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촐랑촐랑 걸어다니는 조그만 녀석은 아직 세상이 모두 신기한가 보다.
들어가지 마라고 쳐 놓은 펜스는 어른 펭귄 기준이라 이 녀석에게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한다.
안내원들도 펭귄을 절대 건드리진 않으니 그냥 난감한 표정으로 웃으며 바라보기만 할 뿐.
적어도 펭귄들만은 이 동물원에서 하고싶은대로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 준다.
아직 본진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비슷한 덩치의 펭귄 한 마리가 추가로 앞서나온다.
또래가 놀고 있으면 함께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여기서 태어나서 자란 녀석이라 사람에게는 별 관심이 없지만 하루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보니 주변 풍경은 신선한 듯.
펭귄 일행은 왼쪽으로 가서 잠깐 쉰 다음에 다시 오른쪽의 보금자리로 이동하는 것이 정석인데
이 녀석은 아예 쉴 생각도 없이 바로 자기네들 집으로 가려고 해서 이번만큼은 안내원이 앞을 가로막고 선다.
혼자서 아주 코메디를 연출해 주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람이 앞을 막으니 이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서둘러 반대방향으로 향한다.
물론 아직 본진은 도착도 하지 않은 상황.
조금 있으니 원래 행렬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로서도 급할 게 없는 것이, 원채 뒤뚱뒤뚱 걷다 보니 사진 찍거나 감상할 시간도 충분하다.
먼저 왔던 장난꾸러기의 흔적이 남아있는지 때때로 펜스를 무시하고 바로 밑으로 내려오는 녀석도 보인다.
위치 선정은 참 잘했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좀 더 왼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 녀석들의 재롱을 볼 기회가 없으니까.
반대편 끝까지 가서 잠시 휴식 후 다시 사육사의 지시에 따라 원래 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딱히 밀어낼 필요도 없이 그냥 뒤에 서 있기만 하면 알아서 앞으로 이동한다.
특히 좀 전의 호기심 많은 새끼녀석은 산책이 시작되자마자 혼자서 달려나간다. 어지간히 재미있나보다.
위에 따라오는 어른들은 오랜 경험 탓인지 그냥 무덤덤하게 걸어가고 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탈선하려는 녀석들을 요원들이 가로막자 가끔 부리로 위협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생긴 것보다 터프하고 머리가 좋은 녀석들이니 아마 자기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 하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가슴 깊숙히 안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귀엽기 그지없다.
신나게 돌아다더니 본인이 앉아 있는 위치에서 갑자기 멈춰 서서 멍하니 서 있는다.
어른들이 천천히 자기를 앞길러 가도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냥 햇빛만 쬐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안내원들이 이 녀석들을 가드하고 있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막아서는 사람이 없으면 저절로 잡아버리고 싶을 오라를 전신에서 뿜어내고 있다.
첫 번째 새끼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어른 펭귄들이 오히려 위엄넘치게 느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사실 이 녀석들도 충분히 귀여운 걸음걸이로 능숙하게 산책을 즐기고 있는데, 좀 전에 난리치던 녀석 때문에 중후한 멋마저 느껴진다.
바로 코앞에서 사람들 앞을 통과하지만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대인배적인 품격이 느껴진다.
극지방의 펭귄은 사람이 보이면 신기해서 몰려들기 바쁜데, 이 녀석들은 애초에 몇 대째 여기서 태어났기 때문에 사람에 관심이 없다.
위쪽 라인에서 먼저 구경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지고 있다. 일찍 줄을 선 이득을 보는 셈.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동물원 구경의 마지막 코스이다 보니 굳이 서두를 건 없다.
버스를 조금 늦게 탈 수도 있지만 아직 대낮인데다 오늘은 이것 이외의 예정이 없어서 마음은 느긋하다.
그새를 못참고 또 다시 라인을 이탈해 이곳저곳을 찔러보는 새끼 펭귄이 멀리서 보인다.
산책시간이긴 해도 이렇게 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걸어다니는 기분이 어떨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안나는지 가끔씩 진행요원들이 재촉하듯 뒤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을 봐서 나름대로 즐기고 있는 듯 하다.
어쨌든 무리를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어서 앞쪽과 거리가 벌어지면 두 팔을 휘적이며 조금 열심히 걸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동물원 밖에서는 평생 볼 일이 없는 종이라 몇 번을 봐도 여전히 신기하고 새롭기만 하다.
인간의 활동범위가 마지막으로 넓어진 극지방에 서식하는 동물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고기 맛이 없기로 유명한 녀석이라 16세기 이후 인간의 남획으로 멸종한 수 많은 동물들과 달리 오늘날까지 생존해 있다.
아마 맛있는 고기로 소문났다면 이 녀석들도 남극에 수천 마리 정도밖에 남아서 멸종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반대편 극지방에 살고 있었던 스텔라 바다소라는 종은 매우 온순하고 인간에게 무해한 생물이었지만
고기가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순식간에 멸종되어 버린 비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물원이란 건 가끔 그런 사람의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보기좋게 포장한 선물상자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 녀석들 역시 1990년대 초반 동물원의 심각한 경영난 당시엔 다른 곳에서 받아줄 여건조차 되지 않아 끔찍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었던 과거를 갖고 있고.
눈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건 인간 새끼나 동물 새끼나 공통인 것인지.
이제는 일행을 따라가려는 생각도 없이 언덕에 곱게 쌓인 눈에 몸을 파묻고 장난을 친다.
이렇게 되면 요원들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무작정 기다리는 수 밖에.
펭귄을 만지지 말고 플래쉬 쓰지 말고 놀래키지 말라는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저러고 있는 초현실적인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진행요원들도 펭귄을 건드릴 수는 없으니 그냥 허탈하게 바라보는 것 말고는 손을 쓰지 못한다.
아주 혼자서 신이 났는데, 이곳 토박이이긴 해도 역시 눈에 대한 본능은 여전히 남아 있는가 보다.
역시 저 펭귄은 대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뭔가를 눌러대니 펭귄도 호기심이 생기는 건지 하지마라는 행동은 골라 한다.
옆에서 잠시 맞장구를 치던 또 한마리의 새끼 펭귄은 얌전히 무리를 따라가는데 저 녀석은 겁도 없다.
보통 펭귄은 무리를 벗어나는 일이 별로 없어서 통제하기도 쉬워서, 이런 특이한 녀석이 생기면 사육사들도 난감할 듯 하다.
저 녀석을 어떻게 하면 될까 하는 심정일 법한 진행 요원과 대치중.
일행들이 저 멀리 떠나간 후에도 어느 정도 망중한을 즐기던 녀석은 온 몸에 눈을 잔뜩 묻힌 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내려온다.
사소한 일탈은 관광객들에게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안겨주며 막을 내린다.
이미 펭귄 행렬은 전부 사라졌지만 여전히 관광객 중에는 넘어오면 안된다는 무형의 펜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새끼 펭귄이 저 멀리 걸어가고 나서야 안내원이 이제 지나다니셔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자 슬슬 대형이 흩어진다.
이 정도 질서쯤은 칼같이 지켜야 이 동물원의 하이라이트인 펭귄 산책도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펭귄 산책이 끝나면 사실상 동물원을 더 구경할 시간이 없다.
휴식을 가정하고 잡은 일정이지만 역시 대낮 쨍쩅할 때 돌아가는 건 왠지 아쉽다.
물론 바로 숙소로 돌아가진 않고 아사히카와 시내 구경이라도 잠깐 할 예정이지만
동물들은 오랫동안 봐도 질리지 않아서 뭔가 배를 덜 채운 듯한 기분은 살짝 찜찜하다.
버스는 30분에 한 대 정도 오는데, 아무래도 이 속도로 밖에 나가면 딱 버스가 떠날듯 한 시간이고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40~50분 동안 서 있는 것도 괴로운 일이라 그냥 느긋하게 다음 번 버스를 탈 생각을 한다.
아담하지만 꾸준한 노력과 다양한 시도로 폐장 위기를 벗어난 동물원의 저력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 만족하며 출구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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