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가 여기저기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에 잘 둘러보면서 걸으면 거의 모든 지역을 다 볼수 있다.

수리중인지 원래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한두 군데 출입금지 푯말이 붙어있는 곳도 있는데

그렇게 넓은 정원은 아니기 때문에 멀리 서서도 감상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예를들면 이런 곳. 지나갈 수 없게 만들어서 아쉽긴 하다.

오리지날 정원은 통로를 저런 자갈로 깔아놨기 때문에, 주인장이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고 나면

하인들이 매일 자갈을 고르게 펴서 깨끗한 형태로 만드는게 일이었다고 한다.

 

현재의 일본식 정원은 100% 확률로 개장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옛날 이 정원의 주인은 해가 지고 나서도 정원 곳곳에 설치된 불빛과 초롱 하나 들고 밤의 정원을 즐길 수 있었을 듯.

연못가에 반딧불이라도 서식하고 있다면 밤에 보는 풍경도 참 운치있을것 같다.

 

 

 

여름 한철이 지나가고 아직 가을이 오지 않은 애매한 시기라서

푸른 초목과 이끼에 비해 화사한 꽃들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중간에 모란관이라는 작은 건물이 한채 있는데

그곳은 초겨울이라고 할만큼 선선하며, 안에는 형형색색의 모란들로 이루어진 조그만 정원이 있다.

단순히 모란꽃만 모아놓은게 아니라, 작은 공간이지만 제대로 정원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서 훌륭한 볼거리.

모란은 향이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지만 폐쇄된 공간에 그만한 모란이 피어있으니 은은한 향기가 가득 차 있다.

 

사진 촬영금지라는 푯말이 적혀 있어서 그냥 감상만 했는데, 단체 한국인 관광객은 그런거 신경쓸 이유가 없다.

모란꽃 앞에 가족들 세워놓고 신나게 찍고 있는 모습을 보니, 사실 관광객으로 붐비지 않을때는 찍어도 큰 문제 없을듯 하다.

작은 건물이라서 사람들에게 방해될까봐 촬영금지라고 붙여놓은 듯 하니까.

 

어쩄든 관리자한테 허락을 받지 않았으니 모란관의 내부 모습은 촬영없이 눈으로만 감상하고 나왔다.

어쨰서 이 정원이 모란을 그렇게 중요시 하는지는 심히 궁금하다. 사시사철 다른 종류의 꽃이 피는 곳이라서 모란에 집중할 이유가 없는데

모란관이라는 별장까지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분명 이 정원과 관련된 뭔가가 있겠지. 훗날 알아보기로 한다.

 

 

 

밖은 덥고 모란관 안은 시원해서 나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햇살 아래 반짝이는 이끼들 모습을 보니 땀 흘리며 셔터 누르는 보람이 있어 즐겁다.

 

 

 

숲 속의 숲이라고 할까. 고개를 숙이고 가까운 곳에서 지면을 바라보면

이제껏 봐 왔던 정원과는 다른 마이크로 세상이 따로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조경용으로 심어진 이끼는 나름 모습도 준수한 편이라, 방금 전 뿌린 비로 물방울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더욱 매력적.

 

 

 

절반쯤 코스를 돌다보면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조그만 가게에 도착한다.

분위기 타면서 한잔 해도 되겠지만 너무 여유부렸다간 버스 시간을 못맞출수도 있으니 조심하기로 한다.

호텔 숙박이라면 아무리 늦게 가도 관계없지만, 페리 승선시간에 늦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와버리니.

 

차 한잔은 넘기기로 하고, 그냥 그늘 벤치에 앉아서 숨좀 돌리며 주변의 꽃이나 찍어본다.

한달 정도만 더 넘기면 계절에 맞는 꽃이 활짝 필것 같아서, 그 모습도 기대가 된다.

 

 

 

가끔씩 코스가 두 부분으로 나눠지기도 하는데, 조그만 언덕으로 나 있는 길 앞에는 폭포가 있단다.

정원의 크기를 볼떄 폭포라고 할 만한 녀석은 아니겠지만 아마 인공적으로 지어졌을 그 폭포의 모습이 궁금하긴 하다.

 

사실 일본의 정원은 뭔가를 보기 위한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길이 아니라

길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는 것 자체가 목적인 곳이라서, 이렇게 걸어가는 코스의 사진을 담는게 목적에 더 부함하는 듯.

 

 

 

인공 폭포임에도 꽤나 볼만하다.

인공은 인공이지만 돌 색깔로 칠한 콘크리트가 아니라 진짜 돌을 쌓아 만든 녀석이라서.

 

그렇지 않은 곳도 많지만, 중간중간 제주도에서나 많이 보이는 현무암이 많이 놓여있는 걸 보고

이곳도 화산융기로 솟아난 곳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여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곳 유시엔이 속한 곳은 여의도같은 내륙의 섬이다.

내륙 호수이긴 하지만 바다와 연결된 곳이라서, 사실상 그냥 섬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듯.

 

이름은 재미있게도 다이콘지마(大根島), 다이콘은 무라는 뜻. 총각김치 만드는 그 무.

무리는게 생으로 먹으면 좀 매운 느낌이 있는데, 소바 양념장에 갈아넣는 무 종류중에는 특히 더 매운 녀석이 있다.

카라미다이콘(辛味大根)이라는, 의미 그대로 '매운맛 무'라는 이 녀석을 갈아서 양념장에 넣으면

시원시원하면서도 톡 쏘는듯한 매운맛이 소바의 맛을 더해준다.

 

아르바이트하던 소바집은 젊은 사장님부부과 그 부모님, 친척, 동네 할머니등이 이끌어가고 있었는데

키가 190은 되는 거구의 사장님은 전반적인 요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그 외의 잡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힘 없는 다른 분들을 대신해, 재료중 가장 힘이 많이 들어가는 무 갈기는 항상 내가 도맡아 했던 기억이 난다.

 

점심시간에 카라미다이콘과 와사비를 듬뿍듬뿍넣고, 한입 먹을때마다 머리속이 찡해지는 느낌을 즐기고 있으니

역시 한국사람이구나 하는 말을 하면서 놀라워하던 그쪽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아마 이곳이 제주도처럼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섬이라면, 벼농사보다는 무 재배같은게 주를 이루었을 수도 있겠지.

 

 

 

중간중간에 묘한 나무판이 보이길래 뭔가 싶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태우는 모기향이 설치된 상자였다. 대낮이라 잘 보이진 않지만 조금씩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미 시원하게 물린 뒤라서, 이 넓은 곳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녀석이란 건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손님들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에 기분은 꽤나 흡족하다.

 

 

 

단체 관광객들은 이미 구경 다 마치고 기념품점에 와글와글 몰려있다.

나로서도 이곳 유시엔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기념품에 대한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어제 이즈모의 개미공방에서 몇가지 기념품을 구입해 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엔 패스.

애초에 이 풍경을 놔두고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기념품점에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았고.

 

 

 

이제 산책로도 중반을 넘은 듯 한데, 거닐어보면 참 즐거울듯한 연못 위 나무다리는

아쉽게도 출입할 수 없는 장소였다. 예전에는 실제로 거닐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게 조금 아쉽다.

 

사진 담으면서 여러번 느꼈지만, 단풍이 한창 물드는 시기의 유시엔은 정말 환상적일 듯 하다.

너무 꽉꽉 들어차있는 느낌이 드는 지금에 비해서, 소나무의 푸른색과 단풍의 붉은색이 적절히 혼합된 가을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완성도있는 풍경을 선사해 주지 않을까 싶다.

 

가을에도 꼭 한번 들러보고 싶지만, 사진을 담을 당시가 9월 초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올해 가을에 다시 가기엔 좀 그렇지.

 

 

 

키우는 녀석인지 알아서 들어와 사는 녀석인지 모르겠다.

연못 안의 붕어들이야 구입해와서 기르는 녀석들이겠지만.

 

그래도 뭐 먹이 받아먹고 하다가 알아서들 정착한 녀석들이지 않을까 싶다. 천적도 별로 없고 사람도 안건드리고.

오리가 고개를 뒤로 접어서 턱을 앞가슴에 괴고 있는 저 모습은, 사람이 보기엔 뭔가 어색하지만 실은 편안한 휴식 자세.

일광욕을 즐기며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나보다도 저 녀석이 이 정원을 더 즐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느긋하게 걷다보니 처음 출발했던 건물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면적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 정원인데, 오솔길마냥 시야가 가려지는 부분이 많아서

근처를 이리저리 돌아도 각각 다른 공간을 산책하고 온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게 나름 섬세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의 강인한 생명력이 아직 충분히 남아있던 시기라서

조경수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녹색 에너지에 조금 지쳐갈 즈음이면

이렇게 사진을 만져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로와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어차피 푸른색 위주의 단색 풍경이었지만

무채색으로 바꾸고 나면, 화려한 색에 산란된 형태적 미학이 좀 더 쉽게 느껴지는 듯 하다.

 

 

 

모기들이 극성을 부리는 곳에서 렌즈를 갈아끼우는게 나름 귀찮은 일이긴 해도

광각으로 담은 이끼와 망원으로 담은 이끼의 모습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즐거운 작업이다.

 

멀리서 보면 보슬보슬한 녹색 모래처럼 보이는 이끼지만

가까이서 보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춘, 엄연한 조경수의 동료로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마크로 렌즈까지 가지고 왔다면 조경용 이끼의 모습을 좀 더 세밀하게 담을 수 있었겠지만

24mm 단렌즈, 50mm 단렌즈, 70-300 망원렌즈를 들고도 이렇게 헥헥거리는데.

 

육중한 본인의 카메라는, 일단 결과물에 불만을 주지 않기 때문에 굳건히 내 옆구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가방을 내려놓고 렌즈를 여러번 교환하는 도중에는 역시 가벼운 최신 미러리스 카메라들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완전 기계식 필름카메라와는 달리, 수명이 정해진 디지털 기기라서 언젠가는 다른 녀석으로 바꾸겠지만

훨씬 작아진 녀석을 만지작 거리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또 지금의 육중한 반사식 카메라의 느낌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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