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서로 떨어진 공동묘지에 잠들어 계십니다.
한쪽이 너무 일찍 떠나셔서요.


일본에서는 8월 15일날이 오봉'お盆'이라는 명절로,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는 날이라 여겨 집앞에 등불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는 등의 의식을 지냅니다.
가까운 가족이 세상을 떠난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 공양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어, 일본 최대의 연휴, 축제기간으로 인식되기도 하죠.

저는 가족 4인 말고는(형수님 들어오셨으니 5인인가) 다른 일가친척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어서
명절때 지내는 차례라던가, 성묘라던가 별로 반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쪽 어른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시게 되니 예전과 같은 기분으로 성묘를 가진 못하겠더군요.
외할머니는 제가 태어나기 아주아주 한참 전에 돌아가셨으니 얼굴도 모르고.


서로 떨어진 곳에 잠들어 계시는 분들을 시간 간격으로 찾아뵙는 행사는 가는 길에서나, 묘 앞에서나, 오늘 길에서나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마음은 진지하지만 그냥 그렇게 마시고 싶어하시는 술이나 잔뜩 따라서 뿌려드리고 사진이나 찍고 있죠.


사람은 누구나 나이들면 떠나가게 되어 있다지만,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그런 경험을 겪지 않았거나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겨우 괜찮은 척 할 수 있는 여유를 얻은 사람이겠죠.


본인의 문제라면야 근심 한 점 없이 떠나도 관계없다고 생각하지만
주위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다는게 인생이라는 것.


공동묘지 한 쪽에는 '관리비 미납묘' 경고판이 서 있는 곳도 많습니다.
묘석에는 '희망원 재소자'라고 적혀 있더군요. 살아온 날도 5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으면 편안히 누워있기도 힘든 세상이라고 쓴웃음으로 말하지만, 본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죠.


전 묘를 남길 생각은 전혀 없고, 실험 재료로 쓰던 태워서 바다에 뿌리던 관심 없지만
추천하는 영화, 책, 음악등을 리스트로 만들어 놓고 혹여 기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것들이나 한번 감상해보라고 해 주고 싶네요.


생의 마지막 날을 구태여 잊으려 하거나, 미리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저 먼저 가시는 분들에겐 '지금까지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고, 앞으로도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테니 걱정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이상의 어떤 좋은 말도 생각이 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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