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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일주'에 해당하는 글들

  1. 2012.07.26  좁은 문 16
  2. 2012.06.25  스쳐지나감 23
  3. 2010.12.16  여행의 친구들 12

 


우주의 탄생만큼이나 신기한 우연이 운명처럼 겹치고 겹친 결과

여행중 만난 고등학생 소년의 집에 홈스테이 명분으로 들어가서 쉬게 된 여름날.

 

여행경비 충당을 위해 이것저것 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그쪽 마을은 인구가 몇백 명밖에 되지 않는, 나가노현의 아주 외진 시골마을이라서

바이트 찾는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원맨열차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 마츠모토에 자주 일자리 찾으러 가곤 했다.

도착시 낭낭한 목소리로 '마츠모토~ 마츠모토~' 라는 소리가 나오는게 특징인 도시.

 

한국사람이 운영한다는 커다란 고기구이집이 있어서 찾아가 봤는데, 빈자리가 없단다.

국보 마츠모토성이 위치해 있어서 꽤나 큰 도시임에도 불경기는 불경기라 바이트 자리는 별로 없고.

편의점 정도의 바이트로는 마츠모토까지 왕복 교통비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아서 난감했을 때.

 

38도까지 올라가던 날은 정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체감온도는 43도 정도.

홈스테이 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면, 이런 날씨 즈음에서 픽 쓰러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36도쯤 되는 날씨에 10시간 정도 달려봤더니 거진 사하라 사막 마라톤과 비슷할 정도의 체력소모를 느꼈다.

 

이 날은 멍하니 저 38도를 바라보다가 역 옆의 조그만 공원으로 걸어가서 전자책을 꺼내들고 책이나 읽었다.

집에 있는것도 아니고, 여행중인것도 아니고, 꿈 속에 있는 듯한 폭염 속에서 꺼내든 책은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2010.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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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2012. 7. 26. 20:02 현실도피

 

 

귀국까지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은 날.

1년간의 자전거여행 도중 3번씩이나 같은 길을 다닌 것은 이 코스 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지산이 보일 정도로 날씨가 좋았던 날은 적은 딱 한번 뿐.

 

덤덤하게 자전거를 세우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고, 망원렌즈의 구도를 잡기 위해 10미터 정도 뒤로 걸어간다.

여행의 마지막 즈음에 간신히 보게 된 풍경이지만 사실 마음속엔 감격이나 황홀함이나 그런 느낌은 없었다.

그냥 단지 이게 마지막이구나 하는 묘한 아쉬움이 카메라를 무겁게 만드는 느낌.

 

주섬주섬 카메라를 집어넣고 나서 달리는데, 맞은편에서 비슷한 행색의 자전거 여행자가 달려온다.

같은 자전거는 아니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전륜 후륜에 가방을 4개 달아놓은, 땀에 절은 모습의 여성 여행자.

여행중 남녀 함께 다니는 자전거 여행자는 몇번 봤지만, 혼자서 달리는 여성은 처음이다.

해외로 나갈게 아니라면, 일본인이 일본 국내에서 자전거여행 하는데 가방을 4개 달고 달리는 경우는

거의 100%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장거리 여행 초보.

아님 나처럼 카메라에 큰 비중을 둬서, 거대 DSLR과 렌즈 서너개를 넣고 달리는 묘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거나.

 

슬쩍 보니 옷은 동네 슈퍼 나갈때나 입을 법한, 한적한 반팔 투톤 티셔츠. 면 소재라서 땀으로 진득할 터.

본인 나이도 기억 못하는 성격이라서 남들 나이대 추정에 매우 어려움을 겪는 터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많아봤자 20대 초반인 듯 하다. 치장없는 단발머리에 가벼운 옷차림으로는 고등학생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주달리고 있으니 체감 속도는 약 20km/h 정도?

서로의 얼굴을 인식할 정도의 거리에 들어서자 거의 동시에 서로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나나 그쪽이나 얼굴에 미소 하나 없는 표정으로

동족 여행자에 대한 반가움이나, 여지껏 달려왔던 무용담에 대해 털어놓고 싶어하는 근질거림 따위는 한 치도 보이지 않는

그런 무표정한 얼굴로 가볍게 목례 한 번.

 

10억초를 넘는 인생중 단 1초동안 나눈 그 인사는, 아마 평생 두번다시 겪을 일이 없겠지.

혹여 만날 일이 있다고 해도, 이미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그 사람이 어디 쯤에서 하룻밤을 묵게 될지 대충 예상이 가고

또한 돌아올 때, 반대 방향에서는 보이지 않던 저 후지산을 보고 다시 한번 신선한 느낌을 받을 거라는 예상이 간다.

 

여행의 인연이란 이렇게 일방적이면서도, 그 1초의 만남조차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화석과도 같은 것.

어지간하면 생일같은거 기억 못하는 성격임에도 꽤나 쉽게 기억되는 본인 생일날

이런 추억이 문득 떠오른다는 것, 스스로에게 주는 멋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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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지나감 :: 2012. 6. 25. 12:14 현실도피


모르는 사이에 제 뷰파인더에 들어와 버린 마을 사람들



어디서든 원기를 불어넣어주는 동물들


공허한 위장을 체워주는 밥




그저 주위에서 무언의 격려를 퍼부어주는 꽃들


즐거운 나의 집


뼈빠지게 고생하면서도 공기와 기름만으로 살아가 주는 자전거




알바비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과 격려를 전해준 키소마을의 모두들






담부턴 그러지 말거라고 충고해주는 상처들


요즘 점점 심술을 부리는 자연이란



사실은 시시각각 멋진 풍경으로 발걸음을 멈추게 해 주는 쿨한 녀석



그 중에 제일 나약한 녀석.

수천 장의 사진 중 손가락으로 꼽아도 널널할 만큼 찍어준 적이 없어서
큰맘먹고 한 장 올려봅니다.

출발할 땐 단발이었는데 어느새 장발이 되어가는군요.

급격하게 나빠진 날씨덕에 몸이 좀 나빠져서 4~5일 정도 푹 쉬었습니다.
그럼에도 점점 추워지는 날씨를 피하려면 빨리 출발하는 수 밖에 없겠네요.

가족들이 제 얼굴 못본지도 오래되어서 그냥 이 정도로 살아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좀처럼 안올리는 셀카도 올려보네요.

저를 아시는 모든 분들 훈훈한 연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간만에 컴터 좀 써봤더니 여전히 한국선 가슴 답답하게 하는 일 천지지만...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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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친구들 :: 2010. 12. 16. 00:00 현실도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