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본 토리이를 지나서 도착한 곳에는 뭔가 영물 취급을 받고 있는 돌이 놓여 있습니다.
금줄 앞에 작은 토리이가 무수히 놓여있는 것을 보니 없던 위엄도 만들어 지는 듯 하네요.
일본의 신사에서 참배객이나 관광객들이 주로 봉납하는 에마와 마찬가지로
이런 조그만 토리이는 신사 안에서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훨씬 비싸지만.
외국 관광객의 경우엔 이걸 그냥 여기다 두고 가기가 참 아깝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등장한 여우 얼굴모양 에마 앞에서 엄니가 한 장 남깁니다.
얼굴에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만의 표정을 만들 수 있죠.
참 아이디어 좋다는 생각입니다.
엄니는 여우모양 에마보다, 일반적인 에마 뒤에 그려진 말 그림에 흥미를 보이십니다.
에마 뒤쪽 그림은 신사의 경제력을 나타낸다고 해도 될 만큼 빈부의 차가 심한 편이고
후시미 이나리 쪽은 일본에서 가장 봉납액이 많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그림도 굉장한 수준이죠.
영어는 아닌 듯한 언어가 봉납용 토리이에 적혀 있습니다. 뭐라고 써 놓은 걸까요.
그 옆에 살짝 찍힌 여우 얼굴이 살짝 기분나쁜 표정입니다만, 저런 녀석들이 좀 있어야 신사도 어깨 힘을 좀 뺄 수 있겠죠.
실제로 이곳은 정해진 코스를 다 돌아보려면 3시간 넘게 산을 한바퀴 돌아야 해서
지치고 바쁜 여행객인 저희 일행은 여기까지만 보고 다시 돌아가기로 합니다.
엄니에게는 유명한 센본 토리이를 보여드리고 싶었을 뿐이니 더 무리할 필요는 없겠죠.
자주 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센본 토리이 안에서 사람이 파인더에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 극히 짧은 관계로
뭔가 기회만 생기면 후다닥 찍어버리려는 습관이 생겨버립니다.
이런 구조는 광각과 망원의 효과가 매우 극명하게 드러나는 특징이 있어서
어두운 망원렌즈로 찍으려면 대낮임에도 감도를 매우 높여야 하는 난점이 있네요.
ISO를 3200 까지 올려서 간신히 찍고 있습니다.
망원사진이 제일 안정적이고 유명한 곳이긴 해도 광각 역시 재미있습니다.
후시미까지 온 기념으로 엄니 사진도 남겨드려야죠. 뒷모습이긴 하지만.
이곳은 24시간 개방하기 때문에 홀로 여행이었다면 아마도 새벽이나 밤중에 산을 한바퀴 둘러보지 않았을까 싶네요.
여행의 목적 중에 평소 보기 힘든 그곳만의 독특함을 즐기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면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의 센본 토리이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각인시켜 줄 수 있는 강력한 볼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다시 입구쪽으로 내려오자 청명한 하늘 사이로 눈발이 날리더군요.
무슨 사고 회로의 발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맑은 하늘에 비나 눈이 내리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은 역시 성격의 차이일까요.
암튼 이런 날씨인 탓에, 몸을 추스려야 하는 엄니를 위해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내기로 합니다.
빨리 숙소에 돌아가서 푹 쉬어야 내일도 또 여행을 즐길 수 있겠죠.
쿄토가 대부분 그렇습니다만, 워낙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라 신사 앞 골목거리는 기념품점과 음식점이 즐비합니다.
가게에 들어가 진득히 앉아 먹기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이것저것 군것질을 해 봅니다.
요즘엔 한국에서도 많이 보입니다만, 일본에서 처음 봤을 땐 팥소 외에도 다른 걸 넣을 수 있구나 하고 신기해 하던 기억이 있네요.
카스타드 크림을 넣어서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의 붕어빵입니다. 사실 슈크림을 생각해 보면 이런 크림 붕어빵은 조금 이단이죠.
이 녀석을 보고 매우 그리운 마음에 덮썩 먹어봤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시골 장터 같은곳에서나 간간히 보이는 메추리 구이입니다.
일본어로 메추리를 뭐라 부르는지 몰랐습니다만, 저 고기 형태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메추리가 우즈라(ウズラ)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 수 있었죠.
한국과 달리 이곳의 메추리 구이는 머리까지 통째로 구워냅니다. 이걸 먹기 힘들어 하시는 분도 꽤 있긴 합니다만.
뼈를 발라낼 필요도 없이 그냥 씹어먹으면 됩니다. 워낙 작은 녀석이라 뼈 정도는 쉽게 씹을 수 있으니까요.
후시미에서 쿄토 역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밖에 없기 때문에
미리미리 버스 시간표를 확인해 놓고 무난히 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니의 몸 상태를 고려해서 내일 여행은 관광 버스를 타고 즐기는 1일 투어 코스를 선택하기로 합니다.
예약도 해 놓고 쿄토 역에서의 볼일을 모두 마친 후 숙소로 돌아갑니다.
쿄토는 전철이 별 의미가 없고 버스 정류장이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숙소가 있는 곳까지 버스를 타려면 좀 더 걸어가야 했네요.
엄니의 몸이 완전히 회복한 상태가 아니라서 사실 이 날은 하루종일 조마조마했습니다.
최대한 부담가지 않게 돌아다니려고 노력은 했는데, 쿄토 치고는 겨울 날씨가 꽤나 쌀쌀해서 조바심이 나더군요.
그래도 쿄토 역까지 왔으니 그 거대한 구조물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고 갑니다.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다가 요도바시 카메라 지하에 큰 슈퍼가 있어서
거기서 장도 좀 보고 돌아오는데, 길 앞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뭔가를 보고 가라고 광고중이셨습니다.
처음엔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인가 싶었는데, 어떤 문화재를 복원하고 있다고 하시며 관람 무료라고 꾸준히 설명중이라
흥미가 동해서 잠깐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쿄토 사람으로서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듯한 인상을 주더군요.
조그마한 전시장 안에는 2층 건물보다 조금 높은 크기의 거대한 배 모양의 마차같은 것이 놓여 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큰 녀석인데, 아무래도 축제에서 사용하는 신령 가마의 일종인 듯 하네요.
밖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던 아주머니께서는 구경중인 사람들에게 이 가마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하고 계십니다.
원래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녀석인데, 아무래도 근래 들어 실물 그림이 그려진 자료가 발견된 것 같네요.
잊혀진 옛 가마를 다시 복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굉장히 기쁘게 설명중이라 살짝 부럽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실제 복원 예상도는 이렇습니다.
요즘 축제에 사용하는 신령 가마와는 달리 좀 심각하게 큰 녀석이라 이걸 옮기는 것도 큰일이겠구나 싶네요.
축제에서는 소나 말 등 동물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힘만으로 가마를 옮기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가마의 크기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만, 이 녀석은 역사적 재현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 덩치 합니다.
기본 골격은 완성했지만 장식하는 것도 보통 손이 가는 일이 아니라 아직 완성도는 높은 편이 아니네요.
아마도 올해 아니면 내년 축제 즈음엔 실제로 공개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주머니 설명을 얼핏 들어보면 이것도 교토 시의 재정지원과 함께 마을 주민들의 모금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하는데
문화재에 대한 애착과 복원 능력을 보면 괜스레 한국의 그 개똥같은 문화제 관리 능력이 생각나서 착잡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숙소에 짐 풀어놓고 저녁식사 생각을 해 보는데
맛있는거 먹으려고 이곳저곳 찾아다니기엔 역시 엄니의 체력이 걱정되는 터라
그냥 숙소에서 5분 정도 떨어진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해결하기로 합니다.
일본의 패밀리 레스토랑은 요리가 아주 잘 되었다는 느낌까지는 아니라도
적당한 재료로 속에 부담가지 않게 만들어 오는 정도는 되기 때문에 괜찮을 듯 싶네요.
이런 패밀리 레스토랑은, 한국사람 입장에서 1인분짜리 적혀있는 것만 먹으면 양이 좀 적습니다.
세트로 하면 저렴한 메뉴가 있어서 세트 하나에 스테이크 하나 해서 2.5 인분 정도로 주문했네요.
한국 돈으로 6800원 정도 하는 스파게티인데, 이런 걸 먹을 때마다 요즘 한국의 물가가 일본보다 더 비싼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런 곳에서도 고기로만 구워낸 정통 스테이크를 주문할 수 있지만
경양식점에 가까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왠지 햄버그 스테이크 형식의 이런 녀석이 더 어울리는 느낌이 드네요.
물론 다진 고기와 야채에다 소스를 섞어 버무린 녀석이라 아이들 입맛에 좀 더 어울리기는 합니다.
철판 위에서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는 옆의 해산물 야채는 스테이크와는 다른 맛과 향기 덕에 다양함을 즐기기에 좋았네요.
사진으로 보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 싶겠지만 사실 이건 사진이 가지는 마술적인 트릭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저 스테이크는 제 손바닥 절반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으니, 저 같은 덩치는 여기 나온 거 전부 다 먹어도 그닥 배부르지 않죠.
스파게티와 세트로 나온 그릴 치킨과 각종 야채 철판구이입니다.
소스는 인도식 카레 비슷한 걸로 선택했는데, 일본식 카레와는 맛이 전혀 달라서 향신료 역할을 톡톡히 하더군요.
종류를 다양하게 먹고 싶었을 뿐이니 엄니와 저는 서로서로 스파게티도 덜어주고 고기고 썰어주고 하면서 전부 돌아가며 맛을 봤습니다.
엄니 입맛에 크게 만족스러울 리는 없는 식단이지만, 재료의 기본 질은 확실히 한국보다 나아서 먹을 만 합니다.
한국 외식의 가장 큰 문제는 떨어지는 재료를 갖고 단점을 감추기 위해 과도한 조미료를 쓴다는 점이죠.
슈퍼에서 봐 온 장으로 저녁에 또 한번 보이차 파티를 벌였습니다.
오른쪽의 와사비 완두콩은 차 마실때 매우 요긴한 간식거리로 집에서도 많이 먹는데
일본의 할인마트에서 직접 구입하니 한국의 수입품 코너에서 파는 가격의 1/5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엄니께서 내일 다시 가서 많이많이 사 가야겠다고 하시네요.
펼쳐진 다기 세트를 보니 지금 외국에 여행온거 맞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만
이렇게 낯선 곳에서 익숙한 도구로 차를 우려 마시니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네요.
다행히 엄니께서는 어제보다 많이 나아지신 듯 하지만, 몸이 아프니 빨리 피곤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내일은 버스 타고 있으면 알아서 관광지에 데려다 주니까 조금 더 편안한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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