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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09.25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5편 12
  2. 2013.09.23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4편 16
  3. 2013.09.18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3편 6
  4. 2013.09.16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2편 12

 

민가원을 나와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온다. 아침보다는 월등히 사람이 많다.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을 돌아다녔지만, 저 다리를 보니 이제부터 진짜 시라카와고 둘러보기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만남의 다리'라는 의미를 가진 데아이바시(であい橋)라는 긴 다리는, 튼튼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사람이 지나가면 아주 시원하게 흔들흔들거리는 녀석이라, 조금 무서워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갓쇼즈쿠리 마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시라카와고의 풍경은 언제나 눈을 편안하게 해 준다.

삼나무라는게 한국에서는 자생하지 않는 녀석이라,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는 산의 모습도 사실 직접 보면 꽤나 느낌이 다르다.

곧고 높게 뻗은 침엽수가 높은 밀도로 서식하는 일본의 산은 한국의 산보다 머리칼이 더 풍성해 보인다고 할까.

나무의 높이와 밀도 때문에 지면이 거의 보이지 않고, 산이 좀 더 거대해 보이는 느낌을 준다.

 

여기서 풍경을 보니 무심하게도 목숨을 잃은 한국인 등산객이 또 생각난다.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여기는 외국인데 말이지. 한국의 산과는 분명 다르다.

 

 

 

렌즈 갈아끼우는게 아무리 귀찮아도 여기서는 그만두기가 힘들다.

온통 자연으로 흘러넘치는 이곳에서 굉장한 인공미를 자랑하는 녀석이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리를 바로 건너기가 아쉬울 정도의 경치 훌륭한 장소가 여기저기 있어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녀본다.

 

수량에 비해 폭을 널널하게 잡아높은 곳이라, 물이 살짝 적어보이는 강이 흐르고 있지만

가까이 가 보면 의외로 무난한 물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접 내려가도 문제 없는 듯, 사람들이 여기저기 강가를 거닐고 있지만

강가까지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하다가는 마을 둘러보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 같아서 그냥 카메라로 당겨보기나 한다.

 

 

 

저 멀리 언덕 위에 건물의 모습과 함께 꼬물딱거리는 사람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시라카와고의 풍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유명한 전망대. 원래는 성의 천수각이 존재하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온 사람중 저기서 사진 담지 않는 사람은 없을거라 확신해도 좋을 만큼, 세상 어떤 시라카와고 관광 정보에서도

거의 동일한 구도의 사진이 반드시 들어가 있다. 베스트 스팟이 그냥 딱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올라가려면 힘좀 써야겠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냥 걸으면 별 문제 없는 높이지만 카메라 장비가 무거워서.

 

 

 

하늘도 더할 나위 없이 내 취향이다. 구름 한점 없는 푸르름보다는 이런 모습이 훨씬 좋다.

밑에 살짝 보이는 억새지붕은 방금 전까지 둘러보고 있었던 민가원 쪽 건물의 모습.

 

관광 버스를 타고 온 단체 관람이라면, 정해진 시간에 이것저것 둘러보느라 바쁘게 다리를 건너야 할 텐데

혼자 오다보니 왠지 다리를 건너지 않고 건너편에서 어물쩡 거리는 것 역시 일종의 특권으로 느껴진다.

사실 날씨도 좋고 풍경도 좋고 해서, 그냥 주변만 산책하며 걸어다녀도 서너시간 정도는 거뜬히 즐길 수 있을 법 하다.

 

 

 

DSLR 급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동양인 여행객은 상당수가 중국인이다.

일본 사람들은 똑딱이 아니면 미러리스를 많이 들고 다니는 듯.

서양 관광객은 DSLR이긴 한데 보급형 조그마한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카메라 가지고 자랑할만한 실력은 아니라, 본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도 그리 당당해지진 않는다.

화각에 대한 욕심은 또 있어가지고 커다란 렌즈를 달아 다니고 있으니.

 

망원으로 후다닥 찍어버리면 거리 덕분에 사람들 눈치채지 않고 찍을 수 있기도 한데

자연스러운 사진이 좋다고는 하지만 역시 좀 미안한 기분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세계화 시대라 어디서든 이 블로그 접속이 가능할테니.

그래도 뭐, 지난번 여행때 겪었던 모 축제 영상에서 본인이 찍힌 사진과 동영상이 떡하니 걸려있는 걸 보니

이런 곳에서 슬쩍슬쩍 찍히는 건 큰 문제 없는건가 생각하며 합리화를 해 본다.

 

 

 

바람이 아예 없는 편은 아니라 거기에 실려가는, 엷지만은 않은 구름이 만드는 그림자의 명암은

흔들거리는 다리 위에서 한동안 시선을 멈추고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해 준다.

 

무지개빛 스펙트럼뿐 아니라 그 양과 세기만으로도 프리즘처럼 반짝이는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모습은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의 거대한 캔버스에 그리는 액션 페인팅 같은 느낌이다.

게르니카 같은 큰 작품들을 직접 볼 떄의 위압감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다리가 생각보다 높고 꽤나 많이 흔들려서 약간 두근두근하긴 해도

하단부가 워낙 튼튼하게 보강되어 있어서 그냥 재미로 넘길만 하다.

 

가능한 한 지나가는 사람들 방해가 되지 않게 옆으로 물러서서 이리저리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데

강의 모습을 보니 세삼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이곳이 '천혜의 비경'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간다.

 

물론 환경이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지만 이곳은 자연유산이 아니라 문화유산이다.

인류의 생활이 퇴적층처럼 시간을 걸쳐 쌓이며 만들어 간,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를 가진 곳이지

그랜드 캐년이나 장가계처럼 자연의 힘과 순수성만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곳은 아니라는 이야기.

갓쇼즈쿠리 가옥과 푸르른 산맥만 줄창 바라보다가 강에 도착하니, 이곳 역시 사람의 힘으로 이것저것 꾸며진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치수 공사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고, 사람이 사는 마을을 제외한 부분에서는 가장 인공미가 느껴지는 듯 하다.

 

 

 

물론 자연 경관도 빼어나기 그지없는데, 이곳의 자연은 인간과의 조화로움이 훌륭한 평가를 받는 것이고

야생에 가까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사람이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모습은 의외로 상냥해진다. 이곳도 그런 풍요로움과 포근함이 느껴지지만

워낙 보기가 좋아서일까, 문득문득 홋카이도의 시레토코가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쪽은 세계자연유산이라 정말로 야생을 그대로 간직중이라서.

이것도 좋은 의미에서의 아쉬움이라 다행이다. 시레토코를 생각나게 할 만큼 이곳 풍경이 뛰어나다는 뜻이니까.

 

 

 

다리를 건너면 마을 입구를 알리는 소박한 토리이(鳥居)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의도적인 연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마을은 다리를 건너기 전까지 나무숲으로 시야가 막혀있어

다리를 건너서 이곳에 도착하면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도 든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국경의 긴 터널을 벗어나자 눈의 나라였다) 라는

카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첫 장면이 워낙 유명해서, 이제 일본인의 유전자 속에 그 심상이 박혀버린걸까.

장소와 장소 사이의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의 극적인 심상 변화를 실생활에서도 구현해 놓은 듯한 이곳 시라카와고의 입구.

 

날씨도 좋고, 세계 어디서나 한창 연휴 시작중일 시기라 사람이 적지는 않은 편이다.

벌써 구경할거 다 하고 돌아가려는 사람도 있고 더운 날씨에 땡기는 빙수를 그늘에 앉아서 퍼먹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은 빙수 종류가 꽤나 명확히 갈리는 편이데, 밖에서 간단히 사 먹는 빙수는 얼음에 달콤한 식용색소만 뿌른 녀석이고

까페에서 메뉴로 나오는 녀석은 단팥, 떡, 과일 등등 다양한 데코레이션으로 무장한 녀석이다.

 

까페에서 돈 좀 주고 먹는 빙수는 일단 얼음 갈아내는 수준부터 굉장한 녀석들이 많아

TV에 소개되기도 할 정도의 유명 빙수 얼음은, 마치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듯 얼음을 만들어 겨우내 보관하고

여름이 되면 출하하는 장인정신의 산물인 녀석도 있다. 1년에 단 한번만 먹을 수 있는 비단같은 식감의 얼음이라고.

 

본인은 식용색소 넣은 얼음조각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이런 곳에서는 빙수를 잘 먹지 않는다.

 

 

 

갓쇼즈쿠리 가옥의 밀집도만으로 따진다면 좀 전의 민가원이 훨씬 높다.

실제로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이기 때문에 전부 갓쇼즈쿠리 가옥에 산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처음 마을로 들어오면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일본 시골의 마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곳의 생명력 넘치는 환경이 주위를 감싸주니,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 굉장히 특별하게 보인다.

 

 

 

강설 대비책이 예전에 비해 좋아졌고, 농촌 마을역시 핵가족화가 가속되고 있는 요즘이라서

몇몇 갓쇼즈쿠리 가옥들은 지붕만 억새일 뿐 거의 일반적인 현대식 주택의 형태와 닮아가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절경으로 유명한 관광지였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는 익숙한 곳이었지만

정작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가혹한 자연에 힘들게 맞서고 있었고

근대화 이후 빠르게 건축 기술이 발달하자 개조되거나 버려지는 갓쇼즈쿠리 건물도 늘어갔다.

 

1976년 중요전통건물보존지구로 지정되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됨에 따라

이 곳은 현대와 과거의 숨가쁜 발전상의 중간 즈음에서 시간이 정지된 듯한,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아있다.

 

 

 

아직까지 마음속에 남아있는 생활 습관이 발현도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고립된 마을일수록 사람들 손재주가 좋다. 뭐든 스스로 만들고 수리해야 했으니까.

지금처럼 그러지 않아도 될 만큼 발전한 마을이라도, 대대로 내려오는 습관은 남아있는지

여전히 시골 사람들은 필요한 거 직접 만드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장담하는데 이 폭포형 음료수 냉장연못(?)은 가게 주인이 직접 만들었으리라.

더운날 보고 있으니 참 시원해 보이는데, 가격이 좀 비싸다. 관광지가 원래 그런데다가 시라카와고는 교통도 불편하니 어쩔 수 없다.

 

지불은 가게 안의 레지에서 해 달라고 적혀있다.

그냥 가져가 버리면 어쩌나 싶은데, 관광지의 격식이라고 할까, 그런 짓을 해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만한 곳이 있는 반면

왠지 사고치거나 비행한번 해 볼만한 공간이 아니라는 묘한 경직감이 느껴지는 관광지도 있는 법.

 

 

 

자연 풍경이야 어느 계절이나 아름답지 않을 때가 있을까만은

시라카와고의 특징인 갓쇼즈쿠리 가옥의 특이성을 생각해 보면,

이곳은 다른 정원이나 시골마을과 달리 가을의 정취가 상대적으로 덜할 듯한 느낌이 든다.

사방에 침엽수가 많고, 눈이 내리기 전의 갓쇼즈쿠리 가옥은 마치 털갈이 전의 북방여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것만 같아서.

아마 논밭에서 익어가는 황금빛 곡식들의 모습이 그나마 최고의 계절이라는 가을의 면목을 세워주지 않을까.

 

물론 가을에 와 본적이 없으니 그냥 상상일 뿐이다. 이 풍경을 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갓쇼즈쿠리 가옥의 상당수는 민박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기 어려운 이곳에서 여행자들이 머물고 싶은 곳이라면 단연 갓쇼즈쿠리 가옥일테니까.

본인은 쿄토에서 옛 건물 민박을 실컷 즐겨봤으니 충분히 실감했지만,

이런 가옥은 체험적으로 숙박해 보기엔 좋지만 편리함과 편안함을 추구하긴 힘들다.

방음시설 전무에, 화장실 욕탕은 시간별로 공동 이용이니까. 좋은 점은 화덕에 둘러앉아 모르는 사람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것 정도일까.

숙박시설이라 보다는 방 딸린 인터내셔널 까페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사람 사는 세상이야 다 그렇겠지만, 관광지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다.

관광객과 현지 주민들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서로 얻을 걸 얻어가는 관계이기 때문에 배려심 역시 동등한 레벨이어야 한다.

 

관광객들이야 뭐, 쓰레기 버리지 않고 낙서하지 않고 돈 좀 많이 써주고 가는것 정도겠지만

이쪽 사람들이 관광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많고 세세하다. 특히 재화를 판매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판매 전략 자체가 공격 수단인 동시에 관광객에 대한 배려로도 이어지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보기 좋게 진연될 상품들, 호기심을 끌어들일 마스코트의 배치, 가게 주변의 깔금한 청소 등등

여기까지가 손님을 맞이하는 가게의 배려심이라 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마음에 드는 또 한가지가 있다.

2층 창문 옆의 에어콘 실외기 설치 장소를 이곳 분위기가 잘 맞는 나무 판대기로 둘러싸 놓은 점.

크게 드러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발견하면 뿌듯한 배려심이

나같이 여기저기 둘러보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은 맨홀뚜껑에 특징 집어넣는게 관광지에서는 거의 일상화 되어 있다.

내 생각에, 전국 관광지에 놓여있는 다양한 맨홀 뚜껑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관광상품화 하면 꽤 잘 팔릴것 같은데.

500원 동전크기로 만들어 놓으면 다녀온 관광지만큼 전리품이 늘어가니, 관광청 같은 곳에서 시도하면 어떨까 싶다.

 

 

 

민박집은 그냥 가정집을 살짝 개조만 해 놓은 모습이라서 부담이 없고 정겨운 느낌이다.

단지, 이런 곳의 이득을 극대화 하려면 적어도 해당 국가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게 좋다는게 함정.

 

본인 경우엔 비슷한 민박집에 들어가서 처음에 아주머니한테 말 잘 터놓으면

외국인이 말 잘한다는 징검다리 효과 덕인지 굉장히 호의적으로 대해 주시기 때문에

맛있는 것도 하나 더 챙겨주시고 하는 일도 어렵지 않게 일어난다.

 

한국의 시골이나 일본의 시골이나 근본적인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은지, 나이드신 분들은 의외로 말상대가 없어서 쓸쓸해 하신다.

 

 

 

손님이 사용하는 민박이지만, 동시에 평생을 생활하는 자기 집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민박들의 분위기는 더없이 정성스럽게 손질되어 있음을 느낀다.

꽤나 더운 여름인데도 아직 제대로 덩쿨이 자라지 않았던 게 좀 신기했지만

워낙 빨리 자라는 녀석이니, 한 1주일만 지나면 시원한 차광막이 하나 마련될 듯 하다.

 

교통이 워낙 불편한 곳이라, 버스로 오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이미가 없지만

자가용으로 민박하러 오는 사람이 꽤 많기 때문에 주차 문제는 나름 고민을 하게 만든다.

다리 건너기 전의 버스 정류장 옆에는 꽤나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만

자가용으로 온 관광객들은 단순히 시라카와고 마을 한 곳만 둘러보는게 아니라

그쪽 계곡길에서 이어지는, 자동차 없이는 가기 힘든 거리의 천연 온천여관이나 명산 트래킹 등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민박집에서 제공해주는 주차장을 사용하는게 제일 편리한데, 장소가 장소다 보니 그런 주차장은 매우 협소하다.

 

2011년에는 그 탓에, 농지로 등록된 땅의 일부분을 주차장으로 개조해 사용하다가 적발된 민박집이 신문기사로 나오기도 했다.

전통가옥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농지의 용도변경 역시 철저한 조사를 통한 허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곳이다.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시라카와고의 거리는 단순하다.

자동차가 다니는 중앙 도로와 그 옆에 난 자그마한 산책길 두어 개가 전부.

 

이곳 큰길로 나오자 비로소 관광객들이 생기있게 돌아다니며

그런 일말의 번잡함을 포용하고도 남는 푸근한 흑갈색 건물들과 푸른 산덩어리가 저 멀리 펼쳐져 있다.

가게가 많지만 물건을 사고 싶은 생각은 없고, 마을 전체의 분위기를 눈 속에 각인시키려고 노력하며 앞으로 나아가 본다.

 

날씨는 점점 맑아져서 아침의 잿빛은 어디론가 흘러가 버렸다.

도시와는 향기가 달라서 아직까지 기분이 그리 나빠지지 않지만, 요즘 몸이 몸같지 않아서 살짝 걱정 되는것도 사실.

 

최대한 무리하지 않으려고 천천히 느긋하게 이동중인데, 그래도 숄더백의 무게만큼은 어쩔 수 없다.

가지고 온 세 개의 렌즈중에서 원래는 50mm 단렌즈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편인데

렌즈 갈아까우는 수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24mm 단렌즈와 70-300mm 줌렌즈 두개만을 주력으로 사용중이다.

중간 화각은 대강 이런저런 방법으로 때울 수 있지만 광각와 망원은 렌즈빨이 너무 강하다.

 

 

 

민가원이 귀중한 볼거리들과 압도적인 전원 풍경으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규모면에서 그리 큰 편은 아니라 사진찍으며 느긋하게 둘러봐도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날씨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으니 이제 슬슬 시라카와고의 진짜 모습을 구경하러 가 봐야 할듯.

 

히다 타카야마를 왕복하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꼼짝없이 갇히기 싫으면 어쨌든 시간만큼은 잘 지켜서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아직 4시간 넘게 남아있기 때문에 문제는 없지만, 시라카와고 정도의 마을은 조금만 방심해도 시간을 잊어버리는 무서운 곳이니 조심해야 할 듯.

 

 

 

관리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진 모르겠지만, 정말 입장료 받을 만큼은 꾸며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입장료 받는 일본의 정원도 산책로로서 훌륭한 구성을 이루고 있지만

이곳 민가원은 산책을 주 목적으로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산책하기에 모자란 점이 없는 곳이다.

억새지붕 위에 돋아난 새싹들의 모습만 봐도, 정통 정원의 기계적 예리함마저 느껴지는 인공적 자연미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언덕을 살짝 돌아서 내려오면 보이는 조그만 집은 방앗간인 듯 하다. 물레방아와는 다른 단순한 방식.

일본식 정원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대나무 소리 통통 울리는 그 방식과 똑같다.

소리를 내기 위한 조합이 아니라 곡식을 빻기 위한 절구통이 반대쪽 끝에 구비되어 있을 뿐.

 

물론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구동되고 있다. 저 곳에 물이 가득 차면 바닥으로 쏟아지고, 가벼워진 무게로 반대쪽의 절구가 곡식을 찧는다.

물레방아에 비하면 단순하고 효율이 떨어지지만, 제작이 간단해서 많이 쓰이곤 헀다.

 

 

 

무게 조절은 돌맹이로 했나 보다. 과학적인 계산보다 사실 이쪽이 실생활에서는 더 간단하다.

대나무의 통통거리는 소리는 아니지만 실용적인 작업의 결과물로서 들리는 쿵쿵 소리도 나쁘진 않다.

 

 

 

언덕을 내려오고 나니 전체적인 풍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조금 전 임시 거주용 건물 주위에 만들어진, 연못처럼 생긴 곳의 물은 이렇게 밑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디자인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미의식이 함축된 전통 정원과는 달리

일단 형태를 갖춰놓으면 나머지 부분을 알아서 자연의 손길이 메우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물이 있는 곳에는 방앗간이 있는게 인류 공통의 문화이긴 한데

일본에 대해 어느정도 공부는 하는 본인 입장에서도 아직 알아보지 못한 정보가 있다.

한국의 물레방앗간처럼 이곳도 밤중에 남녀간의 데이트 장소로 사용되었을까나?

 

방앗간이라는 게 단순히 인기척이 없고 소음(?)을 줄여주는 곳이라 애용되었던 것이 아니라

방앗간 자체의 이미지도로 충분히 성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장소였으니

일본에서도 적당히 비슷한 일화가 있지 않을까 조금 궁금하긴 한데, 이런 걸 어디다 물어봐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세삼스럽게 느끼는 점인데

도시의 철근 콘크리트 숲 속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주택가의 꽃들이, 전쟁의 포화속에서 병사가 꺼내 들어보는 애인 사진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이곳의 꽃들은 온통 녹색과 암갈색의 조화속에 살짝살짝 포인트를 찍어주는 발레리나의 발끝과 같은 느낌이 든다.

 

척박한 환경의 꽃은 의무감을 가진 듯 강렬하게 자신을 주장하는 반면

너그러운 환경의 꽃은 없어도 될 것 같지만 은근히 밋밋함을 지워주는 향신료 역할을 한다.

 

꽃과 녹색 자연에 뒤덮혀 조금은 우충중해 보이는 저 갓쇼즈쿠리 건물은

이곳 민가원에 입장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휴게소 역할을 하고 있다.

당연히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으니 다시 요금을 낼 필요는 없다.

 

물론 들어가서 쉬어도 나름 재미있는 경험은 되겠지만

이런 하늘 아래에서 굳이 건물 안에 들어가 쉬고싶은 생각은 들지 않아, 나중에 그냥 야외에서 앉아 쉬기로 한다.

 

 

 

휴게소가 한 군데가 아니다. 멀리 보이는 저곳은 아예 신발 벗고 올라가서 편안히 누워있을 수도 있는 곳이다.

안쪽에서는 시라카와고와 민가원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는 방송이 TV를 통해 상영중이다.

 

젊은 사람이 없는건 아닌데, 아무래도 쉬어가려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이 좀 있는 분들이라 그런지

저 안에 들어가려는 의지가 생겨나지는 않는다. 만약 들어가서 슬쩍 앉아있다 보면 또 나이든 분들이 말 좀 걸어올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보면 또 일본어 잘하네~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죽이 잘 맞으면 식사 한끼나, 집에 초대받거나 하는 일도 생겨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쩐지 일본에서의 본인은, 나이 든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평소같으면 여행의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결코 마다하지 않는 그런 가상의 이벤트도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원하지 않고 생겨날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인연을 되짚어가기 위한 여행이니까.

 

 

 

동그란 공터 옆에는 아담한 선물 가게가 문을 열고 있다.

그 앞에 적당히 그늘을 만들어 주는 벤치가 놓여있어서 일단 거기 앉아 숨을 고른다.

날씨는 점점 맑아지고, 그러면서도 비를 머금지 않은 밝은 구름이 데코레이션을 잊지 않아서 경치 감상에는 최적의 구성.

 

일기도 좀 쓰고 한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다가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본다.

시라카와고의 마을 안은 훨씬 바쁘고 상업적이겠지만, 이곳 민가원은 보존되어 있는 갓쇼즈쿠리 가옥만큼이나

가게도 힘은 뺀 느낌이랄까. 80은 가볍게 넘어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가게와는 관계없는 잡일하면서 앉아 계신다.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마음껏 찍으라 하셔서 다행.

고추다발은 천으로 만든 모조품이 아니라 진짜 말려놓은 녀석들도 판매중이다. 먹으라는 건 아니겠고.

한국과 비슷하게 복이 들어오는 부적같은 것이긴 한데, 남아선호사상과 결부된 이미지는 없다.

 

 

 

마을 안 가게들은 아마 이것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다양한 물품으로 관광객들의 신경을 자극할거라 예상해 본다.

이곳은 정말 할머니와 가족들이 직접 만든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모난 것 없이 수수한 상품들이 대부분.

 

헝겊이나 혼수건, 인형, 짚을 꼬아 만든 것들은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건 실제로 사용할 사람과 함께 오면 구매해도 아쉽지 않겠는데

시라카와고를 와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 줘봤자, 이 곳의 느낌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그닥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이 곳의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할까, 직접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울릴만한 선물이 별로 없다.

 

 

 

그나마 무난한 선물로는 이게 제일 눈에 들어오긴 한다.

완성도도 상당하고, 모두 수작업으로 만든 녀석이라 다들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일본 역시 거의 어디서나 마데인 차이나의 손길을 벗어나기 어려운데, 시라카와고 토종 수제품이라 흥미가 간다.

 

그런데 역시, 이 녀석을 선물할 만한 관계에 있는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이 곳에 직접 와보기를 권유하는 입장에서라도

이 녀석을 사 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런 것으로 먼저 접하기보다는 일단 시라카와고에 한번 가 봤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입체적인 실물이 아닌 사진 정도라면 뭐, 괜찮지 않을까.

 

 

 

바람이 불 때마다 묘한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나무로 만든 풍경이 내는 소리였다.

귀를 간지럽히는 유리 풍경의 맑은 음색과는 달리 또르륵 거리는 부드러운 화음이 시라카와고의 풍경에 잘 맞는다.

아파트에서 그닥 활용할 일이 없어서 항상 아쉬운 풍경인데, 이 녀석을 보니 본격적으로 집에 풍경 설치할 만한 곳을 찾아보고픈 욕망이 샘솟는다.

 

여름의 시라카와고에 발을 들인 이상, 겨울에 다시 찾아가지 않을 일은 없을거라 확신하기 때문에

조급하게 지금 뭔가를 사려고 할 필요는 없다. 다음에 찾아오면 좀 더 생각해보고 물건을 고르는 안목이 생길 테니까.

 

그러고보니 이게 판매용인지 그냥 달아놓은건지도 모르겠다.

 

 

 

기념품은 접어두고, 흔쾌히 촬영을 허가해 주신 할머니의 가계에 도움을 보태기 위해

크게 구미가 당기진 않았지만 아이스크림을 하나 주문해 먹는다.

 

200엔짜리 아이스크림 치고는 많이 작아서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래도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지 않는 것은, 이곳 민가원의 가게에서 판매하는 모든 상품들은

시카라와고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메밀 아이스크림 역시 이곳 사람들이 기른 메밀로 만든 녀석이라.

 

사먹으면서도 쓴웃음이 난 것이, 메밀을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봤자 맛과 향이 느껴질 일이 거의 없다.

조금이라도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 중간에 땅콩도 박아넣고 한 성의가 느껴지는데

결국 아이스크림은 설탕 없이는 맛이 나지 않는 녀석이라, 그 강렬한 맛이 메밀의 미묘한 맛을 다 가리는 바람에

그닥 맛있다고 칭찬할 만한 녀석은 아니었다. 완전히 메밀의 맛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맛 배합상 좀 무리가 있는 모델이다.

 

하지만 수제 아이스크림인데다가, 좀처럼 보기 힘든 조합의 아이스크림이라 후회없이 즐겼다.

 

 

 

벤치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뿌리까지 씹어먹고 나서도 한동안 가만이 앉아있는다.

이제 발걸음을 옮기면 민가원을 떠나게 되는데, 이 앞에 진짜 시라카와고 관광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이곳의 풍경을 좀 더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있다. 마을은 마을대로, 이곳은 이곳대로 매력이 충분한 곳이다.

 

 

 

카메라를 어깨에 매고 눈을 부라리며 사냥감을 찾아 다닐때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되는 장면들이 많다.

이렇게 시각과 화각이 제한되는 벤치에 퍼질러 앉아서

망원렌즈를 갈아끼우고, 슬쩍 훑어보면서 미처 눈에 들어오지 못했던 장면들을 되새겨 본다.

 

좀 더 익숙해지면, 이렇게 벤치에서 느긋한 기분으로 뷰파인더를 훌훌 돌려보는 기분을 유지하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해 보며 휴식을 겸하는 촬영을 계속한다.

 

 

 

민가원 역시 사람이 살지 않는 전시용 가옥이라는 점만 빼면

마을 사람들이 유지 보수하며, 실제로 마을에서의 생활과 별로 다를 것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 정원을 많이 둘러본 사람이라면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대비되는 듯한 엄격함과 자연스러움의 조화가 눈에 들어올 듯.

 

경남 사천의 조그만 시골집은 엄니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가끔 가는 곳인데

거기도 한가족이 아궁이에 사용할 만큼의 장작은 모아놨다. 겨울에 불 때고 들어가면 참 뜨끈뜨끈한데.

 

한국은 이제 그런 장작도 꽤나 비싸서, 자칫하면 도둑맞을지도 모르는 위협을 느끼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적어도 그럴 걱정은 없지 않을까 싶다.

일본 전체가 한국보다 목재가 훨씬 풍부한 편이기도 하고, 이곳은 특히 목재 수급에 별 어려움이 없는 곳이라.

 

시골마을 하면 생각나는, 이렇게 목재를 가득 재여놓은 모습은, 이 모습 그대로가 마을의 풍족함을 나타내는 지표처럼 느껴진다.

 

 

 

여행 차림새는 아닌 듯, 총천연색 조금 촌티나는 분홍 셔츠 입은 5~6살짜리 꼬마숙녀가

자기 집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달려와서 그네를 한동안 타다가 사라진다.

주위에 부모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해서, 시라카와고 주민일 것이라는 예상이 틀리지 않으리라 본다.

 

좋은 그림이 될 수 있었겠지만, 부모도 없는 아이들 노는 사진을 담는 건 왠지 유리가슴인 본인으로서 좀 겁나는 일이다.

아시아쪽에서 특히 한국과 일본은 사진 찍히는데 굉장히 민감한 편이라 더더욱 셔터 누르기가 힘들다.

서양쪽은 별 문제없는 듯 하고, 인도같은 곳은 아예 서로 찍어달라고 난리인데. 국민성 탓하기 전에 본인의 담력을 기를 필요가 있겠지만.

 

그건 그렇고, 국가 중요 문화재가 산재한 이곳 민가원 한켠에, 관광객 용으로는 보이지 않는 자연미 넘치는 그네가 놓여있다는 사실은

본인이 이곳 시라카와고를 더 좋아하게 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참 아름다운 녀석이다.

 

 

 

십여 분간 벤치에서 엉덩이 한번 떼지 않고도 이것저것 찍을 수 있는 것은

시라카와고가 그만큼 건질 장면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일수도 있고

망원 줌렌즈가 사람 좀 편하게 만들어 주는 이유 덕분일수도 있고

이렇게 앉아있지 않으면 괜히 마음 조급해져서, 담을 수 있는것도 못 담는 성급한 초보 여행자가 원인일수도 있다.

 

나비의 날개짓처럼 흔들리는 꽃잎들을 쳐다보며 조금 더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다른 마을에 있었던 조그만 신사인데, 약간 어설픈 갓쇼즈쿠리 양식이긴 하지만

거주용 저택처럼 큰 녀석은 아니니 이 정도로도 충분히 눈을 막을 수 있는가 보다.

 

이렇게 느슨한 양식은 얼핏보니 한국의 초가집과 별로 다르지도 않다는 느낌.

이곳이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지붕의 각도도 낮고 펑퍼짐하게 만들어져

보기엔 좀 편안한 대신, 이렇게까지 관광객이 찾아드는 유명지가 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니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이 어울리는 건가 싶기도 하다. 사실 고생한 사람과 낙을 받은 사람이 몇 세대는 차이나지만.

 

 

 

정확히는 '민가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박물관인데

각지의 건물을 이곳으로 옮기는 것은 여러 단체의 힘을 모은 큰 공사였지만

현재 이곳은 유지 보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 주민들이다.

 

전통 방식으로 건물을 유지 보수하는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

갓쇼즈쿠리 양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지붕을 이루는 억새인데

제대로 만든 지붕의 수명은 약 30여년이지만, 마을에 건물이 한두 개 있는게 아니다보니

거의 매년 한두 번씩은 새 지붕으로 교환하는 일이 생긴다. 마을의 모든 장정들이 동원되는 일년 중 가장 바쁜 대목.

 

지금은 지붕 교체를 마을 축제로 결부시켜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제때 지붕을 갈지 못하면 그해 겨울을 나기가 힘들어지는, 목숨과 직결된 일이었기에

마을의 공동체 생활의 힘을 가장 여실히 보여줄 수 있는 협동의 장이기도 하다.

 

 

 

원래 담이란 게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쟀든 지붕과 비슷하게 정감넘치는 담장도 만들어져 있다.

집의 유지 보수가 중요한 일과인 마을이라서 창고엔 항상 목재가 쌓여있는게 보인다.

 

그리고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외발수레의 모습이 뒤의 정원에서 화려하게 자태를 뽐내는 꽃과 어우러지니

살짝 전원일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라면 이웃과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죽어버릴지도 모르니, 사회성을 길러야 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살아보는것도 좋을 듯.

 

 

 

건물들 돌아보고 있을땐 손가락 끝으로 셔터를 느끼며, 코끝으로 풀내음을 맡으며, 눈끝으로 녹색 향연을 즐기는데

좀 쉬자고 생각하며 주면의 꽃을 이리저리 쳐다보고 있으면 감각들이 정말로 쉬어버리는지

그제서야 지금이 얼마나 무더운 날인가를 실감하게 되고, 참고 있던듯한 땀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도 담기는 사진들이 전부 소중하니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서 다행.

누가 하라고 하면 이렇게 돌아다니지는 못할것 같다. 사진도 의뢰받아 찍는건 그닥 땡기지 않고.

 

 

 

이곳을 거닐면 머릿속에 생각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보고 찍고 느끼고 하는 단순하면서도 즐거운 행동의 반복일 뿐.

 

작가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작품 한 장을 위해 수많은 발걸음을 옮겨 최적의 스팟을 찾아내어야 할 텐데

본인은 아직 여행에 미쳐있어서 그런지, 사진보다는 일단 보고 즐거워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덕분에 사진은 그저 그렇다.

 

 

 

온통 푸른색으로 뒤덮힌 곳이라 이런 꽃의 강렬함이 더욱 빛을 발하는 듯 하다.

시라카와고는 겨울이 진국이라 하던데, 여름의 모습 역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수준이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겨울에 가 보면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게 제대로 된 순서라고.

 

적어도 이 꽃만큼은 겨울의 어떤 풍경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귀하게 담아준다.

 

 

 

광합성을 통해서 땅에서 솟아난 건지, 구름이 점점 걷히고 하늘이 맑아지자

슬금슬금 혼자였던 민가원 안이 관광객들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어로 추정되는 말을 피로하는 외국인들도 많다.

 

아직 풍경 감상에 전혀 지루해지지 않고 있지만, 이곳 안에서 가장 이상하게 생긴 건물앞에서 발걸음이 멈추고 만다.

구석기 시대에 출토된 갓쇼즈쿠리의 초기양식... 이라는 말도 안되는 설정은 아닌듯 하고.

 

다행이랄까, 연못 중앙에 떡하게 놓인 이 건물은 아무런 방해물 없이 편하게 들어가 감상할 수 있었다.

원래는 손이 닿지 않을 억새지붕도 손쉽게 만질 수 있는 위치인데, 아무래도 사고칠까봐 마구 만지지는 못했다.

 

 

 

처음엔 농담삼아 생각해 본 구석기 이야기였는데

실제로 갓쇼즈쿠리의 초기 형태는 죠몬시대의 이러한 거주지 모양을 본뜬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다층식 갓쇼즈쿠리 양식은 약 300년 전에 확립된 기술.

 

약 1만년 전 즈음의 죠몬시대 일본에서는, 땅을 파서 동굴처럼 만든 후 기둥을 새우고 건초로 지붕을 만들어 생활하는 방식을 이용했는데

원형적으로 지금 보이는 갓쇼즈쿠리의 초기 형태와 비슷한 면이 있다. 물론 실제로는 거의 원시인에 가까운 생활방식이었지만.

 

그건 그렇고, 이런 지붕만 달랑 남은 건물은 뭐하는데 쓰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안내판을 보니 '화재 등으로 집을 잃었을 때, 집이 재건되기 전까지 살았던 임시 거주지'였다고 한다.

 

내용을 알고 나서 생각해 보니 과연 그럴 법도 하다.

집이 없이는 절대로 겨울을 날 수 없는 곳이고, 그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갓쇼즈쿠리 양식의 지붕이 필요하다.

집이 완성되기 전까지 생활이 가능한 모양이라고 하면 이것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내부로도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놀랐다. 지붕과 가까워질수록 뭔가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 든달까.

내부는 간이 바닥이 반쯤 깔려있고, 나머지는 그냥 흙바닥이다. 적어도 오래 살수 있을만한 공간은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다.

 

목재마저 풍족하지 못했다면, 이 지역은 결코 사람이 살지 못하는 불모지가 되지 않았으려나.

하지만 사람의 적응력이란 상상을 초월하니, 그 경우에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은 어떨런지 상상해 보는것도 재미있을 듯.

 

 

 

갓쇼즈쿠리 지붕의 맺음 형태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는 모습.

가장 강하고 굵은 기둥을 합장하듯이 세우고, 그 기둥을 지지하는 보조 기둥을 양쪽에서 겹쳐 세운다.

메인 기둥에 평행한 방향으로 억새를 지지할 기둥을 세운 후, 마치 젠거 막대를 겹쳐쌓듯이 꼼꼼하게 추가 기둥을 덧붙인다.

 

중간중간 지지대 기둥의 각도를 엇갈려 배치해 놓음으로서 최대한 눈의 하중을 분산시려고 노력해 놓았다.

전에도 말했듯이 이런 식의, 하중이 여러 기둥들에 의해 세세히 분산되는 구조에서는 강도와 함께 탄성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금속 지지대보다는 이런 목재 지지대가 재료 구하기도 쉽고 수십년간 오래 버틸 수 있다.

 

 

 

여름에 별로 시원하지 않고, 겨울에 별로 따뜻하지 않은 갓쇼즈쿠리 구조의 힘겨움이 느껴진다.

이곳 시라카와고는 바닷바람이 계곡을 통해서 직선으로 통과하는 지리적 특징 때문에

여름에는 남쪽에서 북쪽 바다로, 겨울에는 바다쪽에서 남쪽으로 바람이 통과한다.

 

갓쇼즈쿠리 양식은 눈의 하중을 버티기 위해 지어진 방식이라서

그 가파른 지붕 측면에서 매서운 바람을 받으면 한쪽 부분에만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수명의 단축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곳 마을의 건물들은 모두 출입구 부분, 건물 정면의 삼각형 부분을 남북으로 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래야 지붕의 측면으로 바람이 부딪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완성된 갓쇼즈쿠리 건물은 출입문이 측면에 위치하지만, 이런 가건물은 구조상 지붕과 출입문이 같은 방향으로 나 있다.

그래서 바람이 잘 통하는 여름에는 어떻게 버틸만 하지만, 겨울은 추위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구조.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 하나를 위해 다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빨리 새로운 집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면서.

 

 

 

가건물을 한참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니 강렬한 햇빛에 잠깐 시야가 몽롱해진다.

추정 이탈리아 처자 세 명이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탱크탑 차림으로 뭐라뭐라 이야기하며 주변을 거닐고 있다.

 

건너왔던 다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건너가보고 싶었는데, 이쪽 다리는 게걸음이라도 해야 할 정도로 좁다.

물론 빠져도 발목 조금 위까지만 잠길만한 연못이라 생명엔 지장이 없겠지만

이런곳에서 푹 빠져버리면 그 쪽팔림 만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 있을테니 신중하게 한걸음 한걸음 이동하며 다리를 건넌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집이 있어서 다가가 본다. 크기가 다른 집에 비해서 좀 크긴 한데, 그것만은 아닌 듯한 느낌.

좀 더 현실성이 있다고 해야 할까, 묘하게 다른 건물들보다 눈에 띄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약간은 이해가 된다. 현재 시라카와고에서 가장 오래된 갓쇼즈쿠리 건물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크기도 상당히 크고, 높이보다는 길이가 길쭉한 것이 평범한 일반 민가와 약간은 닮은 점이 남아있는 점이 특징.

 

 

 

창고쪽에는 주민들이 거주 당시 사용하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도 이곳에 사람이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감이 느껴진다.

말 썰매라는 뜻의 바소리(馬橇)라는 이 기구는, 말 그대로 말이 끄는 썰매다. 지형이 험하고 날씨가 추운 이곳에서는 소보다 말이 더 효율이 높았다.

 

예전에는 산간 지방에서 자주 사용되던 녀석인데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리고

실제로 사용하던 녀석을 보존한 것은 아마도 이 녀석이 최후의 1개일 거라고 설명에 적혀 있다.

 

 

 

오래된 민가일수록 목재에 끊임없이 옻칠을 하고, 목재 자체의 수명이 더해져서 흉내내기 힘든 색상이 덧입혀져 있다.

내부에 들어와보니 정말로 오래되긴 오래된 녀석이구나 싶다. 좀 전의 가옥 내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마을의 역사에 비하면 전기같은거 들어온 건 아주 최근 들어서이기 때문에

형태를 갖춘 등불과 촛대들이 현실감을 간직한 채 전시되어 있다.

 

적당히 모양 갖춘 목재를 살짝 다듬어서 자연미를 살린 녀석도 있는 반면

대자연 속에서 폭발하는 예술 감각을 주체하지 못했던지, 멋들어지게 깎아낸 촛대도 보인다.

실용적이고 간소함이 느껴지는 물건들이지만, 금속 촛대나 옥 촛대 등은 그래도 좀 사는 편이라고 자부하던 사람들의 유산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전통 가옥의 내부 형태가 제대로 갖춰진 곳이다. 지금도 시라카와고의 여관이나 민박집에서는 이런 구조를 쉽게 볼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넓은 거실은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고

지금도 민박집에서는 다양한 국가의 젊은이들이 옹기종이 모여서 자신들이 가진 각각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온통 목조로 만들어진 데다가 주변엔 산과 나무로 불러싸인 지형, 그리고 갓쇼즈쿠리의 생명인 거대한 억새 지붕은

모두 불에 극단적으로 취약하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마르고 말라 굉장한 밀도로 제작된 억새 지붕에 불이 붙으면

아무리 물을 퍼부어도,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도 절대로 꺼지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화재는 마을 전체의 운명이 걸린 최악의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수백년동안 어떤 괴로움을 감내하면서도 화재만큼은 막으려고 노력해 온 마을이고

이런 식으로 집안에 불씨를 피울 수 있는 곳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고, 반드시 모래더미 안에서만 재와 숯을 다룰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민가원에 조성된 건물 중 절반 이상은, 예전 마을에서 화재로 소실된 녀석들을 100여년 전 재건한 녀석들이다.

억새 지붕의 수명이 30~40년인 것을 감안하면, 100여년 된 건물들은 새로 지은거나 마찬가지.

 

시라카와고에서 가장 오래된 이 건물은 175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척박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인생은 즐거운 것이라 생각.

고양이 구멍이라고 이름지어진 조그만 구멍은, 말 그대로 고양이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전용 출입구다.

당연히 곡식을 훔쳐가고 가옥을 갉아먹는 쥐를 잡기 위해 설치된 문.

 

물론 실용적인 고심의 결과 만들어진 결과물이겠지만

이렇게 머리를 문에 들이대고 조용히 쥐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냥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충분히 즐거웠으리라 생각.

실제로 갓쇼즈쿠리 가옥에 사는 산간 지역 주민들은 동물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아무리 대자연의 포옹 속에서 살아가도, 그만큼 쉽게 쓸쓸해 지는 곳이기도 하니까.

 

 

 

센스있게 냥이 인형을 딱 설치해 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고양이가 없는 집이 없었다고 하는데, 재미있게도 요즘의 시라카와고에서는 고양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갓쇼즈쿠리 촌락 지역에서 좀 떨어진 일반 민가에는 평범하게 키우는 사람도 많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떠돌이 냥이를 만난 적은 없다. 사람의 도움 없이 이곳의 험한 자연을 극복하며 살기엔 냥이도 너무 물러져 버렸나.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냥이는 사람에게 잘 길들여지지 않고 적응력이 뛰어나니

자연으로 돌아가도 잘 살거라 생각하는데, 기본적으로 고양이는 따듯한 지역에서 살던 동물이다.

사시사철 추운 곳이라면 몰라도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큰 곳에서는 자연적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특히, 쥐나 사육된 닭 따위를 잡아먹는 현재의 고양이가 자연계로 돌아가면 사냥가능한 동물은 거의 없기도 하고.

어떤 시뮬레이션에서도 현재의 고양이는 자연 상태에서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한다.

 

 

 

고양이가 가방의 의무를 다하던 주방 겸 창고.

목재가 풍부한 지역답게, 불과 직접 접촉하는 기구들을 빼면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지지대로 세워놓은 기둥 두 개가 이 곳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듯 하다.

 

 

 

아쉽게도 2층으로 올라갈 수는 없다. 일단 중요문화재이기 때문에.

갓쇼즈쿠리 건축물의 특징 중 하나로, 지붕이 높기 때문에 다락방이라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그냥 복층 주택이라고 하는 편이 낫지만

실제로 층별로 사람이 살거나 하는 형식은 아니었다. 보통 창고로 쓰기도 하고, 에도시대 중기 이후부터는 양잠 등의 사내수공업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2층에 올라가 볼 수 있는 가옥은 마을 여기저기 산재해 있으니 체험하기 쉬운데

2~4층에 보이는 창문 크기가 성인 한 명의 신장만큼 크다. 보통 떠올리는 창문과 달리 지면에서부터 시작하는 창문이라 앞에 서 보면 약간 섬뜩하다.

 

 

 

일본이라면 어느 집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불단.

화장이 주를 이룬지가 꽤나 오래 되었기 때문에, 보통 부모나 조부모의 유골함을 집 안에 두고 생활하는 편이다.

이 풍경을 보니 정말 이 집은 실제로 사람이 살던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집을 구경하고 나가려는데 사진이 한 장 눈에 들어온다. 1930년대 이 집에 거주하던 가족사진이다.

요즘엔 시라카와고에서도 보기 힘든 조랑말을 사진으로나마 접할 수 잇어서 기분이 묘하다.

 

도착하고나서부터 사진을 계속 찍으면서도, 실제로는 참 살기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는데

동물들과 함께 찍은 이 사진을 보니 이곳에서도 재밌게 한번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진의 꼬마는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80세를 훌쩍 넘겼을 터, 어떻게 되었을려나.

 

이런 거미집은 아무래도 흔히 보이는 녀석보다 훨씬 더 긴 세월동안 만들어 진 녀석일 듯.

전통을 느끼러 방문하는 시라카와고의 갓쇼즈쿠리 양식과 왠지 어울릴 법한 집이다.

 

 

 

산책이랄 것도 없지만, 조금 걸어가자 본격적인 박물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입장료를 받는 곳인데도 '그냥 거기 있었던 것'처럼 조성된 자연스러움은

지금 여기가 박물관인지 사람 사는 마을 안인지 헷갈리가 만들 정도.

 

첫인상은 '자기가 지향해야 할 곳을 잘 알고 있는 박물관'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려나.

 

 

 

하늘엔 여전히 구름이 잔뜩 끼어 있지만 날씨는 오전임에도 30도를 훌쩍 넘겼고

구름 너머에서 후광으로 멋을 부리고 있는 햇빛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이런 날씨는 지금 뿐인듯 하다. 저 구름이 걷히는 때부터 이곳은 최고의 한여름 날씨를 보여줄 기세.

구름과 안개에 감싸인 산의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전통 가옥을 보러 오는 시라카와고지만, 이 주변 환경만 둘러봐도 시간 가는줄 모른다.

 

 

 

많은 관광객이 마을 쪽을 먼저 찾는지, 이곳엔 아직 사람이 거의 없다.

아마도 무료 관람이 가능한 곳을 먼저 돌아보고, 마음에 들면 유료 관람쪽으로 올 거라 나름 추측을 해 보는데

본인은 어차피 오늘 하루 시라카와고의 여름 풍경을 속속들이 빨아먹을 생각으로 왔기 때문에

최대한 사람과 섞이지 않도록 루트를 생각하는 중이었고, 다행히도 첫 번째 예상은 틀리지 않은 듯 하다.

 

혼자서 길 어디서나 멈춰서서 느긋하게 풍경을 즐긴 후, 슬금슬금 카메라를 치켜들고 셔터를 누를 때까지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누군가를 방해하거나 누군가가 방해하는 일이 없으니, 신선 놀음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겨울엔 끝없는 눈이 내리고, 연간 강수량도 상당한 곳이라 자칫하면 빗속의 관광이 될 가능성도 높았지만

이번 여행은 뭔가 날씨에 있어서는 축복을 받은건지, 가는 곳마다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씨 뿐이다.

 

시라카와고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속에서 드러남에 틀림없지만, 그런 아쉬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여름의 시라카와고 역시 눈과 귀와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라고 생각.

 

본래 자연의 매서움을 사람의 힘으로 극복해 살아가는 의지와 노력이 깃들어 있는 갓쇼즈쿠리 양식이라도

이렇게 풍요로움이 넘치는 한여름 풍경과의 묘하게 어색한 언밸런스 역시 대조를 이루어 관광객의 시야를 자극시킨다.

 

 

 

자전거로 오기가 보통 힘든곳이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에 괴수는 많으니

정말로 도보나 자전거로 이곳까지 여행오는 사람들이 있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탓에 현대식 호텔이 들어설 자리가 없고

노숙도 금지되어 있어서, 당일치기로 떠나지 않는 한엔 민숙이나 여관에 묵을 수 밖에 없는데

자전거 여행자들이 그런 사치를 누리기는 쉽지 않은지, 가끔 이런 공터에 텐트치고 자 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덕분에 마을 주민들도 골머리를 썩히곤 한다고, 돈이 없다는데 여관으로 가라고 할 수도 없고.

 

여행은 지역 주민들이나 외부 관광객들이나 상호 협조없이는 결코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돈 내고 왔으니 내가 갑이라고 큰소리 치는 천한 것들은 제발 여행따위 좀 때려치워 줬으면 한다.

뭐, 자전거 여행자들은 돈도 없으면서 은근히 자존심과 서바이벌 정신으로 불타는 애들이 좀 있기도 하고.

일본같은 풍요로운 곳에서 서바이벌 같은거 해 봤자 그냥 어린애 장난일 뿐이다.

 

 

 

이곳 민속 박물관은 원형으로 된 부지 위에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배열되어 있고

루트는 일직선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가옥들 뒤쪽 언덕으로 한바퀴 돌아보거나

조성된 개울가 주위를 산책하거나 하면서 마음대로 걸어볼 수 있다.

 

일단 입구와 출구도 같은 곳에 있기 때문에, 사실은 순로라는 방향지시가 별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사람이 많이 붐빌때나 단체 관광같은 경우에 필요한 하나의 가이드 역할 정도는 해 낼듯 하다.

 

길을 따라갈 일이 없으니 여기저기 뒤척이며 정신없이 동공 안에 이 풍경을 마구 각인시키며

거의 본능에 가깝게 카메라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수능이라도 준비하는 학생처럼 맹렬한 기세로 관광을 즐기고 있다.

 

 

 

실제로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시라카와고 하면 생각나는게 갓쇼즈쿠리 양식 밖에 없었는데

직접 와서 감상해보니 갓쇼즈쿠리는 이를테면, 이곳의 본질이 만들어내는 부산물의 일종으로 인식되는 듯 하다.

눈과 비에 강한 갓쇼즈쿠리 양식이 태동하게 된 이유가, 시라카와고를 유명한 관광지로 만들어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생명력으로 넘쳐흐르는 듯한 압력을 느끼게 한다.

일본에서 이 정도로 생명력 넘치는 곳은 홋카이도의 비경 시레토코(知床) 정도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중앙알프스 쪽이 원래 이런 곳이라서 완전히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험한 산맥 골짜기 사이의 조그만 평지에 형성된 마을의 외부와 단절된듯한 고립감과,

동시에 산맥의 풍요로운 품 속에 안긴 듯한 안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은 그리 흔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지만, 과거에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갓쇼즈쿠리 건물과 함께

이곳의 폭발적이며 잔인한 생명력이 어우러진 결과, 눈에 보이는 풍경에는 고즈넉함과 함께 거칠고 율동적인 힘의 파동이 느껴지는 듯 하다.

 

가옥 역시 이곳 자연에서 난 소재만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위화감이라곤 느껴지지 않고,

여름의 은혜로 인해 억새지붕 위쪽도 푸른 생명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모습은

이곳이 겨울에 그렇게도 혹독한 곳인가 싶을 정도로 대조적인 인상을 남긴다.

 

계절의 흐름은 이렇게 사람에게 축복이 되는 동시에 시련이 되고, 그 반복에서 사람은 더욱 강인해 지는 것일까.

 

 

 

억새로만 지붕을 만들면, 눈은 둘째치고 비를 막을 수 있나 싶었는데

처마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그런 걱정은 별 의미가 없을 법도 하다. 두께도 밀도도 굉장해서 비가 샐 염려는 없을 듯.

실제로 이곳은 비도 아주 많이 오는 곳이지만, 태풍으로 지붕이 날아가지 않는 이상 비가 샌 적은 없다고 한다.

 

 

 

박물관에 위치한 가옥들은 전부 들어가 볼 수 있다.

마을쪽에 남겨져 있는 몇몇 중요문화재 건물들은 따로 요금을 받고 입장이 가능한데

이곳에서 이렇게 구경을 하다보니, 마을쪽 건물에는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그쪽엔 사람도 많을것 같고.

 

갓쇼즈쿠리 건물도 시대 차이가 많이 나고, 지역에 따라 내부 양식은 차이가 큰 편이라

모든 집이 이런 구조는 아니다. 이 쪽은 특히나 기본적인 구조에서 많이 벗어난 듯한 모습.

날씨에 크게 곤혹스럽지 않은 지역에서 지어진 집인지, 꽤나 여유있는 공간 배치가 인상적이다.

 

 

 

유지 보수의 흔적은 확실하게 남아있어, 실거주 시기의 흔적은 조금 줄어든 느낌인데

그래도 몇몇 나무 기둥들은 한 눈에 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목재가 매우 풍부한 지역이었던 지리적 이점 외에도, 갓쇼즈쿠리 가옥의 지붕 이음새는

방향과 각도를 달리한 나무 기둥들이 엇갈려 배치됨으로서 하중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런 구조에서는 탄성이 강한 목재가 금속성 재료보다 오히려 더 효율적이다.

눈이 쌓였을 때와 쌓이지 않았을 때의 하중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금속 기둥으로 지붕을 지탱하면 스트레스로 부러지거나 휠 가능성이 높다.

 

아마 이곳에서 금속을 쉽게 가공, 제련할 수 있었다고 해도 목재를 사용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결국엔 어떻게 돌고 돌아도 이 모습이 이 자연속에서 가장 적합한 모습이라는 것.

 

 

 

이 가옥은 이탈리아 한 도시와 자매결약을 맺은 기념 전시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탈리아도 참 가보고 싶은 곳인데, 비행기값이 워낙 비싸서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라카와고가 산골 깊숙한 마을이긴 한데, 제대로 된 자치회도 있고 홈페이지도 열성적으로 만들며

많지 않은 인원으로도 축제 꾸준히 여는 부지런한 곳이라서 이렇게 이탈리아와 자매결연도 맺고 하는가 보다.

 

 

 

요즘 일반적인 주택 기준으로는 이것도 꽤나 큰 편에 속하지만

갓쇼즈쿠리 가옥치고는 평균적인 크기인 듯 하다. 물론 일가 전체가 한 집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방식이니까 클 수밖에 없다.

 

오른쪽의 살짝 튀어나온 부분은, 의외로 깨끗한 화장실이었다.

시골에서 제일 난감할때가 푸세식 화장실에서 풍기는, 형언하기 어려운 악취를 참으며 일을 보는 것이었는데

이곳은 다행히도 최신식 시설에다가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다.

 

 

 

건물 맞은편에 옛날 화장실이 놓여있었는데, 여기는 외관 분위기만으로도 그런 냄새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 법 하다.

지금은 폐쇄되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

 

용도폐기된 간이건물이라 그런지 억새의 밀도도 떨어져있고, 주변 건물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어렴풋이긴 하지만 나이를 먹은 갓쇼즈쿠리 건물이란 이런 식으로 바래져 가는건가 싶다. 100년이 넘어 사그라지기 시작하는 봉분처럼.

 

 

 

시라카와고는 갓쇼즈쿠리 양식을 보존하고 있는 마을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곳이라

개발도 그만큼 많이 진척된 편이다. 교통도 나름 편리해졌고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상점도 많이 생겼다.

 

반대로 다른 마을에 비해 전통성이라던가 고즈넉함은 오히려 떨어지는 편인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옛 건물들을 보전하고 있는 박물관은 수려한 자연환경과 가옥을 하나의 틀에서 감상할 수 있어

마을 산책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곳보다 아이노쿠라(相倉) 같은 마을이 더욱 더 옛 모습을 잘 보존한 마을의 삶을 보여주는데

일본인이라면 몰라도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리하게 이동 관광이 가능한 이곳을 배제하기가 쉽지는 않다.

여행에 있어서 시간관념에 대한 느긋함이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요소인데

이것저것 다 즐기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돈을 벌고싶고, 그런 마음을 길렀으면 좋겠다.

 

 

 

이곳 박물관은 좁은 부지에 건물들을 마구 이전해 놓은게 아니라 충분히 산책이 가능한 지형에 넉넉한 공간을 두고 만들어 놓은 덕에

어떤 곳은 '왜 이렇게 넓은 마당이 비어있나' 싶은 곳도 있다.

 

사실 성수기때는 100명이 넘는 단체관광도 흔하게 일어나는 곳이라

현재 본인이 즐기고 있는 1인 관람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야할 공간적 구조가 느껴진다.

슬슬 하늘도 맑아져 오고 햇살은 따가워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의 공기 덕분에 아직까지 기분은 최고조에 달해있다.

나고야의 매연에서 탈출해 히다 타카야마의 깨긋한 공기를 이틀동안 즐겨서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깨끗한 타카야마와도 차원을 달리할 정도의 상쾌한 풀내음이 기분좋게 코를 자극한다.

 

이곳은 지형상 소가 없어서, 한국의 깊은 농촌에서 풀내음과 함께 섞여흐르는 구수한 소똥 냄새가 없다는게

오히려 약간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곳의 자연이 뿜어내는 향기란 평범한 녀석이 아니다.

 

 

 

그리스 절벽아래 펼쳐지는 푸른 바다나, 스위스 초원의 가슴벅찬 풍경등과는 달라도

일본의 산간마을이라는 주제를 나타내는데 가장 알맞은 장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같은 동아시아 지역이라도 한국과 중국과는 확연히 다른 이미지를 가진다.

사찰이나 궁전 등 상당수의 옛 것들에서 나름 공통점을 보이는 국가들이지만

각각의 자연에 순응하는 인내와 적응력을 가진 오지의 주민들이 가지는 독특함은 다른 곳에서 흉내낼 수 없다.

삶이 고스란이 녹아들어가 있는 이 곳의 풍경은 동양인이 봐도 충분히 이국적이며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