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 외할아버지 기일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외가 친척분들이 한자리에 모였네요.
다행히 날씨는 좋아서 기분이 좀 풀렸습니다.


뭐, 오랜만에 친척들끼리 모이니 기분 좋을수도 있는 것이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 바로 옆에 자리잡은 이 공동묘원에는 여러 사연있는 사람들이 많이 쉬고 있더군요.
얼마 안되는 관리비를 내지 않아서 '관리비 미납묘'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는 곳도 있고
'희망원 재소자'라는 쓸쓸만 문구 하나만 적힌 묘도 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이 되는 날이라 올해는 의미가 남달랐죠.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꺼번에 절 할만한 공간이 부족해 조금 난감했습니다.

저렇게 조화를 남겨놓은 묘가 많던데, 저로서는 참 납득하기 힘든 처사입니다.
오랫동안 바래지 않는 조화가 좋게 보여서 그런 것 같지만, 꽃이란 시드는 것까지 포함해서 꽃인데 말이죠.
저런 환경파괴의 주범같은 녀석을 잠들어 있는 사람에게 바친다는 행위가 참... 역시 현대사회구나 싶은 느낌입니다.


성묘를 마치고 근처에 자리잡고 점심을 먹습니다.
멀리서 찾아오신 외숙모께서 아주 엄청난 진수성찬을 차에 실어서 갖고 내려오셨더군요.


든든한 문어


겨자소스 나물무침, 그리고 사진엔 안나왔지만 간장 콩조림.


이제 막 잡히기 시작한 싱싱한 밥도둑 간장게장!
세심하게 밥도 잡곡밥과 쌀밥을 함께 가져오셔서, 게장에는 흰 쌀밥을 비벼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성묘와서 너무 화려한 식사가 아닌가 싶었지만, 1년에 한번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니 이런 것도 좋겠죠.


돼지고기를 묵은지로 돌돌 싸서 끓인 김치말이 돼지고기 버섯전골(?)
여기저기서 음식점 하나 차리라는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만, 도저히 재료비를 맞출 만한 음식들이 아니라서.

울 가족은 남은 콩조림과 간장게장 2마리까지 전리품으로 챙겨왔습니다.


식후엔 외삼촌이 직접 기른 무농약 유기농 딸기까지.
강렬한 붉은색이 부풀어 터지려는 뱃속에 다시 꾸역꾸역 공간을 만들어갑니다.

배불러도 먹을건 먹어야죠.


참 행복하게도 먹습니다.


필받아서 왕년에 껌좀 씹었을 것 같은 포즈로도 한 장.


좀 더 필받아서 씬시티에 나오는 악당역같은 느낌으로도 한 장.


중학교때부터 (국민학교때였나?) 미국에서 혼자 생활중인 사촌 동생이 방학을 맞아 한국에 왔습니다.
이제 내년이면 대학까지 갈 나이군요. 오랜 자취생활의 결실을 맺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양심 판매대는 좋은데, 조화를 팔고 있다는게 참 마음에 안드네요.
예전에도 장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이...

효심과 공경심을 이용해서 참 뼛속까지 돈 빨아먹는구나 싶었습니다.
안장하기 전에 뭔 비싼 흙까지 사가지고 꽉꽉 채워넣으면서 이게 오래 가고 질이 좋고 어쩌고...
참 구역질 나죠.


먼 길을 가야 하는 친척들과 헤어진 후 저희 가족만 따로 외할머니 산소에도 찾아갔습니다.
워낙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묘지가 서로 떨어져 계시는데, 언젠간 함께 누우실 때가 올런지요.


봄이라 그런지 산소 옆에 개나리가 소박하게 피었네요.


예정에 없던 일이라... 슈퍼에서 급하게 사오느라고 메뉴가 참 신식입니다. ㅡㅡ;
붕어싸만코는 그냥 깔때기 대신이니까 오해하지 마시길.


거의 산 정상에 자리잡은 곳이라 올라갈 땐 좀 힘들어도 주변 풍경이 심심하지 않은 곳이네요.
원래대로라면 올해 추석때 이곳을 다시 찾아야 되겠지만 전 그때쯤이면 한국에 없는 고로 올해는 이번 인사가 마지막이 될 듯.


어차피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언젠가는 이런 장례문화도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겠죠.
아님 부자들만 떵떵거리며 산소 만들고 대부분은 그냥 화장하게 될지도.
그럼 또 돈벌어서 부모 산소정도는 만들어야 효자라는 헛소리가 유행하게 될지도 모르고...


이 공동묘지는 아~주 오래전에 대구의 한 성당에서
묘지 하나 만들 능력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간신히 만들어낸 곳이기도 하죠.
지도계층의 사유 재산이 없는 카톨릭이란 종교단체라서 가능한 좋은 업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덤 여기저기에 핀 할미꽃이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듭니다.

그럼 내년에 다시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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