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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30  히로시마 여행기 2편 - 쿠레, 야마토보다 궁금한 것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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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역에 도착해서 잠시 생각에 묶여 발걸음이 멈췄다.
히로시마시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쿠레(吳)로 가기 전에
왜 도착 당일날 그곳을 둘러보기로 계획을 짠 건지에 대해.

사실 히로시마라는 지역은 일본 3대 절경중 하나라는 미야지마(宮島) 말고는 크게 볼것이 없는 그냥저냥한 관광지다.
세계 최초로 원폭에 의한 피해를 받은 무거운 역사가 이 도시를 관광지로 만들어 준 것이니까.
이 미야지마는 되도록이면 일요일에 가고 싶지 않았다는게 그때의 심정이었고.
최대한 체력을 회복한 후,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시간을 보내며 둘러보고 싶었기 때문에 마지막 날도 무리.
사실 돌아가는 항공편도 저녁 7시라서 크게 무리가 가진 않았지만 혹여 내 생각보다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할 지도 모르는 곳이라 불안의 씨앗을 없애고자 했다.

그래서 미야지마는 둘째날로 정했고 쿠레는 첫날 아니면 마지막날이 되는데, 문제는 쿠레의 유일한 볼거리인 야마토 박물관이 화요일날(마지막날) 휴관이라는 사실.

고로 몸이 조금 힘들긴 하지만 첫째날에 쿠레를 가기로 한 것.

JR 선을 타고 쿠레에 도착하니 한눈에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야마토 박물관과
어라? 옆의 거대한 잠수함이 더 눈에 들어오는군. 저긴 뭐하는 곳일까 했지만 일단은 첫번째 목표인 야마토 박물관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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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박물관 앞에는 유럽에서나 볼 듯한 넵튠의 누드상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쿠레가 왜 이렇게 바다틱한 요소를 부각시키느냐 하면, 당연하지만 2차대전 당시 일본 해군의 상징이었던 전함 야마토(大和)가 이곳에서 건조되었기 때문.
워낙 독특한 역사를 가진 전함이라 밀리터리 매니아에게 끝없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오락거리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다가, 그걸 건조한 일본인에게 있어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곳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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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의 대부분은 사실 이 모형 하나를 보기 위해 지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1/10 스케일로 재현된 전함 야마토가 처음부터 관광객을 맞이한다.

이쯤에서 토막지식을 열거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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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재배수량 7만2천톤급, 길이 263m, 시속 27노트(50km 가까운 속력), 18.1인치 3연장 주포로 무장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함이란 놈이다.

현존하는 대형급 전함인 미국의 아이오와호가 만재배수량 5만 8천톤인것을 생각하면 당시 일본의 거함거포주의가 만들어낸 거대한 허상의 실체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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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아이오와호의 16인치 주포가 불을 뿜는 장면.
아이오와호의 주포는 그 사정거리가 짧은 대신 화력만으로는 현존 항공모함 함재기 전체의 70% 를 커버할 정도로 막강하다.

그렇다면 야마토의 18.1인치 주포의 위력이 어떠했겠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여담으로, 워낙 반동이 강한 주포라 야마토 자체의 함교 유리창이 깨지고 선원이 부상을 입는 상황도 자주 발생했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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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진화된 집중방어구조형 장갑으로 사기급에 가까운 맷집을 보유하고 있었던 터라, 일본 내에서는 일본인의 정신(!), 불침함(!!) 등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방향없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그 자부심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 무참히 무너지는 일이 빈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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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해상전투의 실권은 함재기를 탑재한 항공모함으로 넘어가던 시절에 이렇게 거대한 연습용 타겟을 만들 나라가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아이오와호가 야마토보다 작았던 것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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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이 바랬던 것 처럼 전함 대 전함으로 힘싸움하는 양상에서는 야마토를 상대할 수 있는 전함은 거의 없다.
밸런스상으로 역대 최고를 자랑하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역시 야마토와 상대해서 이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없다고 지금도 각국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피튀기는 혈전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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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기의 공격에 대응할만한 대공방어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던 야마토는
그 거대한 위용과는 정반대로 출항 후 그 멋들어진 18.1인치 거포 한번 제대로 못 쏴보고
130여기의 전투기, 50기의 폭격기, 100기의 뇌격기가 쏟아내는 무수한 폭탄에 만신창이가 된다.
물론 워낙 거대한 선체와 집중방어형 장갑의 무식한 방어력으로 2천여 발의 폭탄을 몸으로 받아내고도 작전수행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은 건 참 혀를 내두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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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개패듯 두들겨맞으면서도 침몰하지 않았던 맷집좋은 야마토.
20여발의 어뢰가 명중해서 한쪽으로 기울어버린 상태에서도 격침만은 되지 않고 버티는 모습에 일본인들은 감동을 받을 것인가, 혀를 찰것인가.

결국 야마토를 침몰시킨건 폭격의 화재로 인한 탄약고의 폭발이었다.
6000미터 상공까지 치솟은 불길때문에 그간 한 기도 떨어지지 않았던 미 폭격기들이 격추당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연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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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한 야마토의 잔해는 워낙 거대해서 아직도 인양되지 않은채 바다속에 잠들어 있다.
2800명의 승무원 중 생존자는 269명.

야마토라는 전함이 당시 일본의 바램을 이루어주지 못한 것은 확실하지만
이 박물관에 들어서 있는 야마토에 대한 설명과 자료에는 그 어리숙함을 뛰어넘으려는 자긍심이 조금씩이나마 묻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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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과거의 야마토에서 당시 일본의 조선기술을 상기하며 자긍심을 가질 수도 있고
전황 판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군부의 노리개로 전락한 국민들에게 연민을 느낄 수도 있다.
더욱이 이곳은 히로시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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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자기 역사에 대한 가치 판단을 어디에 두느냐에 대해 이방인인 내가 지적할만한 말은 별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야마토라는 전함이 남긴 것이 진보된 기술에 대한 긍지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 숨어있는 어리석음과 비참함을 애써 도외시하지는 말았으면 하는게 내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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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모토 레이지의 '우주전함 야마토'는 역시 그런 치부를 조금이나마 덮고 싶었던 일본인들의 바램을 나타낸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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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야마토 박물관에 모인 일본인들의 머리 속에는 과연 어떤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는 걸까.
야마토에 대해서는 이미 알만큼 알고 있다.
정말 궁금한 것은 그것.

특히 다음의 전시품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궁금했다.
그것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보편적 사상을 시험하는 무기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