘만한 날이 아니어서... 엄니께서는 기쁘지만 많이 속상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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