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지우펀 거리를 돌아봅니다.
촬영 스팟으로 적당한 넓은 지대가 들어왔는데, 아쉽게도 안개가 자욱해서 시야가 제한되더군요.
대강 보시면 아시겠지만 예전 한창 개발중이던 한국 산골동네와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가늘고 촘촘히 얽힌 골목길과 정감가는 옛날 집들.
마을 분위기만큼이나 고양이도 태평스러운 느낌입니다.
신세대틱하게 옷 입고 산책하는 강아지도 있구요.
지우펀도 이제 관광객으로 먹고 사는 마을이니 적당히 신구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중인듯.
아기자기한 간판과 그 뒤에 보이는 영어 설명문까지.
정작 이곳 사람들은 일본어를 하면 할 줄 알았지 영어는 정말 젬병이었습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도 여행하는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만 말이죠.
세계 공통이겠지만 적당히 손가락질만 잘 하면 굶어죽을 일 없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저 멀리 바닷가도 보입니다.
아침에 그렇게 쨍쨍하더니 갑자기 산기슭까지 안개가 쏴악 올라오는 모습이 장관이더군요.
사진 찍을땐 조금 아쉽긴 했네요.
카메라 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형님이 파인더에 들어와버렸군요.
재미있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이 자연샷의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가가 가득 들어선 골목은 빠져나왔고 이제 일반 주택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다떨고 있는 한가운데 고양이가 살포시 앉아있네요.
발치에서 가만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사람과 친숙한 녀석인가 봅니다.
쓰다듬으려고 하니 별 거부도 없이 살금살금 다가오더군요.
그런데 순간 냥이가 아주 미친듯이 펄쩍펄쩍 뛰며 비명을 지르길래 어디 병걸린 녀석 아닌가 싶었습니다.
뒤에서 형님부부가 상황을 봤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고양이 꼬리 밟은줄 모르고 계속 서 있었다네요.
한~참 밟고 있었던 탓에 냥이가 완전 신들린듯이 경기를 일으켰습니다.
아주머니들이 그거 보고 어찌나 웃어대던지... 고양이한테 굉장히 미안해 하시더군요.
혼비백산했던 냥이는 좀처럼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곳 사람들하고 친근하게 지냈던 녀석인데 얼마나 놀랐으면 귀가 바싹 접혀있군요.
하루빨리 마음을 놓기를 기원하며 지나갔습니다.
이곳엔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지 (드라마 촬영장소였다죠?) 한글로 된 민박집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네요.
사실 이곳의 상가들은 대만에서도 문을 일찍 닫는 편이라, 저녁에 그리 적절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좁은 골목 사이사이로 등이 켜진 저녁의 지우펀은 아주 아름답다고 하니 이곳을 숙소로 정하는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지도.
다른 가게들과는 달리 찻집은 밤늦게까지 운영한다니 산아래 펼쳐진 야경을 감상하며 차 마시는것도 좋을 듯.
이제 관광지로서의 지우펀은 끝이 난 것 같은데 여전히 여기저기 볼 만한 풍경은 많습니다.
이런 곳은 일상적일수록 오히려 좋은 관광지가 되니까요.
골목골목 사진 찍기도 좋구요.
요즘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아련한 광경도 눈에 들어옵니다.
벽돌담과 바이크가 아예 일체형이 되어버렸네요.
이 길이 아닌가벼...
형수님이 카메라 빌려서 여기저기 찍고 있는 동안에 가이드역을 맡은 형님은 열심히 지도 찾고 있습니다.
저는 그냥 생각없이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니 편하더군요.
이번 오사카 여행땐 제가 가이드가 되어 일행을 끌고다니느라 좀 고생했지만 말이죠.
속편하게 따라오며 자기가 어디 가는지도 잘 모르는 친구를 보니 뭔가 부아 비슷한게 좀 치밀기도 했는데
역지사지라는 단어 만든 녀석 참 머리 좋다는걸 느꼈습니다.
형수님이 찍으신 꽃. 색채 대비가 확연한게 좋은 사진이 나왔습니다.
저기도 아마 찻집인 듯 한데, 센스 넘치기도 하고 얼핏보면 좀 무섭기도 하네요.
저런 곳에서 차 마셔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지우펀이라는 곳은 그리 넓지도 않아서 금새 제 갈길을 찾아갈 수 있더군요.
공기가 좋아서 기분도 상쾌했습니다.
가는 길에 발견한 폐광.
원래 광산마을이었던 곳이라 이런 것이 아직 남아있군요.
물론 들어가지 못하도록 입구는 봉쇄되어 있습니다.
플래쉬를 켜고 찍어봤는데, 필름카메라로 찍다 보니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네요.
현상후 사진을 보니 살짝 섬뜩합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광산업은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괴로운 직업이니까요. 죽은 사람도 많을 듯.
여담으로, 일본엔 바다 위에 불쑥 솟아있는 광산 입구도 있습니다.
조그만 인공 방파제를 만들고 높게 빗면으로 된 광산 입구를 만들었는데 당시 기술력으로는 밀물때 밀려드는 바닷물을 막지 못해서
폐쇄되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그저 문만 닫혀있고 시에서도 관리하지 않아서, 관광지 소개에도 나와있지 않은 쓸쓸한 건축물이 되어 있습니다.
이곳엔 금광박물관도 있습니다.
진짜 관광객을 위한 박물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허름한 건물에
유치원생들 견학코스라도 되는 듯한 그림이 참 재밌더군요.
들어가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 볼 만한게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디카로 폼 잡을때는 한 손 샷이 멋지긴 합니다만...
그래서는 분명 집에 와서 확대해 볼때 떨림이 생겨있을겁니다. 넵.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성핑극장.
1927년에 목조 건물로 만들어졌다가 파손된 후 1951년에 재건한 상태입니다.
당시 일제시대땐 대만에서 가장 큰 극장으로 명성을 날렸다고 하더군요.
간판 그림은 대만을 대표하는 감독 허우 샤오시엔의 작품입니다.
1989년 베네치아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감독의 대표작 '비정성시'의 촬영지가 이곳 지우펀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지우펀을 존재하게 한 일등 공신이었죠. (지금 한국에서 온에어 보고 찾아오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듯)
아이러니하게도 이 극장은 비정성시가 상영되기 전인 1986년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극장의 모습은 많은 관광객뿐 아니라 대만 현지인들에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죠.
극장 옆 오르막길을 오르면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홍등이 지붕을 덮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해가 진 후에 와보면 멋졌을 텐데, 일행은 일찍 이곳에 온 터라 저녁까지 개길수가 없었네요.
일본인 관광객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대만이지만
요즘엔 한국인도 굉장히 많이 옵니다.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리는군요.
한국말~
가이드북에도 소개되어 있는 유명한 가면집이라는데
입장료도 내야 하고 해서 그냥 패스했습니다.
형님이 사진 찍는데 주인장이 사진 찍지마라고 하길래 깜딱 놀랐는데
알고보니 옆의 다른 관광객한테 한 말이더군요. 형님이 사진 찍은줄 몰라서 일행은 한 장 건졌다고 웃으며 그 자리를 떴습니다.
언덕 끝까지 올라가면 그냥 학교 하나 덩그라니 있고... 그게 끝이네요.
하지만 이곳 꼭대기에는 지우펀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중 하나인 위위엔으로 유명한 가게가 있습니다.
위위엔은 달짝한 국물에 감자, 토란등을 떡처럼 빚어넣어 만든 간식거리입니다.
따뜻한 국물로 먹을수도 있고 더울 땐 빙수처럼 얼음을 갈아넣어 먹기도 하는 전천후 간식.
겨울이라지만 날씨는 춥지 않았는데 그냥 따뜻한 위위엔 한번 먹어봤습니다.
말랑말랑 씹히는게 별 특색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맛있더군요.
한동안 계단에 앉아서 위위엔을 씹으먹으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느긋하게 4~5시간 정도면 충분히 다 돌고도 뽕을 뽑을 지우펀이지만,
그 유명한 야경을 보지 못했던 것은 좀 아쉽네요. 하지만 짧은 여행기간동안 둘러봐야 할 곳이 많아서 자리를 뜹니다.
타이베이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대만여행때는 빠져서는 안될 곳이라고 생각.
내리는 곳도 탄 곳과 같습니다.
무지 거대한 백화점 SOGO에서 적당히 밥 챙겨먹었어요. 지우펀에서 워낙 가지가지 주워먹어서 배가 좀 불렀지만.
백화점에서 이것 저것 구경한 후 대만 최대의 서점 체인이자, 2004년 타임지에서 아시아 최고의 서점으로 뽑히기도 했던 청핀수뎬(誠品書店)으로 향했습니다.
사진은 백화점 꼭대기쯤에 있던 일본식 정원.
왜 이런걸 만들어 놓은 건지는 모르겠네요.
서점으로 들어가는 도중 뭔가 대만에서는 유명한 듯한 가수분이 노래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지막 노래였는지 금새 끝나고 인사하고 자리 뜨더군요.
청핀수뎬은 규모도 규모지만 적절한 인테리어 배치와 공간 활용의 극대화, 인덱스의 체계화 등을 통해 그 명성을 높힌 케이스입니다.
현재 한국의 거대 교보문고, 반디북등의 내부 배치나 인테리어도 이곳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네요.
지하에는 여러가지 악세사리나 관광 상품, 음반 등 다양한 매체를 팔고 있기도 합니다.
문득문득 사고 싶어지는 포스트 카드같은것도 있어서 눈이 즐겁더군요.
저는 일본어 원서를 좀 싸게 살 수 있나 싶어서 기대했는데, 기대했던 것 만큼 많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물건너 주문해야만 구할 수 있는 유명 사진가들의 작품이 무진장 쌓여있어서 행복했네요.
이런 것들은 무게도 권당 5~6kg 이나 나가고 가격도 허벌나게 비싸서 사들고 오진 못했지만
황송하게도 몇몇 작품은 샘플용이라고 직접 볼 수 있게 해 놔서 정신없이 사진 들여다봤습니다.
보통 왠만해서는 유명 사진가들의 작품집은 절대로 속을 볼 수 없게 해놓는데, 과연 대륙의 후손.
다리도 꽤나 피곤하고 해서 서점을 둘러본 후 서점 내부의 까페에서 커피 한잔 했습니다.
가고싶은 곳 리스트를 너무 빡빡하게 잡았는지 예정된 지역을 다 둘러보진 못했는데
출발 전부터 꽤나 강행군을 한 터라 그냥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들어가 쉬기로...
원래대로라면 내일은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협곡인 타이루거 쪽을 가려고 했지만
타이베이시에서 타이루거로 가려면 편도 3시간을 훌쩍 넘는 이동거리 때문에 다른 곳 관광이 거의 불가능한 고로.
좀 더 가까운 곳을 돌아봄으로서 둘러볼 수 있는 곳을 더 늘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형수님이 지우펀의 샵에서 구입한 반지와 함께 닭살샷 한 장.
가격도 싸고 단순한 모습이 마음에 드는 반지였습니다.
내일은 특이한 바위들이 즐비하다는 예류의 해양박물관으로 고고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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