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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18  2월 12일 아사히카와 - 이쪽도 스트레스 8

 

밖으로 나오니 북극곰이 이리저리 어슬렁거리고 있다.

사람들 구역과는 꽤나 넓고 깊은 해자가 있어서 이럴 때를 대비해 가져간 망원렌즈를 유용히 써보기로 했는데

몇 장 찍고나니 곰의 행동이 영 이상하다.

 

눈은 거의 뜨지 않은 상태로 몇 번이고 똑같은 장소만 왔다갔다 하고 있다.

건너편 건물 안에서는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한 녀석은 아예 유리창을 받침대 삼아 늘어져 자는 중이고, 서 있는 녀석은 끊임없이 왕복운동만 계속할 뿐.

구역 안에는 저렇게 콕핏처럼 생긴 유리창 안으로 카메라가 돌아간다. 사람이 올라서서 구경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사람들 입장에서야 북극곰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는 행동이 신기한 체험으로 남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저 북극곰의 행동은 동물원에 갇힌 녀석들이 자주 보인다는 스트레스성 정신장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행의 추억을 조금이라도 남기고자 찾아온 아사히야마 동물원이지만 역시 우려하던대로 자괴감이 들기 시작한다.

수백 km의 생활반경을 가지는 북극곰이 이런 곳에서 멀쩡하게 살아있을 리가 없었는데도.

꽤나 오랫동안 이런 현실에 마음이 불편해 동물원을 찾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온 동물원도 여전히 바뀌는 건 없다.

 

 

 

예전 자전거여행 때 찾아갔던 어느 지역에서는 유명한 성과 함께 조그마한 동물원이 붙어있어서 얼떨결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당시엔 우리에 갖힌 곰이 굵고 애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우리 앞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척 봐도 절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는데, 알고보니 전날 뉴스에 나왔던 '출산 직후 숨이 끊어진 새끼곰'의 어미였던 것.

충혈된 눈으로 끊임없이 울어대던 그 곰의 모습이 오랜만에 다시 생각나서 기분이 무거워진다.

 

북극여우의 일종이라고 기억이 나던 이 녀석은 사람들 시선에 들어가지 않는 방향을 인지라도 하고 있는 듯 절묘한 자세로 돌아누워있다.

 

 

 

사다리라도 가지고 올라가지 않는 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선에서 이 녀석의 얼굴을 잡을 수가 없다.

미동도 하지 않고 잘 자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눈더미와 동화된 듯한 녀석의 모습이나 담고 발걸음을 옮긴다.

 

 

 

레서판다 쪽으로 자리를 옮기니 그나마 어두워졌던 기분이 조금은 밝아진다.

신나게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에서 위안을 받기도 했지만, 레서판다는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친근함과 달리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는 위태위태한 녀석이다.

 

인간에게 호의적이고 호기심이 많으며 온순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아기 키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야생에서 번식률이 떨어진다.

벌목으로 터전을 많이 잃기도 해서 현재 전세계 동물원의 레서 판다가 종 전체의 1/5 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

그래서 이 녀석들 만큼은 동물원이 개체 보호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내세울만한 가치가 있다. 죄의식이 아주 약간이지만 희석되는 수준의 안도감.

 

 

 

물론 이 녀석에게도 동물원이란 조금 놀다보면 금방 심심해 지는 따분한 곳임에 틀림없겠지만

사람을 좋아하니 사육사들과는 나름 친분을 쌓을 수 있어서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무리 내 서열도 그렇게 강직되어 있지 않고 사이가 좋아서 안락한 생활을 보내는 녀석들이지만

특이하게도 교배를 할 수 있는 근연종이 없어서 유전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편이라는 점.

 

이름도 비슷한 팬더와 더불어 사람이 관리하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도태될 가능성이 높은 동물이다.

이 정도라면 동물원에서 보게 되었다고 씁쓸한 기분까지 느낄 필요는 없을 듯 싶다.

 

 

 

빈 우리 한켠에는 동절기에 밖으로 나오지 않는 녀석의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다.

고양이과이긴 한데 표범과 치타와는 좀 다르고, 스노우 레오파드라면 겨울에 안나올리가 없어서 조금 의아했다.

 

대체 어떤 녀석인가 싶어 조사해보니 보르네오섬에서 서식하는 구름표범이라는 매우 독특한 동물이라고.

겨울엔 볼 수 없지만 여름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다지 아쉬워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줄무늬 사이사이에 구름처럼 흰 털이 보이는 이 녀석은 이름만 표범이지 현존 표범과는 DNA 구조가 다른 완전한 별종이다.

한때 지상에 살았던 검치호와 비슷할 정도로 굉장히 크고 긴 송곳니가 특징이라 하지만 그걸 볼 기회는 인간의 인생 통틀어 몇 초 되지 않을 듯.

 

 

 

오타루를 휩쓸었던 스노우 캔들의 흔적이 이곳에도 남아있다.

문제는 이곳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겨울 폐장시간이 오후 3시 30분이라는 점인데.

 

 

 

북반구 극지방에 서식하는 흰올빼미는 겨울엔 눈과 완전히 동화되어 버린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직접 보니 사실이다.

머리가 170도 가까이 돌아가는 특성상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알 길이 없다.

맹금류가 동물원에 살고 있으면 좀 지루하지 않을까 싶은데.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었기 때문에 곰과 더불어 최상위 포식자로 이름높았던 늑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망원렌즈가 신경쓰인건지 꽤나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보통 날카로운게 아니다.

늑대 역시 겨울이 되면 털이 풍성해지기 때문에 그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다.

 

여러 장 찍을때까지 꼼짝도 않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혹시 내가 굉장히 폐를 끼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서식환경이 사람과 많이 겹치는 특성상, 일본에서는 근대화 이후 가장 빨리 멸종해버린 녀석.

한참 동안이나 시선을 마주치고 있다가 결국 앉아서 다른 곳을 쳐다보는데, 역시 대형 육식종은 동물원과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곰은 몰라도 늑대만큼은 현대 사회에서 공존하기가 너무 어려운 관계라

이렇게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지만

개보다 지능이 높은 탓에 받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닐거라 생각.

 

원래 이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입장객 감소로 폐장까지 고려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최대한 동물의 생태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고, 관람객과 동물들의 거리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 결과

'기적의 동물원'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재기에 성공해 지금은 연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 되었다.

 

블로그에서 게시한 수기로 쓴 펭귄 정보, 북극곰 먹이주기, 유리돔을 이용한 지근거리에서 동물 감상 등

많은 노력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보다 동물을 좋아하는 본인 성격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완벽한 대처라고 보기엔 어렵다.

당장 북극곰만 해도 대표적인 정신장애 증상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옆을 거닐고 있는 또 한 마리의 늑대의 앞발도 정상은 아니다.

상당히 심한 상처가 아물고 있는 모습인데, 바닥에는 아직도 피가 조금씩 보인다.

도시 하나 정도의 범위를 사파리 형식으로 만들지 않는 한, 대형 육식종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수는 없을 듯 하다.

 

 

 

일본에서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홋카이도 사슴 에조시카는 그냥 좀 지루할 뿐 느긋한 표정.

애초에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고, 야생에서는 늑대 등의 천적이 없어지는 바람에 유해조수로 지정되어 겨울에 마구 사냥당하는 신세라서.

 

모든 게 사람 탓이긴 하지만, 천적이 없어진 사슴은 홋카이도의 생태계를 박살내 버릴 정도로 번식하고 있어서

거대 농경이 이루어지는 토카치 평야나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시레토코 부근에서는 겨울만 되면 사냥이 허가되어 많이 죽어나간다.

 

 

 

거대한 뿔을 자랑하는 수컷은 한 눈에도 늑대나 곰 이외엔 사냥할 만한 동물이 떠오르지 않는다.

발정기때는 사람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라이플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속수무책이다.

자기가 쏟아부은 똥밭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어린이 동화에서 보이는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다.

 

동물은 인간의 방향성있는 시선과 관계 없이 그 자체로 위대하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깨달아 준다면

동물원이라는 감옥의 정당성이 조금이나마 납득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번 동물원에 올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그렇게 밝아지지 않는 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걱정을 안고 호랑이 쪽으로 이동하는데, 역시 불안은 적중했다.

창살에 딱 붙어서 끊임없이 왕복이동만 반복하고 있는 모습은 분명 정신병의 일종이다.

사람들이야 자기들 바로 앞에서 어슬렁거려주니 신기해하며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지만

그건 절대로 사람들에게 친근해서 보여주는 행동이 아니다. 한 장 찍고나니 더 이상 카메라를 들어올릴 마음이 사라진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대체로 야생보다 수명이 길다고는 하는데, 무표정하게 왔다갔다하는 백수의 왕을 보면 그게 과연 행복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물원에서 사람냄새 난다는 표현은 좀 어색하지만, 들쭉날쭉한 눈사람은 왠지 정감이 간다.

오타루의 밤을 아련하게 빛내 준 일등공신인 양동이가 모자 대신 올라가 있는 것을 보니

이곳에서도 저 녀석의 힘을 많이 빌렸는가 보다.

 

 

 

기린이라던가 조류라던가 몇 가지가 더 있었지만, 더 이상 지채하다간 사람을 어깨머너로 펭귄을 볼 것 같은 두려움에 장소를 옮긴다.

30분 전부터 기다리던 사람들 때문에 펭귄의 출발점 부근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안내원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펭귄을 앞에서 보실 분들은 옆으로 이동해 주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펭귄은 출발점에서 동물원 끝까지 걸어간 뒤에 계단을 내려가 다시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는데

덕분에 방향 전환하는 곳이 가장 먼데, 그곳에는 아직 사람들이 서 있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지만 방해없이 사진을 담을 수 있어서 그곳에 자리를 잡는다.

일단은 빙글 돌아가는 곳이니 조금이라도 더 펭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고.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유턴해서 돌아가는 쪽도 가장 앞줄을 차지하기 힘들었을 듯.

일단 동물원을 가로지르는 행렬이기 때문에 산책 시작 전까지는 안내원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도하고 있다.

계단이 매우 미끄러워서 조심하라는 멘트를 계속 날리고 있지만, 역시 가끔씩 떡방아를 찧는 사람들이 생긴다.

 

펭귄들은 저 계단이 아니라 옆의 완만한 경사를 이용해 움직일 예정. 산책이 시작되면 계단쪽은 폐쇠된다.

펭귄보다 안내원들이 더 바쁜 것이, 원활한 관람을 위해 서 있는 간격을 줄여달라고 이리저리 부탁하고 다닌다.

따로 제한선을 쳐 놓은 것도 아니라 펭귄 이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펭귄 산책이 시작되어도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거진 20분이 넘는 기다림 끝에 드디어 위쪽에서 뭔가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첫 타선을 끊은 건 무리와 동떨어진 새끼 한 마리.

 

다른 녀석들은 천천히 느릿느릿 팔을 흐느적거리며 이동중이지만 이 녀석만은 사람들이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혼자 무리에서 떨어져 이곳저곳 마구 이동중이다. 심지어 펭귄들을 위해 쳐 놓은 길안내용 줄도 넘어가 버리는 기행을 펼친다.

물론 사람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인기 폭발이다. 펭귄들에게나 사람들에게나 서로 재미있는 볼거리가 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