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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23  킨키 방황 - 거품같은 축제의 마무리 10

 

 

이제 이벤트장 하나만 더 지나가면 종착지인 난바역.

마지막 이벤트장에서는 미도스지 미나코이 그랑프리(御堂筋みなこいグランプリ)가 열리고 있었다.

미나코이라는 단어는 전혀 들어본 바가 없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추고 있는 춤은 요사코이춤(よさこい踊り)이다.

 

요사코이란 코치현(高知県)에서 시작된 일본의 전통 집단군무인데, 서민들의 축제 전야제 의식으로 시작된 춤이라서

기본적인 몇 개의 규칙만 지키면 남녀노소, 음악의 종류, 안무의 형식, 의상 등등이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절제되고 웅장한 춤에서부터, 신나게 날뛰는 춤까지 매우 다양하고 창작적인 형식을 선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일본 각지에서 이런 요사코이 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다. 전통의 맥을 이어가면서도 꽤나 자유로운 군무.

 

한일 문화 페스티발 같은 곳에서는 이런 요사코이춤의 배경음악으로 아리랑이 흘러 나오기도 하는 등, 타문화에 녹아들어가기에도 좋은 녀석이다.

 

 

 

일단 대회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출전 팀들은 꽤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응원단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깃발에 맞춰 한 동작 한 동작 절도있는 움직임을 피로하고 있는 중.

 

아오모리현(青森県)의 대표적 축제인 네부타(ねぶた) 축제는

그야말로 누구나 행렬에 뛰어들어서 마음 가는대로 춤추며 소리를 지르는 야성의 기쁨이 살아있는데

요사코이춤은 형식에 있어 자유롭긴 해도, 정해진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집단 군무에 속하기 때문에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일종의 예술 행위 관람으로서의 매력이 있다.

 

 

 

말 그대로 동네 아주머니도 옆집 꼬맹이도 참가할 수 있는 춤이라서 연령대가 다양하다.

이번에 나온 팀은 꽤나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분위기라서 일종의 신성함이 엿보인다.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는 대회다 보니 나름 힘을 준 것이겠지만, 막상 정말 축제날에 가 보면

거의 전성기의 X-JAPAN 같은 펑크록 스타일과 모히칸 머리를 한 젊은이들이 날뛰는 요사코이춤도 있으니

이런 사진만으로 요사코이가 어떤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고 슬그머니 운을 띄워 본다.

 

 

 

나처럼 우연찮게 축제에 찾아든 관광객도, 작정하고 구경하러 온 타지인도 있겠지만

이런 분위기의 축제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오사카 시민들을 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 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만들어가고 즐기는 그런 축제.

 

거대한 규모와 압도적인 스펙타클을 보여주는 일본 각지의 대표 축제들과 비교하면

분위기 좋은 까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듯한 친근함을 가진 축제라는 느낌이다.

 

그냥 자동차에 점령되던 미도스지의 대로 중앙을 산책하듯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길만큼 즐긴다는 감각.

입장료도, 긴 대기시간도 필요 없는 가벼운 축제지만 일요일 오후에 멋진 추억을 만들어주는 의미로서는 굉장히 성공적이다.

이런 축제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던 내가 운좋게 이날 오사카에 도착한 것은 여행중 만나는 돌발적인 보물과 같다.

 

 

 

난바역에 도착한 후 다시 요시노야에 들어가서 규 나베동(牛鍋丼)을 하나 주문한다.

배가 고팠다기 보다는, 아침에 사진을 찍지 못한게 마음에 걸려서. 

 

규 나베동은 규동의 소고기를 조금 줄이고 두부와 당면을 넣은 녀석. 고기가 줄었으니 규동보다 가격은 좀더 저렴하다.

한국에서 규동을 한번 먹어봤는데, 가격도 요시노야보다 비싸고 맛은 정말 먹다가 내다버릴 정도라서

규동 먹으려면 일본 가야겠구나 싶은 생각에, 일본 갈때면 한번씩 먹곤 하는 요리다. 대(大)자 이상이 아니면 간식이라고 할 만큼 양이 적지만.

여행중 일본사람에게도 물어봤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라 일본사람에게도 보통 사이즈의 규동은 배가 전혀 안찬다고 하더라.

 

자전거 여행중 꽤나 즐겨먹었던 규 김치국밥이라는 메뉴가 사라져서 조금 아쉽다.

한국의 김치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지만, 일단 고춧가루를 쓴 붉은 음식이라는 것 자체가 꽤나 그리웠던 시기라.

 

 

 

지금은 사라져버린 메뉴인 규 김치국밥의 모습.

이 사진은 2010년 나고야 헌혈센터에서 헌혈 한번 해주고 난 뒤 근처에서 영양보충했을 때.

 

숙성되지않은 싱싱한 배추일 뿐이지만 그래도 내게는 그리운 맛이었다. 가격도 싸서 여행중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국밥이라고 하기엔 국물에 든게 너무 없었지만, 저렇게 밥을 말아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일본에서는 그나마 한국 냄새 나던 음식.

 

 

 

난바역 근처엔 그럭저럭 큰 서점인 쥰쿠도(ジュンク堂)가 있긴 한데

막상 축제길을 다 걸어오고 나니 피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넷까페에서 새우잠 2시간 잔 후, 거진 14시간 가까이 계속 걷기만 했으니.

 

몸은 이미 형편없는 체력으로 돌아와 있는데, 마음만은 계속 1년간의 자전거여행 당시에 맞춰져 있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라고 생각하고 다니는데도 체력은 예전같지 않다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서점에 들어가면 보통 두시간 정도 책을 훑어보기 때문에, 지금 체력으로는 그것도 상당히 무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한 강행군이 준비되어 있으니 오늘은 이정도로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내일 코야산 가기 위해 난바역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칸사이 스루패스 2일권을 구매하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종료한다.

외국인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스루패스 티켓이라서 여권까지 확인하고, 구매명단 리스트까지 작성한 후 티켓을 건네준다.

 

참 징하게도 세세한 곳까지 신경쓰는구나 싶었는데, 그런 나라가 얼빠진 대처로 치명적인 원전사고를 일으켰다는 건 일종의 희극이다.

낙하산 인사들의 편안한 안식처였던 도쿄전력 임원들이야, 고위공무원의 얼빠진 나태함은 일본이라고 해서 빗나갈 리가 없지만

자신들이 원전 사고로 입은 피해만큼이나, 지금 일본인들은 그 우쭐해 하던 프라이드에 깊은 상처를 입었을 거다. 애써 외면하고 싶겠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돈내고 전철 두 코스 타기는 싫어서 왔던길을 다시 돌아간다.

내일 스루패스를 사용하면 칸사이 각 도시를 잇는 전철은 물론 오사카 시내의 왠만한 전철도 전부 무제한 사용가능하기 때문에

오늘 전철 타는건 왠지 손해본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호텔까지 가는데 한국 돈으로 3천원만 내면 되는데도.

여행가면 얼마 안되는 돈은 최대한 아끼고 비싼건 팍팍 써버리는 이상한 금전 감각이 발동해 버린다.

 

오후 6시쯤 다시 미도스지 거리를 걸어가는데, 그 북적이던 이벤트장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싹 정리되어 버리고

벌써 자동차들이 평상시처럼 운행을 하고 있다. 물론 도로쪽이나 인도쪽이나 쓰레기도 눈에 띄지 않고 평소 그대로.

한국에서 축제 뒤에 남겨지는 쓰레기더미의 산을 자주 봐 온터라, 5시간 남짓한 축제만큼이나 이런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다.

 

40분 정도 걸어서 숙소에 도착. CM 광고에서 나에게 깊은 임팩트를 주었던 닛신 컵누들(日清カップヌードル) 하나 사들고 간다.

기름많고 짜기만 해서 인스턴트 컵라면은 한국에 비해 영 맛이 없는데, 이 컵누들만큼은 내 입맛에 잘 맞는다. 시푸드나 카레맛 말고 오리지날이.

 

 

 

나를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컵누들 광고 그 첫번째.

중간의 일본어 부분을 간략하게 해석해 보자면

 

'아들내미는 중3. 수험공부 하고 있었다 (있었다)'

'야식 컵누들, 엄마가 잊어버렸다(잊어버렸다)'

'아들내미는 삐졌다'

 

왠만한 일본 버라이어티 쇼보다 이 광고가 더 재밌더군.

 

그리고 충격과 공포 그 두번째.

 

 

 

이건 뭐 해석할것도 없이 '딴거 싫어~ 컵누들 좋아~' 다.

 

 

뜨거운 물 받아놓고 욕조에 몸 누이니 온 몸이 짜릿짜릿한게 정말 무리좀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숙소에 돌아와서 긴장이 풀리면 느껴지는 그 무거운 감각이 평소보다 훨씬 심해서 스스로도 놀란다.

침대에 누우니 밑으로 몰렸던 혈액이 쏵 퍼지는 걸 느끼며 TV 틀어놓고 되는대로 보다가 새벽 1시쯤 취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