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오중탑'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10.06  히로시마 여행기 8편 - 미야지마, 사망금지 4


사슴은 애어른을 가리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에게서는 멀어지지만, 적당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가진 아이는 삥뜯기 좋은 표적.
그래도 다행히 아이들 역시 먹을거 주지는 않더라.


이츠쿠시마 신사가 가까워지자 길게 늘어선 행렬이 보인다.
그들의 시선이 앞서있는 곳엔 이 조각배가 놓여있는걸로 봐서 아마 관광객을 태우는 유람선인가 보다.
공짜로 태워줄리가 절대로 없으니 무리.
사실 미야지마는 로프웨이 말고는 돈 내고 움직일 이유가 별로 없는 곳이다. 섬 전체가 볼거리 많은 곳이니까.
내 자금에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이런 유람선보다 굴 구이나 몇조각 더 먹겠다.


좀 더 큰 배도 있다. 아마 미야지마에서 가장 유명한 오오토리이(大鳥居)는 썰물 때가 아니면 다가갈 수가 없기 때문에 배로 주변을 둘러보는 듯?
물위에 둥둥 떠서 오오토리이를 구경하는것도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나는 썰물의 힘을 믿는다.


아마 이츠쿠신사의 진짜 입구는 이곳에서부터 시작인가보다.
여기 오기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츠쿠신사 경내는 입장료도 300엔으로 꽤 비싸고, 엄청난 인파때문에 쓸려다니는게 고작이고, 중요부분은 보존을 위해 공개하지 않으므로
거기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신사 구경하러 온게 아니라서. 진짜 구경하고 싶은 것은 로프웨이를 타고 산꼭대기로 가야 있다.


어느 신사나 마찬가지지만 일단 정문의 이 토리이가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 첫 번째 관문인 만큼, 지역별로 나름 특색이 있다.
돌덩이로 만들어진 토리이 치고는 꽤 큰편으로, 명물인 수중 오오토리이때문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그게 또 돌맹이의 거친 감촉과 어울려서 나름 듬직하고 우직한 느낌을 주는게 마음에 든다.


여기라고 사슴이 없을리가.
훔친건지 받은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종이는 몸에 별로 좋지 않을텐데...
굶고 살진 않을거라 생각하지만 하는 행동은 굶어죽기 일보 직전처럼 먹을걸 갈구한다.
늘어진 모습이 어울리긴 하네.


이곳에 왜 그리 사슴이 많은가 하면, 원래 일본에서 사슴은 가장 신에 가까운 동물이자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로 신성시 되어왔기 때문.
일본에서도 신성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미야지마라서 사슴이 많은가 보다.

이곳 미야지마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신비한 이츠쿠시마 신사의 박력과 고립된 섬이 가지는 독립성으로 인해
수백 년 전부터 나무의 벌목이 금지되어 있고, 섬 안에서의 출산, 장례도 금지되어왔다.
그래서 이 곳엔 묘지가 없다.

덤으로 강아지 등의 동물도 살 수 없었다지만 그건 주민들의 경우일 뿐, 아주 많은 관광객이 이제는 개들을 끌거나 안고 들어온다.


신성함과 출산, 사망을 반대급부로 묶은 사상이 어떻게 보면 참 어리석다.
사실은 출산, 사망만큼 신성한 일이 있을까.
신성이라는 개념이 사람만의 전유물이라면 아마도 이곳은 생물학적 행위를 비신성함으로 여겨왔을 터.

신성함을 드러내는 방법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인간다움, 혹은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자연의 순환고리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방법과
철저한 군림자로서의 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위한 비인간적인 엄숙함을 고취시키는 방법.

미야지마가 선택한 방법은 아마 두번째겠지. 지금은 그걸로 돈 벌어먹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발견한 쓰레기.
저녁에 이곳으로 다시 오게되는데 쓰레기보다 더 재미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좀 많고 흐린 편이라 아쉬웠는데, 쨍한 날씨의 미야지마는 정말 멋진 풍경을 자랑할 것이라 상상했다.
특히 산 위에 올라가면 세토 내해(瀬戸内海)의 절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더더욱.


이츠쿠시마 신사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있었다.
공짜로도 저런 곳에서 줄 따라가며 구경하고 싶지 않은데, 입장료까지 받으니 나하고는 인연이 없는 곳이다.
쿄토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저런데 돈 내고 들어가서 얻는건 아쉬움밖에 없었으니 깔끔하게 포기.

굳이 안보여줄곳은 어차피 안보여주는 신사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 주변의 풍경은 감탄할 만 하니 문제될 것 없다.
지금은 밀물때라 신사 전체가 바다위에 떠 있는 듯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것이 바로 신성함의 근원 중 하나겠지.


이츠쿠시마 신사는 59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현재 신사는 1200년 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바로 옆의 히로시마가 원폭으로 개발살이 났음에도 무사했던 미야지마라서 일본인들에게는 더더욱 소중한 장소일 거다.
그 신사와 함께 저기 보이는 오중탑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귀찮아서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저 오중탑은 사실 미완공된 채로 남아있다고 한다.
당나라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자세히 보면 꽤나 묘한 느낌을 주는데, 1407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이츠쿠시마 신사는 절경은 절경이다.
사람이 없이 조용했다면 정말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을 텐데 이제는 그런 낭만을 즐기기엔 너무 유명해져 버린 것 같다.

유명 관광지에 서 있을 때 항상 아쉬운 점.
관광객으로 바글거리는 문화 유산은 뭔가가 빠져나간 듯 힘이 꺾인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아마 내가 사람 북적이는걸 싫어해서 그렇겠지.


신사 주변에도 노닐거리는 많다. 수많은 가게들과 사슴들.
오모테산도를 비롯한 상가들은 관광객들 때문에 생겨났다기 보다는, 수백 년 전부터 이어오는 전통있는 가게들.
일본인과 상업정신을 따로 떼어낸다는 것은 일본 역사의 중요한 고리를 빼먹는거나 마찬가지.

그나마 관광 천국 일본에서 그 장사꾼 정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줄 수 있는 이유다. 그네들은 이미 천 년전부터 장사꾼이었으니.


정오가 지나고 태양이 달아오르자 살짝 지쳤다. 아침도 안 먹었으니.
드디어 즉석해서 미야지마의 명물 과자인 단풍잎 만쥬를 만들고 있는 곳을 발견했다.
주머니에 돈은 간당간당하지만, 그리고 별로 감흥을 불러일으킬만한 맛이 아니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관광객 흉내나 한 번 내볼까 싶어서 예전부터 계획해 왔으니 이번엔 큰맘먹고 먹어보기로 했다.
속에 넣는 앙금은 한국에서도 익히 먹을 수 있는 갈아만든 앙금과, 통짜 팥이 든 앙금이 있었는데
주문이 밀리다 보니 바로 먹을 수 있는건 갈아만든 앙금 밖에 없었다.


갓 만들어서 따끈따끈한건 참 마음에 들었다.
단품으로 3개 사서 가게 옆 마루에 걸터앉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선물용으로 15개, 20개씩 포장된 만쥬를 여러 개 사고 있었다.
이게 아마 한개 70엔 정도 했을거다. 3개 210엔. 비행기타고 일본까지 간 녀석이 쪼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애초에 난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걸 많이 먹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차라리 돈 좀 모아서 굴 요리를 먹지. 굴 요리는 이거보다는 훨씬 비싸다.
그리고 원서 사려고 생각했던 게 좀 있어서 어쨌든 책값을 위해 돈을 아껴야 했다.

관광지 기분 한 번 내보려고 샀는데, 방금 만든 녀석이라 그런지 달콤한게 휴식을 취하며 먹기엔 딱 좋은 느낌.
왜 이런 단풍잎 만쥬가 유명하냐. 이곳 미야지마의 단풍은 정말 눈돌아갈 정도로 멋지기 그지없기 때문에.
불행히도 이곳은 단풍이 좀 늦게 들어서 11월이나 되야 붉게 물든 이츠쿠시마 신사와 미센 산(彌山)의 절경을 구경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

그런데 단풍이 들 때의 미야지마는 정말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꽉꽉 차버리기 때문에, 보고는 싶어도 용기가 안난다.


신사 뒷쪽까지 빙 둘러서 걸어갔다. 출구쪽에는 들어오지 마시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는데
얼굴에 철판 깔면 들어갈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의 따가운 시선을 물리칠 정도의 얼굴 두께가 아니라서 포기했다.

신사 뒷쪽의 무료지역에도 볼거리는 많이 있는데, 바다위 오오토리이를 만들 때 사용했다는 원목이 전시되어 있었다.
1875년에 세워진 오오토리이는 워낙 거대해서 바다 속에 파묻은게 아니라 그냥 세워놓기만 했다. 토리이 자체의 무게로 서 있는 것.


상당히 거대한 원목이었는데, 오오토리이의 기둥 둘레가 10m 라고 하니 납득갈만한 크기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나무가 참 마음에 든다. 수백, 수천년 있다보면 이건 돌처럼 변하겠지.


사진으로 이 나무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서 무단으로 관광객을 비교대상으로 삼았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꽤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현지인들이 많이 와 있어서 (골든위크라 다들 여행가느라 정신없다) 내가 눈에 뜨이지 않는다는게 다행일까.

머리에 버프를 둘러쓰고 고글을 끼고 있어도, 이런 유명 여행지에서는 눈길을 끌지 않아서 좋다.
가끔 눈길을 끌게 되면 대부분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말을 걸어온다는게 항상 의아스럽긴 하지만.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