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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7.17  2월 10일 삿포로 - 눈축제와 비틀즈 12
  2. 2012.08.13  왜 그럴지 12
  3. 2008.06.09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Across The Universe, 2007)

 

무엇에 대한 마스코트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일 종류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원래는 매끈하게 다듬어 완성한 녀석인 듯 한데, 축제 도중에도 계속 눈이 오고 그게 그대로 굳어버리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밀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표면이 되어버렸다. 나름 아침마다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겨울 삿포로의 눈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여름엔 맥주 축제로 가득한 광장이지만 이번엔 뭣 때문인지 텅 비워 놓았다.

광장 안쪽엔 보통 거대 조형물들을 전시하는데, 전혀 그런 흔적이 없는 걸 봐서 그냥 놀리고 있거나 뭔가 이벤트가 있거나 했을 듯.

 

 

 

그다지 섬세한 디테일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건물을 표현한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어딘가의 랜드마크인 듯 한데, 어쩐지 다른 조형들보다 좀 더 험해진 분위기.

 

 

 

삿포로 시계탑 상층부를 재현한 것 같은데, 완성도는 둘째치고 시계 표현이 절묘해서 웃음이 나왔다.

의도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삼각형 귀 같은 것이 살짝 삐져나와 있는 걸로 봐서 고양이일려나.

 

첫 인상은 시계탑 같았지만 사실 구조가 너무 달라서 무엇을 나타낸 것인지는 영원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참 힘들었던 조각상. 가슴에 끼운 저것이 무엇인가 하고.

Y 양과 이야기를 해 본 결과 유방암 등으로 한쪽 가슴을 절개한 사람들에 대한 도움의 뜻을 담고 있는 조각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온다.

 

 

 

얼굴은 그닥 닮지 않았지만 레게머리와 기타, 이 두 가지만 만들어 놓으면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문득 이 추운 삿포로의 겨울 속에서도 No Woman, No Cry 의 선율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영원한 우상 도라에몽도 이 자리에 빠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아동용 캐릭터들을 생산해내는 일본에서도 꾸준히 도라에몽에게만 열광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대를 뛰어넘는 대중성을 갖춘 몇 안되는 캐릭터이기 때문일 듯.

 

가끔 어른이 되어서도 뭐든 튀어나오는 4차원 주머니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아니, 사실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갖고싶어 할 것이다.

 

 

 

다른 캐릭터는 몰라도 이것만은 보는 즉시 정체를 이해할 수 있다.

친절하게도 이마에다가 자기 주장까지 하고 있으니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다.

 

눈과 쌀 모두 흰색이니 소재 선정이 참 적절하게 느껴진다. 흰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저 푹 파인 부분까지.

집에서는 현미를 먹은지 30년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저렇게 씨눈이 깎여나간 모습을 보는 게 힘들긴 하지만.

한국은 건강열풍으로 현미 잡곡밥을 먹는 집에 매우 늘어난 것을 느끼지만

일본은 아직 그렇게까지 현미에 익숙하지 않은지, 일본서 현미를 먹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눈썰미 좋은 사람은 이게 삿포로 도착해서부터 보이는 그 하츠네 미쿠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테고

더욱 더 눈썰미 좋은 사람은 이제껏 보던 미쿠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뭔가 우락부락한 느낌이 드는 이 녀석의 이름은 '미쿠다요'(ミクダヨー) 인데, 사실 이름이랄 것도 없다.

미쿠 리듬게임이 나오던 당시 게임회사에서 홍보용으로 사용한 사람크기용 인형탈이 그 원조였는데

실제 사람이 들어가서 움직이는 탓에 그 거대하고 육중한 몸매, 왠지 불룩해진 볼살, 썩은 동태눈 같은 눈동자 처리가 묘한 시너지를 일으켜서

순식간에 공포의 대상으로 격상되고 만 기묘한 사연을 갖고 있다.

 

 

 

설명해도 실물을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드니 무서운 미쿠다요의 모습을 공개해 본다.

 

 

 

지나가던 행인을 무참히 벽쪽으로 몰아넣고 위협을 가하는 모습.

 

 

 

아침방송에 나와서 난동을 부리는 모습. 참고로 얻어맞고 날아가는 캐릭터는 지난 포스팅에 출현했던 후낫시.

 

 

 

그러니까 홍보용 인형탈을 만든 게임 회사는 과연 이게 귀엽고 깜찍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덕분에 오리지날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인기를 얻게 된 이 녀석은 피규어까지 발매되는 기염을 토하곤 했다.

물론 피규어가 저 정도 크기는 아니다.

 

 

 

눈축제라고 기합 잔뜩 넣을 필요는 없다 보니 가끔 기묘한 조각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서양쪽 관광객들이 보면 이게 뭐라고 생각할런지. 그런데 용캐도 저런 구조로 서 있다.

 

사실 눈은 눈이지만 만져보면 거의 얼음과 동일한 수준의 돌덩이다 보니 이런 포즈로도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가 보다.

 

 

 

올해 출품작들은 유난히 유루캐러가 많은 느낌이 든다. 일본은 매년마다 이상할 정도로 확 하고 유행하는 것들이 있다.

 

자전거 여행하던 2010년도에는 '먹는 라유'라고 하는 녀석이 대유행을 타고 있었는데, 라유(ラー油)란 중국집에서 흔히 보이는 고추기름을 말한다.

이걸 일본에서 각종 양념을 추가해 밥 위에 뿌려먹는 양념간장 같은 느낌으로 개발했는데 그게 대히트를 치면서 너도나도 밥 위에 뿌려먹었던 것.

 

한국에서 어린이들 간식으로 가끔 사용하는 뿌려먹는 가루가 일본에서는 후리카케라는 이름으로 매우 대중적인 반찬이라

이런 식의 먹는 라유라는 상품도 히트를 친 것이겠지만, 막상 한국인 입장에서는 먹어보니 굳이 이렇게 먹는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해질 뿐이었다.

 

유루캐러는 일정 이상의 엽기성(?)과 친근함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지역사회의 마스코트 캐릭터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서

어떻게 해서든 지역 홍보에 힘을 쓰고 있는 지방으로서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자원이기도 하다.

 

 

 

오오도리 공원은 TV 타워에서 시작해서 이 삿포로 자료관에서 끝난다.

많이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쌀쌀한 날씨 속을 계속 걸어다니니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데

자료관까지 왔으니 여기 들어가서 몸이나 녹이자는 의견에 합의를 본다.

 

1926년 완공 당시에는 고등법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인데, 지금은 삿포로 시의 향토 자료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고 나니 안내판에는 매주 월요일 휴무라고 적혀있어서 잠깐 맥이 빠진다.

 

하지만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을 그냥 그런 안내판 하나로 다시 내몰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고맙게도 축제 기간도중에는 2층에서 턴테이블로 LP 를 감상할 수 있다고 적어 놓았다.

삿포로 시내에 위치한 한 LP 전문점에서 출장나와서 음악을 들어주는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

 

눈으로 뒤덮힌 1920년대 건물 안에서 LP 음악을 듣는 체험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체험이다.

더군다나 자발적으로 턴테이블과 LP 를 가지고 와 재생해 주는 배려심에도 마음이 따듯해 진다. 이런 것을 오모테나시라고 부를 수 있을려나.

 

 

 

눈축제에 와서 기억에 남는 이벤트란 거대한 건축물의 모습보다 이런 따뜻한 마음씀씀이임에 틀림없다.

오히려 월요일날 눈축제를 찾은 덕분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자료관 구경보다 훨씬 더 큰 추억이 생기게 된다.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아서 기분좋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우리 엄니보다 연세가 더 많아보이는 두 분이 고풍스러운 턴테이블 앞에 앉아서 인사를 건넨다.

 

듣고싶은 LP 를 선택하면 틀어준다고 한다. 한 쪽에는 일본과 외국의 다양한 LP 들이, 한 쪽에는 비틀즈 특집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코마츠군은 비틀즈를 굉장히 좋아한다. 서슴없이 선택한 신청곡은 옐로 서브마린.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선택한 곡이라서 살짝 놀랍다.

 

 

 

코마츠군의 아버지가 비틀즈의 광팬이라서 어릴적부터 이 노래를 듣고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악을 다시 자식이 이어서 좋아하게 되는 이 모습은 참 훈훈하고 부러울 뿐이다.

 

본인은 과장 좀 해서 조선시대 선비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음악이나 영화 등 문화 전반에서 공유할 수 있는 요소가 없었다.

가요를 들으면 클래식의 위대함을 읊어대고, 만화를 보면 시간낭비라고 하고, 영화를 보면 맨날 터지고 싸우고 하는것 밖에 없다고 했으니.

거기에 대한 반감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름 문화 컨텐츠 전반에 대한 관심이 많은 쪽으로 자라긴 했지만.

 

 

 

비틀즈의 모든 앨범을 LP 로 만나는 건 처음 경험하는 황홀한 순간이다.

경쾌하게 울려퍼지는 옐로 서브마린과 함께 LP 커버를 감상하며, 창 밖의 눈 덮힌 오오도리 공원과 함께하는 순간은

오늘 눈축제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감동하는 부분이 조금 엇나간 것 같기는 하지만.

 

5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아저씨가 룸에 들어오다가 들리는 음악에 맞춰서 어깨를 들썩이며 'We all live in a yellow submarine' 을 열창한다.

음악이 시대를 이어주는 이 모습은 일본에서는 매우 흔하지만 나에게는 언제 봐도 부럽기만 하다.

 

고지식하다면 고지식할 수도 있지만, 일본은 70년대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오프닝도 아직까지 사용하는 등

현재 할아버지들의 문화 역시 젊은층이 거부감없이 수용하고, 60세가 다 되어가는 가수의 콘서트에 20대가 열광하는 등

대중문화의 연속성이 상당히 강한 편이라 공감대 형성도 어렵지 않은 편이다.

요즘들어 한국도 예전의 명곡들을 리메이크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진 덕에 그나마 조금 형편이 나아지고 있는 듯 한데.

 

 

 

좀 전에 오오도리 공원에서 밥 말리의 흉상을 본 기억때문인지, 혹시 LP 가 있나 싶어서 문의를 했는데

아무래도 그쪽 LP 까지는 가지고 오지 못하신 듯 하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LP 문화에 익숙한 계층대에게 레게라는 장르는 조금 어색한 것일까.

 

그렇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비틀즈로 가자고 생각하고  Across the universe 를 부탁드렸는데

할머니께서 어느 앨범에 들었는지 알아야 틀어줄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러고보니 비틀즈 노래는 그냥 듣고싶은거 마구 듣다보니 원래 앨범이 무엇인지 기억을 거의 못하고 있다.

 

본인 맛폰은 데이터 로밍을 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염치 불구하고 Y 양의 어른폰으로 검색을 해 본다. Y 양의 폰은 사진을 열심히 찍느라

베터리가 간당간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미안할 따름이었다. 데이터나 베터리 이관이라도 할 수 있다면 내 것을 마구마구 퍼줬을 텐데.

 

원래 이 곡은 비틀즈의 정식 앨범이 아니라 동물보호기금 마련을 위한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훗날 정식 수록된 앨범을 기억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 막상 찾고보니 그 유명한 마지막 앨범인 'Let It Be'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

LP 로 이 음악을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조용히 눈을 감고 첫 경험의 즐거움을 만끽해 본다.

 

 

 

 

 

처음 들었던 건 국딩 4학년 쯤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요즘과 달라서 그 나이에 영어 배운적도 없던 시절이라서

무슨 뜻인지 눈꼽만큼도 알지 못했지만

 

왜 그렇게 가슴이 아려오던지,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위의 레이 찰스 버전이 아니라 오리지널이죠)

 

 

 

선율만으로 그렇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예술과 창작이 사람의 가장 위대한 재능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을라나 싶네요.

 

고등학교 3학년 TV 학습시간에 나오던 저 노래를 따라서 흥얼거리니까

저 노래 가사 다 아느냐고 놀라워하던 친구를 보고 제가 뭔가 잘못되었나 생각하기도 했군요.

 

자전거로 달리는 도중엔 주위 신경쓰느라 음악을 듣지 못하지만

그래도 입안에서 웅얼거리고 있으면 음악이 머릿속에서 살아나는걸 느꼈습니다.

삶의 방향이 정해지는거, 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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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지 :: 2012. 8. 13. 16:27 Music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 감상중이거나 감상예정인 작품들이 이상하게 음악쪽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건 정말 우연이다.
스위니 토드, 카핑 베토벤, 원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등등.

그 중 오늘의 주인공인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뮤지컬 영화인 '스위니 토드'와 음악영화인 '원스'의 중간쯤에 위치한 느낌이다.
물론 위의 4 영화는 각각 그 느낌이 극과 극을 달리는 영화라서 이걸 같은 분류로 묶는 행위 자체가 의미없는 행동이지만.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학생시절을 거친 사람들이라면 90년 초~중반을 아우르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향수를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거라 본다. '알라딘'과 '라이온 킹'으로 이어지던 역대 디즈니 최고의 라인업을
가장 감수성 풍부할 중학교 시절에 감상했다는 건 멋진 추억이다. 그리고 그 환상적인 사운드를 자랑하던 '라이온킹'의 뮤지컬을 맡은 사람이
바로 이 영화의 감독 줄리 테이머였으니, 게다가 더 말할 것도 없는 비틀즈의 음악이 결합했으니 두말이 필요없었다.

다양한 뮤지컬, 연극, 음악 연출로 기본기가 탄탄한 줄리 테이머와, 그의 남편되시는 음악감독 엘리엇 골든탈이
자신들의 우상인 비틀즈를 위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나 이 영화에 애정과 열정을 쏟아부었는지 짐작케 한다.

그 결과 이 영화는 성공이 보장된거나 마찬가지인 음악적 완성도 이외에도,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의 70~80%가 정지화면시 가히 예술작품이라 칭할 만한 색감과 구도로 가득 채워진
시청각적 요소 모두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예술영화로 탄생했다.

나는 비틀즈를 좋아하면서도 그들의 노래에 대해서 그리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순 없는 부류다.
이 영화에 흐르는 33곡의 음악 중에서도 10곡 정도가 귀에 익은 정도라면 이해가 가시려나.

하지만 최소한 3~4곡만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비틀즈라는 그룹이 어떤 존재인지만 알고 있다면 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문제는 없다.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면서 세삼 느끼게 되었지만, 이 영화에서 건질 것은 음악만이 아니다.
영화 역사 100년을 통틀어 이 영화의 영상미는 열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감독의 비틀즈에 대한 존경이 영화 내내 모든 영상과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야말로 비틀즈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밖에는.

한 그룹의 노래 33곡으로 2시간짜리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상상이 가는가?
그것도 이 영화는 단순한 뮤직비디오 모음집이 아니라 엄연히 연결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비틀즈라는 그룹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반증하는 것일수도 있는데, 역설적으로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출발한다.

존 레논의 사상적 깊이에 감명받았을 전 세계 수백만의 팬들을 만족시키기엔 아무래도 이 영화는 그 깊이가 얕을 수 밖에.

뮤지컬 영화의 피할 수 없는 약점이 이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이야기의 개연성과 주제 표현의 얄팍함은 결국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장르가 가진 태생적 약점에 존 레논이라는 신화적 존재가 들어간다면 그 비판 강도도 상상을 초월할 수 밖에 없는 것.

가능한 한 영화를 좋은 눈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나한테는 그리 문제될 건 없었다.

적어도 이 영화가,
갖다넣기만 하면 최소한은 보장되는 비틀즈의 음악을 결코 가볍게 취급하지는 않으려 노력했다는 흔적은 여기저기서 보이기 때문에.

60년대 미국과 영국, 베트남전과 히피, 그리고 비틀즈.
이 단어만 들어도 이 영화가 무엇을 나타내려는지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추억이 가지는 아련함과 아쉬움, 그리고 순수와 행복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