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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18  산인 여행 - 무사 저택 14
  2. 2012.09.16  산인 여행 - 여우신사의 심술 23

 

 

조금 전만큼은 아니지만 가랑비가 끊임없이 내려서, 옷 말리는건 사실상 포기.

다들 우산 한개씩 들고 다니는데, 한국에서 접이식 우산을 가져오지도 않았고, 호텔에서 대여해주는 비닐우산은 장우산이라서

귀찮아 들고오지 않았더니 이런 꼴이다. 사실 본인은 비에 젖어도 관계없는데 어디 들어가기가 좀 미안할 따름.

 

아버지께서 일본을 다녀왔을때 한국과 가장 다른 인상을 받았던 점으로,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가 없다는 것을 드셨는데

확실히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량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 거리의 풍경이 확 바뀌는 기분이 든다.

 

일본은 어떤 건물이든 주차공간을 확보하도록 법으로 지정되어 있고,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불법 주차시 벌금 20만원

골목이 아닌 대로변 주차 혹은 일정시간 지나거나 하면 견인비 30만원 정도가 부가되기 때문에

시골은 말할것도 없고 어지간한 대도시에도 교통에 방해되는 불법주차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처벌이 무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처럼 엉성엉성 주차단속하는 한량과는 달리

일단 발견되면 그 즉시 사진찍고 선 긋고 딱지 붙여버리기 때문에 그닥 엄두를 내지 않는다.

 

멀쩡하게 차선 지키면서 운전해도 불법 주정차된 차량 때문에 곡예운전을 해야 하는 한국에 비하면

마음 느긋하게 주행을 즐길 수 있는 이쪽 도로사정은 참으로 부럽기 그지없다.

내가 일본에 거주한다면 앞뒤 불문하고 바이크나 스쿠터같은 이륜구동 몰고 다닐텐데

한국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륜 몰고다닐 마음이 안생긴다. 사륜마저도 개떡같은 운전매너때문에 몰기 싫은데.

 

 

 

들어가서 구경하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나올법한 잡화점이 보인다.

밖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집 자체가 골동품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하지만 저렇게 좁은 곳은 지금 이렇게 젖어버린 몸으로 들어가기 좀 미안하다.

밖에서 살짝 구경이나 했는데, 창문 밑의 저 간판이 심히 신경쓰인다.

네모세모동그라미... 이거 뭘 의미하는거지?

소니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의 버튼이 비슷하긴 한데, 골동품점에서 팔 물건은 아닌듯 하고.

 

현지인들 상대인지 관광객들 상대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둘러보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 건져오는 것도 재미있을것 같다.

막상 사들고 오면, 내가 왜 이런걸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겠지만. 특히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 분위기 탈 확률이 높으니 조심.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보이는 저택이 코이즈미 야쿠모 기념관.

기념관 입구에도 쓰여 있지만, 이곳은 코이즈미의 생가가 아니고 기념관이다.

그가 살던 생가는 바로 옆에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고는 하지만 외국인에게 그게 별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입장료가 있긴 한데 그리 비싸지 않고, 외국인은 50% 할인이라서 매우 저렴하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난 코이즈미 야쿠모라는 문학가를 좋아하지 그가 살던 집이나 그의 물품에는 관심이 없다.

얼마 안되는 입장료 내고 들어가 구경하는건 관계없는데, 작은 물건 세심하게 쳐다보기에는 머리가 어지러워서 힘들 듯.

 

 

 

옆집은 진짜 코이즈미의 생가. 여기도 안에 들어가려면 요금 내야 하지만 앞마당까지는 공짜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듯 하다. 이 꼴로 들어가면 폐를 끼칠 것 같은 느낌.

 

일본인들에게 100년 전 자신들의 나라를 좋아해 찾아온 푸른눈의 외국인은 매우 귀중한 존재겠지.

나쁘게 말하자면 그가 왔다는 사실 자체를 자신들의 자부심으로 변환하는, 조금은 허세적인 마음일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도 안에 들어가지는 않고, 마당에 새초롬히 피어있는 이름모를 꽃이나 찍고 돌아선다.

비가 조금 세지는 듯 해서 몇 분 정도 입구 처마에 서서 비를 피하기도 하고.

 

 

 

그가 살았던 저택을 구경하기보다는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마츠에라는 조그마한 마을의 풍경을 느껴보는게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 부근은 그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한 건물들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조금이나마 코이즈미의 시선을 엿볼 수 있을 듯.

물론 코이즈미 야쿠모 때문에 이렇게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건 아니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곳은 시오미나와테(塩見縄手)라는 이름의 거리고, 나와테(縄手)라는 건 새끼줄처럼 길게 뻗어있는 거리를 뜻한다.

마츠에 성이 세워지고 나서 번주를 호위하는 무사들이 성 주변을 둘러싸는 형식으로 거주하게 된 것이 이 거리의 탄생.

시오미(塩見)라는 건 그 당시 봉행직에 있었던 시오미  코헤(塩見小兵衛)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그 중 관광객에게 공개된 건물이 바로 무사 저택. 이 길 대부분의 저택이 무사 저택이긴 하지만, 들어가 볼수 있는 녀석은 이곳 뿐.

 

 

 

특출나게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시오미나와테 거리와 함께 그 시절 사람들의 실제 생활터를

실감나게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점수를 받는 편.

 

280년 전쯤의 건물인데, 목조건물의 특성상 수리는 여러번 거쳤지만 당시 모습이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다.

여기도 외국인에게는 반값할인이 되니, 음료수 한개 사먹는 돈으로 입장 가능.

 

계속 비가내리고 있어서 파란 하늘이 참 그리워지지만, 이것도 나름 운치는 있다고 생각중이다.

 

 

 

물론 저런 인형까지 280년전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이 저택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중급 무사가 거주하던 곳인데, 관광화 되면서 그 당시 생활도구등을 모아 전시하게 되었다.

스피커에서는 일본어 설명과 함께 한국어 설명도 나와서 이해하기 쉬운 편.

 

물론 중급이라는 딱지가 붙었지만 무사는 무사, 애초에 이 거리는 번주를 호위하기 위한 무사들의 마을이었기 때문에

이 저택이 서민들의 생활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약간 어긋나지 않았나 본다.

한국의 경우에 대입한다면 어쨌든 어엿한 양반집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게 편할 듯.

 

 

 

일본은 일단 문인 무인 가르기 전에 관료직 자체를 무사라고 지칭하는 편이 적합하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무사가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이랄까, 그런 흔적이 꽤나 느껴진다.

깊게 들어가자면 논문 쓸 정도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그냥 검소하고 절제있는 생활에 맞춰져 있다고 보면 될 듯.

 

한국의 마당과는 달리, 일본의 정원은 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풍경의 일종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자갈은 항상 수면처럼 잘 골라놓고, 움직일 때는 저 돌을 밟는 꼼꼼함을 보인다. 난 그렇게는 못하겠다만.

 

 

 

여기는 여성들이 사용하던 물품들을 전시해 놓은 곳.

내용물은 그 시대 동양 여성들이 가지고 있었을 만한, 은근히 만고불변의 진리같은 느낌이 든다.

 

뒤에 걸려있는 예복은 생각보다 꽤 무겁다. 시대가 흐를수록 점점 가벼워지긴 했지만

화려함의 극치를 달렸던 헤이안 시대 여성의 예복은, 겹겹히 다 착용했을 경우 30kg 는 넘었으니.

그래서 자연스럽게 옷걸이도 매우 든든한 모습을 하고 있고, 하급 무가의 여성들은 저 예복이 인생에서 가장 귀한 물건일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물론, 제대로 된 전통 예복은 4~5천만원이 훌쩍 넘어가니... 화장품과 옷은 인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으리.

 

 

 

사실 300년 전쯤의 전통 가옥은, 그 편의성 면에서 볼때 한국의 그것이 월등히 앞서는 부분이 많다.

 

목재의 수급이 한국보다 수월해서 유리한 점이 있긴 했지만,

부엌이나 온돌, 대청 등 사계절의 변화에 능동적인 대처능력이 뛰어난 한국의 전통 가옥은, 동아시아 전체를 통틀어도 굉장한 하이레벨.

솔직히 집 짓는 능력은 요즘들어 훨씬 퇴화하지 않았나 싶은데, 물론 돈때문이곘지만 한국의 요즘 건물모습은 그냥 추하다.

 

 

 

예전에 사용하던 우물터.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덮개가 조금 인상적.

딱히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그냥 저택 뒷 언덕에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였겠지.

 

 

 

빗줄기도 점점 심해지고 그에 맞춰 머리도 돌기 시작해서 때마침 나타난 휴게소에 들어가서 걸터앉는다.

이곳도 원래 사용하던 건물인데, 휴게소로 사용하기 위해 살짝 보수를 거친 녀석.

 

물에 젖은 옷때문에 사실 앉아있는것도 좀 미안한 느낌이 들어서, 신발 벗고 위로 올라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옆에서 본다면 음악이라도 흥얼거리고 있는걸까 할 정도로 머리가 저절로 운율을 타고 있다.

몇몇 관광객들이 앉았다가 다시 나가기를 반복하는 시간동안 그냥 멍하니 앉아서 바깥 경치를 바라만 본다.

그 사람들은 우산을 가지고 있었으니 나가고 싶을때 나갈 수 있지만, 난 일단 비 그칠때까지 앉아있으려고.

 

 

 

이곳 무사 저택도. 개인 집치고는 그럭저럭 큰 편이지만 관광지로서는 참 조그마한 곳이라서

느긋하게 돌아도 15분이면 떡을 친다. 그런데 비 때문이기는 하지만 휴게소에 앉아서 20분 넘게 이 풍경만 계속 바라보고 있다.

꼼꼼하게 본다고 해도 역시 걸어가다가 멈추고, 다시 걸어가고 하는 구경과

그냥 한자리에 앉아서 같은 풍경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과는 꽤나 차이가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한옥에 익숙해서 그닥 살아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 저택이지만

집 안에서도, 심지어 수면 중에도 무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그때 그시절의 딱딱한 격식때문일까

난 집안에서는 옷 훌떡 벗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역시 좋다.

 

여기서 오른쪽을 보면 찻집을 겸한 조그마한 상점과, 언덕 위로 올라가는 작은 오솔길이 나 있는데

보통 이런 저택에는 언덕이라는게 있지도 않고, 그 위에 건물을 세우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저 위에 뭐가 있을지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비가 그치면 올라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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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진 후 아직 하늘을 맑아지지 않았지만, 주변 공기는 한층 더 맑아진 느낌이 든다.

조금 시원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30도를 넘는 날씨라서 후덥지근하다.

다행히 한 걸음 걸으면 바지와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흠뻑 젖은 상태라서, 기화열 덕분에 시원하다.

관광객이 많은 곳이었다면 이 몰골이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지겠지만 여긴 나 혼자밖에 없으니 여유롭다.

 

이름모를 신사에서 내려와 다시 루트를 타고 걸으니 바로 옆에 죠오잔 이나리신사(城山稲荷神社)로 향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죠오잔이라는 단어, '성산'은 사실 한국의 각 지방에도 얼마든지 보이는 산의 지명인데

일본에도 죠오잔 혹은 '시로야마' 라는 발음으로 각지에 같은 이름의 산이 존재한다.

'성산'이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가 그냥 '높은 언덕' 정도 되는 보편적인 뜻이라서 그럴까나.

 

이나리 신사란 곡식의 신인 이나리노카미(稲荷神)를 모시는 신사로서, 농본사회인 일본에서는 친근한 서민들의 신으로 유명하고

농업이 발달한 어지간한 지역에는 대부분 이나리 신사가 세워져 있었다.

규모가 작은 신사가 많아서 현재는 몇몇 유명한 곳을 빼면 많이 사라진 편이지만.

 

이나리노카미의 사자(使者) 역할을 하는 동물이 여우였고, 그래서 이나리 신사에는 여우상이 놓여있다고 보면 된다.

어느 지역에서나 마찬가지로, 여우라고 하면 보통 머리 좋고 영악하고 장난끼 많은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는데

일본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우가 좋아하는 유부를 공물로 바치지 않으면 길을 잃게 한다던가 비를 맞게 한다던가 하는 장난을 친다고 한다.

유부초밥의 일본어 발음이 이나리즈시(稲荷ずし) 인 것은 여기서 유래된 것.

폐를 끼치긴 해도 기본적으로 장난치는것을 좋아하는 녀석이라서 딱히 심각한 저주를 내린다거나 하는 건 없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안개처럼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여우비라고 하는데

일본어로는 이것을 '맑은날 비'라는 의미의 '日照り雨' 라고 쓰지만, 개인적으로는 문학적 사상이 듬뿍 담긴 '狐の嫁入り' 라는 표현을 훨씬 좋아한다.

말 그대로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라는 뜻인데, 이 역시 이나리 신사의 여우신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단어.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내가 지지하는 가설은, 장난끼 많은 여우신이 시집을 가면서 살포시 흘리는 진심이 담긴 비의 모습이라는 서정적인 녀석이다.

 

그리스 신화가 그랬듯, 사람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사람을 닮은 신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는 신화라는 이름으로 인류 문학의 토대가 된다.

이제와서 여우비가 단순히 급격한 기압차에 의한 소나기의 일종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수십 세기를 지나오는 동안 인류에게 예술의 즐거움을 전해다 준 신화속 에피소드들이, 여전히 주위에 남아있다는 증거중 하나가

바로 이 '여우가 시집가는 날' 이라는 서정성 넘치는 아름다운 단어라고 생각한다.

 

 

 

잠깐 현실 세계로 돌아오자면, 방금 내린 폭우는 아무리 봐도 여우비라고 할만한 녀석은 아니다.

그냥 이곳의 여우신이 심통나서, 혹은 나한테 감수성을 일깨워 여행의 흥을 돋궈 주려는 호의에서 벌인 일이 아닐까.

장난에 놀아난듯한 느낌이 들지만, 지난 번 포스팅에서 언급했듯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되려 비 덕에 씨익 웃을수도 있었고.

 

하지만 그런 장난덕에 잘 살고있던 거미는 긴급 복구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상태를 봐서는 대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미친듯한 발놀림으로 부서진 거미집을 다시 이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조금 불쌍하다.

하지만 내가 스파이더맨도 아니고, 그냥 가만 놔 두는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이렇게 사진이나마 남겨서, '이 거미는 게으름피지 않고 충실히 할 일을 하는 부지런한 녀석입니다' 라고 증언해주는 것 정도가

이 녀석의 프라이드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려나.

 

 

 

내가 코이즈미 야쿠모같은 이름난 문호는 아니지만

어쨌든 감수성이란 녀석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다양한 얼굴을 가진 여우신이 사랑스럽지 않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이곳은 코이즈미 야쿠모가 그토록 사랑하고,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들렀던 신사이기도 하다.

 

마츠에 시에서 가장 유명하고, 지금도 마츠에 시민들이 가장 존경해 마지않는 메이지 시대의 문호 코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가 사랑한 신사.

그는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 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스에서 태어난 영국인 2세였다.

아일랜드, 미국 등에서 생활하다가 특파원 자격으로 일본에 도착한 후, 이곳의 풍경과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고 귀화한 인물.

각지의 설화를 모아 출판한 '괴담'과, 자신이 느꼈던 일본의 모습을 담은 '동쪽 나라에서(Out of the East)' 등의 작품을 남겼다.

 

작품집 괴담에 실린 이야기들은 사실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것들이 많다.

코이즈미 야쿠모라는 이름도, 라프카디오 헌이라는 이름도 모르지만 그의 괴담은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

 

일본 역사의 주역을 맡아본 적도 없고, 이즈모타이샤를 제외한 문화재도 없는 고요한 시골마을 마츠에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도시 어디를 걸어다녀도 이 코이즈미 야쿠모에 대한 향수로 가득하며,

도시 제일의 볼거리로 문학가의 생애를 내세우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곳이다.

문학가의 피가 스며든 이곳에서는 자연스레 굉장한 퀄리티를 자랑하는 현립미술관이 들어서고

백만장자 개인이 설립한 사립 미술관은 미국 잡지에서 8년 연속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선정되고 있다.

 

히로시마의 평화 박물관? 그딴 거 자랑하는 것보다 이렇게 한 문호가 사랑했던 조그마한 여우 신사가 더욱 평화스럽다.

문학이란 아무런 형체도 없이,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차분하고 단단하게 사람들의 마음 속에 뿌리내리는 힘이다.

이제 메밀밭을 실제로 접한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도, 한밤중 메밀꽃의 숨막힐듯한 향기는 다들 느끼고 있으니까.

 

 

 

여기까지 오니 확실히 방금 전 폭우가 여행에 도움이 되었다는 확신이 든다.

비 내린 후 여우신사의 모습은 한층 더 여러가지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강력한 물줄기에 힘없이 고개를 숙인 무궁화도, 조금만 있으면 그 고개를 들고 더욱 생명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겠지.

 

 

 

이 정도로 원형을 보존한 이나리 신사는 별로 없다.

가장 유명하고 가장 규모가 큰 쿄토의 후시미(伏見) 이나리 신사는

이미 여우신의 장난끼있는 소박한 모습은 사라지고, 관광 스팟으로 유명한 천 개의 토리이(千本鳥居)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일본여행 팜플렛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주황색 토리이가 주르륵 배열된 신비한 모습의 주인공.

 

하지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나는 이런 나무향기 나는 조그만 신사를 훨씬 좋아한다.

 

 

 

신사 내부는 5분만 돌아다녀도 금방 끝날만큼 정말 자그만 느낌.

하지만 과장되지 않은 사당과 앙증맞게 늘어선 여우상의 모습은

왜 코이즈미 야쿠모가 이곳을 그토록 사랑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눈썹과 더듬이의 붓선은 사람이 직접 그려넣었기 때문에

다들 비슷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모습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살짝 장난끼있는 느낌.

 

이 신사가 서 있는 언덕 너머로는 코이즈미 야쿠모 생가와 기념관이 나란히 서 있지만

사실 내가 느끼고 싶었던 문학가 코이즈미 야쿠모의 모습은 그곳이 아니라 여기서 전부 둘러봤다고 생각한다.

 

그의 학력, 그의 모습, 그의 생애를 사진과 설명으로 곁들여서

그의 작품과 그가 사용했던 잡화들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기념관에서 과연 그를 느낄 수 있을까.

 

살아생전 그는 자신의 작품과 펜을 유리창 안에 넣어두고 바라보진 않았다.

하지만 통근시 매일 빠지지 않고 이 조그마한 신사에 들러 산책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비단 코이즈미의 그림자가 없었다 해도, 기본적으로 이나리 신사는 다른 신사에 비해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다.

비가 오거나 해가 진 어두컴컴한 시간에는, 어린이들에겐 은근히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이기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 여우신이라는 녀석은, 조금 무섭긴 해도 기본적으로 무해한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

 

실제로 일본 문학에는 이나리 신사와 아이들의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온다.

코이즈미가 이곳에 매료된 것도, 이 기묘한 신사가 사람들의 생활과 마음속에 작용되어 만들어내는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언덕 위에 세워진 신사인데, 뒷쪽으로 더 올라가면 정상에 조그마한 사당이 하나 더 있다.

은근히 마츠에 시의 전경도 슬쩍 보이는 좋은 풍경속에 놓인 이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든다.

아침 통근때마다 이곳에 올라서 마츠에의 모습을 한번 바라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 어떤 이를 생각하니

그럴 만도 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것 같다.

 

조그마한 토리이는, 이즈모시의 한 숙박업자가 헌납해서 세워졌다고 적혀 있는데

이 신사에 딱 알맞을 만한 아담한 녀석이라서 부담감 없다.

 

 

 

때론 교활하고 심술궃고, 재미있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여우신의 모습은

표정을 읽기 어렵게 이루어진 획들에 의해서 그 애매함을 표현해 놓았다.

관광객이 그리 많이 찾는 곳은 아니라서, 얼핏 보기엔 기념품이랍시고 도난당한 흔적은 느껴지지 않는다.

 

신사 앞에 가면 따로 구입할 수도 있으니 설마 이걸 훔쳐가진 않겠지라고 생각은 하는데...

혹여 그런 녀석들이 있다면 좀 전처럼 물폭탄이라도 한방 날려주길 바란다.

 

 

 

아주 조금씩이긴 하지만 하늘도 제 모습을 되찾고 있고

여전히 머리는 흔들거려도 여행에 심한 지장이 생길 정도는 아니다.

사실 계획이란 것도 없지만, 왠지 일이 흘러가는대로 잘 풀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흐뭇하다.

 

여기서 좀 더 서두르면 오늘 중으로 현립 미술관, 카라코로 공방(カラコロ工房) 등등 몇군데 유명한 곳을 둘러볼 수 있겠지만

왠지 이곳 정상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오늘은 만족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마츠에라는 도시에서 바라던 것은, 뭔가 특이한 것을 보기 위한 여행이라기 보다는, 딱 이정도의 페이스로 산책하는 것 자체였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여유가 있으면, 이곳 신사의 분위기에 딱 맞는 아기자기한 모양을 놓치지 않고 찾아볼 수가 있다.

신성함을 중요시하는 신사에 이런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는 것, 이것도 문학의 힘이려나?

 

어지간해서는 관광객이 찾아갈 일이 없는 한참 외진 곳의 신사중에는

'젖탱이 신사'라고, 젖탱이를 닮은 돌덩이 하나 놓아놓고 사람 끌어들이는, 묘하게 병맛나는 곳도 있었는데

그 정도로 일선을 넘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함을 살려놓은 이곳은 칭찬할 만 하다.

 

 

 

그 폭우 속에서도 꿋꿋하게 고개를 쳐들고 버텨낸 무궁화가 있었다.

뷰파인더가 습기때문에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찍고나서 보니 힘겹게 버티고 있는 곤충 한마리가 담겨 있었다.

 

저녀석들에겐 방금 전의 폭우가 얼마나 무시무시했을지.

아직 등에서 떨어지지 않은, 자기 몸통만한 물방울이 그 강렬했던 사투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듯 하다.

 

 

 

올라갈 때는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친 모습인데, 내려올 때는 묘하게도 눈에 확 들어왔다.

어쩌면 여우신이란 녀석, 그냥 꽃구경이 하고 싶었던 것 뿐이었을지도.

 

장난끼 넘치는 미소와 함께 발 밑에 흩뿌려진 꽃잎을 보며 즐거워하는 여우의 모습이 살짝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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