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호텔의 조식은 저렴한 비지니스 호텔 중에서는 단연 훌륭하다.

토요코인의 별 것 아닌 주먹밥 정도라면 수면욕을 충족시키는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 조식을 먹지 않는다면 한나절 정도는 아쉬워 할 것이 틀림없다.

 

이곳의 커튼은 딱딱한 플라스틱이라 일반적인 커튼과 달리 아침이 오는 모습을 판단할 수 없다.

알람을 끄며 커튼을 걷어올리니 세상은 이미 새햐얗게 빛나고 있다.

광도높은 햇살이 아니라 소리없이 쏟아져 내리는 눈줄기로.

 

삿포로에서 아사히카와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기 때문에 동물원에라도 다녀 올 시간이 있었지만

아사히카와에서 시레토코까지는 열차 한번 버스 한번 갈아타며 6시간이 넘는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딱히 할 일이 없다.

 

장거리 이동이 많은 이번 여행의 특성상 평소 별로 사용하지 않는 스마트폰에 애니메이션도 몇개 넣어올 정도로 준비는 철저하다.

원체 멀미가 심한 편이라 열차에서라도 장시간 시청은 불가능하지만, 하루종일 음악만 듣는 것도 좀 지겨울테니까.

 

 

 

쏟아지는 눈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별다른 감흥 없이 역으로 향한다.

시레토코는 눈이 많이 오면 이동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부디 내일부터는 날씨가 맑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아사히카와에서 아바시리(網走)까지 기차를 탄 다음 조그마한 원맨열차로 갈아탄 후 다시 한시간쯤 달리고

철도가 부설되어 있는 마지막 마을인 시레토코 샤리에 도착해 다시 우토로(ウトロ)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자전거 여행 당시엔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기차 시간표 따위 신경쓰지 않고 그저 곰이나 사슴이나 두려워하며 대자연에 휘감긴 시골도로를 달릴 뿐이었는데

겨울의 홋카이도는 그런 짓 하기에 본인의 생존 능력이 심히 떨어지니 얌전히 일반적인 여행을 즐겨야 한다.

 

한번 타면 꽤나 오래 달리는 것이 홋카이도 철도다 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도시락을 미리 싸들고 승차했다.

조식을 든든하게 먹고 왔기 때문에 딱히 더 이상 먹을것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대설원의 풍경을 바라보며 먹는 도시락도 나름 분위기 있어 보인다.

이런 곳에 열차가 달린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가득 쌓인 눈더미 속을 질주하는 모습은 한국에서 경험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각별한다.

 

 

 

일단 손에 카메라를 쥐고 전원을 켠 상태로 바깥 풍경을 감상한다.

진짜 괜찮은데 싶은 풍경이 단 몇 초만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걸까.

사진 촬영에는 과감함과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이런 상황에서는 절실히 동감된다.

 

아직까지는 사람 사는 마을이 많이 보이긴 하는데, 대체 겨울엔 뭐 하고 사는지 궁금할 정도로 온통 눈에 파묻힌 모습들.

사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홋카이도에서는 겨울이 추수철 만큼이나 바쁜 계절이라고 한다.

겨울에 무슨 농사냐 싶겠지만, 일본 최대의 낙농지역인 이곳은 겨울에 강한 젖소종들이 바쁘게 젖 짜고 새끼 치느라 정신이 없다.

감자 등의 작물은 겨울에 눈 속에 파묻어 두어 천연 저장고 역할을 하기도 하고, 거대한 농경지는 지금부터 트랙터로 손질해 줘야 봄부터 씨를 뿌릴 수 있다.

 

 

 

창문이라는 필터를 통해 들어오는 빛임에도 불구하고 고속으로 이동하는 와중이라 그런지

때마침 맑아진 하늘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눈밭이 굉장히 자극적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 좋아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방에서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답긴 하지만

눈에는 심히 과한 자극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뷰파인더를 들여다보지 않는 동안에는 실눈을 뜨고 쳐다봐야 할 정도.

두시간 정도 바라보고 있어도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이러다가 눈에 무리가 갈 것 같아서

중간중간 음악도 듣고 애니메이션도 보고 하면서 느긋한 시간을 즐긴다.

 

자전거 여행 당시엔 시간적인 제한이 없었지만 체력적인 문제와 함께, 해질 무렵에 최소한 마을 모습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어디서 곰이 튀어나오는거 아닌가 심히 걱정이 되어서 생각만큼 여유롭게 달리지 못했었다.

 

따뜻한 열차 안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므라즈과 함께 하는 여행도 나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을 참 오랜만에 해 본다.

 

 

 

 

 

아바시리에 도착해 밖으로 나온니 기차 안 여행이란 게 어느 정도 현실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세삼 깨닫는다.

하늘은 여지없이 맑지만 대낮에 영하 5도 밑으로 내려가는 차가운 공기는, 창 밖의 풍경이 온도를 가지지 않은 그림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시레토코에 들어가기 전 철도가 부설되어 있는 마지막 마을인 만큼 적당히 사람 사는 느낌이 드는 곳.

4년 전 자전거 여행때와 똑같이 '열차와 호텔을 세트'로 판매하는 광고가 그대로 붙어 있다.

워낙 이동과 숙박이 힘든 곳이니 내국인이라면 저런 걸 이용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예전엔 어차피 자전거 여행이라서 필요가 없었고, 이번엔 외국인 전용 할인카드인 JR 패스가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곳은 규모면에선 작은 마을이긴 해도 나름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다.

뛰어난 사냥꾼이었던 홋카이도의 원주민 아이누족의 동상이 역 앞의 마스코트 역할을 한다.

이 앞에서 기념사진찍는 중국인 관광객이 매우 많다.

 

아바시리는 100년전의 감옥이라던가, 겨울에 쇄빙선이라던가 하는 볼거리가 있긴 하지만

2010년 자전거 여행 때는 중국인 관광객을 본 적이 거의 없었던 지역이라 생소하긴 하다. 시대가 변하긴 했나 보다.

 

 

 

바로 북쪽 바다가 오호츠크해다 보니 겨울엔 유빙이 생성되어 쇄빙선 관광도 꽤나 유명하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유빙 구경은 거의 할 수 없다 보니 이런 곳에 오는 것도 이해는 된다.

자전거 여행 당시엔 당연히 유빙이란 건 생각도 하지 않았고, 나름 유명한 아바시리 감옥도 입장료가 아까워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은 자금적인 여유가 있어도 시간적으로 여기서 하루 더 보내기가 쉽지 않아서 또다시 패스.

홋카이도는 마음먹고 구석구석 돌아도려면 적당히 잡아도 한 달은 필요하니, 모든 것 하나하나에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찾아올 구실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가뿐한 기분이기도 하니까.

 

 

 

역 앞에는 아바시리 감옥을 본따 만든 붉은 벽돌모양 패널이 설치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해맑은 미소와 함께 쇠창살 안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참 초현실적인 풍경이다.

 

실제로 아바시리 감옥은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고 사회가 극도로 불안하던 100여년 전

땅끝 지옥이라 불리는 일본 최북단의 감옥으로서 그 악명을 떨쳤다.

수감된 죄수의 30% 이상이 무기징역형이었을 정도로 중범죄자 중심의 수용소이기도 했고

겨울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는 이 곳의 환경상 죄수도 직원도 많은 스트레스로 인해 상해사고도 잦았다고.

 

당시의 혼란했던 일본의 사회상을 생각해 본다면, 이 곳에 수용된 사람들이 단순한 범죄자만은 아니었으리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방금 전 그림같은 겨울 풍경을 뒤로 하고 달려온 아사히카와에서 이곳 아바시리까지 230km의 도로를 닦는데 이 감옥의 죄수들이 동원되었다.

사망자만 200명이 넘고, 몸이 결박당한채로 공사판 인근에 버려진 시체도 자주 발견되는 등, 이 감옥의 악명은 대단했다.

 

일본의 전설적인 탈주범인 '5치 못의 토라키치'(五寸釘 寅吉)가 마지막으로 수감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발바닥에 5치, 약 15cm 가량의 못이 박힌 채로 12km 나 달려 도망쳤다는 전설적인 일화로 인해 그렇게 별명이 붙은 토라키치는

훔친 재물을 가난한 개척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홋카이도 감옥에서 탈주해 오사카에서 다시 잡히기도 하는 등

6번이 넘는 탈옥 경력을 가진 소설같은 삶을 산 인물. 이곳 아바시리 감옥으로 이송되었을 당시엔 나이도 많이 들고 해서 더 이상의 탈옥은 없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편의점에 들어가 따끈따끈한 호빵을 하나 사들고 씹어먹으며 여름 아바시리의 풍경을 되살려본다.

겨울과 여름이 완전히 다른 세계로 변하는 홋카이도라, 이 길을 달렸던 당시의 추억이 지금의 풍경과 매치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그럴듯한 열차가 아니라 승무원이 한 명밖에 없는 원맨 열차로 갈아타고 샤리 마을까지 이동.

장거리 이동이 많은 홋카이도 철도는 나름대로 본인 같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있어서

열차 시간에 늦는다거나 하는 일 없이 대도시에서 출발한 열차의 도착시간과 10~15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바로바로 연결되도록 해 놓았다.

 

물론 홋카이도의 겨울이란 게 그렇게 예정대로 흘러가는 상냥한 녀석이 아니다보니 별의 별 연착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본인은 홋카이도에서 사슴이 달리던 열차에 뛰어들어와 박히는 바람에 그거 처리하느라 1시간동안 기차 안에서 머물렀던 경험도 있다.

 

 

 

어디서나 자연의 풍취를 느끼기 쉬운 홋카이도지만, 시레토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달렸던 자전거 여행 당시엔

압도적이라 할 만한 야생적 강인함에 적지 않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람의 출입이 차단된 시레토코 자연공원은 한국인으로서 접하기 어려운 자연림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곳.

지금 한국에서 보는 99%의 산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경 계획을 세운 것이라 자연림과는 확연하게 모습이 다르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은 훨씬 더 생명력이 넘치는 거칠고 무섭고 아름다운 느낌이 든다.

 

물론 그 때의 추억에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지금이지만, 앞서 언급했듯 홋카이도의 겨울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서.

 

중간에 삿포로에서 함께 여행했던 Y양이 서식하고 있는 키타미라는 마을에도 정차를 했는데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은 적지 않았지만, 얼굴 보게 되면 어차피 키타미에서 하루 머물 수밖에 없는 시간대에다가

일 때문에 바쁜 분을 헐렁헐렁 찾아가는 것도 좀 미안한 느낌이라 그냥 통과하기로 한다.

 

 

홋카이도 북동부의 마지막 철도 역인 시레토코 샤리 역에 도착한다. 이제 여기서부터 자연공원이 있는 우토로까지는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여기서도 한 규모 하는 중국인 관광객 일행들과, 노년층이 사박사박 모인 일본쪽 관광 단체들이 우르르 몰려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관광 버스에 갈아타고 먼저 출발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본인은 점점 무거워지는 베낭과 사이드백을 짊어진 채로 감회에 젖어 예전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연신 셔터만 눌러댄다.

아침의 그 폭설은 아직도 아사히카와 쪽에서 어른거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날씨는 그냥 고개만 들면 자동적으로 입가에 미소가 돋아날 정도로 청명하고 순수하기 그지없다.

 

시레토코쪽 마지막 역이다 보니 깔끔하게 마무리 된 직사각형 모습이 매우 단아한 느낌이다.

날씨가 워낙 추운 곳이다 보니 내부에 편안하게 앉아 TV와 각종 지역자료를 살펴볼 수 있는 휴게실도 완비되어 있지만

본인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보게 된 그리운 시레토코의 정경이 아른거려서 주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

 

상호 연계가 미끄럽게 잘 이루어지는 철도와 달리 이곳의 우토로행 버스는 JR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40분 정도 기다려야 하지만

이런 화창한 날씨 아래서, 그것도 일본에서 자연환경이 가장 좋기로 유명한 시레토코 부근에서라면 결코 지루한 시간이 아니다.

 

 

 

자전거 여행때는 그냥 역 쪽으로 내려와 건물 사진과 함께 이 녀석만 담았던 기억이 난다.

불곰과 함께 시레토코를 상징하는 흰꼬리수리의 모습. 멸종위기 1급 동물로 일본에서는 시레토코에서만 가끔 관찰할 수 있는 희귀종이다.

한국에서는 드문 겨울철새로 러시아에서 강원도로 이동해 오기도 한다. 생긴 것과는 달리 꽤나 세심하고 여린 성격이라고.

 

 

 

아늑했던 하룻밤을 책임졌던 루트인 호텔의 모습도 여전하다.

몬베츠(紋別)라는 곳에서 출발한 후 삼일 꼬박 비를 맞아가며 노숙했던 탓에 심신이 매우 지쳐있었던 때

시골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루트인이 떡 하고 나타나서 그 유혹을 이기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관광이라고 해도 대부분 우토로 쪽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시설은 깔끔하고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직원들도 친절하고 가격마저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해서

코인 세탁기에 빨래 넣으러 가는 것조차 귀찮아 질 정도로 푹신한 침대가 천국처럼 몸을 감싸던 감각을 떠올린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시레토코에 대한 정보 따위는 거의 알지 못한채로 그냥 달리고 있었던 터라

여기서 신나게 쉬었으니 이제 또 시레토코를 확 통과해서 한동안 달려봐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한 시레토코의 풍경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대단한 것이라서 눈물을 머금고 또 하루 숙박했던 기억이 난다.

국립공원화 되어 있는 우토로 주변엔 텐트도 마음대로 치기가 어려웠으니.

 

거긴 또 고급 관광호텔 아니면 젊은 사람들 중심의 게스트 하우스로 레벨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곳인데다가

어찌된 일인지 게스트 하우스가 전부 문을 닫아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관광호텔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내 표정이 심히 안스러웠는지 지배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혼자 왔으니 좀 싸게 해 줄게요' 하면서 숙박비를 3만원 정도 깎아줬다.

 

기본적으로 트윈 침대에 본가 큰방보다 더 큰 실내 베란다까지 구비된 진짜 관광호텔이라 살떨려서 잠도 못잘 것 같았던 추억도 있다.

 

시레토코가 그런 곳인 줄 알았다면 당연히 이곳 샤리에서는 머물지 않았을텐데. 여기서 우토로까지는 자전거로 가도 3~4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다.

하지만 이제와서는 그것도 좋은 추억이라고 씁쓸하게 웃을 수 있으니 어쨌든 후회할 일은 아니다. 여행이라는 건 후회하기가 더 힘들다.

 

 

 

키카드로 작동하는 호텔이었는데 체크아웃 당시 키는 기념으로 가지고 가도 된다고 말해줘서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새끼 바다표범이 프린트된 귀여운 흰색 키카드였는데, 그 때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번에도 거기서 묵을 예정이다.

 

놀랍게도 이곳 근처 역시 공항이 있다. 버스가 공항에서 출발해 이곳을 경유한다고 한다.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아서 아직까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뿌듯해하며 고고히 앉아있는 흰꼬리수리의 모습을 이리저리 담아본다.

 

 

 

방향상 시레코토에 위치한 가장 높은 산인 라우스산은 아니지만 구름에 가린 모습이 살짝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여름에는 전기 펜스로 둘러싸인 고가 다리을 걸어다니며 곰 서식지인 오호(五湖) 주변을 산책할 수 있지만

겨울에는 시레토코 고개를 포함해 대부분의 자연공원이 출입금지가 되기 때문에 적적함을 느낄 수 있다.

 

본인은 그 오호의 풍경을 잊지 못해서, 자격을 가진 가이드와 함께 하는 겨울 오호 투어를 신청할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내가 아는 그 오호가 맞다면 어지간히 체력에 자신있는 사람이 아닌 한 겨울에 들어가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걷는 스키를 타고 산을 올라가야 하는데다가, 오호 주변 역시 기본적으로 눈이 50~60cm 는 쌓여있기 때문에

겨울 중에도 한달 정도만 허가를 얻어 입산할 수 있는 겨울 시레토코의 특별 코스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날씨가 좋으면 돌연 취소되는 일도 비일비재해서, 내일 하루밖에 기회가 없는 나로서는 날씨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삿포로에서 이곳까지 직통버스가 있지만 10일간의 여행을 전부 그 두군데서 보낼수는 없으니 의미가 없다.

시레토코가 메인이긴 해도 다른 곳 역시 둘러볼 거리가 수북히 쌓인 곳이 홋카이도니까.

 

한동안 기다리자 버스가 슬금슬금 다가와서 버스에 탄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좌석의 절반 정도가 차 버린다.

겨울 시레토코라고 해도 역시 올 사람은 다 오는구나 하는 생각.

 

 

 

약 40분간 천천히 눈길을 달려 그 그립던 우토로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한동안 발걸음을 잊고 주위를 멍하니 둘러보며 서 있는다.

아직까지도 자전거 일본여행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을 물어보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 시레토코.

4년 즈음만에 다시 찾아온, 하지만 그 때와는 전혀 다른 고요한 풍경에 기차 여행으로 살짝 느슨해졌던 여행세포가 다시 끓어오르는 느낌이다.

 

 

 

안내소를 겸하는 미치노에키 우토로 시리에토크의 모습 역시 반갑기 그지없다.

온통 녹색 삼림과 푸른 바다로 뒤덮였던 여름과 달리, 생명력이라는 흔적은 온데간데 없이 모든것이 눈으로 쌓인 지금의 모습은

사계절이 뚜렷한 편인 한국사람이 봐도 그 갭을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본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곳이다 보니 어디서든 특산품을 팔고 있다.

일본에서는 유명 소설가가 검은 칼날의 끝이라 묘사하기도 한 시레토코는 아이누어로 '대지의 끝' 이라는 이미.

 

당연히 워낙 험한 자연환경 덕에 개발의 필요성도 없어서 방치되다시피 한 곳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목과 오염으로 지역이 더럽혀지자 이곳 마을 사람들은 자치단체를 형성해

이 지역을 보존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결과 2005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의 칭호를 획득하는데 이른다.

 

주민들이 이제껏 낸 기부금만 약 50억원에 달할 정도로 이곳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가서 보면 저절로 납득이 간다.

 

관광안내소에서 내일 신청할 오호 가이드 투어에 대해서 물어보니 원래는 1주일 전에 신청해야 한다는 무서운 답변이 날아온다.

하지만 신청자에 여유가 있으면 바로 전화해봐도 될 거라며 팜플렛을 한 장 준다. 자기네들이 전화해 줄 정도의 섬세함은 없는 듯.

 

 

 

해가 빨리 지니 이제는 예전 신세를 졌던 그 호텔로 향해야 한다.

예약 없이 온 것이 좀 걸리긴 하지만 겨울 시레토코에 그렇게 관광객이 많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성수기라는 여름에도 그냥 들어가서 방을 구했으니 지금이야 문제가 있겠냐는, 일본인 관광객이라면 하기 어려운 발상을 해 버린다.

 

오늘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니 조금씩 저무는 태양이나 기념으로 한 장 담아주고 반갑기만 한 시레토코의 풍경을 한 걸음씩 음미하며 호텔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