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은 것이 참 후회될 정도로 이곳 호텔의 석식 뷔페는 굉장한 수준이다.

국내 5만원 이상급의 뷔페식당의 메뉴급인데, 신선도나 요리 수준은 이쪽이 더 낫게 느껴진다.

해산물이야 당연하겠지만 스테이크나 디저트류도 맛이 굉장해서 놀라고 또 놀라며 오랜만의 만찬을 음미하느라 바쁘다.

조식은 아직 먹어보지 않았지만, 이런 석식을 포함해서 10만원 초반대의 숙박료라면 비싼 게 아니라 싸다고 해도 될 정도.

 

카메라를 가지고 다시 돌아올까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내일도 머물 예정이니 사진은 그때 찍으면 된다고 생각.

 

호텔들은 지역 관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 시레토코에서 실시중인 이벤트에 대한 정보는 로비에서 전부 얻을 수 있다.

분에 넘치는 식사를 만끽한 후 레이저 쇼의 관람권 역시 로비에서 구입한다. 시간은 조금 남아있어서 호텔 1층이라도 슬쩍 불러보며 사진을 찍는다.

 

오래된 호텔이라 디자인적으로는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다.

한창 호황기 때 만들어 진 부스인지, 가벼운 오락실도 들어서 있다. 심지어 작은 간이 노래방 시설까지 만들어져 있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

 

 

 

어마어마한 석식에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술과 함께 가벼운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스낵바 역시 운영중이다.

호텔비에 포함된 식사 레벨이 그렇게 높은데 여기서 라멘과 맥주를 즐기는 사람은 대체 어떤 부류일까 궁금할 정도.

 

지리적 특성상 지나가다가 그냥 들르는 숙박이 불가능한 시레토코의 호텔들은

거의 모든 관광용 수요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전천후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로비쪽 역시 가벼운 주스와 녹차 등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넓직하게 마련되어 있다. 식사 후 목이 좀 말라서 석류주스를 두 잔 정도 비웠다.

겨울은 비수기라 영업을 하지 않는 듯 하지만 원래는 주문을 받는 차도 있는 듯 하다. 무료 음료수가 빵빵해서 딱히 돈을 주고 사 마실 필요가 없긴 한데.

 

 

일본의 호텔은 어쨌든 공간 활용을 위해 조그마한 느낌이 들지 않을수가 없는데

이곳은 일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넓다.

 

일본식 정원을 본따 만든 듯한, 실내를 흐르는 인공 개울과 다리까지 만들어 놓은 모습을 보면 호텔인지 백화점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당연히 옆에는 그냥 길이 나 있지만 일부러라도 이 쪽을 지나가고픈 재미가 느껴지는 곳.

굉장한 공간 낭비로 보일수도 있는데, 그 만큼 이제껏 애용하던 비즈니스 호텔과는 방향점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의 본인처럼 이런 배려에 기분이 흡족해 질 수 있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관광 호텔이니까.

 

 

 

1층을 살짝 걸어다녔을 뿐인데도 모든 시설들이 큼직큼직한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바닥에 카펫을 깔아놔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도 꽤나 조용하다.

 

특산품점도 한 곳이 아니라 특색별로 여러가지 가게가 들어서 있다. 일반적인 잡화점부터 시작해서 사슴 뿔로 만든 조각품들을 파는 가게까지.

위층에도 대연회장, 키즈 코너, 애완동물 보호 공간인 펫 라운지까지 있어서 굉장한 대응성을 자랑한다.

 

호텔이 이 정도까지 가면 오히려 실외의 가게들에 갈 필요가 느껴지지 않아서 조금 무서운 느낌마저 든다.

원래 고급 호텔이란 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조식, 석식 모두 합해서 11만원 정도의 숙박료가 드는 호텔치고는 너무 훌륭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컨텐츠가 많은데, 미니 수족관 속에 유빙을 떠와서 전시까지 하고 있다.

아마도 여름 손님들을 위한 볼거리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여기서 볼 필요 없이 바로 앞바다에 유빙이 떠다니고 있으니까.

위도가 낮은 지역 사람들에게는 나름 신기하게 느껴진다. 바다가 얼어붙는다는 생각은 극지방에서나 생각할만한 이미지라서.

 

실제로 홋카이도 북쪽 바다는 유빙한계선에 걸쳐 있어, 한국과 일본에서 유빙을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냥 한바퀴 돌아보려 했을 뿐인데 뭔가 관광을 제대로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조그마한 전시실에 노구치 준이치라는 작가의 시레토코 동물사진전이 개최되고 있다. 물론 무료.

 

야생동물 사진은 끈기와 노력이 어떤 장르보다 중요한데, 참 신기하게도 상당수의 동물들이 사진가에게 시선을 맞추고 있다.

상당한 망원으로 찍은 사진인데 어떻게 이렇게 담을 수 있는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결과물에서 물씬 풍긴다.

 

 

 

밤이 늦어서 아무도 없었는데, 덕분에 조용하게 감상이 가능하다.

사진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결과물 수준이 상당해서 눈이 즐겁다.

애초에 호텔에서는 기대도 하지 않았던 볼거리가 계속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기분이 상당히 좋은 편이기도 했고.

 

 

 

동물은 원래 귀엽지만, 녀석들을 사진으로 담을 때 그 매력을 십분 살린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시레토코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자동차가 가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라

카메라 장비를 갖고 해발 1000m 가량의 산에 올라 몇나절이고 진득히 관찰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구도 배경 배치도 매우 능숙하고, 동물들의 시선이 향하는 찰나의 순간을 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끈기가 필요했을지 상상이 간다.

 

 

 

사진은 결과물로 말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물론 자연을 훼손하는 등의 짓거리를 하는 건 전혀 별개의 이야기지만.

 

단순히 유람선을 타고 관광하거나, 하루 이틀 정도 산에 오르는 정도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시레토코의 넘치는 생명력의 매력이 사진가의 능력과 결합되어 따뜻한 시선으로 탄생하고 있다.

여러 가지로 배울만한 점이 많은 작품이라 자칫 레이저 쇼 시간에 맞추지 못할 법한 순간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서둘러 밖으로 나온다.

 

 

 

본관, 신관, 별관은 각 구역간 이동거리가 꽤나 길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도 전부 따로 위치해 있다.

체크인 할 때 로비에서 지도까지 줘 가며 자세하게 설명한 이유가 있었다.

 

본인이 묵었던 곳은 가장 저렴한 방임에도 분에 넘칠 정도였는데

홈페이지 가 보니 바다와 마주하고 베란다에 개인 노천온천까지 완비된 최고급 객실이 2인 26만원 정도이다.

객실의 수준과 조, 석식 포함을 생각하면 이것조차도 그렇게까지 비싼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 최북단의 오지에서 60년간 경영해 온 호텔의 저력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속물적인 생각으로 역시 돈이 참 좋긴 좋구나 싶기도 하고.

 

아직은 젊은 편이니 조금 더 노력해서 자금을 널널하게 만들어 오면 최고급 객실에서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시레토코는 나처럼 도심 여행보다 자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느긋하게 시간을 들여도 전혀 아쉽지 않은 곳이니.

 

 

 

밖으로 나오니 다른 호텔에서 온 듯한 일행들도 많이들 걸어오고 있다. 언덕 위에 위치한 호텔에서는 관광버스가 직접 실어나르는 중.

일단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시레토코에 숙박한 이상 이건 한 번씩 보고 가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래봤자 겨울에는 관광객이 많은 편이 아니고, 1인당 500엔씩 받아봤자 레이저 쇼는 꽤나 비용이 많이 드는 이벤트라서 어떨런지.

 

길을 못찾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본인이 투숙중인 호텔의 바로 뒷편인데다가 주민들이 길안내를 해 주고 있어서 무리없이 찾을 수 있었다.

색색의 조명으로 밝혀진 터널에 이르자 레이저 쇼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름 오로라를 재현하기 위한 레이저 쇼라서 아이디어를 쓴 장식도 만들어 놓고 했는데

초연 당시엔 상당히 첨단 공연이던 레이저 쇼도 지금 와서는 그냥 그럭저럭 구경할 만한 느낌밖에 들지 않는 것이 현실.

 

분수 등을 보드로 이용하는 레이저 쇼를 처음 본 것은 국민학교 6학년 때, LA의 디즈니랜드였는데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벤트라 굉장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지금은 닳고 닳은 감성이라 과연 이걸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싶은 걱정도 든다.

사실 뭔가를 기대하고 간다기 보다는 오늘 하루종일 차 타고 이동하는 것 말고는 해 본게 없기도 하고

비수기에 관광객들에게 만족을 주고 싶다는 지역 주민들의 열정에 응답하는 기분도 있었고.

 

 

 

원래 단차가 있는 건지 그냥 눈으로 만들어 놓은건지 알 수 없지만 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도록 계단 형식으로 만들어 져 있다.

안내하는 분이 확성기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안쪽 뒤쪽이 더 잘보이니 좀 더 들어가 달라고.

 

별 생각없이 깊숙한 뒤쪽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조금 의심스럽다.

그냥 원활한 자리 배치를 위해 그렇게 꼬드긴 것이 아닌가 싶은데. 아무래도 중앙 앞쪽이 좀 더 잘 보일 듯 하니 말이다.

사진 몇 장 찍어내는 데 불편함만 없다면 위치는 어디든 상관 없다.

 

단지 주위에는 불빛이란 게 거의 없는 칠흙같은 밤이라 왠만한 카메라로도 좀 버거울 듯한 예감이 든다.

 

 

 

걸어오는 사람 수는 그냥저냥이라서 널널하겠네 싶었는데

아마도 언덕 위의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로 추정되는 인파가 몰아닥치자 회장은 순식간에 만원이 된다.

일찍 온 장점을 활용해서 가장 좋은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안내원의 속삭임에 응하는 바람에 엉성한 선정이 되어버렸다.

 

모자와 장갑을 끼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시레토코의 밤은 강렬하다. 본인은 카메라 원활히 다루기 위해

손가락 쪽은 덮히지 않은 손목 방한대만 걸치고 있어서 조금 더 춥지만, 원래 추위에 강해서 별다른 부담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현재 시레토코에 머물고 있는 관광객의 80%는 다 나와있다는 느낌. 절반쯤은 중국인 관광객이지만 그래도 꽤나 왔다는 느낌이다.

 

 

 

그냥 평범한 공터라서 장막 역할을 할 분수 같은 장치가 전혀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했는데

사람은 머리를 쓰는 동물이라서, 뒤편에서 살짝 매큼한 냄새가 난다 싶더니만 열심히 뭔가를 태워서 연기를 내고 있었다.

분수처럼 장막을 만들어 줄 정도는 아니지만 마침내 시작한 오로라 레이저 쇼를 보니 이런 연기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연출이다.

 

워낙 어두워서 거리감을 느낄 수도 없지만, 어디선가 발사되는 다양한 레이저의 물결이 피워놓은 연기에 산란되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주변 불빛이 거의 없는 천혜의 환경 덕에 하늘 전체를 뒤덮는 레이저의 모습은 예상보다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오로라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실제로 중간중간 흐르는 나레이션도 오로라에 대한 설명이 반이고 나머지는 일본 신화와 시레토코에 관련된 연극같은 느낌의 내용.

바다쪽은 그야말로 암흑의 중심이라 중앙의 레이저 포인터 위치를 감잡을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신비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바다 건너 언덕쪽에서 비추고 있는 듯 하지만, 실제 거리가 5km 가까이 되기 때문에 저곳에서 레이저를 쏘기는 어렵다.

 

아마도 바다 중간 어디쯤에 장치를 설치해 놓은 듯 한데 완전한 암흑 속에서는 흡사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25년쯤 전에 이 쇼를 봤다면 평생 잊지 못할 굉장한 추억이 되었을 법 하다. 지금 봐도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는 아닌 수준이니까.

 

 

 

끊임없이 움직이는 레이저를 디지털 카메라로 포착하기가 쉽지는 않다.

감도를 무리하게 올리고도 촛점 잡는게 쉽지는 않은데, 이럴 때는 휴대폰처럼 심도와 셔터스피드 생각 할 필요가 없는 작은 녀석들이 더 유용할지도.

 

바람이 많이 불거나 하면 애써 피워놓은 연기가 다 날아가는 불상사가 벌어질수도 있지만 다행히도 기온만 낮았지 바람은 별로 없는 편이다.

주변이 워낙 어두워서 레이저가 통과하지 않는 부분은 연기를 전혀 볼 수 없었던 탓에 집중감이 강해진다.

외계인이라던가, 달세계에서 내려오는 신성한 빛과 같은 느낌을 수는 데는 이런 연기와의 콜라보가 큰 효과를 주는 듯.

 

 

 

대자연의 웅장함 말고는 그다지 내세울 게 없는 일본 최고의 오지에서 첨단 레이저 쇼를 즐기는 기분도 나름 각별하다.

 

기획한 사람들의 노력이 느껴지는 부분도 많다.

부족한 자원을 아이디어로 커버한다던가, 바다 쪽 공간을 충분히 활용한다던가.

크기만 보자면 어떤 대형 극장보다도 박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멋진 시간이 될 듯 하다.

 

잠깐동안이긴 하지만 추위를 잊고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레이저가 표현할 수 있는 움직임과 색상에는 한계가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넓게 퍼져가는 연기 덕분에 훌륭한 연출이 가능하다.

 

하늘의 문이 열리는 듯한 연출에서는 레이저가 가만히 있어도 연기가 움직이는 벽을 만들어 내고 있어 장엄한 느낌을 준다.

일본쪽의 성격이 그렇겠지만 기본적으로 장엄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미국에서는 장소가 장소이기도 했고, 가볍고 즐거운 음악과 노래가 주를 이뤘는데.

 

디즈니랜드의 그것과 비교해서 연출적으로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형적 장점을 최대한 이용한 넓은 공간감은 아무래도 여기를 따라올 만한 장소가 없을 듯 하다.

 

 

 

30분 남짓한 공연이 끝나고 진행자가 감사 인사를 한다.

관람료를 생각하면 이 정도로 괜찮을까 싶기도 하지만 시레토코에서 이런 걸 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준수한 편이다.

500엔 아낀다고 이걸 보지 않고 지나가는 관광객이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하고.

 

물론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매번 갈 때마다 이걸 볼 생각까지 드는 것은 아니라, 다음에 찾아갈 때도 이걸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고민을 해 봐야겠지만.

 

공연 후 돌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서비스 차원에서 하트모양의 레이저를 쏴 주는데

오히려 이것 때문에 커플사진 찍는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연인과 함께 온다면 꽤나 로맨틱한 분위기가 될 듯 하다.

 

 

 

워낙 어두워서 지금 돌아가는 길이 왔던 길과 같은 것인가조차 헷갈리는데

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바위에 조명이 들어와 있다. 조명이 없으면 바로 옆에 있어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특촬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척 보자마자 금방 웃음이 나올 만한 바위.

이름 역시 당연하게도 '고지라 바위'다. 일부러 깎아낸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놀랄만큼 닮아 있다.

 

 

 

가까이 가서 봐도 참 묘하게도 닮아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자연의 조각력이란 꽤나 섬세해서, 이곳 시레토코 곳곳에는 재미있는 모양을 한 바위가 많다.

마을 어귀에 위치한 거대한 바위는 정말 너무나도 거북이 모습과 똑같아서, 인위적으로 깎아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

 

이 고지라 바위도 밤에 보니 명암차에 의해 더욱 위엄있게 보인다. 레이저 쇼에서 이득을 하나 더 얻어가는 느낌.

 

 

 

길을 걸어가는데 주민들이 '괜찮으시면 들렀다 가세요' 라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이 시간엔 당연히 문 여는 가게가 없지만, 오로라 쇼가 끝나고 나서 조금이나마 매상을 오려보고자 기획한 임시 시장인 듯.

역시 일본인들의 장사 수완은 참 꼼꼼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해산물 중심인 시레토코의 특산품이라 본인이 구입할 거리는 별로 없지만 이런 구경을 놓칠 이유는 없었기에 들어가 본다.

건물 중앙에는 숯불이 놓여있어 손님들을 따듯하게 맞아주고, 천정에서는 시레토코 오로라 판타지 공식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다.

크게 유명한 가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들을 만 한 일반적인 가요 레벨이라, 레이저 쇼를 재미있게 즐긴 사람이라면 기념으로 구입해가도 될 정도.

 

물건을 사지 않아도 한 쪽에서는 이 곳을 찾아준 사람들에게 따듯한 감주를 한 잔씩 나눠주고 있다.

한국의 달달한 감주와는 살짝 다르게, 달콤하면서도 살짝 톡 쏘는 씁쓸함이 느껴지는 일본의 감주는

추운 겨울날 따뜻하게 해서 마시면 그 만족감이 굉장하다. 실제로 연말 연시 신사나 절에서 많이 나눠주기도 한다.

 

 

 

감주만 받아먹어서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본인이 구입할 만한 것이 없다.

물론 진공 포장 잘 된 해산물들이지만, 내가 바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몰라도 앞으로 6일간 여행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도시 특산품에 비하면 조금 투박한 포장과 내용물이지만 신선도로 치면 여기보다 더 나은 곳을 찾기 어려울테니

나이든 사람들은 꽤나 이것저것 구입해 가는 편이다.

 

시레토코에는 애정이 각별해서, 뭔가를 구입하러 온다기 보다는 이 곳의 분위기에 취해 한두 개쯤은 사 주고 싶어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외지 중 외지인 이곳에서 한국까지 버틸 수 있는 먹거리를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 항상 아쉽기도 하다.

 

 

 

겨울이라고 손 놓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마을 사람들의 열의를 충분히 느끼며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

 

멋들어진 볼거리와 편의성으로 무장한 관광 도시와 달리

이런 곳은 크게 즐길 거리가 없어도 지역민들의 노력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는 점만으로 관광 온 보람이 충분하다.

오로라 레이저 쇼를 보러 가서, 레이저의 화려함보다는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정성에 훈훈함을 느끼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는 곳.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레이저 쇼 회장에서 상당히 가까운 호텔이라 돌아오는 길도 가볍다.

하지만 워낙 어두워서 이런 짧은 거리에서도 길을 잃는 바람에 버스 주차장으로 가 버리는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다행히도 머뭇거리고 있으니 안내원이 다가와서 어느 호텔이냐고 물어본 후 바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줬다.

 

삿포로, 오타루, 아사히카와 등의 이름난 도시와 비교하면 별 것 없는 조그만 마을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곳에 와서는 매 순간순간이 그저 훈훈하고 즐거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