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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다'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08.28  과거로의 여행 - 리틀 쿄토 7
  2. 2013.08.26  과거로의 여행 - 히다 타카야마로 8

 

얼마 걷지 않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부분이 보인다. 아마 이곳을 찾으려면 지도 없어도 행렬만 따라가면 될 듯.

오랜만에 보는 일본의 '옛 마을거리' 모습이다. 교토에 가봤다면 비슷한 건물이나 짧은 마을거리는 볼 수 있었겠지만

규모와 완성도면에선 이 정도 거리를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곳은 국가 중요 보호지구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니까.

 

옛날 일본의 마을이 전부 이런 모습은 아니고, 원래 이런 형태는 쇼군의 성이나 도시의 주요 시설 등에서 직선으로 뻗어나온

숙박 시설과 상가가 밀집한 지역의 모습이다. 바닥이 콘크리트로 바뀌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약 300여년 전의 모습을 잘 간직한 편.

 

물론 부유한 도시야 이 정도로 잘 가꾸어졌지만 사실 이 거리의 건물들은 보수를 너부 잘해놔서 깔끔하기 그지없다.

나무에 옻칠을 열심히 해서 벌레를 방지하긴 했지만, 예전의 건물이 이 정도로 깔끔하진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아주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 정말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해놨다간

어디 제대로 들어가 식사 한끼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발생될 수도 있고, 이곳 주민들의 거주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군데군데 슬쩍 현대식 증축이 이루어지고는 있다. 처음 보는 외국인들에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세심히 하긴 했다.

 

아침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그래도 타카야마에서는 좀 도움이 될지도'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이 사진들의 결과물에 트러난다.

이런 옛 마을거리는, 원래부터 오래된 목재를 사용하는데다가 거기다 옻칠을 몇 번이고 더해서 상당히 시커먼 모습이다.

상점가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될만큼 처마나 지붕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그림자도 매우 잘 생기고.

그러다보니 날씨 쨍한날에 가서 사진 찍으면, 카메라의 관용도를 훨씬 능가해 버리는 강한 명암대비가 생겨나 버린다.

 

푸른 하늘을 살리자면 건물이 전부 시커멓게 변하고, 건물의 색을 살리자면 하늘은 순백색이 되어버린다.

특히, 해의 방향이 일정한 쪽을 가리키고 있으면 한쪽 거리는 화사하게 잘 보이고 나머지 한쪽은 어둠속에 잠겨버리기도 하고.

이번 카메라의 관용도는 필름을 능가할 정도로 넓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JPG 파일만으로 암부와 명부를 살리기엔 벅차서

RAW 촬영후 좀 어색할 정도로 보정을 가해서 양쪽을 모두 살려봤다. 위의 두 장이 보정을 강하게 한 녀석과 적당히 한 녀석.

 

이런 식으로 보정하면 HDR 같은 결과물이 나오는데, 본인은 HDR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그렇게 마음에 든다고는 할 수 없다.

 

 

 

비교를 위해서 '진짜 옛 마을거리'의 비오던 날 사진을 올려본다. 화창한 날씨보다 안개낀 날씨가 더 어울리는 마을.

철도도 없이 자동차로만 갈 수 있는 나가노현 깊숙한 오지의 옛 마을거리 츠마고쥬쿠(妻籠宿)라는 곳이다.

 

옛날 수도였던 쿄토와 도쿄를 잇는 길은, 해안선을 따르는 토카이도(東海道)와 중앙 산맥의 골짜기를 따라서 나 있는 나카센도(中仙道)가 있었는데

나카센도는 현재 자동차로 지나가기에도 굉장히 험한 산세를 자랑하는 협곡 사이에 난 길이었기에

그 긴 거리를 가는 동안 중간중간 산골 마을에 역참과 같은 장소를 지어서, 숙박과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형성이 되었다.

나가노현의 이런 마을거리는 바로 그런 중간경유지의 역할을 했던 장소.

 

이런 곳을 방문해 보면, 옛날엔 대체 어떻게 이런 산길을 지나서 쿄토와 도쿄를 왕복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단순한 여행 목적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상인들이나 영주의 명을 받들어 출발하는 고관직들이 십수 명의 하인들과 함께 지나다녔는데

내가 신세졌던 작은 마을에는 1년에 한 번씩 그 관료들의 출정식을 재현하는 축제를 열기도 한다.

무사계급이 걸어서 갔을리는 없고, 말을 타고 나카센도를 넘나들었는데, 짐을 매고 따라가는 하인들의 수고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카센도의 길은 그 절경만큼이나 험하기로 유명했다.

 

이곳과 그 앞의 역참마을 마고메쥬쿠(馬籠宿)간의 거리는 8km 정도인데, 아직까지 그 두곳을 걸어서 이동해 볼수 있다.

등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한 때를 보낼수 있을만한 절경중의 절경이고, 실제로 나카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통한다.

마고메쥬쿠라는 단어는, 말조차 통과할 수 없어서 그곳 역참에다가 놔두고 간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지만.

 

햇살 쨍쨍한 타카야마의 거리가 내 마음을 소문만큼 움직이지 못했던 이유를, 이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으려나.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타카야마의 거리로 시선을 넘긴다.

이곳은 역참마을이 아니라 성 주변으로 세워진 상가거리였고, 특히 양조장이 유명한 곳이었다.

 

타카야마가 비록 산 속의 오지이긴 해도, 사실상 면적만으로는 일본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게 깜짝 포인트인데

해발 3000 미터가 넘는 산이 포함되는 이곳 타카야마시의 면적은 서울의 3배가 넘는다.

하지만 대부분이 산이고 인구는 10만명도 안된다는 점 역시 재미있다.

 

천해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어서, 자연환경 역시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는 요즘엔 더욱 빛을 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관광객을 위한 세심한 손길이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거리의 풍경인데, 이게 이 사람들에게는 수백년간 이어온 생활의 일부분이라

손님맞이와 접대에 있어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게 장점이라고 느껴진다.

 

 

 

앞서 말했듯이 물이 풍부하고 깨끗한 곳이라 거리 사이엔 항상 물이 흐른다.

거리쪽이 젖어있는게 보이는데, 이건 더운 날씨탓에 가게 주인들이 틈 날 때마다 바가지로 이곳 물을 퍼서 거리를 식히기 때문.

 

그러고보니 일본을 왔다갔다 하는게 워낙 익숙해져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내게 큰 인상을 주었던 것이, 이렇게 마을 안을 흐르는 깨끗한 수로의 풍경이었다는게 생각난다.

지금은 충분히 더러워져 버린 경북 보현산 자락의 작은 마을은 아버지의 고향인데

80년대 중후반 까지만 해도 그곳 산기슭에서 내려오는 개울가에서는, 바위만 들쳐도 가재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한 시간 정도만 힘좀 써도 그날 저녁엔 짭쪼름한 민물가재찜을 한솥 가득 뜯어먹을 수 있었다.

 

같은 시간이 흘렀지만 왜 보현산 자락의 개울가는 악취나는 똥물로 바뀌었고, 이곳 타카야마는 여전히 맑고 깨끗한 것인가.

이곳 타카야마가 도시 규모도 월등히 크고, 인구도 많다. 보현산 자락은 예전부터 손꼽히는 청정지역이었다.

 

철들기 전부터 시커먼 도시 먼지에 뒤덮혀 살았던 나는,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곳을 한국에서는 죄다 잃어버리고

일본의 산골 마을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 자연 경관이나 사람들의 친절함이나 모두 다 말이다.

그래서 일본을 그리워하며 찾아가곤 하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정신의 뿌리에 괴리감을 느끼고 씁쓸한 감정을 떠올리곤 한다.

 

 

 

도쿄같은 대도시에도 남아있으니, 이런 곳에 인력거꾼이 있다고 이상할 거 하나도 없지만

이번에는 타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두 가지 의문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다.

 

첫째로, 이곳 옛 마을 거리는 그렇게 길이가 길지 않다. 느긋하게 걸어서도 5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간다.

거기를 인력거에 타고 움직이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물론 인력거꾼은 이곳 토박이라서 아주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니까 좋긴 하지만.

둘째로, 아무리 돈을 지불한다지만 36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사람이 끄는 인력거에 탄다는 것은

미안해서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할 것임에 틀림없는데... 두 명이서 타는 관광객들은 과연 편안하게 앉아는 있을까 싶다.

 

쉬고있는 인력거꾼을 보면 정말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는데, 60즈음 되어보이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50대 초반의 아주머니 인력거꾼도 있다.

얼핏얼핏 지나가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건물 사이사이에 붙여있는 문양에 대한 설명까지 아주 세세하게 잘 설명을 하고 계신다.

이런 더위에 긴 거리를 달리기도 좀 그렇고, 이곳의 인력거란 재미있는 탈것이 아니라 실력좋은 가이드 역할이 주가 되는 듯 하다.

 

흥미가 동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확실히 비싼 편이고, 본인의 덩치를 생각하면 미안해서 도저히 앉아있을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아파트에서도 여건만 된다면 이렇게 식물 블라인드를 만들고 싶다.

전통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2008년 경부터 일본에서는 도시의 주택이나 빌라같은 곳에서도 이런 식물 블라인드가 유행했다.

자연과 가까워진다는 심리적인 요인도 있었고, 실제로 실내온도가 꽤나 내려가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고풍스러운 거리의 덩쿨은, 한낮의 더위 아래에서도 뿌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도시에서 자란 본인이 이런 모습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되려 도시에서 태어나서 좋은 점도 있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길지 않은 거리지만 여관, 식당 외에도 향토박물관 고미술관 등의 볼거리 역시 곳곳에 숨어있다.

물론 입장료도 나가고 대부분이 철저하게 사진촬영 금지라서 나에게는 조금 멀게 느껴진다.

 

시간도 남고 날씨도 덥고 돈도 널널한 현 상황이라면 찻집에라도 들어가 여유를 만끽하는게 지극히 정상적인 방법이겠지만

벌써부터 관광객이 상당히 많이 몰리고, 몇몇 가게 앞에서는 대기열까지 만들어진 상황이라서

고질적인 대인기피증이 또 발을 잡아끈다. 옛 정취 풍기는 찻집에서 사람에 치여가며 차를 즐기는 본인의 모습은 상상이 안된다.

 

 

 

30년동안 봐 왔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한자로 보이지가 않는 녀석이다.

한국어 발음도 한동안 기억을 하지 못해 애를 먹었고, 일본 가서도 이거 발음 어떻게 하는가 싶어서 고심하던 글자.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반을 차지하는 이곳 타카야마인데, 아무래도 저 한자가 가운데 손가락으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이름이 재미있어서 한번 들어가볼까 싶었는데, 사진촬영 금지라고 딱 붙여와서 흥미가 식는다.

설사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해도, 기념품점에 저런게 붙어있으면 그냥 애정이 사라지는 기분.

어차피 기념품 살 생각도 전혀 없기 때문에, 재미있는 간판만 한 장 찍고 길을 나선다. 설마 간판은 찍어도 되겠지.

 

혹시나 궁금해 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데코보코'라고 읽는다.

 

 

 

나고야에서 유명한 먹거리라면 지역 토종닭인 코친이 있다고 예전에 적은적이 있는데

이곳 히다 고원 지역에서는 소가 유명하다. 히다 고원의 기후와 맑은 물이 방목에 적합하다고.

일본 3대 소고기라고 하면 보통 코베(神戸), 마츠자카(松坂), 히다(飛騨) 소고기를 꼽는다.

 

이곳의 특산품인 히다규(牛)는 한국의 한우와 비슷하게 마블링이 예술이며, 특히 지방층이 사슴의 모습처럼 새겨져 있는 녀석을 최고로 친다.

스테이크와는 안 맞다는 마블링 소의 편견을 깨고, 절묘하게 숙성된 두꺼운 고기를 세심한 타이밍으로 구워 만드는 히다규 스테이크가 유명하다.

 

소고기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곳 히다 고원은 물이 깨끗하기로는 일본에서 알아주는 곳이라

당연히 양조장도 발달해 있다. 좋은 술은 좋은 물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산속 마을이다보니 여전히 전통주쪽에 강세를 보이는데, 위의 거대한 덩어리가 양조장임을 표시하는 간판이 된다.

 

스기타마(杉玉)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말 그대로 삼나무 잎을 뭉쳐서 만드는데

올해의 술이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처음엔 삼나무의 푸른색을 띄지만 시간의 경과와 함께 저렇게 색이 바랜다.

당연히 술의 숙성시간도 예측할 수 있기에, 양조업자들에게는 희망과 기쁨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곳 거리에도 300년이 넘은 양조장들이 들어서 있는데, 무료 시음이 되는 곳도 있긴 하지만 술맛을 잘 모르니 패스.

이름만은 들어본 '귀신죽이기'(鬼殺し)라는 술도 있다. 귀신도 죽일만큼 독하고 매운 술이라고 한다.

맥주만으로도 충분한 내가 그런거 시음한다고 맛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홀로 여행이란게 여러가지로 홀가분한 점이 있지만, 이런 점에서 살짝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조금 취향이 다른 사람과 함께 온다면, 저런 전통주에 관심을 가지고 마셔보는 사람 옆에서 대리체험도 느껴볼 수 있을테니까.

 

 

 

기념품점, 음식점, 찻집, 여관 등으로 가득한 거리라서

자꾸 어디 한 군데 정도는 들어가서 구경해봐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조바심 비슷한 감정도 들지만

미관을 해치지 않는 소박한 장식들이 워낙 잘 배열되어 있어, 그것만 구경해도 눈이 즐거울 정도다.

 

대도시 한가운데니 비교하기에는 급이 맞지 않지만, 인사동의 미관이 어떻게 되어가는가를 생각하면

아무리 유명해져도 결코 선을 넘지 않는 이런 거리의 분위기가 그저 부러워질 따름이다.

 

 

 

옛날 거리를 빠져나오니 주인 잃은 인력거가 덩그러니 구석에 놓여있다.

힘든 가이드를 마치고 잠깐 쉬러 간 걸까. 뒤에 걸린 모자가 그 고단함과 함께 휴식의 감미로움을 동시에 상기시켜주는 듯 하다.

 

애초에 이 거리는 저런 인력거가 등장하기도 전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묘하게 어색하긴 하다.

인력거가 흥행했던 건 100여년 전 메이지 시대였는데, 이곳의 풍경은 넉넉잡아 300여년 전의 모습이기 때문에.

 

정말 느긋하게 걸어도 10분이면 통과할만한 거리라서 약간 허탈한 느낌도 든다.

상기했던 것처럼 맑고 쨍한 날씨에 어울리는 분위기도 아니긴 하고.

그래서 안개낀 날이나 눈이 쌓인 겨울에 더욱 인기가 많아지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런 풍경을 즐기면서도 배가 덜 부른 불평이나 하는 자신을 살짝 힐난하면서, 방금 지나왔던 옛 거리의 뒷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상하좌우 전부다, 그것도 내부까지 수백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사실 앞서 지나온 옛 거리도 뒷부분은 평범한 근대식 주택의 모양을 하고 있다.

 

되려 타카야마 정도의 도시에서는,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할까.

정말 산골짜기에 위치한 츠마고쥬쿠 같은 역참마을은 겉과 속 할것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이지만

타카야마에서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바로 옆의 현대식 마을과 불협화음을 이루는게 아닐까 싶기 때문에.

 

 

 

일부러 가꾸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잘 큰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 풍경.

물이 깨끗하지 않은 곳 주변의 나무나 잡초들은, 자연의 일부이긴 하지만 결코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람과 맞닿아 있는 자연의 건강 척도는 자정 작용의 범위를 넘어서는가 마는가가 중요한 경계선이 된다.

관리하지 않으면 죽어버리고 썩어버리는 물. 그걸 자연이라고 개천이라고 할 수 있나?

 

별로 동하지 않는 기분으로 여행을 왔어도, 이런 모습이 보이기만 하면 일단 보람은 충분히 느낀다.

이런 곳에서는 너무 많이 자란 수풀을 가을즈음에 확 잘라내 버리는데, 그것조차 기분좋게 머리 깎는 수준으로 느껴지니

당연히 누려왔고 앞으로도 누렸어야 할 이런 풍경은 이제 관광지와 같은 희소성을 지니게 된 것일까. 즐거운 일은 아니다.

 

 

 

타카야마에는 이런 옛 거리가 세 군데 존재한다. 전부 가까워서 둘러보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데

지금은 돌아가면서 코쿠분지(国分寺)라는 사찰만 구경하고, 저녁노을이 멋들어질 무렵에 다시 거기를 걸어볼까 한다.

 

여행중 기념품을 거의 사지 않는 성격이라서 그냥 밖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데

역시 쇼핑이나 구경에 관심있는 일행이 함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듯 하다.

본인은 엄니가 백화점서 옷 구경하는 것도 그리 지루해하지 않는 타입이라.

 

 

 

아담하고 조그만 가게도 많은 반면 100평은 가볍게 넘어보이는 큰 건물에, 기념품과 식당 등을 모두 차려놓은 가게도 있다.

 

관광객들이 보고 돌아가는 타카야마는 사실 마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쿄토같은 본토 사람들도 무지하게 많이 찾아서 좀 어지러운 곳보다, 외국인 응대가 뛰어난 이런 산골마을에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들다보니

2007년 일본 최초로 미슐랭 여행 가이드 별 3개를 획득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좀 많다 싶을 정도의 가게들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미슐랭 가이드란게, 가보면 황홀해서 두 다리로 서있기도 힘든 임팩트를 주는 그런 척도가 아닌 터라

동양인이 너무 기대하고 갔다가는 좀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유후인도 그렇고 이곳도 그렇고, 주위에 온천 풍부하고 공기좋고 건물 깔끔하고 음식 맛있고 사람들 인심 좋은 곳이라

하루이틀 볼거리만 찾아다니며 관광을 즐겨서는 완전히 느끼지 못할 느긋함이라는게 존재하는 곳이다.

여행경비 생각에 자꾸만 초초해지는 마음도 이해가 되는데, 이런 곳에서는 구경이라는 행위보다 감상이라는 행위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카메라 전원도 끄고, 왔던길 주변을 한참 서성이면서 멍하니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흑백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전통 가옥 너머로 보이는, 파괴적일 정도로 쑥쑥 자라나는 초목들의 조합은

그 밀도만큼은 도시의 빌딩숲과 사이사이 달리는 전철이 가지는 빡빡함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단지 향기가 다를 뿐.

 

7시 반쯤 빗소리에 잠을 깰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베낭여행중 지역을 이동하는데 비가 오면 꽤나 귀찮다. 짐이 많은데다가 우산이 없으니.

당시 한국이나 일본이나 워낙 덥고 기후가 불안정해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시원하게 쏟아붓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홀딱 젖은 모습으로 버스를 타면 민폐가 아닐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8시 반에 조식먹으러 내려가니 왠걸 비는 그냥 맞아도 될 만큼 부슬거리고 있다.

변화무쌍한 날씨는 이래서 좋은 점도 있는걸까. 덥기는 무지하게 덥고 습도가 높아서 이상적이지 않지만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게 없다. 특히 지금 향하는 타카야마는 날씨가 흐린편이 더 나을수도 있는 풍경이다.

 

10시 셔틀버스 타고 나고야역에 도착. 버스 출발이 10시 45분이라서 시간은 좀 남아있다.

다행히도 비는 완전히 그치고 불쾌한 습도만이 아스팔트를 매우고 있지만, 이것만 해도 어딘가.

 

 

 

나고야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역사 내부에 맥도날드가 있긴 하지만

아침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도저히 이 짐을 들고 앉아있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고야역은 새벽이나 한밤중 말고는 정말 조용할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데, 서울역 정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일본 대도시의 맥도날드, 특히 역 앞의 맥은 조금만 덩치 큰 사람이라면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좌석이 좁아서

40L 짜리 베낭과 커다란 카메라용 사이드백을 짊어진 내가 들어가는건 아무래도 큰 모험이다.

 

그냥 버스 터미널 앞에서 땀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분수대가 있는 넓은 광장 앞에 비둘기들이 잔뜩 모여있다.

도시 비둘기들은 인간 홈리스들과 별로 다를바가 없는 생활을 하는 터라 좀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요즘 덥기도 무지 덥고.

사람들 찍는건 조심하게 되지만 이녀석들이야 찍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테니 움직이기 힘든 몸을 뒤척여서 카메라를 꺼낸다.

 

도시 비둘기들은 먹고자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고 포식자에게 습격당할 염려가 없어서 느긋하긴 하지만

그와 걸맞는 부담도 당연히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사람하고 별로 다를게 없다.

 

 

 

이런 길바닥에서 생활하다 보니 사람들이 보기에도 지저분해 보이는 건 어쩔수가 없고

매일 37도를 넘나드는 폭연 속의 도시는 이들에게 결코 안락한 휴식처가 아니다.

습성이 무디어진 이 녀석들은 의외로 자동차나 사람에게 자주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걸어다니는 일이 많아서인지 발을 다치는 경우도 많다.

 

한동안 녀석들 관찰하다 보니 몇몇의 앉아있는 자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앉을때도 아픈 사람과 마찬가지로 조심조심하여 간신히 앉는데, 한쪽으로 기울어져 앉는다는건 다리를 다쳤다는 의미.

사람이 어지간히 가까이 가도 경계의 눈빛만 보내며 움직이지 않고, 아무 관심없는 사람이 정면으로 걸어와야 간신히 절뚝거리며 이동한다.

 

이 녀석들의 앉은 자세를 보고 일부러 비켜 걸어가줄 도시 사람이란 게 그리 많지는 않을 듯.

나처럼 지네들 사진이나 찍어대고 있는 여유넘치는 여행자들이나 신경써 주겠지.

 

 

 

이녀석들의 낮과 밤이 어떤 사이클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냥 광장에서 노는 시간인가보다.

대부분의 비둘기들이 그냥 훌렁훌렁 걸어다니며 시간만 때우고 있는 느낌이 든다.

 

사람 무서워하지 않는 건 도시 조류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이 녀석들 털 상태를 보면 사람이 알아서 피하게 되는걸 보면, 이것도 나름의 보호색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유난히 앉은 자세가 이상한 녀석이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한 녀석이 와서 털을 골라준다.

비둘기들끼리도 정이란게 있는지, 참 뿌듯한 광경이다 싶어서 찍어대고 있는데

옆에서 눈매 사나운 녀석이 달려들더니 쓰러지듯 앉아있는 녀석을 사정없이 쪼아댄다. 이건 털 골라주는 것과 틀리다.

비틀거리면서도 간신히 도망가는데, 일정 거리만큼 쫓아가며 쪼아대던 녀석은 화가 풀리지 않는듯 주위를 멤돈다.

 

대체 저 녀석들 사이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먹이 쟁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영역 싸움이라기엔 주위에 다른 비둘기도 많은데.

단순히 약자에게 더욱 사나운 동물적 본능이 발현된 것일까.

 

조류는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어떻게든 형제들과 경쟁하며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강하고

어미 역시 도태되었다고 생각되는 새끼에겐 먹이도 주지 않고 죽게 내버려두는게 대부분이긴 하다.

 

 

 

아직 날렵하게 생긴 그 깡패 비둘기가 유유히 고여있는 물을 마신다.

물론 괴롭히던 녀석이 그 주위에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옆에 다른 비둘기가 물 마시러 오자 은근히 싸움걸려는 움직임을 취하는 걸 보니, 그냥 성격이 더러운 뿐인가 보다.

도시 비둘기들에겐 식수 공급이 먹이 공급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비가 한번 쏟아지고 나면 사람보다는 기분이 좋을듯 하다.

 

 

 

가장 오른쪽 녀석이 발을 절뚝거리는 놈이고, 그 옆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녀석이 깡패 비둘기.

일부러 쫓아다니면서 괴롭히고 있다. 대체 뭐 하자는 플레이인지.

그렇다고 내가 일부러 가서 방해할 수도 없다. 괴롭힘 당하는 고양이라면 몰라도 비둘기는.

 

예전 회사다닐때 사무실 앞에서 새끼 고냥이를 괴롭히는 동네 어른고양이가 있어서

신나게 괴롭히고 있을때 확 뛰쳐나가 둘을 떼어놨더니, 신기하게도 괴롭힘 당하던 새끼 고양이가 사무실 앞에서 터를 잡고

내가 나오면 반갑게 얼굴을 비벼대던 기억이 난다. 분명 길고양이인데 내가 자기를 도와줬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 행동을 해서

동물이라도 역시 머리는 돌아가는구나 감탄하곤 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아무래도 그 정도는 아닌듯 하고.

 

 

 

아, 물론 비둘기는 사실 상당히 머리가 좋은 새다.

수백년 전부터 전서구로 이용했던 만큼, 장소 찾아가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그래서 질리지도 않고 내 방앞 베란다에 찾아와서 똥을 갈기는 녀석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제대로 전서구로 키워진 비둘기는 그 애교가 강아지나 고양이 맞먹는다.

일본엔 아직 전서구 대회가 있어서, 얼마나 멀리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정확하게 돌아오는가를 겨루고 있고

그 대회에 나가는 비둘기를 키우는 사람들은 거의 가족 수준으로 그들과 교감을 한다고 한다.

 

위 녀석은 아주 가죽 자캣 걸치고 할리 데이비슨을 몰 법한 패션을 하고 있다.

더럽긴 똑같이 더러워도 왠지 야성적이라고 할까, 나름 멋을 좀 부릴 줄 아는 녀석인 듯 하다.

 

 

 

비둘기 신나게 찍고 있으니 버스가 도착해서 타카야마로 향한다.

거진 세 시간은 걸릴 만큼 꽤나 떨어진 곳이라, 심심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타카야마(高山)는 이름 그대로, 나가노현을 중심으로 일본의 척추형태로 뻗어나가는 중앙알프스 산맥의 언저리에 위치한 마을로

절경으로 유명한 히다(飛騨)고원지대와 함께 묶어서 히다 타카야마라고 불리는 유명한 관광지.

나고야는 바다에 인접한 낮은 평야지대인데, 거기서 타카야마로 가다 보니 느긋한 경사로 끝도없이 올라간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는 사진은, 어지간해서는 만족할만한 화질이 나오지 않고 순간의 풍경 담기에도 힘들어서

가방에서 카메라를 잘 꺼내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몇 번이나 몸이 움찔움찔한다.

 

가뜩이나 높은 곳으로 향하는데다가, 산맥을 따라서 꼬물꼬물 달리기는 힘들다 보니 아예 고가도로를 만들어 놓았으니

나무에 가려있던 시야가 넓어지는 단 몇초간의 찰나에 들어오는 풍경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정말로 몇 초만 살짝살짝 보였다가 다시 숲과 나무에 가려버리는 탓에

그 절경을 눈으로 감상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한데, 카메라를 꺼내서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사치는 좀처럼 행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버스 안에서 카메라 꺼내지 않는 나로서도 그냥은 참고 넘길수가 없어서

그 몇초간의 풍경 사이사이에서 조금씩이나마 사진을 남기고 만다.

 

하지만 진짜 입벌려지는 경치는 대부분 셔터 누르는 것도 잊어버리고 눈으로만 감상하다보니

찍혀있는 사진은 그 풍경의 1/10 정도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그냥 그렇고 그런 사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찍고나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터를 누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고야에서 히다 타카야마로 가는 버스 안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해가 될런지.

 

여행중 2시간 30분의 버스 이동은 그리 반갑지 않은 시간인게 대부분이지만

이번에는 버스가 좀 더 천천히 달려줬으면 하는 바램이 생길 정도로 창 밖의 풍경은 훌륭하다.

자연 사이사이로 보이는 잘 정비된 도로와 깔끔한 농가들의 조합은, 내가 생각해 왔던 이상적인 농촌 풍경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물론 풍경이 그대로 예술이 되는 유럽 산간지방의 가옥들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 현대화된 곳에서 이 정도의 풍경을 유지한다는 건 충분히 칭찬할 만 하다.

 

 

 

원래부터 히다 고원이라는 곳이 관광버스를 타고 느긋하게 산봉우리 사이를 달리는 코스가 있을 정도로

풍경 하나는 기가 막히는 곳이라서, 이제까지 '특정 목적지가 아닌 버스만 타고 풍경 돌아보는 관광 상품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생각했던

본인 지식의 얄팍함이 부끄러워지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정에 없던 히다 고원 버스 투어까지 즐길만한 시간이 없어서

그냥 일반 버스의 창가에서 가끔 보이는 풍경만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타카야마에 도착하니 살짝 유후인에서의 느낌이 묻어나는 듯한 주위 풍경에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사실 역 정면엔 이런 작은 산골마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식 호텔이 넘쳐나고 있지만

그런 걸 제외하면 사람 편안하게 하는 마을이라는데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느낌이다.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추억이 서려있는 그때 그 장소에 다가가고 있다는 상념 탓에, 순수하게 풍경만을 즐기기가 어렵다.

더위는 나고야와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습도가 낮은 건지 공기가 깨끗해서 그런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

 

 

 

타카야마가 유명한 관광지라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는것이, 왠만한 도시 수준으로 호텔이 아주 그득하다.

온통 해발 2천미터 가까운 산으로 둘러싸인 고지 마을 안에 이런 풍경이 늘어서 있다는 것은

이 곳이 본인의 가벼운 생각보다 훨씬 더 이름있는 곳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호텔이 너무 많아서 파리날리는거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 당일 호텔예약을 잡기가 힘들 정도로 관광객이 넘쳐난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의 밀도만으로 따지자면 나고야보다 훨씬 더 심할 정도로, 역 앞엔 서양 베낭족들이 진을 치고 있다.

 

 

 

중앙알프스 주변이 다들 그렇듯, 원래는 기차편도 그리 많지 않은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허름한 역사와 달리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수는 굉장하다. 이동성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역 앞 안내소에는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한국어 등등 외국인을 위한 팜플렛이 매우 상세하게 전시되어 있고

일본인들의 평균에 비하면 월등한 실력의 가이드들이 어렵지 않게 외국인들에게 뭔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 옆에는 '오늘 비어있는 호텔을 찾아드립니다' 라는 문구의 안내판도 걸려 있다.

 

허름한 역 주변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을 위한,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심이 물씬 풍기는 이곳 분위기는

충분히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오만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은, 시골 마을의 인심을 아직까지 간직한 곳이라고 느껴진다.

이 곳의 별명은 '리틀 쿄토'인데, 적어도 역 앞의 진철함에 있어서만은 쿄토 인심을 능가하지 않나 생각한다.

 

사실 쿄토 인심이란게, 같은 일본인 사이에서도 거만하고 평판 안좋기로 유명하긴 하다만.

 

 

 

이곳에서 묵을 숙소는 '슈퍼 호텔'이라는 비지니스 체인점. 토요코 인과 더불더 일본의 양대 비지니스 체인이다.

후발 주자라서 지점 수는 토요코 인에 많이 밀리지만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한창 입지를 키워가고 있는 곳.

 

공교롭게도 이곳에는 토요코 인이 없어서 나에겐 선택권이 별로 없었다.

관광지의 호텔이란게, 안심할 만한 곳이라면 꽤나 가격이 비싸고

지역 토산의 관광 저렴한 호텔을 잘못 선택하면 거의 여관이나 다름없는 허름한 곳에 당첨될 위험성도 있어서

확실히 안정된 가격에 일정 수준의 신뢰할만한 청결도를 갖춘 비지니스 체인을 이용하는게 마음이 편하다.

 

이곳 슈퍼호텔은 거의 3개월 전에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방이 없어서 고생하지도 않았고.

이 정도 규모에 관광지가 아닌 일반적인 마을이라면, 편의점 하나 찾는데도 발품 좀 팔아야 하는데, 여긴 그럴 염려는 없다.

거의 외국인 관광객이 절반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많은데

지금 이 시간대는 다들 역 앞에 도착해서 숙소 찾으러 뿔뿔히 돌아다니는 모습이다.

 

바로 앞에 걸어가는 한국인 관광객 3명도 뭐라뭐라 지도를 봐 가면서 숙소를 찾아가는 듯 한데

가는 방향은 나와 같았지만 슈퍼 호텔에 예약한 건 아닌듯 그냥 지나친다. 하긴 1인실이 대부분인 비지니스 호텔에 그런 일행이 들어갈 일은 별로 없긴 하다.

 

 

 

역에서 5분 거리인 슈퍼호텔에 도착하니 2시가 좀 넘는다. 체크인은 3시부터라서 일단 짐만 맡기고 밖으로 나간다.

리틀 쿄토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관광지이지만, 사실 본인이 여기 온 것은 관광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가 워낙에 산골 중의 산골이라서, 이곳에서 버스를 타는게 그나마 편하기 때문.

 

그 전에 여기서 버스하고 50분쯤 달리면 갈 수 있는, 이번 여행의 제대로 된 관광 목적지인 시라카와고(白川郷)가 더 끌린다.

나고야에서 바로 시라카와고로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리기 때문에, 그곳에 가기 위한 전초기지로 이곳을 선택했을 뿐.

 

그래서 별로 힘내서 관광하러 다닐 생각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낮부터 호텔에 처박히는건 미친 짓이기 때문에

기대감에서 오는 부담이란 것도 없이 훌렁훌렁 유명하다는 장소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이곳은 '옛날 마을 거리'라고 이름붙여진, 말 그대로 예전 성곽마을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거리가 유명하다.

사실 이런 북적이는 관광지에서 조성된 예전 거리란, 진짜 예전 거리와는 좀 거리가 있는 편이라

이런 걸 처음 경험하거나, 서양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겐 신선하고 재미있는 볼거리이지만

본인은 예전 자전거 여행때, 여기보다 훨씬 오래되고 정말로 외관을 그대로 간직한 산골마을의 옛 거리를 몇번 다녀와 봤기 때문에

이곳의 옛 거리라는 건 애초에 크게 기대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보러가는데 먼저 실망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 모습을 봤을 때 내 머릿속에서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지는 대강 감이 잡힌다.

그런 풍경을 이곳에서 처음 봤다면 그것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겠지만, 불행히도 나에겐 이 타카야마 역시 너무 새것같은 마을이다.

 

 

 

물론 여기도 사람이 사는 마을이니 전부 다 옛날식으로 보존하긴 힘들다. 특히 관광지다보니.

아무리 옛 정취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도, 다들 도미토리 형식의 삐걱거리는 화장실 욕식 공용의 민숙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을테고

여관에 거하게 묵어가는 것 역시 가격대가 비싸거니와, 그래가지고서는 관광객 수요를 맞출수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최신 관광호텔과 예전 마을거리가 혼합되어서 편의를 봐 주고 있는 형태로 발전하는게 일반적.

 

일본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가노 산골 깊숙한 곳의 옛 마을 거리는

정말로 그 옛거리 한줄에 사는 백여 명의 토박이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서

본격적인 체험을 하고 싶다면 그런 곳에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지, 숙박시설도 정말 낡은 여관뿐인데다가

편의점은 커녕 6시 넘어서 물건 살수 있는곳도 없기 때문에 외국인은 한 시간에 한두 대씩 오는 전철로 이동할 수 밖에 없다는게 단점이긴 하다.

 

타카야마는 관광 스팟인 옛 마을 거리와 별개로, 60년대부터 조성된 상점가 거리도 잘 단장되어 있다.

역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길 옆으로 아담한 상점가들이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 이런 식으로 처마를 만들어 놓는게 특징.

 

관광지가 아닌 일반적인 마을에 가 보면, 요즘 이런 옛 상가들의 절반 정도는 셔터를 내리고 있어서

일본도 소도시 경제는 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타카야마에는 아직까지 문닫은 가게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왠지 생활 수준이 상당히 윤택할 것 같은 마을 분위기. 물론 이곳은 역을 중심으로 해서 유명 관광지가 몰려있는 방향이니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거주지이기도 하고, 좀 있어보이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타카야마 역 반대편엔 그다지 관광지가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거주 구역은 그곳이고, 거기엔 아담한 세모지붕의 주택가가 많다.

날씨가 참 좋아서 이곳저곳 다 둘러보기에 나쁘진 않지만 36도를 넘나드는 더위는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일단은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옛 거리를 한바퀴 둘러보고, 주변에 있는 사찰이나 찾아본 뒤 호텔로 돌아갈 예정.

 

오후에 잠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고 난 후, 조금이라도 서늘해 지고 난 뒤에 다시 나와볼 생각이다.

 

 

 

 

오사카 도톤보리가 이런 형태로 유명하긴 한데

물이 풍부한 마을의 대부분은 원래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곳은 시골 마을치고는 정비가 잘 되어있는 편이긴 하지만.

사실 강가쪽 가옥들의 모습은, 예를 들자면 손님한테는 보여주지 않는 식당의 주방과 같은 느낌이랄까.

지극히 프라이버시가 묻어나는 공간이라서, 이런 걸 담을때면 살짝 긴장하기도 한다. 물론 요즘에 와서야 그런거 없다.

 

이런 가옥들의 반대쪽은 깔끔하게 정돈된 가게라서, 이런 강가 뒷모습과는 차이가 좀 난다. 여긴 빨래도 널어놓았으니까.

도톤보리 같은 경우는 인공 운하이다 보니 처음부터 강가쪽 역시 유람선을 보고 즐기는 환락가였지만

이런 곳은 뒤에서 물도 떠 오고 세탁도 하고 목욕도 하고 하던 그런 장소였다.

 

일본의 중앙알프스 산맥은, 상당히 높고 험한 산세에도 불구하고 물이 풍부해서 이런 형태의 마을이 쉽게 발달했다.

해발 650m 정도에 위치한 마을이 이렇게도 물이 풍부하다는 것은 축복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삼림지대다 보니 목재도 풍부하고, 이 타카야마라는 마을이 현대 들어서 유명한 관광지로 부상한 것은

쿄토의 건축 기술과 사찰을 쉽게 유지 보수할 수 있는 자연적 요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의 시골 마을이라면, 관광지 비 관광지 포함해서 한국인치고는 꽤나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할 수준인데

이곳 타카야마는 아름다운 풍경을 고즈넉히 간직한 좋은 마을이지만, 마을 전체가 모종의 별장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게 살짝 어색하다.

 

평균적으로 너무 풍요롭달까. 산골 마을에서 느껴지는, 야성적 자연을 대하는 미묘한 긴장감이라는게 사라져 버린 듯 하다.

이러나저러나 외국인, 특히 서양 관광객들한테는 한걸음 한걸음이 신기한 체험이 될 만한 곳이라서 나쁠 건 없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날씨탓인지 옛 거리에 도착하기 전부터 조금씩 지치는 기분. 카메라를 고쳐매고 다리를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