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동안의 삿포로 오타루 여행은 쾌적한 휴식이었다는 느낌이었고

적지 않은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서 호텔을 나오는 지금부터는 조금이나마 진짜 여행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겨울인데다가 10일간의 여행이라 평소보다는 옷가지가 많아서 카메라가 든 사이드백과 함께 드니 조금 묵직하다.

홋카이도가 워낙 넓다보니 한 곳에서 이리저리 다니기 힘들어 자주 이동을 해야 하는데

예약해 놓은 기차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살짝 부담이 간다.

 

지도상으로는 별로 멀지 않은 삿포로와 아사히카와 간이지만 열차로 가도 가볍게 1시간 30분은 걸린다.

사실 앞으로 이동해야 할 경로에 비하면 가장 짧은 거리지만, 짐을 전부 들고 움직이는 건 역시 귀찮다.

 

 

 

열차 안은 겨울 홋카이도인 만큼 그 반작용으로 히터를 두둑하게 틀어놓는 바람에

상단에 짐이 다 들어가지 않는 본인으로서는 좁은 의자 사이에 사이드백을 끼워놓고 짐짝처럼 꽉 조인 상태로 부자연스럽게 앉아있어야 한다.

 

몸이 굵은 탓에 옆좌석 승객에게도 부담 끼치지 않으려고 웅크리다 보니 극기훈련 받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전날까지 조금 무리해서인지 꽤나 피곤한데, 그나마 오늘은 여행 일정이 매우 짧아서 부담은 적다.

 

아사히카와는 그간 여러 번의 홋카이도 여행 중 한 번도 들러본 적이 없는 곳이고

그만큼 본인에게는 그닥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한 요소가 없는, 삿포로 제2의 대도시.

자전거 여행때는 굳이 아사히카와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루트를 잡을 수 있어서

큰 도시에 들어가면 오히려 불편한 자전거 여행의 특성상 갈 일이 없는 곳이었다.

 

이번 여행에 아사히카와를 넣은 것은 한 번도 안가봤으니 경험삼아 가보자는 생각과 함께

펭귄으로 유명한 동물원이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

 

 

 

주 목적지인 시레토코까지는 하루만에 가기에 너무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동 경로상에 위치한 아사히카와에서 동물원을 살짝 즐긴 후 다음 날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물원은 확실히 동물 보는 재미가 있는 반면, 아무래도 동물원이라는 곳이 결코 동물들을 위한 곳은 아니기 때문에

항상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자주 가는 곳은 아니다.

 

아무리 배려를 잘 해준다고 해도 역시 최종적으로는 사람의 욕심을 위한 곳이다 보니 동물들에게는 미안할 뿐.

입장료가 동물들을 위해서 가감없이 쓰여지길 바라는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싶다.

 

삿포로도 그랬지만 열차가 외곽으로 벗어나자 온통 사람이 건드린 적 없는 설원밖에 펼쳐지지 않는다.

눈에 대한 동경심이 있는 본인으로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이 그저 놀라울 뿐이지만

포근하게 쌓인 눈이 강렬한 햇빛에 다이아몬드처럼 반사되어, 창문이 한 번 걸러줌에도 불구하고 눈에 상당한 자극이 간다.

스키 타는 사람들이 왜 고글에 신경쓰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

 

 

 

반사되는 햇빛에 눈이 피곤해서 언제부턴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옆에서 조심스럽게 깨우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옆에 있던 승객이 죄송하지만 좌석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해서 허둥대며 짐을 싸들고 일어선다.

 

실은 삿포로에서 아사히카와까지 가는 도중 어느 마을에 정차해서 열차를 분리한 후, 다시 다른 방향으로 운행하는 바람에

특정 구간부터 좌석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서 앉아야 한다는 사실을 조느라 듣지 못했던 것.

 

일본 열차는 종착지에서 간단한 청소만 끝낸 후에 바로 역방향으로 재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인지 등받이 부분을 수동으로 넘길 수 있는 차량이 많다.

홋카이도 철도는 그 방대한 토지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어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덕분에 삿포로에서 아사히카와라는, 홋카이도 전체 인구수의 70%를 차지하는 두 도시를 달리는 기차마저도 중간에 노선 변경이 필요한 듯.

 

아무튼 잠이 확 깬 탓에 실눈을 뜨고 중간중간 카메라 셔터나 눌러댄다. 본토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 매번 즐거움을 준다.

 

 

 

아사히카와에는 주력 서식지인 토요코인의 지점이 존재하지 않아서 두 번째 주력인 슈퍼 호텔을 예약해 놓았다.

역에서 그리 멀진 않지만 시내 중심가쪽과는 반대방향이라 이동이 약간 번거롭긴 하다.

 

아사히카와는 분지 형태긴 해도 홋카이도에서 유명한 평야지역이고, 땅이 남아돌다보니 건물이 전부 넓직넓직하다.

크기는 삿포로역에 밀리지만 그닥 많지 않은 사람들 때문인지 고즈넉한 매력이 남아있어서 첫 인상이 좋다.

 

실내에 파라솔 올려놓은 모습도 신선하지만, 거대한 창문 밖으로 펼쳐진 설원과 함께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라

멀리서 조용히 한 장 담아본다. 얼굴도 안나왔으니 이 정도면 초상권 걱정은 없으리라 생각하며.

본인도 느긋한 한 때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동물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부족하다.

 

 

 

아직 체크인 시간 전이기 때문에 짐만 맡겨놓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이 도시엔 처음 온 터라 정확히 어디가 동물원행 버스 정류장인지 찾기가 힘들었는데

고개를 조금 이리저리 흔들고 있으니 옆에서 휴식중이던 젊은 공사장 인부가 걸어나와 무엇을 찾느냐고 물어 준다.

 

관광객에게 익숙한 사람들이라곤 해도 이렇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건 일본에서 참 기분좋은 경험.

버스가 자주 오는 편이 아니라 자칫 해매다가 꽤나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는데, 기분이 뿌듯하다.

 

 

 

삿포로, 오타루때와는 달리 오늘은 매우 쾌청한 하늘이 지속되고 있다.

동물원은 눈이 와 봤자 이득 될 것이 없기 때문에 세삼 이번 여행에는 운이 따른다는 생각이 든다.

 

건너편에 보이는 멋들어진 녀석은 맥주 관련 건물인 듯 한데, 2002년에 인터네셔널 비어 컨버티션에서 수상했다는 광고가 보인다.

하나하나 파고 든다면 아사히카와 역시 며칠동안 머물며 볼거리가 많은 곳일 텐데

계획된 일정만으로도 빠듯한 여행 중에는 그런 여유를 부리기가 힘들다.

어차피 여행 마지막 날에는 삿포로 맥주 정원에 가서 한껏 퍼마실 예정이라서 아쉽지만 사진만 남기고 전진하기로 한다.

 

 

 

이제 막 정오가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이렇게 서두를 수 밖에 없는 것은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겨울 폐장시간이 매우 이르다는 이유에서 기인한다.

 

워낙 해가 빨리 지고, 버스가 몇 대 다니지 않는 곳에 위치한 동물원이라 겨울엔 일찍 문을 닫아버린다.

버스타고 이동하는 시간도 30분은 걸리기 때문에 지금 출발해야 간신히 두 시간 정도 구경할 수 있을 뿐이다.

 

삿포로에서 새벽에 출발했다면 조금 여유가 있겠지만 연이은 강행군으로 인한 피로도 무시할 순 없었고.

애초에 그렇게 큰 동물원은 아니라는 소문을 들었으니 기분전환으로 잠깐 즐기고 온다고 생각했었다.

 

 

 

아사히카와는 홋카이도에서 가장 더운 지역이어서 여름엔 36도까지 올라가는 곳이지만

그래도 홋카이도라는 위치상 겨울엔 신나게 눈이 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눈벽 사이에 그나마 연결부까지는 보이는 저 소화전은 분명 누군가가 일부러 눈을 치워 놓은 곳일 터.

안전에 대한 소소한 준비성은 이렇게 셔터를 누를만한 가치가 있다.

 

 

 

매우 단순하지만 그만큼 시원시원한 느낌을 주는 아사히카와 역은 아쉽게도 메인 출입부가 공사중이다.

광각의 묘미를 살려 밑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을 담아보면 참 재미있을 듯 한데, 아쉽지만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삿포로가 원가 대도시라 홋카이도의 다른 지역들이 촌동네로 보이는 면이 있지만

이곳에서 재미있게 즐기고 간 사람들의 후기도 매우 많은 것으로 보아 진득하게 둘러볼 만한 도시일거라 생각.

 

본인은 홋카이도에서 가장 볼만한 곳이 시레토코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 시레토코가 홋카이도 가장 끝자락에 붙어있다 보니 항상 이동 시간에 따른 일정 계산이 중요한 편이다.

그런 점에서 아사히카와는 단순한 경유지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기엔 효율이 나쁜 곳이어서 매번 본인에게는 찬밥 신세.

 

좀 더 여유를 부려도 되는 여행이라면 언젠가 느긋하게 마을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기는 하다.

홋카이도는 이번처럼 10일간의 여행도 시간 부족해서 난리라, 과연 느긋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싶기는 한데.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처음엔 무난하게 좌석에 앉을 수 있었음에도

정류장을 거칠수록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어오는 바람에 매우 혼잡해진다.

 

절반 정도는 중국인 관광객이고, 나이 70은 넘어보이는 관광객들도 많은데

버스가 혼잡스러워서 내가 앉아있는 곳까지 그 노인분들이 오질 못해서 안절부절하며 바라만 보고 있다.

여기까지 오면 일어나 드리겠는데, 그렇다고 여기 앉으라고 멀리서 소리치기도 부담스럽고.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으로 시골길을 달려 동물원 앞에 도착한다.

버스가 한 시간에 두 대 정도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해 놓은 것이다.

 

도착하니 1시가 되어가는데, 동물원 폐장시간이 3시 30분이라 뭔가 허탈한 기분이 든다.

피곤해서 잠 좀 더 자자고 조금 늦게 출발했는데

동물을 좋아하는 본인으로서는 역시 무리 좀 해서라도 새벽에 출발했어야 하는가 하는 후회도 든다.

 

 

 

깔끔하게 치워놓은 눈길이 걷는 사람의 기분도 상쾌하게 만든다.

그러고보니 이 정도로 눈이 쌓인 겨울 동물원도 인생 첫 경험이라 생각보다 기분이 들뜬다.

 

아이들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 큰 어른들끼리 온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외국인들이야 명성을 듣고 관광 겸 오는 것이겠지만, 백발 성성한 노인들이 아이보다 더 많이 보이는 것은 고무적인 풍경.

 

 

 

동물원 입구에 설치된 아사히카와 시민헌장은 눈으로 뒤덮혀 밑부분이 보이지도 않는다.

위에 붙어있는 앙증맞은 펭귄보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눈더미가 더욱 인상적이라는 사실을 현장 주민들은 알고 있으려나.

 

 

 

지금은 한창 화사함을 뽐내고 있는 이곳이지만 저 멀리 고드름 모양을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 싶다.

바람이 어떻게 불면 고드름 모양이 저렇게 될런지 경험이 없는 본인으로서는 신기할 뿐.

 

최소한 동물원이 폐장하는 3시 30분까지만이라도 이 멋진 하늘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기념사진 찍으라고 남아도는 눈과 약간의 노동력을 더해 멋진 스팟을 만들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열심히 촬영중인데, 틈을 노리긴 했지만 하트를 전부 잡아내기엔 사람들이 비켜주질 않았다.

 

하트모양은 둘째치고 사슴과 눈 결정모양을 재치있게 결합한 동물원 심볼이 인상적.

 

 

 

눈이 아닌 원래 아사히야마 동물원 스팟. 북극곰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색깔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좋다.

그러고보니 이곳은 여름에 상당히 더운 곳인데 북극곰은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북극곰은 활동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사실 동물원에서 전시하는 건 그 자체로 미안한 일이다.

펭귄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그닥 문제가 없지만.

 

 

 

빨리 이동해서 동물 구경을 하고 싶지만 계속 괜찮은 풍경이 나타나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실제 동물원은 저기 언덕부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옆에는 식당이나 기념품점이 위치한다.

산책로로도 충분히 보기 좋은 광경이니 나쁠 것 없지만, 시간에 쪼달리는 겨울엔 이것도 왠지 사람 서두르게 만드는 듯.

 

 

 

겨울에 이곳을 찾는 주된 이유는 역시 펭귄들의 산책 이벤트라고 한다.

하루에 두 번 펭귄들을 우리에서 내보내 동물원을 가로질러 산책시키는 이벤트가 있다.

펜스 같은것도 없이 그냥 주위에 둘러서서 구경할 수 있기에, 펭귄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경험.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일 것 같으니 시간 전에 서둘러야 하겠지만 일본 사람들의 미리 줄서기 능력을 앞서기는 힘드리라 예상해 본다.

 

 

 

산책 이벤트는 제외하고라도 이 곳의 주력 동물이 펭귄이라, 역시 펭귄 사는 곳을 들어가보지 않을 수 없다.

입구로 들어가면 요즘 수족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원형 터널이 모습을 드러낸다.

햇빛이 직접 비치는 곳이라 어두운 수족관보다는 훨씬 보기 편안하지만 길이가 매우 짧다. 잠깐동안의 체험으로 만족해야 할 정도.

 

 

 

위에는 펭귄이 보이긴 하는데 이 녀석 물 안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다.

관광객들이 웃으며 올려다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녀석 역시 물 밑을 지나가는 우리들을 지켜볼 뿐.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기들이 헤엄치는 물 속을 유유히 걸어가는 사람들 모습이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한번 뛰어들어 시원하게 헤엄을 쳐 주면 좋겠는데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서 그냥 아쉬운대로 수면에 흔들리는 모습만 담고 통과.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처음부터 섬뜩한 모습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당연히 일부러 죽였을 리는 없지만 이런 생생한 모습은 역시 두려움과 함께 일말의 동정심을 갖게 만든다.

 

아이들 학습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표본이라도, 동물원 들어와 처음 보는 모습이 이것이라면 약간 트라우마가 될지도.

 

 

 

단순히 펭귄 구경뿐 아니라 이곳에는 상당한 양의 펭귄에 대한 정보가 이곳저곳 전시되어 있다.

일본어만 읽을 줄 안다면 펭귄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통달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게 구성해 놓았다.

 

지금은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동물에 관심이 많은 본인의 성격상 거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가볍게 보면서 지나간다.

'이쪽'이라고 적힌 펭귄상이 본인에게는 더 재미있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