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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1  히로시마 여행기 3편 - 쿠레, 관광이 아닌 여행 6
출발 전부터 어림잡아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히로시마는 '여행'이 가지는 새로운 것과의 조우에 따른 기쁨을 주는 것은 여느 지역과 동일하지만
그저 감탄하고 즐겁게 웃어 넘길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과하게 분비되는 그런 류의 여행은 되지 못했다.
좀 더 깊게 생각하고, 좀 더 인상을 찡그리게 만드는 것도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니 딱히 문제될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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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야마토 박물관이라는 곳은 그런 껄끄러운 감정을 증폭시키는덴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태평양전쟁때 쓰였던 일본군의 무기들이 1:1 스케일로 전시되어 있으니.
크기문제로 야마토만은 1/10 스케일로 축소되었지만, 어지간한 것들은 1:1 스케일이라 그 현실감이 사람을 오싹하게 만든다.

3미터가 넘는 폭약덩어리가 그 거대한 전함이라는 구조물을 바다로 가라앉혀 버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그나마 실감이라도 덜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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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사람 한둘이 들어갈 정도의 좁고 기다란, 어뢰를 닮은 이 잠수정은
사실 어뢰가 맞긴 맞다. 단지 그 속에 폭약과 함께 사람이 들어간다는 사실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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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살 어뢰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지급했다는 자결용 단도.
과거 일본의 무사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죽음에 대한 고결한 동경심이란 감정을 그럭저럭 이해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역으로 태평양전쟁이라는 무가치한 탐욕과 광기만으로 이루어진 어리석은 행위에서도 그 고결함이 악용되었다는 사실이
명분없는 힘에 힘없이 끌려다니며 자신을 숭고한 희생자라고 착각하던 당시의 수많은 일본인들을 애처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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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태평양전쟁당시 일본의 무기 대부분이 탑승자의 안전보다 전투능력의 효율성을 우선해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조종석에 방탄판조차 달지 않은 가녀린 종이쪼가리 전투기 제로기가 하늘의 맹수로 활약했던 전쟁 초기 6개월이란 시간은
에이스 파일럿들의 생명을 깎아가며 이루어낸, 미래가 보이지 않는 승리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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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가 너무 가벼워 선회능력은 압도적이었지만 무리한 가속시 기체가 부서져 버릴 정도의 약골이었던 제로기는
결국 탄탄한 장갑을 바탕으로 고속 급강하 일격후 탈출식 전술을 구사하는 후기 연합군 전투기들의 안전한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아마 에이스 파일럿들이 죽어가서 계기판 하나 제대로 볼 줄 모르는 14~16세의 학도병을 자살폭격용 제로기에 태울 때도
파일럿의 생명보다는 응용 가능한 전술력이 줄어든다는 사실에 군부의 괴물들은 안타까워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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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전쟁에 인간 중심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리는 없고, 그건 정도의 차이일 뿐 일본이나 연합군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당시 일본의 제국주의는 세계평화라는 허황된 미사여구로 수식된 연합군과 달리 대놓고 국민들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한 마리의 거대한 야수였다.
제로센의 엔진은 기름이 아니라 일본인의 피를 원료로 사용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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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의 위용은 꽤나 흐뭇하게 관람하는 일본인들이 많았지만
이곳 전시관에서 그들의 표정에는 예전과 같은 미소와 여유가 없다.
그들은 안타까워 하는 것인가 부끄러워 하는 것인가.

연합군이나 일본군이나 전쟁에 참가한 족속들은 전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면
아마 땅속 전범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자신과 함께 비난당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면 결국 자신의 타락을 인정하는 패배한 쓰레기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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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와중에도 미소와 함께 V자를 그리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젊은 연인들이 있다.
어떻게 보면 쿨하다. 내가 동경하는 삶의 방식일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그 정도로 병신이 되고 싶진 않네.
똑똑한 아나키스트라면 술자리의 안주거리만큼의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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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가 닫히고 물 속으로 들어간 자살 잠수정 안의 승무원들의 심정보다
지금 이 곳에서 그들의 옛 모습을 응시하는 일본인들의 마음이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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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라면 자기 할아버지, 아버지를 저기 태운 괴물들에 대한 분노로 불타오르겠지.

그런데 실상 나는 쥐새끼도, 28만원짜리 살인마도 처리하지 못하고 그저 울분만 터트릴 뿐.
아마 당시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처럼 그저 떠밀려 흘러다니는 무능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관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여행도 나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