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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15  산인 여행 - 폭우속의 마츠에 22
  2. 2012.09.13  산인 여행 - 마츠에 성 21

 

 

같은날에 배를 타고 온 한국인 관광객이 백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어디서든 스치게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커플 두어 팀 빼고는 한국인이 보이지 않는다. 다들 뿔뿔이 흩어진 걸까.

단체관광객은 전용버스타고 여기저기 달리고 있는 중이겠고, 자유여행객들은 다들 다른곳으로 흩어졌나보다.

이곳 산인지방은 이렇다 할 유명한 관광지는 한두군데 정도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일본 특유의 '별것 아닌 소재도 잘 꾸며서 관광지로 만드는' 능력이 여기저기에 엿보여서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흩어져 있으니, 그렇게 흩어지는 것일까 싶다.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것들은 어느 나라나 점점 비슷해져 가는 시대지만

그리 멀지않은 한국이라도 자연 풍경만큼은 일본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올때마다 꼭 한두장씩은 찍게 되는,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은 삼나무로 이번에도 눈요기.

 

 

 

마츠에 성을 내려오면서 보이던 연못.

아주 조그마한 곳이고, 흐르지 않는 물이다 보니 상당히 지저분한 느낌이다. 중간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을 정도로 얕은 곳.

연못 앞에 '馬洗池' 라는 푯말이 보인다. 이름 그대로 말을 씻기던 곳인듯 하다. 과연 식수터는 아닌것 같았다.

 

 

 

이 연못의 맞은편에는 '기리기리 우물터' 라는 의미불명의 푯말이 세워져 있다.

우물터라는건 뭐, 말 그대로이겠는데 '아슬아슬'이라는 뜻의 기리기리가 어째서 붙어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아슬아슬한 우물이란 게 대체 무슨 뜻인지. 주변 풍경이 그렇게 아슬아슬해 보이지도 않고.

우물은 이미 사라져 버렸으니, 아슬아슬한 우물이 어떻게 생긴건지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

 

나름 일본어에는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본인이 이렇게 막혀버리니 뭔가 패배감을 느끼며 다시 길을 가는데...

 

다행히도 조금 더 걸어가니 이 정체불명의 우물터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어서 안도의 한숨.

그런데 일본어로는 열줄 가까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반면, 한국어로는 단 두줄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놓아서

그냥 한글만 읽으면 거의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성의 부족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듯.

 

대강 설명하자면, 에도시대 축성공사때 벽면이 한쪽 무너지는 바람에 그곳을 깊게 파서 조사해 봤더니

사람 해골과 창이 발견되어, 정중히 제사지낸 후 벽을 다시 완성시켰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 깊게 파낸 구멍이 사람의 가마와 닮은 모습이었고, 그곳에서 물이 솟아난 덕에 그대로 우물이 되었다고 한다.

그 가마 닮은 구멍때문에 이 근처의 성문과 우물이 모두 '기리기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여기까지 읽고도 그게 기리기리하고 대체 뭔 관계인가 싶었는데

사실 기리기리(ぎりぎり)라는 단어는 가마(つむじ)의 오사카 사투리 버전이라는 진실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가마란 선모(旋毛) 라고도 하며, 사람 정수리의 소용돌이 모양의 머리털을 의미한다. 머리털의 선회점이라고 하면 다들 이해가 빠를 듯.

애초에 저 가마(つむじ)라는 단어 자체가 여간해서는 외국인이 배울 일이 없는 녀석이라서 깔끔쌈빡하게 모르는 단어인데

그걸 사투리로 '아슬아슬'과 똑같은 단어인 기리기리라고 썼으니 내가 알 턱이 있나.

 

어쨌든 실생활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이지만, 평생 잊어먹지 않을 단어 하나 배우고 뿌듯한 기분.

 

 

 

말 씻는 연못을 빙 둘러 내려와서 걸어가면 코이즈미 야쿠모 기념관이 나온다고 표지에 적혀있다.

사실 기념관은 한참 더 걸어가야 나오는 거리지만, 어쨌든 길은 맞으니 한동안 산책하는 기분.

 

물과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은 나무의 본능인지, 이곳에도 수면쪽으로 가지를 드리운 나무가 있어서 한 장 남긴다.

여행중 이런 사진을 은근히 많이 남기는 기분이 드는데...

 

 

 

한국에서도 못 볼 풍경은 아니지만, 습도가 높은 일본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풍경.

나무에 자리잡은 무수한 이끼들을 보고 있으면, 그래도 역시 외국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녀석은 사람이 조경을 목적으로 기른 이끼가 아니라서 보기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생명력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보고 있으면 왠지 사진 찍고싶어지는 장면이다.

일본은 전체적으로 한국보다 고온 다습에 강수량이 많은 곳이라서 식물들의 생장력이 꽤나 강한 편.

 

 

 

말 씻는 우물터를 빙 돌자마자 후덥지근한 하늘 위에서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사실 성에 올라설 때 부터 조금씩 예상은 하고 있었던 일이라서 그냥 한숨 한번 쉬어줄 뿐.

여름날 비 오기 직전의 그 텁텁한 습도를 자주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곧 비가 오리라는 예측이 충분히 가능하다.

 

애초에 날씨가 영 불안정하다는 소식은 듣고 온 터라, 비가 오면 맞으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고.

카메라 가방과 카메라는 어느 정도 방수기능이 있고, 내 옷은 위아래 전부 등산용 쿨맥스 소재라서

비를 맞아도 30분 정도만 걸어다니면 금새 말라버린다.

카메라 장비도 짐인데, 언제 올지 모르는 비때문에 우산을 갖고 나오긴 싫어서 맨몸으로 나왔다.

 

사실 자전거 여행때 워낙 익숙해지는 바람에 그렇게 건성으로 대처해 버렸지만

엄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더 조심해야 할 상황이었다.

비맞으면 땀냄새와 섞여서 영 불쾌하기도 하고, 신발이 속까지 젖어버리면 그 꾸린내라는 건 엄청난 민폐라서.

자전거 여행때는 며칠 달리면서 비 맞고 나면, 냄새때문에 편의점에 들어가기도 미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런 배려심이 오랫동안의 배멀미로 인해서 다 사라져 버리고, 판단능력이 한없이 저하된 지금은

비맞으면서도 꽃한테 눈길이 팔려서 사진이나 찍고 있는 태평함을 연출해 버리고 만다.

 

 

 

하지만 살짝살짝 간보듯 내리던 비가 일순간에 폭우로 변하자 뭔가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소나기도 보통 소나기가 아니라, 맨살이 닿는 부분에는 방망이로 두드려 맞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의 미친듯한 빗줄기.

거의 사고가 마비되어서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운도 좋게 주위에 비 피할 수 있는 처마란 게 아예 없다.

간이 휴게소라고 소개되어 있는 친절한 장소도, 탁 트인 하늘아래 벤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곳이라서 도움이 안된다.

 

처마가 있어보이는 유일한 장소는 바로 옆 언덕 위의 신사. 30초 정도면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간신히 처마밑으로 피신했을때는 이미 옷 입은채로 바다에 뛰어든거나 마찬가지 꼴이 되고 말았다.

조금만 과장하면 대중목욕탕의 폭포수 기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하늘이 무너질 듯이 콸콸 쏟아진다. 비 맞은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지만 속옷까지 홀딱 젖어버렸다.

 

카메라 가방은 재질이 워낙 두꺼워서 방수팩 없이도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었지만

몸으로 최대한 가리며 갖고 온 카메라는, 조금만 더 노출됐더라도 이번 여행 촬영은 황으로 날아가 버렸을 터.

뷰파인더 안쪽에 습기가 차서 닦이지도 않고, 자연스레 말라 없어질때까지는 거의 장님촬영이나 마찬가지 상황이다.

 

 

 

그래도 뭐, 일단 처마밑에서 비 피하고 있으니 더 이상 젖을 염려는 없고

망원렌즈로 쏟아지는 빗줄기 속의 피사체를 찾아서 두리번거린다.

 

비를 맞아가면서 하는 촬영은 참 고역이지만, 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비내리는 곳을 촬영하는 건 의외로 꽤 재미있는 일이다.

대비색이 부각되는 피사체를 찍으면 빗줄기때문에 주변 채도는 낮아지고, 몽롱한 꿈 속에서 한가지만 또렷하게 튀어오르는 느낌이랄까.

우렁찬 카메라 셔터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폭우라서, 부옇게 보이지 않는 뷰파인더를 바라보고 있으면 점점 현실감이 사라진다.

찍고 나서 화면을 보면, 방금 내가 봤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결과물이 나와주니 묘한 기분.

 

 

 

홀딱 젖어서 짜증은 나지만, 의외로 여행중에는 꽤나 긍정적이 되는 타입이다.

특히 카메라를 들고 갔을 때는, 어쨌든간에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는게 다양한 추억거리를 남겨올 수 있으니까.

뷰파인더가 너무 흐려서 사실 화면 보기전까지는 저게 뭔지도 잘 몰랐다. 그냥 주황색 뭔가가 보이길래 찍어본 것.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된 나와는 달리, 저런 녀석들은 비가 오니 왠지 좀전보다 훨씬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살짝 김빠진 느낌이 나던 방금 전의 말 씻는 우물터도 지금은 뭔가 왁자지껄하게 파티가 열렸을 것 같아서 근질근질하다.

아무래도 이 빗속을 뚫고 다시 그쪽으로 갈 수는 없지만.

 

 

 

버스 시간에 쫓기거나, 거래처와의 약속에 늦지 않는 한에서라면

사실 비 내리는 구경도 상당히 운치있는 놀이다.

 

한 걸음만 내딛어 빗속에 뛰어들면 눈도 뜨지 못할 격류속에 휘말린 기분이겠지만

든든한 처마 밑에서 이 세상과 단절된 듯 혼자 서서 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좋은 고독감을 만끽할 수 있다.

고양이가 좁은 박스를 좋아해서 어떻게든 몸을 끼워보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귀와 눈을 때리는 거대한 빗줄기를 남의 일처럼 쳐다보고 있으면

이 넓은 풍경 속에서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이 경이로운 지구의 움직임 사이의 조그마한 틈새에 끼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꼼짝도 못하게 사방이 막혀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한테만 주어진 안락한 공간이라는 안정감.

 

 

 

 

고개를 돌려보니 인공 폭포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이쯤되면 쏟아지는 비가 되려 고마운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밋밋한 여행이란 건 사실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알아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면 여행의 추억거리가 더욱 늘어나니까.

 

배멀미 때문에 거북하던 머리도, 한국인 관광객을 놔두고 혼자 버스를 타버린 죄책감도, 갑갑한 하늘때문에 흥이 바랬던 천수각도,

몽둥이같은 빗줄기로 머리 한방 맞고 나니 좀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여행의 흥이란 이렇게도 예상치 못했던 변수에 의해서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고, 삶이 지루해지지 않게 해 주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어차피 시간은 남아도는 여행.

숙소는 아무리 늦게 가도 뭐라 할 사람 없으며, 약속 장소에서 발을 굴릴 동행인도 없다.

물론 여기서 발이 묶인다면 돌아보려 했던 몇몇 관광지를 갈 시간이 부족해질수도 있겠지.

 

하지만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초초한 마음으로 달리는 것은

찌든 일상생활 안에서 싫어도 얼마든지 겪을수 밖에 없다. 뭐하러 여행에서 그런 초초함을 추구해야 하나.

시간이 늦으면 안 보면 되는 것이고, 빡빡한 여행일정 계획대로 소화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곳의 사진 더 많이 올려서 블로거들한테 칭찬 한마디 더 듣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

 

되려 이렇게 혼자만의 공간을 강제로 만들어 나를 붙잡아 둔 폭우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우산을 갖고 오지 않아서 생길 수 있었던 시간의 낭비. 그 덕분에 두 손으로 카메라를 쥘 수 있으니까.

 

 

 

아무리 미친듯이 쏟아져도 소나기는 소나기. 10분쯤 내리니 저 멀리서부터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이곳은 빗줄기가 약해지지 않았는데도, 마츠에에 도착한 후 처음 접하는 맑은 하늘.

노란 신호등처럼, 이제 곧 끝나니까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라는 배려깊은 풍경이라고 할까.

 

 

 

빗줄기는 충분히 약해졌지만, 기왕 기다리는거 완전히 그칠 때까지 그냥 서있기로 했다.

후덥지근한 날씨도 완전히 젖어버린 옷 덕분에 많이 시원해졌고, 옷은 한 시간만 걸어다녀도 다 마른다.

 

형체마저 흐트러진듯 보이던 모자상이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

멈춰진 듯한 10여분의 시간이 다시 현실감을 띄고 다가오는 듯 느껴진다.

 

 

 

사진에서 생기가 도는 것은 단지 비온 후 먼지가 씻겨 내려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머리는 알아서 흔들거리고 있지만, 이제부터가 제대로 여행한번 즐겨보자는 새로운 각오가 사진에도 영향을 미치는게 아닐까 싶다.

 

비가 오지 않아서 계속 발걸음을 재촉했다면 아마 오늘 하루의 대부분을 상당히 뚱한 기분으로 넘겼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엔 다들 비 맞으면서 신나했는데, 간만이긴 하지만 그때의 그 기분을 다시금 일깨울 수 있어서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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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인지도 모르겠는데... 7시쯤 조식을 준다길래 기어가봤더니

아침이라고 간단히 드시라는 배려인지 어제 저녁보다 더 형편없는 메뉴다. 돈을 냈으니 집어먹어주는 수준.

 

9시에 하선했는데, 역시나 15시간동안 흔들렸더니 몸이 거기에 익숙해져 버렸다.

땅을 밟고 서도 머리가 흔들흔들 움직이는게, 오늘 하루동안 이 어지러움이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건

지난번에도 겪어봤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있다. 사람 몸이라는게 가끔 이렇게 엉뚱한 적응을 해버린다.

 

빠듯한 일정이니 왠종일 돌아다녀야 하겠지만, 가만히 서있어도 어질어질한 상황에서는 관광이 그리 즐겁지 않다.

무리하러 온 것도 아니고, 오늘은 대강 발가는데로 돌아다니다가 적당히 들어가서 쉬어야 할듯.

 

사키이미나토 여객터미널엔 동해항과 같이 아무것도 없고, 사카이미나토 전철역까지 가야 하는데

다행히도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중이다. 동해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동해항까지는 그런 거 없었는데.

 

배멀미로 온갖 고초를 당한 내 인상이 심히 좋지 않으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좀처럼 얼굴을 펼수가 없다.

머리가 흔들리듯이 느껴지는게 아니라, 정말로 가만 서 있으면 머리만 저절로 움직인다. 누가 보면 술 취한줄 알겠네.

사카이미나토 역에 도착하니 그나마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인 미즈키 시게루 로드(水木しげるロード)가

펼쳐지고 있지만, 그쪽은 귀국날 구경할 생각이라서 카메라 꺼내지도 않았다.

지금은 일단 호텔에 가서 짐맡기기 전까지는 카메라를 꺼낼 기분이 전혀 들지 않으니.

 

단체 어르신 관광객들은 이미 알아서 버스타고 가버렸고, 젊은 자유여행 커플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사카이미나토역 관광안내소에서 외국인을 위한 3일 교통권을 구입한다. 인연맺기 퍼펙트 티켓(縁結びパーフェクトチケット)이라고 하는데

이번 여행의 전초기지인 마츠에(松江) 근처의 시영, 민영버스와 전철, 공항과 항구까지 가는 버스 등등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녀석.

3천엔짜리인데, 마츠에에 숙소를 잡은 여행객이라면 거의 어떤 상황에서도 99% 이득이 되는 티켓이니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

마츠에에서 공항이나 항구까지 왕복으로 왔다갔다 하는데만 2천엔이 넘게 나오기 때문에, 뭘 타고 돌아다녀도 3천엔보단 더 쓴다.

유일하게 JR 은 사용할 수 없지만, 이곳 근처엔 JR 타고다닐 메리트 자체가 없다. 일본 본토에서 이곳으로 기차타고 찾아오는 사람들 외에는.

 

왜 제목이 인연맺기인가 하면, 마츠에시가 속한 시마네(島根)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인연맺기로 유명한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 신사이기 때문.

이렇게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도, 이즈모타이샤 없이는 일본 전체의 신사가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즈모 갔을 때 다시 한번 이야기하기로 하고.

 

1년간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인구 100명도 될까말까한 시골구석도 얼마든지 지나온 터라

내 입장에서 보자면 충분히 번화한 곳이라는 인상이자만, 관광 목적으로 콕 찝어서 일본을 다녀본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황량한 마을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을 듯한 분위기의 사카이미나토 역의 모습.

조금 더 이곳의 풍경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연산작용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없지도 않았지만

45L 짜리 백팩과 거대한 카메라가방을 짊어진 체로 멀미에 시달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거의 뇌 속이 블루스크린이나 다름없다.

 

역 앞의 유일한 버스정류장에 한국 젊은이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앞에 슬쩍 가서 표지판을 보니

10시 15분에 마츠에로 출발하는 버스는 이곳이 아니라 길 건너 유람선 정박장에서 출발한다는 안내가 적혀있다. 일본어로.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관광객이 마츠에로 가리라는 예측이 가능한데, 전부 여기 서 있다는건 뭔가 어색하다.

 

내가 길가에서 떨고있는 고양이에게 배풀던 온정의 천 분의 일이라도 사람을 향했다면, 그리고 머리가 저절로 춤추고 있지만 않았다면

거기 서 있던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혹시 마츠에 가는 버스 기다리고 계신가요?' 라고 물어보고

10분 뒤에 오는 버스는 여기서 타는게 아니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줬겠는데. 여기에 정차하는 다음 버스는 10시 40분이나 되어야 온다고.

 

하지만 머릿속이 마비된 때문일까, 파도에 15시간동안 시달린 분풀이를 엉뚱한 곳에 한 것일까.

무심하게도 그냥 혼자서 뚜벅뚜벅 맞은편 선착장으로 걸어간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다.

이기적인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누구 한사람이라도 나한테 버스타러 가는 거냐고 물어봤다면 해결된 문제였지만

내가 말걸기 편안한 타입은 아니라는건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으니, 그건 좀 책임회피적인 생각이겠지.

 

결국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탄 한국인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전부 유람선 타고 바로 도착한 일본인 관광객들 뿐.

10시 15분의 이 버스는 이 유람선 손님들을 위해서 하루에 한 번 이곳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은근히 죄책감을 느끼면서 한적하기 짝이없는, 하지만 정비 하나는 제대로 되어있는 시골길을 달려 마츠에로 향한다.

 

마츠에시가 시마네 현에서는 큰 도시이긴 하지만 한국의 도시라는 개념에 비추어보면 꽤나 소박한 곳이다.

이건 이런 분위기의 일본 도시를 직접 눈으로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데

하늘 위가 썰렁할 정도로, 높은 건물도 없고 그냥 나즈막한 빌딩들과 무채색 계열의 차분한 색깔로 이루어진 이 곳은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조그만 도시와 비슷하다고 쉽게 말하기엔 다른 점이 많다.

 

사실 일본과 한국의 지역개발에서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이 이런 소규모 도시나 마을의 개발상황인데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한국의 시골 농촌처럼 기본적인 공공시설이 극히 부족하거나, 기반시설이 없다시피 한 그런 느낌은 아니다.

인구 3백명쯤 되는 농촌마을에도 24시간 편의점은 늘어서 있고, 비포장도로는 커녕 시멘트 도로도 거의 없이 전부 제대로 된 아스팔트 도로.

허름해 보이는 시골 주택도 조그만 앞마당에 닛산 큐브쯤 되는 자동차가 들어서 있고, 가끔은 미니 이마트같은 종합 슈퍼도 들어서 있다.

물론 이것은 지역민심을 잡아서 표를 얻기위한 의원들의 무리한 예산집행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고,

덕분에 시골치고는 너무나 잘 정비된 공공시설들 덕분에 정작 지자체 예산은 빵꾸가 나서 파산위기에 놓인 마을도 많다.

이유가 어쨌든, 비슷한 분위기가 많은 한국과 일본에서 진정한 다름을 느끼려면, 관광지가 아닌 진짜 시골에 가 보면 된다.

 

일본에서 좀 편하게 놀고 싶을때 항상 애용하는 비즈니스호텔 토요코 인(東横INN)에 짐 풀어놓고 밖으로 나온다.

사실 한국의 러브호텔과 비교해도 별로 비싸지 않은, 제대로 된 호텔치고는 상당히 저렴한 곳이지만 나한테는 굉장한 사치.

거대 체인호텔이다 보니, 반드시라고 할 만큼 역 주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서 도움이 된다.

비즈니스 호텔의 특성상 싱글룸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좋기도 하고.

 

카메라 가방을 제외한 백팩을 프론트에 보관하려고 가방을 벗을 때도 어지러워서 뒤로 넘어질 뻔할 정도로

여전히 멀미에 시달리고 있어서 기분은 엉망이었지만, 어쨌든 귀중한 하루를 그냥 보낼수는 없으니 다시 3분쯤 걸어서 마츠에 역으로 이동.

 

다행히 목표로 했던 레이크라인 버스가 정류장에 서 있어서 바로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 오기가 발동해 버린 것이...

어질어질한 상황에서도 좌석에 앉기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끽하려고 맨 뒷쪽 좌석이 없는 곳에 서서 이동해 버린다.

관광용 버스라서 뒤쪽에는 짐 놓을 수 있는 공간과 함께, 시원한 창문 너머로 여기저기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걸 포기하는게 지금 이 상황에서도 아까웠던 것. 드디어 처음으로 카메라를 꺼내서 버스의 내부를 한 장 담아본다.

아마 사카이미나토 역 앞에서 사진 한 장도 찍지 않고 여기와서 카메라 꺼내는 한국인 관광객은 나밖에 없었을 듯.

 

 

 

이 레이크라인 버스는 관광용으로 특화된 녀석으로, 약 50분간 마츠에 시내의 관광장소라 할 만한 곳을 전부 도는 코스를 취한다.

하지만 이 마츠에 시가 관광객으로 붐비는 그런 도시도 아니기 때문에, 이 버스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계속 순환하는게 특징.

그래서 코스를 거꾸로 가려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일본어가 안되는 관광객들은 이 버스 말고 일반 시영버스 타려니 말이 안통해서 겁도 날것이고.

 

복고풍 풀풀 풍기는 버스 내외부는, 한번쯤 타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경험이 된다.

이 버스의 운전기사분들은 전원이 여성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가이드 역할을 한다는 이미지 때문인지, 머리 잘 쓴 느낌.

50분이라는 이동거리도 사실은 여기저기 빙글빙글 돌면서 관광지 냄새만 나는 곳은 전부 다 정차하기 때문이고

실제 마츠에 시내를 한바퀴 빙글 도는것은 자전거로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인구 30만의 도시라는 점을 기억해두자.

 

시마네현의 총 인구가 70만, 마츠에 시가 30만이라는 점을 보면 이곳이 얼마나 시골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참고로 본인이 서식하는 대구시 인구가 약 260만명, 일본의 도시중에서는 적당히 작은편에 들어가는 히로시마시 인구가 120만명이다.

레이크라인 버스가 이동하는 도로 상당부분은 아예 중앙선조차 그려져 있지 않는 곳이 많을 정도.

이 버스 최고시속이 30~40km를 넘지 않기 때문에, 맞은편 차들은 그냥 알아서 슬쩍슬쩍 정지하거나 비켜간다. 느긋한 도시의 특권.

 

기반시설이 제대로 잡힌 소규모 도시에서 30km 로 느긋하게 달리는 버스를 타는 경험은 사실 그것만으로도 일종의 관광인 셈이다.

외국인 관광객들 중에서는 한국인이 압도적인 도시라서, 이 버스도 그렇고 관광지 근처엔 전부 한국어 안내가 적혀있다.

독도문제로 이미 한국인에겐 익숙한 그 시마네 현에서 말이지. 사실 이곳은 한국인 관광객 없으면 재정에 큰 문제가 생기는 곳이다.

일본 주요 도심에서 워낙 떨어진 곳이고, 도쿄에서 신칸센타고 6시간 넘게 달려야 올 수 있는 곳이니 말 다했지.

해외와 루트가 직행으로 이어진 곳은 한국의 인천공항과 동해항 페리터미널 단 두곳밖에 없다. 더 설명이 필요할까.

 

시마네 현에서 독도를 잡고 늘어지는 건 기탄없이 말해서 보수정권한테 예산좀 달라는 땡깡이지, 독도 영유권에는 관심도 없다.

한국인으로서 기분나쁜건 당연하겠지만, 정작 타케시마 돌려달라고 고함치는 애들은 딴 지역에서 온 녀석들이고

실제 50년을 넘게 산 거주민들의 대부분은 타케시마가 어디 있는 섬인지 지금도 모른다. 요 몇년 사이 처음 들어본 섬이라고.

지금 독도가지고 찌질거리는 녀석들의 대부분은 도쿄에 살고있는 정신줄 놓은 극우파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시마네 현은 이름만 빌려주고 한국인들한테 굉장한 미움을 받는 셈이다. 그렇다고 예산이 더 책정된 적도 없다.

 

 

 

15분쯤 달리니 마츠에 제일의 관광지 마츠에 성앞에 도착한다. 일단 오늘은 이 주변을 둘러보기로.

동해항을 떠날 때 보다는 날씨가 나아졌지만 여전히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덥기는 또 상당히 후덥지근하다.

현재 온도는 32도에 습도가 70%를 넘는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그런 상황. 차라리 하늘이라도 쨍했으면 하는데.

 

레이크라인 버스는 1일 무한이용권이 500엔인데, 퍼펙트 티켓을 보여주면 그 500엔짜리 이용권을 3장 준다.

다음부터는 그걸 하루에 한장씩 이용하면 되는 셈. 물론 다른 시영버스, 전철도 계속 무료로 이용가능하다.

이 500엔짜리 1일이용권은 사용하고싶은 날짜에 스크래치를 해서 사용하는데, 그 덕에 남겨놓으면 내년에도 사용할 수 있다.

사실 이곳을 여러번 찾는 외국 관광객이 얼마나 되겠느냐만은. 참고로 본인은 쓸일이 없어서 하루치 남겨왔다.

 

이곳 마츠에는 관광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라서 어지간한 곳도 꽤나 한적한 편이다.

1년에 단 한번 꽤나 붐비는 시즌이 있긴 한데, 그건 후술하기로 하고.

 

성 앞으로 걸어가다보면 '마츠에성을 국보로' 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시민들의 마음이야 백분 이해하지만,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여러가지로 난감하다. 정말 알쏭달쏭한 가치를 가진 성이라서.

 

현재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그 정도 자격은 충분하고도 남는 성이지만 과연 국보로서의 가치가 있을까 없을까는...

왜냐하면 아담한 천수각 하나만큼은 1611년 지어진 후 한 번도 분해, 해체, 파괴를 겪지 않은 살아있는 유산인데

그 외의 현존하는 모든 건축물은 근대 들어와서야 지어놓은 녀석이고, 예전의 모습은 그냥 유적으로만 남아있기 때문에.

그리고 천수각이 너무 아담한 것도 조금 걸린다.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히메지(姫路)성이나 까마귀 성이라 불리는 마츠모토(松本)성의 천수각은 솔직히 차원이 좀 다르기 때문에. 둘다 국보 지정.

 

사진에서 보이는 것들도 모두 역사적인 가치는 없는 건축물들이다. 유일하게 어마어마한 넓이를 자랑하는 저 해자만큼은 인상적이지만.

마츠에의 별명이 '물의 도시'인 만큼, 마츠에 전역을 관통하는 호리카와(堀川)강의 물길을 그대로 해자로 만들어 버린 것.

 

계속 언급하듯 시마네 현과 돗도리 현을 포함하는 산인(山陰) 지역은, 한 번도 일본 역사의 무대에서 중심을 맡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일본의 성 치고는 희한할 정도로 침략을 받지 않았다.

덕분에 현존하는 오리지날 천수각 12개 중에서도 가장 건축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이 이 마츠에 성.

 

 

 

성을 올라가기 전에 보이는 정방형의 공터. 이것은 우마다마리(馬溜)라고 하는데, '말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총탄이 들어가있는 약실, 발사 직전 정자들을 보관하는 고환의 역할을 하는 곳.

전쟁중 출병 직전의 병사와 말을 전열하는 용도로 사용되던 지역이다. 우물도 있어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듯.

 

물론 지금 남은건 지도를 고려해서 만들어놓은 옛 공터뿐이고, 다들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진 적은 손에 꼽을 정도긴 하지만.

 

 

 

좋지 않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 주변의 조경은 참 멋들어진다.

현재 마츠에성은 주변이 산책로, 공원화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적 매력을 제외하고서라도 느긋하게 즐기기엔 안성맞춤인 곳.

국보로 지정되면 예산도 상당히 불어나기 때문에 이곳을 가꾸는데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일본 정부가 지금 아사직전이니 과연 어떨런지.

 

구름이 많아서 서늘한것 같지만 정말 더웠다. 의자에 걸터앉아 쉬면서 땀을 닦는데도 계속 자동 헤드뱅잉이 되는 바람에 난감.

 

 

 

근래들어 다시 세워진 녀석들이긴 하지만 일단 에도시대 건축 양식에는 정확하게 부함한다.

일본의 성은 다이묘들의 최후방어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거주보다는 철저하게 수성(守城)에 목적이 맞춰져 있다.

건너오기 힘들게 만든 해자, 깎아지를듯한 성벽, 활과 총을 사용하기 위한 좁은 창문, 성벽으로 끓는 기름을 흘려내릴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멍 등등.

 

물이 풍족한 마츠에라서 특이하게 천수각 안에 우물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수성전에서는 꽤나 효과적인 성이라 할 수 있다.

여러번 말하지만, 애초에 침략받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는게 아이러니.

 

 

 

조금 올라가니 흥운각(興雲閣)이라는 이름이 붙은 서양식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성 내부에 왠 서양식 건물인가 싶어서 흥미가 동했는데, 특이하게 이 건축물의 설명에는 한글이 적혀있지 않다.

 

다행히도 읽을 정도는 되니까 읽어봣는데, 1903년 메이지 천황이 이곳을 방문한다는 말에 영접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는 듯.

산인지역에 천황이 방문한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한 일이었던 시절의 흔적인가보다.

허무하게도 그 직후 러일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천황의 방문은 취소되었고

4년뒤에 천황 아들내미가 방문했을 때 영빈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러일전쟁 직전에 지어진 이 영빈관은 사실 러시아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지금은 새로 역사박물관을 다른 곳에 개장중이라서 이곳은 잠시 폐쇄중이라고 한다.

한번쯤 들어가보고 싶기는 했지만, 못들어간다고 그렇게 아쉬울것도 없는 곳이라서 사진 한방 남기고 돌아선다.

 

 

 

무더운 날씨에 죽치고 앉아서 휴식하기 딱 좋은 공간이 보인다.

나무그늘에 철저하게 둘러쌓여 있어서 충분히 서늘한, 고풍스러운 나무 의자가 꽤나 인상적.

종족 특성이기도 한데,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에 가도 정작 눈길이 가는 것은 이런 녀석들이다.

 

그늘이라고 다 같은 그늘이 아닌 것. 살아있는 나무와 그 잎사귀들이 만들어내는 그늘은 콘크리트 지붕밑 그늘과는 향기가 다르다.

거기다 밑바닥은 흙으로, 의자는 나무로 되어있으니 이것보다 더 훌륭한 중간휴식처가 있을까.

관광객이 적어서 이런 곳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자꾸 덜 유명한 곳을 찾아가려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려나.

 

앉아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닌자 복장을 한 아저씨가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맞은편에서 오던 젊은 일본인 여성관광객 두명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안내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 같던데.

아마도 저렇게 닌자 복장 하고 성 안내 가이드를 하는 사람인 듯 하다. 더운날 입까지 가리는 두건을 쓰고 고생하신다.

이야기 좀 걸어볼까 싶었지만, 소심하기로는 일본인 못지 않은 성격에, 더운데 괜히 붙잡고 귀찮게 하고싶지도 않아서 패스.

 

 

언덕을 오르면 바로 마츠에성 천수각의 모습이 보인다.

천수각 안으로 들어가려면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야 하지만, 들어갈 생각이 없다.

국보급 천수각에는 여러번 들어가 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금 몸상태가 저기 들어갈만한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방어용으로 만들어진 천수각은 계단이 매우 가파르고 통로가 좁게 설계되어 있다.

흔들거리는 머리통으로 거기 올라가려면 고생 좀 하리라는 예상이 쉽게 가능하다.

당연하지만 에어콘같은거 없기 떄문에 더욱 고역이기도 하고.

 

더더욱 큰 문제는, 천수각에 돌아가서 내려다보면 마츠에 시의 전경이, 지금같은 하늘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

날씨가 화창했으면 머리통 붙잡고 올라갈을 것이다. 특히 이곳 마츠에 시는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매우 관대해서

여권만 보여주면 거의 대부분의 관광지 입장료를 절반으로 깎아주는 장점이 있다. 어디든 들어가서 보기만 하면 이득이라는 결론.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린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입장료 내고 들어갈만한 매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일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충만한 천수각이지만 역시 너무 아담하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다.

그만큼 평온한 지역이었다는 반증이니 나쁘게 볼 건 아니지만, 왠지 그림으로서 살짝 부족한 느낌이 드는 점은 어쩔 수 없다.

 

 

 

살짝 비교해보는 의미로, 지난 자전거 여행때 찍은 국보 마츠모토성의 천수각 사진을 첨부해 본다.

감상은 각자 알아서들.

 

 

 

들어갈 생각은 아예 접고 외부 모습만 느긋하게 감상한다.

여러 각도에서 찍고 싶었는데, 내 위치에서 오른쪽 모습은 공사중이라서 들어갈 수가 없다.

구름때문에 크게 의미가 없긴 하지만, 해의 위치를 생각하면 오른쪽에서 찍는 사진이 좀 잘 나올것 같은데 살짝 아쉬웠다.

 

1611년 건축 이후 한 번도 해체되거나 손상된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존 상태는 놀라울 정도로 양호하다.

매번 '이게 근래들어 다시 만든건지 옛날 모습 그대로인지' 헷갈렸던 건축물들이 많은 일본이었는데

명확하게 옛날 건축물임에 틀림없는 마츠에성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한가지 결론이 나온다.

파괴되었다가 다시 세워진 여러 성들도, 정말 징할 정도로 옛모습 복원을 잘 해놨구나 하는 것.

 

일본의 문화재 관련 예산은, 한국의 예산과 비교하는게 솔직히 부끄러울 정도.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는 중앙정부에서 따로 예산편성과 관리를 맡기 때문에

국민은 부유하지만 정부는 가난뱅이인 일본의 현실을 따져보면,

아마 한국에서 비슷한 비율의 예산을 배정한다면 '먹고살기도 힘든데 이딴데 돈을 퍼붓냐'고 난리법석이 될 듯 하다.

일본은 알아서들 입장료 내고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한국보다 좀 숨통이 트인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역사에 대한 국민의식이란게 결코 과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일본도 역사의식이란거, 쓸데없는 자긍심만 남아서 마약빤듯한 애매함에 도취된 사람들이 많긴 한데

내 입장에서는, 한국도 이번 연말 선거결과에 따라서 일본 욕을 할 수 있는 처지인가 아닌가가 판가름 난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한국 국민들의 역사관이란 저기 북쪽 거지독재국가와 다를게 뭐 있나 싶기도 하고.

만약 그게 현실로 확정되는 날이 온다면, 난 더이상 일본의 어거지 역사관 욕 못한다. 부끄러워서 못한다.

 

 

 

히메지 성같은 매우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본의 성은 대부분 옻칠을 한 목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게 또 대낮에 사진 찍을때는 꽤나 난감한 사항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번처럼 구름이 잔뜩 낀 날이라서, RAW 파일로 촬영후 극단적으로 명부와 암부의 차이를 줄인 덕에

하이라이트나 섀도우를 전부 없애는데 성공했지만, 쨍쩅한 날이라면 정말 얄짤없다.

고전적인 방법이라면 브라케팅을 이용한 HDR 기법으로 양쪽 모두를 살려야겠지만

삼각대도 없이 브라케팅을 사용할 수는 없고, 그냥 RAW 파일의 풍부한 데이터를 살린 간이 HDR 이라도 써먹을 수 밖에.

 

이거 JPG 원본은 완전 새까맣고 완전 새하얀 녀석이다.

 

 

 

까마귀 성이라는 별명을 가진 마츠모토성도 꽤나 시커멓긴 했지만

마츠에성도 못지 않게 옻칠을 한 모습. 사실 같은 별명을 가져도 무리없어 보인다.

 

일본 최고의 방어력을 가진 오사카성이 정말 허무하게 공략당하면서 잿더미가 되어버린 역사에 비해

사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어보이는 이 한적한 성이 건축후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사를 만드는 사람의 힘이란 건 어찌보면 장난으로 던진 돌맹이에 맞아죽는 개구리의 그것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 본다.

 

 

 

극단적인 명암차를 보정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사진이 부드러워지다보니

옻칠투성이인 수성전용 성의 이미지가 너무 곱게 나오는 것 같아서

그냥 고전적인 방식을 한번 선택해 본다.

 

여행중 사진은 최대한 그날의 인상 그대로를 남기는 쪽으로 보정을 하는 편이라서

꾸물꾸물한 하늘을 생각하면 위의 사진들이 그때 본 모습과 제일 비슷하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사진이란게 권력을 가진 창조와도 같은 녀석이라서, 좀 더 힘있게 선을 넣어보는것도 일종의 여흥이라고 보면 될 듯.

 

 

 

산책하기엔 참 좋은 마츠에성과 그 주변이지만, 쩍쩍 달라붙는 날씨와 흔들리는 머리통 때문에 흥이 오르질 않는다.

15분 정도 성 주위를 둘러보며 일기장을 갖고 오지 않은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열심히 머릿속에 저장한 후 발걸음을 옮긴다.

국내 여행때는 종종 그러지만, 해외 여행때 일기 쓰지 않고 돌아와서 포스팅 하는건 희귀한 일이라서

눈에 보이는 사물만큼이나 머릿속의 감상을 정리하는데 신경을 더 쓰게 된다. 가뜩이나 어지러운 머리가 더욱 골치아픈데.

 

왔던 길과 반대로 난 산책로를 걸어가면 코이즈미 야쿠모 기념관이 나오는가보다.

쇼핑을 목적으로 마츠에에 오는 사람은 바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으니

그 외의 목적으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빼놓기 아쉬운 곳.

어차피 마츠에 시내 관광명소는 극히 한정되어 있으니 약간의 의무감이란 것도 작용하고, 천천히 경치 둘러보면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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