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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08.29  과거로의 여행 - 타카야마의 아기원숭이 6
  2. 2009.10.08  히로시마 여행기 11편 - 미야지마, 미센의 주인들 4

 

 

쨍쨍한 날이라서 그림자도 더욱 선명해지는 시간인데

멍하니 이 거리를 쳐다보고 있으니 각잡힌 그림자가 테트리스의 블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8시에 조식으로 주먹밥 두 개 먹은것 외에는 3시가 될때까지 아무것도 입에 넣은게 없어서일까

산바람과 청명한 공기덕에 기분좋은 더위를 만끽하고는 있지만 살짝 멍한 기분이 든다.

한창 운동할 때 가끔 느꼈던 가벼운 공복감인데, 그럼에도 왠지 이곳 거리에서 뭔가 먹고싶지는 않다.

 

아무래도 관광객이 많아서, 사람 많은 곳에서는 어찌됐든 별로 식사하고픈 생각이 없다.

나이먹을수록 이건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평소엔 별 신경 안쓰지만 여행때는 항상 원점이다.

사실 어쩔 수 없는게, 여행중 일기를 쓸 만한 장소와 시간이란 게 밥 먹을때 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 붐비는 식당에서 혼자 테이블 하나 차지하고 시간마저 길게 앉아있기가 부담스럽다.

 

 

 

물이 맑은 산간지방에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메밀요리가 맛있기로 되어 있다. 메밀이란게 건강한 환경과 깨끗한 물만 있으면 잘 자라는 녀석이라.

이쪽 거리에서도 어렵지 않게 히다 생메밀이라고 광고하는 가게가 많은걸 보니 나름 실력있는 가게가 많을 듯 하다.

 

본인은 며칠 뒤에 추억의 소바를 먹으러 갈 예정이라, 그 외의 장소에서 소바를 먹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사실 일본의 소바가 더운 여름에 먹어야 제맛이라는 사람은, 메밀의 특성을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메밀수확이 시작되어 가게에 햇 메밀이 들어오는건 빨라도 9월 중순은 넘어야 한다. 평균적으로 10월 말에 나온다.

생메밀을 수타로 만드는 가게는, 이 시기가 되면 가게 앞에 '햇 메밀 입고'라는 간판을 걸어놓을 정도로

그해 첫 메밀은 신선하고 향기가 진해서, 1년중 메밀이 가장 맛있는 시기는 10월 하순부터 11월 정도다.

 

유명한 메밀가게가 대부분 추위가 빨리 찾아오는 산간지방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메밀은 더운 여름의 별미가 아니다.

물론 이건 소바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나 하는 생각이고, 사실 쯔유라고 불리는 찍어먹는 간장소스 맛이 소바에서 제일 중요한 탓에

소스 찍지않고 소바의 맛과 목넘김 만으로 품질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상당수가 업계 종사자일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일본의 유명한 소바집은, 기온의 변화에 따라 쯔유의 배합과 농도를 조절할 정도로 장인정신이 충만한 사람들이라서

이렇게 말하는 본인도 여름소바와 겨울소바의 맛을 구별할 수는 없다. 그냥 전통있는 소바집에서 일하며 주워들은 지식.

 

 

 

기념품점에 들어가진 않지만, 몇몇 가게 앞에는 조상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을 전시해 놓기도 해서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시골 사람들은 정말로 물건을 잘 버리지 않다 보니, 옛 창고같은거 뒤져보면 50~100여년 전의 물건은 우습고

가끔 150~200년 전의 가구나 장식같은게 튀어나오기도 한다. 일본사람의 특성상 좀 더 그런 면도 있고.

 

이 갑옷은 대체 언제적에 쓰이던 녀석일지. 형태를 봐서는 메이지 유신 전의 갑옷이라 적게 잡아도 150년 이상은 된 듯 보인다.

 

 

 

역사의 숨결을 느낄수 있다는 모토를 중심으로 하는 타카야마이다 보니

기념품 가게에서도 그 점을 중시한 부류가 있다. 저렴함을 포기한 대신에 좀 더 고풍스러운 물건으로 승부를 보는 곳.

 

가벼운 관광객 상대를 하는 이곳 옛 마을 거리에는 그나마 보기 힘든 편이지만

시내 곳곳에 위치한 제대로 된 가게에서는, 5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목재가구점이나 도자기점 등이 위치해 있다.

고급 목재에 결무늬가 보일 정도로 투명한 코팅을 한 히다 슌케이(飛騨春慶)의 나무쟁반이나 젓가락 등은 상당히 고급 기념품.

 

사진의 문 위에 주렁주렁 매달린 녀석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설명할 기회가 있을테니 넘어가기로 한다.

 

 

 

전통 방식으로 염색된 옷과 스카프 등을 판매하는 가게였는데 옷보다는 입구에 위치한 석상에 더 눈갈이 간다.

이 녀석 이름은 모르겠지만 장사할 때 종업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두건이 귀엽다.

 

예전 자전거 여행중 소바집에서 바이트를 할 때, 공교롭게도 가게에 남는 두건이 없어서 여행용으로 사용했던 버프를 두르고 일을 했었는데

가게 사람들에게는 그게 오히려 인상에 남았는지, 버프 벗은 모습을 보고는 동일인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까지 들었던 추억이 생각난다.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풍경이라 즐겁게 셔터를 누른다.

이렇게 흘러넘치는 물에서는 현대 사회의 '낭비'라는 개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게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달까.

 

아직 색이 바래지 않은 단풍과 수국이 투명한 물 아래서 반짝이는 모습은, 주먹밥을 더 맛있게 느껴지게 하는 데코레이션인 듯.

한국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망개잎으로 싼 망개떡이란 게 있는데, 의외로 잎으로 감싼 떡이나 주먹밥의 향기는 대단하다.

그냥 장식인줄만 알고 있었지만, 떡이나 밥 안으로 그렇게까지 향기가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감탄했던 적도 있다.

 

 

 

빗물받이도 그렇고, 옛 마을 거리는 조화의 미를 깨트리지 않기 위해 정성을 다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현대식 건물에 비해 정말로 불편한 점이 많다는 것은 이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국가 중요건축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곳 거리는, 허가없는 개조, 증축을 하지 않는 대신 정부로부터 유지 보수에 보조금을 받는다.

얼핏 보면, 사람들은 편안함을 포기하고 정부는 자금을 제공해야 하는 쌍방 불편한 방식이지만

이 선례가 잘 지켜졌기 때문에 옛 거리는 그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고 관광객을 끌어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단한 것 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1960년대부터 시작된 '옛 거리 보존 프로젝트'는 상상만큼 쉬운게 아니었다.

이게 어떤 식으로 비춰졌나 하면, 유명한 고저택과 달리 이런 집은 사실 당시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흔해빠진 가정집에 불과했고

한창 현대식 가옥이 맹위를 떨치고 있던 때라서 불편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주택을 뭐하러 유지하느냐가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정부쪽에서도 자금을 투자할 만큼의 가치가 있을지 의심스러워 했고, 가옥 주민들도 낡아빠진 목조건물을 유지하는데 힘들어하고 있었다.

나카센도의 역참마을 중 하나였던 나라이주쿠(奈良井宿)가 총대를 매고, 지원금을 주면 마을이 합심해서 가옥을 보전하겠다고 선언함으로서

시범적으로 옛 가옥의 보존이 이루어졌고, 수십년이 흐른 지금 그 감내의 결과가 이렇게 관광객들의 수치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한국은 종가집의 으리으리한 한옥마을에나 투자하고, 달동네같은 서민의 향기가 남아있는 곳은 그냥 자생적으로 방치하는 수준이었지.

국가 프로젝트로 서민들의 가옥을 보전하려는 시도따위 있지도 않았다. 그 결과는 뭐, 보다시피 일본에서 이런 모습이나 담고 있는 한국인의 모습이고.

 

일본인 특유의 장삿속이라고 생각해 버린다면 그것도 편한 방법이겠지만

이곳에서 실제 생활을 해 본다면, 그들이 희생해야 할 생활의 단편이 결코 작은게 아니라는걸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관광객을 위한 배려가 기본이 되지 않으면 이런 고생하면서 장사를 하고 싶을까.

 

타카야마는 그 점에 있어서는 귀감이 되기에 충분한 도시로, 평범한 관광객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에게도 배려심 높기로 유명한 관광지다.

여지껏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껏 올렸던 타카야마의 사진 중에서 지면이 나와있는 녀석들을 유심히 보시길.

관광지구의 거의 모든 인도는 단차가 매우 낮고 완만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휠체어로도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

무료 전동휠체어 대여소도 있고, 마을버스는 모두 휠체어로 올라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 바로 탑승가능한 대형택시도 상시 대기중이다. 휠체어로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도 80개소에 비치중.

사찰 밀집지역을 산책할 수 있는 코스 중에도, 휠체어로 일주가 가능한 길을 따로 만들어서 가이드와 함께 운용한다.

 

타카야마시에서는 '누구에게나 풍요롭고 편안한 사회가 근본적인 사회'라는 모토로, 이런 기획을 '노멀라이제이션'이라고 부르며 실행중이다.

조금 사정이 있어서 장애인들의 관광 난이도에 본능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는데, 이 타카야마시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장애인 편의도시임에 틀림없다.

 

일본의 지인을 한국으로 초청하는데 항상 진심을 다할수가 없는 이유가 이것이기도 하다. 휠체어를 타는 분이라서.

 

 

 

다리를 넘어가는데 뭔가 이상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다리가 이만큼 길었다면 요즘 여성들에게 인기 좀 끌었을텐데.

사실 반대쪽 다리에는 팔 대신 다리가 이렇게 긴 쌍동이같은 녀석의 동상도 있었다.

요즘엔 다리길이뿐만 아니라 얼굴도 많이 보니, 둘 다 인기는 별로 없을지도.

 

예전에 이런 느낌의 일본 요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는데, 이름까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뭔가 지역 특성과 결부된 듯한 요괴였는데 워낙 오래전에 들었던 터라서.

동상 밑에 설명문이 적혀있었다는 건, 훗날 돌아와서 사진작업을 할 때가 되어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 슬슬 한끼 먹어야 되겠다 싶어서 주변에 보이는 고풍스러운 가게로 들어간다.

히다 소고기 메뉴도 팔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쪼그만 양에 그만한 돈을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그냥 어디서든 맛있게 먹는 라멘을 먹기로 한다. 항상 그렇지만 볶음밥 세트는 가격이 조금 싸니까 그걸로 주문.

 

히다 라멘도 뭐, 이쪽 지방에서는 맛있다고 광고를 하고 있지만 사실 이름을 떨치는 유명 라멘에 비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식사시간이 지나서인지 관광지에서 살짝 떨어져 있어서인지, 날씨가 더워서 이런거 먹는 사람이 별로 없는건지

아니면 최악의 경우 맛이 없는 가게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비교적 넓은 가게 안에는 나를 포함 서너 명의 손님밖에 없었다.

본인이야 널널하게 식사하니 좋긴 하지만, 음식점이란 건 손님이 너무 없으면 괜스레 불안해지는 곳이기는 하다.

 

 

 

운이 좋았다고 할까, 좀 전에 다리에서 봤던 요괴들의 설명이 이곳에 붙어있었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서 알 수 있었다. 테나가(手長)와 아시나가(足長) 라는, 지극히 말 그대로의 이름이었으니까.

 

지방에 따라 전승이 조금씩 달라서, 보통은 손과 발의 길이가 산봉우리 사이를 걸칠 정도라고 거대한 거인 일족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쪽 이야기에서 이 두녀석은 사람들이나 상선을 습격해 먹어치우는 나쁜 거인으로 나오는데

이곳 타카야마의 테나가 아시나가는 그 거인 이야기와는 관계없이 신선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다고.

 

긴 다리로는 기린처럼 높은 곷의 열매를 따고, 긴 팔로는 강속의 물고기를 잡는다고 해서 산과 바다의 신으로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아마도 다른 지방의 흉폭한 거인 이야기를 듣고 자란 사람들은 타카야마의 신선이 어색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기다리니 라멘 세트가 나온다.

 

타카야마 라멘은 간장을 베이스로 하는 쇼유라멘이 주가 되는데, 인상적인 특징은 별로 없지만

면이 조금 꼬들꼬들하고 살짝 가는게 특징이라고 한다. 라멘을 워낙 좋아해서 뭐든 맛있게 먹는 본인이지만

뭐랄까, 특산품으로 자랑할만한 맛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지극히 평범한 라멘.

올려져 나오는 돼지고기는 상급이라 할 수 없고, 나머지 재료도 그냥 라멘집이라면 어디서든 나올만한 레벨.

 

히다규가 유명한 곳이다 보니 돼지고기 챠슈 대신 히다규을 올린, 조금 비싼 라멘도 있었지만

그건 맛의 조합을 중시했다기 보단, 그냥 유명 토산품의 명성에 살짝 발을 얹어보려는 시도 이상의 의미를 주기 힘들다.

기대보다 훨씬 맛있어서 눈이 확 뜨이는 그런 행복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맛없다고 할 정도는 아니어서 그럭저럭 배를 채웠다.

 

 

 

세트로 나오는 볶음밥 역시 맛 없는 수준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경험상으로, 일본의 라멘가게에서 주의해야 할 곳은 라멘이 아니라 세트로 딸려나오는 볶음밥이라고 생각한다.

 

라멘이야 워낙 상향평준화 되어서 적당히들 먹을 만 하지만 이 세트 볶음밥은 의외로 레벨차이가 크다.

한국의 중국요리점에서 나오는, 낡은 기름냄새 팍팍 풍기는 저질 볶음밥은 제외하고

오리지날 중국식 볶음밥인 챠오판(炒飯)은, 요리사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첫 번째 척도로 알려져 있다.

불을 다루는 능력이 곧바로 볶음밥의 맛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어떤 요리보다 우선적으로 실력이 드러나는 요리.

 

일본에서 볶음밥을 의미하는 챠항(チャーハン)은 챠오판을 그대로 일본식으로 읽은 것이니

요리방법도 거의 동일하다. 대량으로 만들기는 쉬워서 라멘과 세트메뉴로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대량으로 만들기가 쉽다고 해서 맛있게 만들기도 쉽다는 말은 아니라, 사실 라멘보다 엉성한 볶음밥이 나올때가 종종 있다.

 

가끔씩 정말 최악인 경우엔, 미리 만들어놓아 거의 미지근에 가깝게 식어버린 볶음밥이 나와버릴 때도 있어서

일본의 음식점에서 좀처럼 불만을 갖지 않는 나로서도 그런 경우엔 정말 기분이 팍 상해버리곤 한다.

 

이곳의 볶음밥은 그냥 평균점. 이 정도면 욕 먹을정도는 아니다. 라멘 국물에 어울릴만큼 따끈따끈하게 갓 만들어 나온것만 해도 합격.

 

 

 

식사를 마치고 나도 뭔가 개운하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푸른 하늘에게 위로를 받고는 있지만 워낙에 덥다보니

그냥 숙소에서 에어콘이나 틀고 싶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어차피 많이 둘러볼 생각은 없었고 호텔로 향하는 길에 목표인 코쿠분지가 있기 때문에 조금만 더 힘내볼 요량으로 골목 골목을 누빈다.

 

이곳 타카야마에서는 그럭저럭 이름이 알려진 곳인데, 의외로 잘 보이지가 않아 난감해 하는 도중

전혀 이름난 사찰같지 않은 형태로 박혀있는 모습을 보고 살짝 놀란다. 사찰의 고즈넉함이라던가 주위 공간의 넉넉함이라던가가 결여되어 있는 모습이라서.

일단 담벼락에 철썩 붙어있다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밀집된 주택가 사이에 자그마니 자리잡고 있는 코쿠분지의 대문은

오히려 이제까지의 일본 사찰이 가졌던 자연 친화적이고 탈세속적인 분우기와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이라서 오히려 신선하기까지 하다.

 

부족한 공간에 원래부터 작게 지어진 절인지, 중생과 함께 어울리는것이 참된 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분파인지 모르겠다.

 

 

 

절에 들어가기 전에도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다. 점점 이곳이 절인지 신사인지 헷갈리기 시작하고는 있지만.

처음엔 살짝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던 새빨간 물체가 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은

무언가를 연상시키기엔 너무 데포르메 되어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상상력이 무뎌진 걸까.

 

묘하게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구분하기 힘든 녀석들이 몇몇 있는데

이건 머리로 추정되는 흰 부분이, 좀 더 새끼줄 쪽으로 확 들어가 있는지, 반대쪽으로 튀어나와 있는지에 따라서 연상점이 바뀌는 느낌이다.

머리가 줄 쪽으로 들어가 있다면, 이것은 줄에 매달려 있는 아기 원숭이같은 느낌이지만

머리가 웅크린 몸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면 이건 무슨 고문이나 받으며 등뒤로 손발이 묶여 매달린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니.

 

 

 

물론 이 녀석은 타카야마의 마스코트인 사루보보(サルぼぼ)라고 한다.

이 지역 방언으로 '보보'란 아기를 뜻하는데, 그러니 뜻은 새끼원숭이라는 뜻.

일본어의 어순을 그대로 표현해버리는 바람에 가끔씩 원숭이 새끼라고 부를때도 있지만, 어감이 좀 이상해서 자제하려고 한다.

 

일본원숭이가 번식기때 엉덩이 빨갛게 부풀어 오르는 특징이 있어, 이곳 사루보보 인형도 이렇게 새빨간게 아닌가 싶다.

굉장히 단순화 되어있어 예술적인 면에서는 별로 가치가 없지만, 독특함으로는 확실히 인상을 남길만한 녀석이니

혹시라도 귀엽게 보이는 사람은 하나쯤 구매해 가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와 별개로, 여기 매달려 있는 녀석들은 전부 에마처럼 절에 공양된 녀석으로, 지키는 사람도 없어 그냥 떼어가도 제지받지 않을듯 하다.

몇천원 하지 않는 기념품을 훔치는 것 보다야 그냥 구입해 주는게 낫겠지만, 한국의 좀비근성을 여지없이 드러내 준 G2 사건을 생각하니

나쁜 방향으로의 결과가 괜시리 머릿속에 떠오른다. 사실 이런 기념품 급의 인형들이 무방비하게 널려있는데, 도난당하지 않는 것도 신기한 점이긴 하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녀석들도, 유심히 살펴보면 조금 귀엽게 느껴지지 아니할 정도라고도 말할 수 없지는 않을 듯한 기분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이곳에 와서야 이 녀석들 이름이 사루보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본인이 서브컬쳐나 염세적인 분야에 좀 정통하다보니

사루보보라는 이름을 들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게 미국의 애니메이터 트레이 파커가 제작한 '사우스 파크'의 노래 한 곡이다.

 

선행학습의 단점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는데, 'Let's Fighting Love' 라는 인상적인 그 노래는

사우스 파크라는 애니메이션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입에 담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에 어렵지 않게 공감이 갈 것이다.

그 노래의 가사중에 사루보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지극히도 '사우스 파크'적인 느낌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차마 여기에 그 노래의 가사를 소개할 수는 없다. 본인은 이런 트래쉬 컬쳐에 매우 관대한 편이라 즐겁게 청취하긴 하는데

이걸 부담스러워 하는 일본인이 있다면 굳이 그에게 들어보라고 권유하지는 않을테니까.

 

개인적 감상이야 둘째치고, 고지식하기 그지없는 일본의 잘나신 분들 덕분인지, 사우스 파크의 그 노래가 들어간 에피소드는 일본서 방송되지 않았다.

 

 

 

사루보보에 관한 천박한 농담은 그만하고, 이곳 코쿠분지의 정체성이란게 묘하긴 하다.

신사에나 걸려있을 법한 지역 마스코트가 불상과 함께 진열되어 있는 모습이란, 가볍게 생각하면 무거운 종교 색채가 빠진듯 해서 나쁘진 않다.

아마 매일 꽃다발을 꽂아두는 사람이 있는 듯, 아직 시들지 않은 조그만 꽃다발이 차분하게 걸려 있다.

북적이는 관광지 한가운데 불편해 보일 정도로 근접해 있는 절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게 아닌가 싶다.

 

 

 

불상 옆에 놓인 조그만 인형이 매우 단아하다. 사루보보다 이 녀석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일까.

동자상이 갖는 슬픈 과거까지 재현하려고 한 것 같진 않고, 그냥 불상 옆에서 포근히 휴식중인 이미지가 강하다.

가지런히 모은 손바닥과, 자애로움을 간직한 실눈과 수줍은 입술까지. 참 잘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나저러나 주위 분위기를 봐선, 코쿠분지 라는 절이 이름만큼 뭔가 거창하고 엄중한 곳은 아닌듯 해서 어깨에 힘이 빠진다.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잠깐 숨 돌리는 의미로 찾아온 것이라, 친근해 보이는 첫인상이 그리 나쁘지 않다.

공간이 거의 없어보이는 저 너머에는 뭐가 있을지 살짝 기대하며 소박한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다.



요즘엔 친절하게 망원경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가 보다. 00엔이라고 되어 있네.
안개가 조금 낀 편이라 망원경으로는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없었지만.


기둥이 방해가 되어서 참 아쉬운 사진이 나와버렸다. 등을 베고 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원숭이들의 흉폭함을 잘 알고 있어서 카메라 들이대기가 좀 무서웠는데, 얼마 있어보니 정말 사람에게 무신경한 녀석들이었다.
일단 먹을것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등 흥미가 없는 듯 하다.
사슴은 일단 다가와서 뭔가 요구라도 하는데 원숭이들은 처음부터 사람이 보이지 않는듯이 행동한다.


세상물정 모르고 잠자는 녀석들. 관광객들이 감탄사를 연발하고 다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주니 사진 찍을때도 편하긴 하다. 저런 자세로 어떻게 잠을 자는지는 모르겠지만.


털 골라주는 원숭이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녀석들의 심리는 참 알 수가 없는 것이, 가만히 누워 있다가도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털 고르던 원숭이를 공격하기도 하더라.
나만큼이나 어리둥절했는데 털 고르던 원숭이도 도망가면서 고성을 지른다. 억울하겠지.


전망대 옆에는 이렇게 원숭이들의 서식처가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아서 사람이 다니는 길에도 널부러져 있고, 정말 당당하게 사람 앞을 가로질러 걸어가기도 한다.

구전상으로는 천 년 가까이 성지로 추앙받던 곳이라서,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보아온 동물들이 경계심을 잃은 것일까.
가장 비자연적인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다.
이게 동물과 인간의 공존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건가?
이렇게 어색한게 공존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매일매일 죽기 위해 길러지는 수억마리의 소, 돼지, 닭들에게 미안한 느낌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공존은
동물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람은 동물의 영역권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야생동물은 뭔가를 크게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



자연 생태계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고 해도
이곳 미야지마의 원숭이들은 이미 인간이 만든 장소를 제공받고, 비록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이들을 굶겨 죽일 일은 없다.

먹이경쟁도 천적도 없는 낙원같은 곳에서 늘어져 있는 원숭이에게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찾는다는것은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비정함을 지워버린, 화려한 유화같은 낭만으로 가득 찬 도원향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미센 전체를 돌아볼 시간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산책해 볼까 싶어서 산길을 걸어본다.
원래 미센의 볼거리들을 다 구경하려면 최소 5km 이상은 걸어야 하는데, 이미 해가 조금씩 넘어가는 상황에서 이츠쿠시마 신사의 썰물을 놓칠 순 없었다.
10분 정도 적당히 걸어보다가 경치 구경만 하고 다시 전망대쪽으로 발을 옮긴다.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빠짐없이 둘러봤을텐데.
그런 생각으로 사진을 찍으니 왠지 모르는 여성의 뒷통수에서도 아쉬움이 느껴지는 듯 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등따숩고 배부르면 인상에서 여유가 느껴지나보다.
젖을 문 체 잠든 새끼나,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듯한 눈빛의 어미나.


나무 위에서 어미를 따라다니며 돌아다니는 새끼도 있다. 몇 안되는 깨어있는 새끼라 카메라를 든 손이 바빠졌지만
렌즈가 ZF 50.4 수동이라 훌쩍훌쩍 움직이는 새끼의 움직임을 잡기가 쉽진 않았다.


그래도 70%의 성공률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질 수 있어서 만족.
용케 그렇게 움직이는 녀석에게 포커스가 맞았다 싶다. 사실 찍는 순간에도 보통 감을 잡을 수가 없을 정도라서.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동물원에 갖혀 있는것 보다는 낫겠지.
원숭이들의 얼굴에 지루함이 아닌 느긋함이 엿보이는 것 만으로도 이곳 미센의 정상은 충분히 그 가치를 다하고 있다고 본다.


어딘가 일그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계속 이 모습이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다.


원숭이들을 실컷 찍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내 앞을 가로질러가는 카리스마 사슴.
실제로 덩치도 꽤 크고 산 아래서 봤던 사슴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순간적이나마 이 녀석이 가장 신과 가까운 사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슴은 아주 잠깐 멈춰서서 나와 눈을 마주치고 그대로 숲속으로 걸어간다.


원령공주의 사슴신을 생각나게 하는 녀석은 힘있는 뒷모습을 남기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살짝 경건한 마음이 든 것은, 옛날 이곳에 신사를 세우고 사슴을 신성시하던 사람들의 기억 때문일까.


관광객들의 루트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지, 올라왔을 때 거의 텅텅 비었던 내려가는 줄이 지금은 또 가득 차있다.
결국 또 30분 정도는 줄서서 기다려야 할 판. 마지막으로 세토 내해의 사진을 기분 정화용으로 날리고 줄을 섰다.


신사가 없는 이곳에도 에마(絵馬)가 있다.
상술이라고 생각하기도 지친 것이, 이제는 경건함이 사라진 애교수준의 장난으로 전락했으니 이것도 여행의 즐거움이겠지.
단지 그 즐거움을 만끽하기엔 에마가 너무 비싸서. ㅡㅡ; 일본을 여러 번 왔다갔다 했지만 에마를 사서 소원 빌어본 건 딱 한번 뿐이다.

한국어, 영어, 일어, 아랍어, 중국어... 왠만한 언어는 전부 다 쓰여있다. 이곳의 신은 다국어에 능통해야 자격이 생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