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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3  아메리칸 갱스터 (American Gantster, 200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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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치오 델 토로, 알 파치노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손꼽는 덴젤 워싱턴과
블레이드 러너, 킹덤 오브 헤븐으로 명실공히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된 리들리 스캇 감독이 만났다.
거기다 좋아하진 않아도 연기력으로는 위의 배우들에 비해 떨어질 것 없는 러셀 크로우에
조쉬 브롤린(악역형사 트루포), 쿠바 구딩 주니어(클럽점장 니키) 등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조연에 포진.

이거 뭐 완전히 나를 위한 영화가 아닌가.

거기다 킹덤 오브 헤븐 이후 간만에 보는, 내 입맛에 짝짝 맞는 굴곡 심하지 않고 무거운 영화라서
긴 플레이타임 동안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젠 영화 시작하기 전 날아오르는 새 모습만 봐도 미소가 번지네.

친구 강군이 이 영화를 미국서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정말 실화였다니~' 란다.
난 실화인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놀란 건 '저런 거물과 부패 경찰들이 정말로 잡혀 들어갔다니' 였다.

한국에서 저 정도 거물이 설친다면 잡혀 들어갈 리가 없으니까.
커넥션은 전부 정치, 법조, 재벌가에 연결되어 있을테니 설사 거물 하나는 들어가더라도 커넥션이 잡힐리가 없다.

보는 내내 2008년의 대한민국과 1970년의 미국이 대조되었는데, 타락의 정도로 따지면 둘다 만만치 않지만
적어도 공개적으로 드러난 범죄에 대한 처벌은 미국이 30년 후의 한국보다 월등히 앞서 있는게 사실인 듯 하다.
변변한 증거도 없던 그 시절에 비해, 자기 입으로 범죄사실을 떠벌리는 영상이 떠도 떳떳히 대통령 되는 사회니까.

외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영화 이야기에서 벗어나버리니 이건 그만하고.

이 영화 역시 스캇 감독의 철학이자 고집인 극한의 리얼리티 추구가 여기저기서 드러나 있는 영화다.
그 당시를 뉴저지와 뉴욕에서 보냈던 사람이라면 그때의 모습에 꽤나 놀랄 정도로 당시를 잘 표현했다.
'블레이드 러너'같은 SF 에서도, '에일리언'같은 호러에서도, '매치스틱 맨' 같은 드라마에서도 그의 리얼리티는
영화 전체의 뼈대를 단단히 받쳐주는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물론 G.I 제인이나 글라디에이터 같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빼버리고 싶은 영화도 있긴 하지만.

구성이 밋밋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 이 작품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밋밋한 구성 중에서 이만한 몰입도를 주는
작품은 스캇 감독의 그것 이외에는 찾기 힘들다. 그건 역시 탄탄한 구성력과 리얼리티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시청각적 만족감으로 보자면 스탠리 큐브릭, 제임스 카메론과 함께 장인정신마저 느껴지는 인물이라서
작품을 볼 때 마다 이런 사소한 곳에도 집착적인 면을 보이는 그의 집념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질 정도다.

갱스터 영화는 장르적 특성이 매우 확고하고,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들이 몇 개씩이나 포진해 있는 장르라
이 영화 역시 감상 전부터 그 명작들의 비교 대상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진행 방식에서는 결국 눈감고도 줄줄 욀 정도의 정형화를 보여주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20세기 중후반을 아우르던 미국 갱들의 인생이란, 이제는 식상해 버릴 정도로 영화같은 삶이었다는걸 반증하는거나 마찬가지.

'정의'라는 개념에 선악의 가치판단을 없애버리면, 덴젤 워싱턴과 러셀 크로우라는 두 인물이 탄생한다.
결국 영화가 우리에게 감정적 동의를 유발시키는 저 두 인물은 자기가 할 일 착실하게 수행하고, 딴 생각 품지 않은 프로페셔널이란 거다.

덴젤이 처음부터 프로의 본분을 직감하고 있던 것에 비해
러셀은 중반후 법정에서 아내에게 쓴소리 한번 듣고나서 그걸 깨닿는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 사전 전후의 러셀의 연기를 살펴보면, 과연 이 배우 보통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기 그지 없다.
그 미묘한 심리 변화를 안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과 대사 몇개로 표현해 낸다는 점, 배우로서는 자랑스러워 할만한 능력이다.

덴젤이 그렇게 존경해 마지않던 범피가 가장 질색했던 '생산자와 직거래'를 직접 실천해 성공하는 점과
그렇게 청렴결백에 집착하는 러셀이 가정적으로는 형편없는 바람둥이에 불과하다는 점이 교차되어 드러나는 점도 이 영화의 백미.

겨우 그 정도 마약에 70년대의 미국 사회가 얼마나 흔들렸는가를 생각하면,
1800년대 중반 중국을 나른하게 만들었던 아편의 위력은 상상도 못할 정도고, 그러고도 되려 전쟁을 일으킨,
얼굴에 특수 탄소섬유강을 도배한 당시의 영국이란 나라의 추악함도 상상하기 힘들다.

스캇 감독의 영화는 항상 영화 알맹이와 함께 미장센 등의 매니아적 즐거움,
그리고 이놈의 세상 돌아가는 꼴에 대한 탄식도 곁들일 수 있어서 항상 관람후에 배가 부르다.

제발 오래오래 살아서 영화 좀 더 만들어 주시길.
제임스 카메론이야 아직 창창한데, 당신은 이제 옆에서 보기에 걱정이여.. 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