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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2  히로시마 여행기 6편 - 고양이, 여행의 동반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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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위크라 빈 방이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의외로 아주 쉽게 저렴한 구석탱이 비지니스 호텔 하나를 잡았다.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었다면 보험용으로 예약해놓은 호텔도 필요없었는데.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다른 손님은 방이 없어서 돌아가는 모습을 봤다.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나보다.
새벽3시에 기상 -> 버스1시간 타고 공항 -> 비행기1시간30분 -> JR 40분 + 30분 + 30분
걸어다니는 것보다 뭔가를 타고 가는게 묘하게 더 피곤하다.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최대한 숄더백을 가볍게 한 후 침대에 누워 TV 를 봤다.
확실히 철저한 개인공간은 가장 신속하게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나보다.

시간은 이미 유명한 장소를 둘러볼만큼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일본에 오면 항상 들르는 서점과 전자상가에서 눈요기나 해 볼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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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시의 특징이라면 역시 노면전차 히로덴(広電)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보기 힘든 모습이기도 하고, JR 전철보다 느긋하게 도시를 둘러보며 움직인다는 느낌이 마음에 든다.
1일 패스나 2일 패스를 끊으면 든든하게 돈값을 하니 교통료 줄이는데도 일조를 하는 녀석.
이 길다란 노면전차가 어떻게 복잡한 도로를 따라 움직이나 싶었는데, 전차 연결부분이 저렇게 이동방향에 따라 스르륵 움직이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저곳에 발을 얹어놓으면 회전에 따라 슬금슬금 움직이는게 참 재미있다.

맞은편 의자에서 백인 여성이 똑같이 재미있는듯 저곳에 발을 얹어놓고 웃는다.
나만 어린애틱하게 노는게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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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슬쩍 둘러보는 상점가나 유흥가로는 거대 체인 파세라 백화점이나 혼도리(本通) 상점가가 있지만
나는 굳이 따지자면 전자기기와 애니메이션 관련상품에 관심이 많은 고로 전자상가 데오데오가 있는 카미야쵸(紙屋町)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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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전자상점가와 애니메이션 관련 상가는 상당히 근접해 있는 경향이 강하다.
애니메이션 오타쿠와 전자기기 오타쿠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이건가?

이곳의 애니메이트는 아주 작은 규모라 거의 볼건 없었다. 여긴 애니 오타쿠들에겐 시골 촌구석이다.
데오데오에서 신형 PS3 구경도 좀 하고, 홈시어터와 아이팟 구경도 좀 하고, 국내 발매되지 않은 DVD도 좀 구경하고.
옆의 서점에서는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風の歌を聽け)'를 한권 사고 이리저리 책들을 둘러봤다.

저 책은 대학교때 읽던 원서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통에, 이번이 기회라 생각하고 다시 구입한 것.
피곤하고 배가 고파서인가 저 제목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 터라 직원아가씨한테 위치를 묻기가 애매해서
'하루키의 데뷔작 말인데요,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물어버렸더니 이 아가씨가 하루키 데뷔작이 뭔지 모른다. ㅡㅡ;
일단 하루키 작품이 모여있는 구간에 데려다줘서 어렵지않게 찾았지만 아가씨가 조금 쑥쓰러워하는 것 같아서 괜히 이쪽이 미안해졌다. 도서관 사서도 아니고 서점에서 일한다고 다 문학매니아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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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규동으로 살짝 배를 채우고, 호텔에 돌아가서 먹을 KFC 치킨 한봉지 손에 들고 히로덴을 기다린다.
이런 여행에서는 가능한 한 밖에서 배부를 정도로 먹지 말고 숙소에서 먹을 음식을 따로 장만하는게 좀 더 이득보는 기분이다.
어차피 호텔에서 TV 보면서 한참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 입이 심심하지 않게 먹어주면 여행의 하루를 마감하는데 좀 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더라.

히로덴의 분위기를 찍으려 셔터를 눌렀는데 콧구멍에 손을 가져가는 학생이 파인더에 들어와 버렸다. T_T 결코 일부러 찍은건 아니니 이해해주길.
불행중 다행이라고 조리개를 엄청 개방해서 찍었더니 약간의 아웃포커싱 효과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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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모든 일정을 지친 몸으로 소화하고
적당한 먹을거리를 손에 든 채
천국과도 같은 숙소로 가는 교통편을 기다릴 때의 뿌듯함.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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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덴은 굉장히 신형 전차와 오래된 구형 전차가 혼재되어있다.
들어갈 때는 그냥 아무 입구로나 들어가면 되지만
나갈때는 승무원이 있는 맨 앞쪽과 뒷쪽 출구로만 나가야 한다.

승무원이 검사는 하겠지만 사실 중간 입구쪽으로 내려도 눈치채지 못하게 할 정도는 된다.
인력적으로나 승차요금 환수 능력으로 보나 꽤나 비효율적인 운행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게 돈 많은 선진국임을 은근히 내세우는 듯한 느낌이라 조금 부럽기까지 하다.

예전에 엄니께서 서울 지하철의 바뀐 발권 시스템에 아주 분노하시며 역무원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대구 지하철처럼 회수용 토큰이라는 훌륭한 대안이 있었음에도
보증금을 더 내고 구입해서 다시 카드를 반납하며 돈을 돌려받는다는, 어이없을 정도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을
뒤늦게 도입했다는 사실을 보면, 조금 구식이고 인건비가 들어간다고 해도 그 나름의 좋은점이 있다는 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애초에 서울 지하철의 개떡같은 발권 시스템은 거대한 커미션 따먹기의 농간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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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앞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 사들고 오는데 보도 옆 수풀에서 뭔가를 와득와득 뜯어먹는 길고양이를 발견.
내가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
어딜 가나 이 녀석들과 조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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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어디선가 앵앵거리며 나에게 다가오는 새끼 고양이.
처음엔 몰랐는데 이곳은 길고양이의 대량 서식처인 듯 하다. 어림잡아도 6~7마리가 주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사실 치킨같은거 주는건 좋은 일이 아닌데, 비교적 대접을 잘 받는 일본의 길고양이 중에서도 대도시 역 주변에 서식하는 애들은 꽤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터라
이런거라도 없는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에 살점을 조금 떼어줬다.

사진을 잘 보면 보이겠지만 이녀석도 별로 좋은 상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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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가장 반가운 이 녀석들은
마치 내가 가려는 길을 앞서서 도착한 후 나를 반겨주는 오래된 친구와 같은 느낌을 준다.
크게 말다툼이나 의견차이를 보일 일도 없이 적당히 냉정한 개인주의를 즐겨주는 시크한 친구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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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애처롭게 울던 새끼고양이가 아쉬운듯 내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미안한데 나도 꽤 가난해서, 이거라도 먹고 힘을 내야 하거든. T_T

별로 맛있지는 않았지만 치킨을 좀 뜯고 뜨거운 욕조에서 몸을 푹 고은 후 침대에 누워 TV를 틀었는데
내 머릿속보다 내 육체가 더 힘들었는지 30분도 보지 못하고 자동으로 눈이 감겨버렸다.

원래 일본에서 심야 TV 보는것도 여행의 낙중 하나였는데, 피곤하니 어쩔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