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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1.12  과거로의 여행 - 센트레아 스카이 덱 10
  2. 2013.10.02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7편 8
  3. 2013.01.04  도쿄 산책 - 스카이트리 14
  4. 2010.02.10  오사카 여행기 8편 - 빛나는 우메다 공중정원 23
  5. 2010.02.02  오사카 여행기 5편 - 라멘과 전망대 18

 

 

날씨가 좋은 건 얼마 남지 않은 여행시간 중에서도 참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지만

체감온도가 38도를 넘어가는 기록적인 더위 앞에서는 맑은 하늘도 원망스럽게 바뀔 수 밖에 없다.

 

스카이 덱 300m 전망대엔 어렵지 않게 신기루가 나타나고 있다.

사하라 사막에서 많이 봤던, 지면이 수면처럼 반짝이고 있다.

도시 한복판 도로에서는 그 반사되는 모양이 좀 지저분해 보여서 감흥이 없지만

이곳처럼 깔끔한 바닥면에서 보이는 신기루는 잔잔한 호숫가처럼 깔끔한 모습이다.

 

 

 

구름은 아예 자취를 감추어 버렸기 때문에 밖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전망대 가장 끝 쪽, 그러니까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장소에만

뭔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는 라인을 쭉 따라서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게 보통이지만.

 

이곳 센트레아는 인공섬 위에 만들어진 공항이기 때문에 직사광선을 방해할 만한 지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다 날씨 덥고 햇볕 좋기로 유명한 나고야 부근이기 때문에 이런 뻥 뚫린 공항이라면 당연 태양열 발전기가 큰 역할을 한다.

이곳의 천장 지역은 거의 전부 태양열 집광판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화창한 날씨라면 시간당 1000kw 정도는 생산한다고.

 

 

 

센트레아는 비행기가 이착륙하기에는 상당히 좋은 여건을 가진 인공섬이지만

어중간하게도 도쿄과 오카사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생각만큼 많이 분주한 곳은 아니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국내선 이용률도 높아서 그럭저럭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만

현재는 적자 누적으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듯.

 

나고야 시민에게는 매우 중요한 항공 시설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공항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서 찍었던 닌자 모형이나 토쿠시마 아와마츠리 등의 콜라보 홍보도 포함해, 공항 2층에 작은 상설 전시실까지 마련해 놓고

각종 박람회나 미술전을 개최하며 공항을 좀 더 사람들과 가까운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

 

초대형 국제 공항처럼 필수적으로 외부 수요가 필요한 공항은 아니기도 하고, 토요타가 대주주라서 잘만 하면 유지가 가능할 듯.

내 입장에서도 나고야는 키소에 들르기 위한 가장 가까운 국제선 루트인데, 이 공항이 없어져 버리면 매우 곤란하다.

실제로 8월에 에어아시아의 초저가 항공을 타고 왕복 12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나고야를 다녀왔는데

바로 다음달인 2013년 9월부터 인천-나고야 선 항공편이 운항 중지되어 버려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에어아시아는 말레이시아의 대표적 저가항공인데, 일본의 전일본공수(ANA)와 합작에 2012년 에어아시아 저팬을 설립하고

이곳 센트레아를 중심 공항으로 삼으며 국내선, 국제선 취항을 하고 있었다.

ANA 와의 합작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기업이 해체노선을 겪으며 인천에서 출항하던 도쿄, 나고야 행 저가항공도 모두 사라졌는데

에어아시아로 부산-도쿄를 세금포함 왕복 10만원에 다녀온 나로서는 매우 애석하기 그지없는 낭보였다.

 

하지만 ANA 는 에어아시아를 대체할 제휴 저가항공사를 다시 찾고 있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저가항공 노선이 생기리라 본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천천히 걷고 걸어 어쨌든 전망대 끝부분까지 도착한다.

돌아가려면 다시 이 땡볕 거리만큼 이동해야 하지만 어쨌든 더위때문에 센트레아의 가장 큰 볼거리를 놓칠 수는 없다.

 

사실 항공기에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고, 이런 기계적인 전망대엔 관심도 없었다.

이번 여행엔 시라카와고와 키소 마을이라는 천혜의 풍경을 둘러봤기 때문에, 이 스카이 덱은 그냥 안주거리도 안 되는 심심풀이일 뿐.

 

사진 찍는 재미는 결과물이 아니라

조리개를 상당히 조여도 굉장한 셔터스피드를 보여주는 당시의 놀라운 쨍쨍함을 즐기는 곳에서 발생할 정도였다.

조리개 F7.1 ISO100 에서 노출보정을 0.3 스탑 올리고도 셔터스피드가 1/1000 초 가까이 나오는 환경이다.

정말 끝장나게 쨍한 하늘이 아니면 좀처럼 즐길 수 없는 셔터스피드.

이런 땡볕 아래서라면 아마추어라도 우사인 볼트를 찍어낼 수 있을 듯 하다.

 

 

 

아무리 더워도 관광을 목적으로 쏘다니면서 이렇게 사진이나 찍고 있는 편이니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안전 장비 다 갖추고 저 지옥같은 항공기 반사열을 얻어맞아가며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노고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비행기 한 대가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드리 노이로제 걸릴 정도로 일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직접 바라보게 되니 실감이 난다. 이런 모습을 눈에 새기고 진상 고객이 되지 않도록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인천공항이 워낙 크고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센트레아는 한적해 보이지만

사실은 4~5분에 한대씩 끊임없이 비행기가 이륙중이다.

 

공항이라는 곳의 특성상 워낙 면적이 넓다 보니 한적해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300mm 망원렌즈로도 끝까지 당겨낼 수는 없으니, 카메라 매니아들에게는 별로 쓸 곳이 없는 초망원 렌즈들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어서 좋을 듯.

 

 

 

비행기 이륙 장면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부분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서 있어서 접근이 힘들다.

대충 한적한 곳으로 가도 실제 거리상 별 차이는 없기 때문에, 항공 사진에 별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충분하다.

자세히 보니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는 것이 아니라, 이착륙 시에 되도록 정면이나 정후면을 찍을 수 있는 위치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듯 하다.

 

나처럼 대강대강 자리 잡으면 이렇게 옆쪽 모습만 많이 찍히기 때문인 듯.

항공 사진은 가능한 한 정면에서 망원으로 크게 잡아내는게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다행히도 나는 비행기 사진 잘 뽑지 못했다고 낙담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그냥 술렁술렁 찍을 뿐.

친환경 비행기라고 적혀있는 저 녀석은 재미있게도 프로펠러가 달린 녀석이다.

상당히 소형이라서 국내선 전용인 듯 한데, 시끄럽지만 않으면 재미있게 탈 수 있을 듯 하다.

 

 

 

비행기들은 상당히 빈번하게 이륙하고 있어서 사진을 담을 기회는 충분하지만

명당 자리는 전부 굉장한 카메라와 굉장한 렌즈를 끼워놓고 대기중인 사람들은 바글바글하다.

양심은 있는지 삼각대까지는 아니고, 모노포드를 장착한 카메라가 많다.

 

이렇게 더운 날에 옷깃 스치며 전망대 앞까지 비집고 들어갈 용기는 결코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혼자 멀뚱멀뚱 서서 먼 거리에서 대강 몇장 담아본다. 생전 처음 담아보는 이륙 모습인데, 그냥 담은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굉장한 항공 매니아인 듯 한데, 오늘 사람이 적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사람 붐빌 때 저런 삼각대 사용하면 욕 먹기 십상이다.

붐비는 곳에서 삼각대 사용하는 진상들이 늘어나다 보니 찍사가 덩달아 욕을 먹는다.

 

뭘 그리 열심히 찍는지는 모르겠지만 렌즈와 카메라만 합해도 거진 천만원 근처까지 가는 장비.

사진이라는 취미는 글자수도 적고 단순하지만 그 안의 카테고리는 사람 성격별로 천차만별이다.

 

 

 

일본에서 DSLR 에 거대한 망원렌즈 낀 사람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곳.

시간은 충분했기 때문에 한참 사진을 찍다 보면, 이착륙하는 항공기의 아름다움도 느끼게 될 수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매니아가 되기에는 부족했는지, 이 떙볕 아래에서는 도무지 버틸 제간이 없어서 신속하게 후퇴한다.

 

70은 넘은 듯한 할아버지가 필름카메라에 거대 망원렌즈 끼워서 촬영하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비행기 사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스카이 덱은 원래 이렇게 한가로운 곳이 아니다.

날씨가 이렇지만 않으면 빈 의자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가을 정도만 되어도, 굳이 건물 안에서 돌아다닐 필요 없이 사방이 탁 트인 이곳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쪽이 더 나으니까.

 

오늘은 당연하겠지만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아이들은 상당수가 모자 쓰고 돌아다니고 있으며, 부모들은 물 마시라고 채근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고야에 도착한 두 번째 날, 토요타 박물관을 다녀온 날이었는데

당시 기온이 34도, 일본에서 가장 더운 지역은 39도 까지 올라갔다고 뉴스에서 대서특필했다.

하루 열사병으로 사망한 노인만 십여 명에 이르던 더위였고, 지금 이 스카이 덱을 걸어다니고 있으니

정말로 사람이 더위때문에 픽 쓰러질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인공물을 돌아볼 때 그 미적 완성도에서 느껴지는 감동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기분을 흐뭇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역시 이런 배려의 마음씨를 직접 나타낸 모습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금껏 사진들을 유심히 보면 중간중간 빨간색으로 된 기둥이 나오는데, 그것의 정체는 바로 이 뷰 포인트였던 것.

일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설명되어 있는 이 뷰 포인트는, 휠체어에 탄 사람이나 키가 작은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시야를 가리는 안전 보호대를 삭제해 놓은 곳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는 자리를 비켜줄 것은 부탁하고 있다.

 

예전 오사카의 수족관 카이유칸(海遊館)에도 이런 뷰 포인트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이다.

스카이 덱의 진정한 볼거리중 하나가 아닐런지.

 

 

 

한국은 아직 나고야행 수요가 많이 않아서, 상대적으로 한국 항공사의 모습은 적은 편이다.

물론 대기중인 비행기도 있었지만 굳이 찍어야 할 만큼 애국심으로 충만한 사람도 아니고 해서.

 

멀리서 바라보니 비행기도 그냥 장난감처럼 귀엽게 배열되어 있는데

요즘엔 비행기도 자기주장이 강한 녀석이 되다 보니 원색 배열에 재미있는 느낌을 주는 쪽이 많은듯 하다.

포켓몬 그림으로 도배를 해 놔서, 뜰 때마다 셔터소리가 우렁차게 변하는 비행기도 있고.

 

항공오덕들은 항공사의 심볼 마크 가지고도 어느 항공사 것이 더 세련되고 멋있는지 토론을 벌일 정도라는데

본인은 철저하게 저가항공만 이용하다 보니 항공사 마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두어 시간만 지나면 이 무서운 더위를 지나 지원한 비행기 속으로 들어가리라는 희망을 품으며 숨을 곳 없는 폭염 속을 지나 다시 공항 청사로 돌아간다.

스카이 덱을 한번 둘러봤다는 의의 정도는 가질 수 있겠지만

재미있게 즐겼다고 하기엔 구멍난 풍선에서 솟아나는 듯한 이마자락의 땀방울이 너무 선명하다.

  

 

이런 더운날 올라가기에는 심히 편안하다고 할 수가 없는 길이다.

멀리서 본 전망대 높이를 생각하면,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은근히 이 오솔길 경사가 급한 편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가빠온다.

몸무게 탓도 있고 카메라 탓도 있고. 건장한 사람이라 해도 5kg 짜리 숄더백 매고 오르는게 쉽지는 않을 듯.

 

 

 

그래도 친절하게 계단을 만들어 줘서 못 올라갈 정도는 아니지만

왠지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기분에, 후세에 내가 여기 올랐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도 찍고 한다.

이렇게 찍어놓지 않으면 또 엄살이라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출몰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사실 날씨 탓이 가장 컸고, 여기는 그냥 동네 마실 나가는 수준밖에 안 되는 높이긴 하다.

 

 

 

근데 진짜로 좀 힘들긴 하다. 경사가 그리 만만한 편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치는 형태라서

이렇게 사진 한장 담아내는게 오히려 휴식시간이라 느껴진다.

 

훅훅거리는 숨소리와 후두둑 떨어지는 땀방울이 산의 정적을 깨트리고 있다.

다행히도 앞뒤로 나 말고 이곳을 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좁은 길목에서 사진 찍으며 좀 쉬어도 문제될 게 없었다.

노련하게 올라가는 사람들이 뒤에서 땀덩어리 본인을 지나쳐 갈 때, 가끔 계곡 너머로 몸을 던지고픈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저 곳을 돌면 확 트인 정상이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몇 번이고 배신당해가며 어쨌든 한걸음씩 발을 뗀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서도 느꼈지만, 어쨌든 발을 떼면 언젠가는 끝나는 일.

 

 

 

막상 정말로 평지가 나오고 나니 좀 맥이 풀린다. 사실 땀 좀 흘렸다 뿐이지 조그만 언덕 같은 곳일 뿐.

원래 성터였다고 하는데, 이런 외진 마을 어귀에도 성이 있었나 싶다. 이곳 성터에 대해서는 그리 알아본 적이 없었다.

 

산 위의 공터치고는 확실히 인위적으로 닦아놓은 흔적이 남아있는걸 보면 성이 있긴 있었나보다.

손수건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시원하게 땀 한바가지 흘리고, 그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앞에 펼쳐진 전망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시라카와고의 마을 전경을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는 2~3군데쯤 유명한 스팟이 있는데

이곳은 오솔길을 따라 왔을 때 만날 수 있는, 제대로 된 펜스조차 없는 등산길 도중의 조그만 창문같은 느낌의 스팟이다.

 

가장 유명한 곳도 아니고, 여름의 생명력 덕분에 나무들이 워낙 울창하게 자라서 시야각이 제한되는 불편한 곳이지만

일부러 험한 길 올라왔다는 달성감도 있고 해서 한동안 머무르며 마을의 모습을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다.

 

가치가 있는 곳이니 그렇겠지만, 왠만한 농촌 역시 한국의 농촌보다 훨씬 정비가 잘 되어있는 이곳에서도

정말 예술적으로 가꾸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절경이다. 사실상 평범한 농촌이 아니긴 하지만.

 

 

 

좀 전에 화사한 커플 둘이서 열심히 사진찍던 그 건물을 이렇게 바라보니 느낌이 좀 새롭다.

논마지기 공간을 살짝 비집고 들어간 녀석인데 어쩌면 저렇게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거기다 같은 높이에서 걸어다닐때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돌길로 만들어놓은 농로의 깔끔함 역시 인상적이다.

겉으로는 농촌 마을같아 보이지만, 속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돈 많은 귀족들이 산책 즐기는 곳처럼 어느 한군데 세심히 손을 쓰지 않은곳이 없다.

 

 

 

한 국가와 그곳의 자연환경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 틀림없다.

일본 가옥의 평기와와 저 곧게 뻗은 삼나무가 어울린다면

한옥의 굽이친 기와 형태는 허리를 늘어뜨린 소나무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도시에서는 이미 어디가 한국이고 어디가 일본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해져 버렸지만

이런 시골모습만큼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나라별 특색이 사라지지 않는 듯 하다.

 

좋긴 좋은데, 이곳 아이들도 어릴때 나무위에 올라가 놀고 그러는 것일까.

내가 어릴적엔 올라가기 쉬운 소나무를 참 수백번도 더 오르내리고 했는데

여기 삼나무 잘못 올라갔다가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조그맣지만 꽤나 오래된 듯한 사당이 위치한 이곳 전망대에는

사람도 별로 오지 않고, 그늘 아래에 벤치가 하나 있어서 땀 식히기엔 좋다.

카메라를 내던지듯이 아무렇게나 퍼질려 놓고 벤치에 앉아서 땀을 닦는다. 손수건을 짤면 땀이 떨어질 정도로 허용량이 오버되고 있다.

 

한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앉아만 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서양인 관광객 부부가 이곳에 와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그사람들 눈에도 이런 풍경은 꽤나 신선하게 느껴질까. 한국과 일본에 비교하면 미국이나 유럽이나 산이 많은편은 아니라서

이 정도 산지에 둘러싸인 마을이 그리 흔하진 않을 법 하다.

 

그 부부는 실컷 사진찍고 난 후, 왠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나에게 와서 사진 좀 찍어줄 수 있겠냐고 부탁한다.

찍어주는거야 어렵지 않지만 본인이 사용하지 않는 캐논 DSLR 이라서 조작이 항상 어색하다.

본인들이 오토모드로 해 두고 나한테 건네줬으니 그걸 바꿀필요는 없을 듯. 그냥 구도만 맞춰서 두어 장 찍어줬다.

받아들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라고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이걸 또 붙잡고 '난 위대한 한국인이여~'라고 설명해주기도 귀찮다.

 

내가 그들을 미국사람인지 영국사람인지 프랑스사람인지 나미비아사람인지(?) 모르는 것과 같이

그들도 내가 일본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나미비아사람인지(?) 모르는 것이니, 그걸 그들에게 수정해 줘야 할 의무감 같은거 느끼지 않는다.

 

 

 

이곳부터는 제대로 닦여있는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되는데, 가장 유명한 천수각 전망대에는 거대 식당과 가게가 포진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마을 아래서도 보이는 곳이고, 전망 해치지 않으려고 작업을 다 해놓은 곳이기 때문에 시야가 매우 시원하다.

 

마을 안에서 이 정도 규모의 가게를 만들수도 없기 때문에, 이곳 전망대 가게는 압도적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단체 관광이라면 이 곳을 놓칠수 없으니, 식당쪽에는 벌써 '2층은 예약, 단체손님 전용입니다'라고 써 놓을 정도.

 

전망대에는 쉴 수 있는 의자도 몇 겹이나 층층히 배치되어 있고, 펜스 바로 앞에서는 아무것도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그림같은 시라카와고의 사진을 마음껏 담을 수 있다. 앞에서 대신 사진 찍어주는 사람도 항시 대기중이며

물론 관광객 자신들이 가져온 똑딱이가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된 DSLR로 사람들 찍어주고 출력하며 돈 받는 일도 한다.

 

사진 찍어주면서 '치즈~' 대신에 '시라카와 고~' 하면서 주먹을 하늘로 올리라는 주문만큼은 좀 촌스럽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수가 없었긴 했지만.

 

 

 

임팩트라고 할까. 어쨌든 마을 전체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곳 천수각 전망대에서 사진을 담지 않는 관광객이란게 과연 현실에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 역시 귀찮아 죽을것 같은 렌즈를 화각별로 담아온 이유의 절반이 이곳 전망대를 위해서였으니까.

광각으로도 담고 망원으로도 담고, 관광객이 많이 오긴 해도 전망대 공간이 상당히 넓고

단체 관광객은 잠깐 구경하고 단체사진 찍고 훌쩍 가버리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도는 홀로여행자는, 무제한 회전초밥집에 앉아있는 기분으로 원없이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참 뭐랄까, 이런 폭발적인 자연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인공미의 깔끔함을 유지하는 이쪽 사람들의 특성은 신기하다.

깨끗하고 깔끔한 건 좋은데, 한국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람 사는 냄새'라는게 좀 적다고 해야 하나.

사실 그거 조금만 나쁘게 말하면 게으르고 지저분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어서 쉽게 적용하기는 어려워도

확실히 한국에 이런 자연의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면, 지금 이 모습과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를거라 생각한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수십장도 넘게 담았지만, 블로그에 올릴 생각은 들지 않는다.

2D 화면에서 사진 구경하는 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더 많이 올린다고 이곳을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마을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면 역시 직접 가서 느끼는게 제일 좋은 방법.

본인은 이 모습을 보면서 겨울의 시라카와고를 상상하고 있다. 눈으로 덮인 전망대까지 걸어서 갈 수 있을까 싶고.

사실 적지 않은 관광객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마을에서 여기까지 태워주는 버스 있대!'

물론 본인 역시 알고 있었지만, 이 마을을 돌아보는데 내연기관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아서 걸어 올라왔다.

 

겨울엔 방금 그 길 오르다가 인생이 좀 꼬일수도 있을 것 같아서, 버스를 이용해야 하나 고민중이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긴 했는데,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지금도 배가 눈꼽만큼도 고프지 않다.

여행중에는 그리 많이 먹는편이 아니긴 해도, 이만큼 더운날 돌아다니고 있어도 허기지지 않는다는건 좀 신기하다.

그래서 전망좋은 전망대 앞의 식당에도 들어가고픈 생각은 전혀 없었고, 시원한 음료수나 하나 뽑아 마신다.

 

타카야마로 돌아가는 버스가 오기까지 2시간 30분쯤 남았는데, 시간은 충분해도 뭔가 가게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결론은 대충 납득이 간다.

시라카와고에서는, 더운 여름날 에어콘 켜진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추운 겨울날 살짝 따뜻한 가게로 들어가는게 더 어울리기 때문에.

 

여름이 본인에게는 참 버티기 힘든 날이라는게, 건물 안의 인공적 에어콘 바람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겨울엔 난로나 보일러 강하게 돌리지 않아도 집이라는 건물 자체가 어느정도 단열효과를 내기 때문에

들어가 앉아도 살짝 추워서 손바닥을 한두 번 비벼주는 정도가 딱 좋다. 거기서 식사 한끼 하면 몸이 포근해 지니까.

그런 면에서, 겨울이라도 난로나 히터 팍팍 틀어버리는 가게는 들어가기 싫다.

 

느긋하게 풍경 바라보며 휴식 취하고 나서 반대쪽 길로 내려간다. 반대쪽은 자동차로 통과할 수 있을만큼 반듯하게 닦인 아스팔트 도로.

마을 어귀까지 완만한 경사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난이도는 훨씬 낮다. 올라올 때 이쪽으로 왔으면 몸은 편했을 듯.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길은 아니라서, 내려올 때 느긋하게 내려오는 쪽으로 사용해도 불만은 없다.

 

진짜로 물이 풍부한 곳인지, 내려가는 도중에 산골짜기에서 나오는 물을 가지고 뭔가 만들어 놓은게 보인다.

 

 

 

마을 어귀를 빙글 돌며 내려오는 길이라서, 마을 속에서 헤엄치며 담던 사진의 시각과는 또 다른 맛의 결과물이 나온다.

슬슬 관광객이 많아지고 있는 시점이라 그런지, 이런 길에서 숨듯이 걸어가며 저 너머의 모습을 담는 것은, 일종의 휴식과도 같은 시간.

 

 

 

이제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다시 한번 마을의 모습을 눈으로 담아내면

그리 넓지 않은 시라카와고 여행은 끝이 난다. 그림같은 풍경과는 별개로 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하고픈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관광객들의 씀씀이를 기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식욕이 안생기는데 어쩔 수 없다.

 

 

 

도시에서는 설사 농사터가 있다고 해도 땅이 아까워 이렇게 꽃밭을 만들기는 힘들 텐데.

판매용으로 키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뒤뜰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만 자연스럽게 자라는, 약간 무질서한 꽃들의 모습이 더욱 반갑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꽃밭을 키우는 갓쇼즈쿠리 가옥 역시 살짝 힘이 풀린듯한 모습이 더욱 잘 어울린다.

 

 

 

좋은 마을은 물이 맑은 마을이라는 말은 세계 어느곳에서도 통하는 진리.

좋은 물을 마시고 자라는 식물과 나쁜 물을 마시고 자라는 식물은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난다.

애초에 나쁜 물을 마셔도 자라는 녀석들은, 그만큼 터프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녀석들이니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사람 입장에서는 역시 진드기나 벌레 잔뜩 꼬이는 녀석들보다는 좀 순해보이는 녀석들이 더 마음에 드는것도 사실.

 

이곳은 자연 환경에 비하면 기분나빠질 만한 벌레가 별로 눈에 안 띄는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물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공원처럼 인위적으로 디자인해서 만들어낸 아름다움과는 전혀 별개로

자연의 생명력뿐 아니라 사람의 생명력까지 느껴지는 이곳 풍경은, 조화라는 면에서 굉장히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

 

여행에서 가장 큰 볼거리라면 역시 자연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이곳 시라카와고는 그 두가지가 배합되는데 있어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 훌륭하다.

관광객들이 오고가며 감탄해 하는, 마을 사람들이 남겨놓은 인간의 모든 흔적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더 예쁘게 보이거나 하는 인위적인 색이 아닌, 순수하게 생활하기 위한 노력과 조화의 흔적이라는 점이 말이다.

 

사람들이 풍경에서 느끼는 평온함과 아름다움이란, 결국 원래 그렇게 있던 것들이 가지는 자연스러움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잠을 일찍 잔 덕인지, 알람 맞춰놓은 7시 반에 일어나 조식 챙겨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어제 저녁 뉴스에서도 체크했지만, 다시 한번 아침뉴스에서 날씨를 체크.

아주아주 맑고 올 겨울들어 가장 화창한 날씨가 될거란다.

 

이렇게 된 이상 목적없던 도쿄 둘째날은 일단 스카이트리쪽으로 결정.

물론 올라갈거라는 생각은 숙소를 나설때까지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이라 대기열이 적을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날은 토요일이었으니까.

 

어젯밤 잠깐 스카이트리 다녀온 사람들 포스팅을 찾아보니, 예약하지 않으면 대충 1시간보다 더 걸린다고 하더군.

순번표를 받아놓고 밖에서 한참 돌아다니다가 겨우 티켓을 받고, 또 거기서 몇십분 기다려야 승강기를 탈 수 있다고 한다.

그럴 것 같으면 올라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지만, 일단 날씨가 좋으니 근처에서 사진이라도 찍어볼까 싶어서 출발.

 

전망대 못가더라도 지상의 쇼핑몰인 소라마치(空町)역시 볼거리가 많으니 가보라고 하는 블로거들의 정보도 있으니

가까이서 스카이트리 사진이나 실컷 찍고, 소라마치에서 먹을거나 좀 먹으며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한다.

어제의 아사쿠사까지 터벅터벅 걸어서 스카이트리행 전철을 탔는데, 막상 타보니 거리가 너무 짧다.

 

블로거들은 대부분 생각보다 거리가 머니 걸어가지말고 전철 타라고 포스팅을 했던데

아무래도 기준을 잘못 잡은듯 하다. 이 정도 거리면 내 기준으로 식사후 잠깐 산책나가는 거리일 뿐.

서울서 사하라 멤버 나침반님 만나면 보통 지하철 너댓코스 정도의 거리는 걸어다는게 일상이라

이 정도 거리라면 38도쯤 되는 한여름 아래서도 음료수 한병으로 충분하다. 전철비가 좀 아까웠다.

 

물론 전철안에서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내는 스카이트리의 모습은, 어제 스미다가와 강을 사이에 두고 보던 것과

상상도 못할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전철 승객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가서 사진 찍어대는 풍경이 연출된다.

 

원래 스카이트리가 있던 지역은 토부 철도의 화물창고로 사용되던 공터였는데

사실상 도쿄 부근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던 부지나 다름없었으니, 스카이트리는 자연스레 이쪽으로 오게 되었다.

이제는 역 이름도 스카이트리 역으로 바꾸고, 근심과 두려움이 가득한 도쿄를 살려보려는 최후의 노력을 쏟고 있는 중.

 

역에서 내리니 육중한 모습의 스카이트리가 뿌리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다.

수백미터 떨어진 곳과는 역시 느낌히 달랐다. 사람이 이런걸 만들 수 있구나 싶은 생각.

겨울이라 해가 낮게 뜨니, 꼭대기쪽엔 햇빛이 걸려서 그림자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공적인 볼거리로서는 참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 만드는 풍경.

 

 

 

매표소쪽으로 가 보니,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손님이 모여들기 전이라서

15분만 기다리면 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기회를 놔두고 흥미없다고 돌아오는건 아무리 나라도 좀.

 

하지만 입장료가 2천엔이나 하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건 어쩔 수 없다. 전망대 올라가는데 몇만원이나 내게 될줄은 몰랐다.

한시간이나 기다려서 바글바글한 전망대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현실에서

돈이 아깝다고 15분이라는 시간의 혜택을 놓치는건 아무래도 결단력이 필요하고, 난 좀 우유부단하기도 하다.

 

스카이트리 전망대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놀라워하는 것은 엘리베이터의 속도.

무슨 기술을 적용한건진 모르겠지만, 350m 높이를 50초만에 올라간다. 일본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라고 한다.

바깥풍경이 보이지는 않아도 LCD 화면에 올라가는 높이를 표시해 주는데, 숫자가 주르륵 올라가는걸 보면 놀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속도에 비해 귀가 멍해진다거나 하는 현상도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와 전망대가 완전히 밀폐되어 있기 때문일까.

 

이 엘리베이터는 개장 한달만에 두 번이나 바람때문에 멈춰서는 바람에 언론에서 많이 까이기도 했다고.

 

어쨌든 순식간에 전망대에 도착하니, 무리하지 않아도 창문쪽에 붙어 사진찍을 수 있을만한 공간이 남아있다.

사람 많을때는 유리창쪽에 달라붙는것도 순서 기다려야 할 정도라는데 왠지 이득본것 같아서 기분은 좋다.

하지만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씨라고 했는데, 350m 위에서 바라보는 도쿄의 모습은 뿌옇기 그지없다.

방금전 지표면에서 위를 올려다 봤을때는 꽤나 푸른 하늘이었는데, 역시 이 정도 규모의 도시가 가지는 숙명과 같은 것일런지.

 

 

 

여러 정황증거들을 봤을때, 오늘 이 시간에 스카이트리를 찾은건 매우 적절한 판단이었던 듯.

현재 도쿄 관광지중에서 가장 붐빈다는 스카이트리 전망대 안을, 인파 걱정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건 큰 수확이다.

젊은층들은 휴대폰으로 사진찍는것에 비해,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SLR 이나 RF 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조금 독특하다.

 

그리고 그런만큼 장년층 관광객수가 절대수치로 따져도 젊은사람보다 더 많은듯 보이는것 역시 놀랍긴 하다.

여전히 소비활동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고, 그럴만한 소득을 누렸던 세대이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이렇게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것은 좀 부럽다.

 

 

 

이렇게 보니 정말 도시의 숲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넓긴 넓다.

그런데 웃기는 건, 도쿄도는 서울보다는 좀 넓어도 대구 면적보다 좁다는 것.

서울이나 대구처럼 주변에 산지가 없이 완전한 도시숲인데다가, 인구밀도가 워낙 높아서 체감적으로 서울이나 대구보다 더 넓어보인다.

 

이것은 도쿄도라는 행정구역과 실제로 사람들이 느끼는 도쿄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한국사람으로서는 도쿄와 별개의 이름이 붙은 주변도시들은 그냥 서울과 인천 정도의 차이겠지 싶겠지만

사실 거리상으로 인천의 관계와 그리 다르지 않은 요코하마의 경우 어디서부터가 도쿄이고 어디서부터가 요코하마인지 구별이 불가능하다.

이 스카이트리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후지산까지 보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렇게 보아서는 어디까지가 도쿄인지 알 수 없는 것.

 

위 사진에서는 숨은그림찾기가 가능하다. 도쿄타워가 너무나도 초라하게 보인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이곳 스미다구와 타이토구는 개발이 더딘 곳으로, 가까운쪽과 저 멀리 도쿄 중심부의 건물 모양만 봐도 금방 구분이 된다.

 

 

 

예전에 대구 우방타워에 올라서 찍은 사진을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그것과 비교하면 스카이트리의 높이를 조금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제저녁 아사쿠사에서 바라본 아사히 똥덩어리와 스카이트리의 크기가 기억난다면

사진 중앙 하단부의 똥덩어리를 잘 찾아보는게 재미있을 듯. 이 정도나 차이가 나는 녀석이었다니.

 

우측의 수목이 우거진 부분이 아사쿠사 센소지.

 

 

 

도쿄 주민들이라면 내가 대구 우방타워에서 그랬던 것처럼

알고있는 건물이나 자기 집 찾아보는데 재미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을듯 하다.

그런 면에서 고층 타워란 외부 관광객보다는 지역 주민들에게 더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 아닌가?

 

확실히 350m 씩이나 되는 높이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경험을 쉽게 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도쿄처럼 어디를 둘러봐도 인간의 흔적밖에 보이지 않는 이런 풍경은, 의미를 가지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좀 가벼운 느낌이다.

그리고 확실히 이 정도 높이에서 바라보면 고소공포증도 작용하지 않을 듯 하다.

너무 높다보니까 어딜 둘러봐도 무섭다는 감각이 생기지 않는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바라보는 느낌.

바람이라도 통하고 있다면 무섭겠지만, 그랬다가는 이 전망대에서 스펙타클 호러영화 한편 찍게 되겠지.

 

 

 

 

전망대에 오르기 전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진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보게되니 이 녀석의 민폐를 어느정도 실감할 수 있다.

 

워낙 높은 녀석이고, 스미다구와 타이토구는 고층 빌딩이 그렇게 많지 않은고로

이 근처 주민들은 아무래도 하루의 일정 부분이 인공 그늘에 가려지는 현상을 감내해야 할 듯 하다.

 

시간에 따라 위치가 바뀔테니 피해가구를 특정하는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일본인들의 성격상, 스카이트리가 이 지역에 가져다주는 이익을 고려해서 그냥 참고있는게 아닐까 상상해 본다.

다행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타워형태가 길쭉해서 그늘이 금방 지나가니 그렇게까지 불편하진 않을지도.

사실 한국의 대단지 아파트들은 높이가 이렇게 높진 않아도 워낙 장막처럼 뻗어있어서

뒤편 주택이나 저층단지 세대들은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거기보단 낫다고 봐도 되겠지.

 

 

 

다양한 패턴을 보여주긴 하지만 역시 인공 구조물로 가득한 풍경은 금새 흥미가 떨어진다.

특히나, 자신과 연고가 없는 지역이다보니 뭘 유심히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래서 전망대에 별로 흥미가 없었던 것인데, 어쨌든 큰돈주고 올라왔으니 본전은 뽑아야지.

그나마 바로 밑을 흐르는 스미다가와 강이 만들어내는 곡선이, 이 흐릿한 도시의 허리선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소위 말하는 보정용 코르셋같은 느낌이랄까. 스미다가와 강이 없으면 이곳 주변은 드럼통이나 마찬가지.

 

 

 

전망대 주위를 한바퀴 돌면서 주변을 뜯어살펴보니 예전 자전거 여행이 생각난다.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순 없지만, 지금 내 눈으로 관측 가능한 곳까지는 대충 하룻만에 주파가 가능한 지역.

 

그 당시는 하루하루 달리면서 이 굼벵이같은 속도로 어디까지 갈런지 지루해 한적도 많았는데

조금 떨어져서 보니, 무동력으로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거리는 그렇게까지 하찮은 건 아닌것 같다.

 

일반인은 올라갈 수 없는 타워의 최상층 634m 꼭대기에서, 관측사상 가장 가시거리가 넓은 날에 둘러본다고 해도

자전거로 삼일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다.

 

스카이트리는 인류가 만든 두 번째로 높은 탑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지 않겠나 싶다.

 

 

 

도시란게 원래 야경이라도 빛나지 않으면 원채 심심한 색채와 모양으로 점철된 녀석이라

스카이트리 전망대에서 제일 그림이 잘나온다 싶은 건 스카이트리의 그림자라는 묘한 결과가 나와버린다.

 

도쿄 역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어지럽게 개발된 도시라서

평소같으면 10분쯤 둘러보고 후다닥 내려와 버렸을 이런 전망대에서

그래도 30분 넘게 계속 돌아보며 이 끝없는 풍경이 가지는 매력을 찾아보려고 노력중이지만

난해한 수학공식과 같이 쉽게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어서 좀 골치가 아프다.

 

역시 해가 지고나서 전망대에 올라오면 그 풍경은 정말 은은한 아름다움을 발산할 것 같은데

저녁의 스카이트리가 훨씬 붐빈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티켓의 현장구매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예약하면 좀 더 수월하게 입장이 가능하다는데

인터넷 예약은 최소 2주전에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불가능.

스카이트리에서 보는 도쿄 야경이라고 하니, 그건 한번 구경할 가치가 있을듯 해서

다음에 도쿄 오게된다면 미리 저녁시간에 예약하고 올라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사쿠사 앞의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스미다가와 강을 타고 오다이바까지 갈 수 있다.

친구일행 데리고 딱 한번 타본적이 있는데, 외관이 아무리 멋져도 배는 역시 배일 뿐이라

크게 감흥은 없었던 기억이 난다. 볼것없는 전철보다는 풍경이 좋았지만, 오다비아로 갈때는

풍경 좋기로 유명한 무인열차 유리카모메를 타기 때문에 그것도 별 의미가 없다.

 

도쿄엔 한강만큼 폭이 넓고 유량이 풍부한 강은 없지만, 바다와 근접한 곳이다 보니

도시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지류의 수는 훨씬 많은 편이다.

도쿄가 그나마 숨쉴 만한 여유가 있는것도 이런 강들이 허파 역할을 해 주고 있기 때문이었고.

하지만 원전 사고 이후, 바다를 타고 들어온 방사능 물질들이 이제는 강으로 역류에 들어오고 있어서

도쿄의 허파가 오히려 종양전이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는 실정.

 

사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거나 마찬가지니, 아무일도 없었던 듯이 살고있는 도쿄 주민들도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이나 걸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일런지...

 

내 개인적인 입장이라면, 아마 도쿄전력 임원들을 시장바닥에서 돌맹이로 공개처형이나 하고 싶겠지만.

 

 

 

광각역할을 담당하는 35mm 렌즈로는 넓은 영역을 담을 수 있지만

지상에서 350m 나 떨어진 스카이트리 전망대에서 그렇게 담으니 이거나 저거나 너무 콩알처럼 보여서 재미가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사람들 밀도가 높아지는 듯 해서 약간 신경쓰이지만, 아직 렌즈를 교환할만한 여유는 있다.

망원렌즈로 담으니 저기 하늘아래 세상이 좀 더 사람냄세를 풍기는 듯 하다.

 

솔직히 작정하고 찾아보면 일본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스팟들을 사진에 담을 수 있긴 한데

현지인도 아닌 내가 한국 블로그에서 관광 가이드 할것도 아니고, 그런거 골라담아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처음 올라왔을때는 그래도 좀 마음이 두근두근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30분쯤 지나자 그 기대감의 절반 정도는 '지불한 2천엔이 가지는 의미'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내려가면 두번다시 올라오지 못하니, 최대한 구경할거 많이 지긋하게 구경하자는 의미로 빙글빙글 돌아본다.


해가 넘어갈 무렵 일행은 우메다(梅田)역으로 향합니다. 우메다는 북부 오사카시의 교통, 상업 중심지입니다.

남부 오사카의 요충지인 난바가 칸사이 공항의 관문과도 같은 곳이라면
우메다는 일본 칸사이지방 철도교통의 중심지가 되는 관문으로, 한큐선, 한신선, JR선등
일본 전국을 통하는 주요노선이 대부분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한 번화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철과는 달리 일본의 전철은 국영, 시영, 민영 등 여러 종류로 나눠진 터라 노선이 상당히 복잡한 편이죠.
환승역을 공유하는 곳도 있긴 하지만 이름만 같지 출입구가 완전히 분리된 역도 많기 때문에
한국처럼 2호선 타다가 5호선으로 갈아타야지 하고 편히 생각하다가는 괜히 출구로 나가서 요금 더내고 갈아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특히 이 우메다역은 전철뿐 아니라 신칸센 등 일본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곳이라
한신선 우메다역과 한큐선 우메다역, JR 우메다역이 각각 존재하는 굉장히 복잡하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난바 지역처럼 주위에 먹고 놀고 즐길거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거미줄처럼 얽힌 지하상가 지역은
쇼핑하기에는 오사카 최적의 장소 중 하나이기도 하고, 비즈니스 중심지역이라 거대한 고층 건물들일 빡빡히 들어서 있는 모습도 볼만합니다.


일행이 목표로 한 스카이빌딩은 우메다역에서 15분~20분 정도 도보로 걸어가야 하는 곳이라
일단 근처 파출소의 경찰에게 물어물어 길을 확인한 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어~ 칸사이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남자 경찰이 조금 설명해 주려다가
옆의 여자사람 경찰분께서 그나마 표준어로 또박또박 설명해 주시는 덕에 이해하기가 편했네요.

확실히 토호쿠(東北)지방보다 칸사이(関西) 사투리가 더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아주 지렁이가 굴러가는 듯한 느낌.

다리가 좀 뻐근했지만 속도가 느려지는 친구의 등짝을 채찍으로 몰아쳐가며(?) 열심히 걷고 걸어
주유패스 무료 쿠폰의 마지막을 장식할 스카이빌딩(スカイビル)에 도착했네요.

이곳 스카이빌딩은 오사카시에서 7번째로 높은 건물로, 보시다시피 양쪽 건물 사이를 에스컬레이터와 아트리움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4개의 빌딩을 세우고 그 중간을 정원화 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건물을 2개까지밖에 세우지 못했다는군요.

쇼핑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특히 동생분은 모르겠지만 저와 친구는 윈도우 쇼핑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고로
이곳 우메다는 공중정원을 공짜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별로 찾아갈 만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로 기간이 만료되는 주유패스의 쿠폰을 마지막으로 사용할 때가 왔습니다.
아직도 저렇게나 많은 쿠폰이 남아있지만 실질적으로 저걸 이틀만에 다 돌아본다는건 불가능하죠.
가끔 미친척하고 저 쿠폰들을 다 쓰려고 방방 뛰어다니는 여행객들도 있긴 한데
그건 관광이 아니라 완수해야할 미션을 수행하러 가는 듯한 비장함까지 느껴집니다. ㅡㅡ;
거의 한 곳당 15~20분 이상 체류해서는 안되는, 도대체 뭘 구경하러 가는지조차 알수 없게 되어버리는 극한의 도전이죠.


친구가 쿠폰 뜯기 신공을 발휘하는 동안 동생분은 지도를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냥 사진이나 열심히 찍고 있습니다.

야간이 되면 필카는 힘을 쓰기가 힘들기 때문에 낮동안 썼던 감도100 짜리 필름을 400짜리로 교체해서
최대한 쓸만한 녀석으로 만들어 놔야하기 때문에.

그냥 디카쓰면 되잖냐 라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사진은 역시 그날그날의 느낌입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최대한 필름으로 느낌을 내 보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어떤 난관이 닥쳐와도 닥치고 필름입니다.

그래도 이곳은 어제 방문했던 WTC 코스모타워 전망대보다는 사람이 많이 있더군요.
우메다란 지역 자체가 워낙 번화한 곳이기도 하고, 역시 주유패스를 이용하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습니다.
대부분이 한국사람들이었는데, 역시 주유패스의 이익을 가장 잘 챙기는 쪽은 한국 여행객들이 아닌가 싶네요.


일단 전망대 내부는 WTC 타워와 크게 다른 점은 없습니다.
높이는 WTC 타워가 훨씬 높기 때문에 약간 감흥이 덜할수도 있지만
베이 에이리어에 홀로 떨어져 독수공방중인 WTC 타워와 달리
스카이빌딩은 오사카시 최대의 번화가 우메다 중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화려한 야경을 감상하기엔 이쪽이 더 좋을지도.

오늘도 아침부터 열심히 돌아다니느라 녹초가 된 일행은 제가 장노출로 사진 찍어대는 동안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는 중.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이런 야경좋은 전망대 위에
2인용 캡슐 호텔같은걸 창가에 주르륵 배치해 놓으면 (매트릭스처럼)
커플들이 많이 이용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럼 너무 노골적인 랜드마크 러브호텔이 되어버리는건가. ㅡㅡ;


셀카찍기가 거의 불가능한 필름카메라지만
창분에 비치는 조명 덕분에 셀카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전망대 내부는 조명이 창문에 반사되는 바람에 야경사진 찍기가 힘들지만
WTC 타워와는 달리 이곳은 야외로 나갈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이곳은 원형 정원이라 오사카시내를 360도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분위기 좋더군요.
불행히도 삼각대가 없이는 장노출하기 알맞은 지지 장소가 없는고로 각도가 이렇게 하늘을 향하는 사진밖에 찍을 수가 없었네요.
뭐 이것도 나름 정취가 있는 것 같으니 만족합니다.

일단 뛰어내리려고 작정하면 멋있게 자살할 수 있는 곳이라 정원에는 경비원이 눈을 번뜩이고 있더군요.


위에서 두 번째 사진, 밑에서 스카이빌딩을 올려다 본 사진 중앙에 나온 공중정원을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레스토랑, 기념품샵 등이 위치해 있는데... 헝그리 여행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죠.

오사카 야경을 한바퀴 쭈욱 돌면서 구경한 후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데 동생분과 친구가 재미있는걸 발견했습니다.


이곳 공중정원은 야간이 되면 바닥이 반짝반짝 모래처럼 빛나는 야광 물질로 되어 있는데요.
빛을 밝혀주는 적외선 램프에 일행이 가지고 있는 손수건의 형광물질이 반응한 겁니다.
PD 수첩이나 불만제로 같은 프로그램에 나올법한 공포의 형광물질이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웃으면서 각자의 몸에 걸치고 있는 형광물질을 찾느라 바빴네요.
의외로 옷 여기저기에 형광물질이 많이 쓰이고 있었습니다. 천연 섬유로 만들었다는 제 버프도 아주 반짝반짝 빛을 발하더군요.
신발 쪽에도 환하게 불이 들어오고... 원래같으면 기분이 나쁠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여행의 재미있는 헤프닝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스카이빌딩 관람을 마치고 우메다역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위치한 거대 전자상가 요도바시 카메라(ヨドバシカメラ)에 들렀습니다.
이쯤되서 식사를 한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이곳 요도바시 카메라는 규모가 엄청나게 크더군요. 도쿄 아키하바라에 위치한 요도바시보다 훨씬 더 커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야 카메라 매장에서 죽치고 싶었지만 그건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라
옆에서 지루해할 일행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 바람에 그냥 밥이나 먹으러 올라갔습니다.

오사카 도착때부터 계속 먹고싶었지만 자금사정때문에 횟수를 제한해야 하는 초밥을 좀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양에 비해 가격이 좀 센편이긴 하지만 초밥 품질은 평범한 회전초밥보다 훨 나은 편입니다.


저는 일단 성게알과 연어알이 포함된 세트를 주문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메뉴죠.
탱글탱글한 연어알이 저를 유혹하고 있네요.


미국서 유학중인 친구 강군이 무지하게 좋아하는 성게알.
이 사진 보면 아마 또 고통에 몸부림치겠군요. ㅡㅡ;


기름기 흐르는 참치 뱃살도 좋아합니다.
적당한 품질에 배를 많이 채우기 위해서는 역시 회전초밥이 낫긴 하지만
회전초밥집은 내일 쿄토여행때 점찍어둔 곳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무리 좀 해서 괜찮은 정식 세트를 먹습니다.


친구와 동생분은 무난한 세트를 시켰습니다.
아무래도 성게알같은 메뉴는 처음 도전하기엔 조금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특히 친구녀석은 생선을 거의 못먹는 타입이라 최대한 무난해 보이는걸 시켜야 했을 겁니다.


자금 여유만 널널했다면 저 혼자 이거 두 세트정도는 단칼에 해치울 수 있었는데...
그래도 진정한 초밥 사냥은 내일 쿄토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니 꾹 참으며 얼마 남지않은 초밥을 음미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후 저는 결국 짐 챙겨서 옆의 조그만 비즈니스 호텔로 향했습니다.
이틀 연속으로 코 고는 소리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잔터라, 오늘도 잠을 설쳤다간 내일 쿄토여행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결국 옆의 싸구려 비즈니스 호텔에 개인적으로 1박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참 여행이란 건 예측불가능이군요.

저는 성격이 굉장히 예민해서 조용한 곳에서 혼자 잘 때도 30분~1시간은 뒤척여야 겨우 잠이 들 정도라
바로 옆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면 잠은 다 잔거나 마찬가집니다.

자기 코고는 소리때문에 쫓겨가는 제 모습을 보고 친구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ㅡㅡ;
불행중 다행인지 숙소인 신세카이 거리는 굉장히 낡은 건물이나 숙소가 많아서
제가 찾아간 곳도 가족 단위로 꾸려나가는 조금만 민박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할머니께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고, 따뜻한 녹차까지 한 잔 대접해 주시더군요.

엄청 낡은 곳이라 나무로 된 히터, 고풍스러운 타일 욕조 등 1980년대로 워프한 듯한 느낌이었지만
친구의 코고는 소리에서 해방된 덕택에 평화스러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WTC 코스모타워 전망대로 향하는 내내 일행은 '여기가 아닌거 아녀?'라고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주유패스 무료쿠폰에도 등록될 만큼 관광지로서는 알려진 곳임에도
정말 사람 흔적이라고는 풀떼기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산했거든요.

마치 3년전 도쿄 오다이바의 황량한 벌판을 세명이서 걸어다닐 때의 기분을 맛보는 듯 했습니다.
뭔가 잘못 찾아온것 같은 불안한 기분을 느끼며 일단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다행히도 제대로 찾아오긴 했네요. 티켓을 끊고 승강기를 타고 쑤욱 전망대까지 올라갑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계속 긴장긴장했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니 사람 모습이 좀 보여서 안도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바깥이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어 덜덜 떨고있는 고소공포증 친구를 위로해 주기도 했습니다.
(떨어지지 않도록 갑자기 어깨를 잡아밀어주니 고양이처럼 튀어오르더군요)

이곳 에스컬레이터도 경사가 꽤 심하고 아주 길게 늘어져 있어 친구는 결코 붙잡은 손을 놓지 않더군요.
원래 전망대엔 크게 관심이 없지만 친구가 이렇게 즐거워해주니 찾아가는 보람이 생기네요.


전망대 내부는 아주 어둡습니다. 조용하고 어슴푸레한 조명 덕분에 야경을 감상하기엔 좋은 환경이네요.
연인들을 위한 칸막이 의자도 중간중간 설치되어 있어서 커플끼리 실컷 염장질 벌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오사카시의 모습은 정말 거대했는데,
이게 대구시 면적의 1/4밖에 되지 않는다는게 뭔가 어색하군요.

ISO400짜리 필름을 장전한 카메라로 삼각대없이 야경을 찍으려고 하니
평평한 장소 잘 물색한 후 지갑 등을 렌즈 앞쪽에 고아넣어 높이를 맞추고
M 모드로 적절한 노출값과 셔터스피드를 준비한 후 5초 타이머 촬영으로 셔터 눌러놓고
약 20초간 필름에 기록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게 됩니다.

귀차니즘때문에 삼각대는 여행에 가져가지 않는 편이라 (고릴라포드는 나중에 하나 사볼까 생각중)
가끔 난감하긴 한데 역시 전망대에는 수평 잡아줄 공간이 있는 편이라 이런 사진도 그나마 건질 수 있네요.


필름카메라는 현상 때까지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보험용으로 DSLR도 같은 방법을 이용해 찍었습니다.

오사카의 명물인 2개의 달을 잘 담아냈군요. (믿습니까?)

오른쪽에 일행이 하루종일 쏘다녔던 베이에이리어 텐포잔이 보입니다. 관람차도 녹색으로 빛을 발하네요.
로또 당첨되었다면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한 번 가봤겠지만...


내려갈 때도 결코 손을 떼지 않는 착실한 친구.
여기서 밀어버리는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그냥 놔뒀습니다.


전 랜드마크 빌딩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별 감흥이 없어서
그냥 야경사진 몇 장 건진것에 위안을 삼고 빌딩을 빠져나왔습니다.

이곳 코스모타워엔 예식장도 있어서 자금 넉넉하게 가진 사람들은 아찔한 높이에서 화려한 경관을 즐기며
결혼식을 올릴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이용하는지는 알 수 없네요.


베이에이리어를 빠져나온 일행은 지친 몸을 이끌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도톤보리(道頓堀)로 향합니다.
도톤보리는 야스이 도톤(安井道頓)이라는 사람이 1612년에 만든 물자 수송용 인공 하천이었는데
에도시대 들어 하천의 양쪽 거리가 화류계로 점령되어버린 후 그때부터 쭈~욱 오사카 최대의 번화가로 자리잡아왔습니다.

에도시대땐 상점들의 입구가 강 반대편으로 나 있었고, 건물 뒷쪽이 하천과 바로 맞닿아 있어서
창문을 열면 바로 펼쳐지는 하천의 모습을 구경하거나, 하천에 배를 띄우고 술과 벚꽃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보였죠.
지금은 타유우(太夫 - 최고급 매춘부)들이 있던 곳에 수많은 음식점과 주점이 즐비하게 늘어섰지만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곳의 열기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도톤보리는 옛 정취와 소란스러움이 공존하는 서민적인 느낌의 거리입니다.
킨류(金龍) 라멘이나 움직이는 게 간판으로 유명한 카니도라쿠(かに道楽)등등 몇몇 거대 체인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좁은 골목 여기저기에 작게 펼쳐진 숨겨진 맛집들이 포진해있는 느낌이죠.
퇴근길에 가볍게 한 잔 마시는 조그만 선술집 등이 도톤보리의 분위기를 설명해 줍니다.

이와는 반대로 도톤보리하천 북쪽에 위치한 거리 신사이바시(心齋橋)는
도쿄의 긴자(銀座) 명품거리를 생각나게 하는 최신 아케이드의 집합소입니다.
전 세계 최고급 명품 부티크와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최신 패션샵, 악세사리 등으로 가득 차있죠.

조그만 하천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극단적인 모습의 두 거리가 마주보고 있는 느낌은 참 신선합니다
저희 일행은 신사이바시에서 뭔가 살 생각은 없었으니 그냥 도톤보리의 라멘집을 향해 출발.


도톤보리라고 해서 다 옛날 정취만 풍기는 건 아니죠.
이미 일본인들의 생활 깊숙히 파고든 파칭코는 어디든 그 거대함을 자랑합니다.

자전거 여행때도 놀랐지만, 인구 3만도 안될것 같은 조그만 마을에도 거의 백화점급의 파칭코점이 세워져 있는 걸 보니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파칭코는 일본인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인가 했네요.


요런 조그만 골목 깊숙히 정말 제대로 된 맛집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죠.
이번엔 도톤보리에서 맛있다는 라멘집을 미리 알아보고 온 터라 정해진 곳을 찾아 바로 들어갔습니다.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에게 가장 유명한 라멘은 킨류 라멘인데요, 대문 앞 장식도 화려하고
이곳 도톤보리에만 4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 라멘계의 큰손입니다만 아무래도 현지인들의 평가는 그닥 좋지 않습니다.

어떤 여행지든 마찬가지지만 관광객들에게 알려진 음식점과,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음식점은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죠.
물론 반드시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음식점이 더 맛있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입맛도 지역별로 많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뭔가 단순히 맛있다는 느낌보다는, 현지의 감각을 좀 더 느끼게 해 주는 독특함이 있는 음식점에서 한끼 해보는게
여행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득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기 때문에, 저는 가능하면 현지인들에게 인기있는 곳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챠슈 라멘으로 이 근방에서 유명한 하나마루켄(花丸軒)입니다.
인기에 비해 정말 좁아서, 바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해도 되겠더군요.

후다닥 자리잡고 앉아서 이곳의 추천 메뉴인 행복가득 라멘(しあわせいっぱいラーメン)과 교자를 시켰습니다.


일단 먼저 나온 교자를 한 장 찍어드리구요.
교사는 아삭아삭하고 따뜻한게 나쁘진 않았지만, 특별히 맛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맛있는 교자가 어디있냐구요? 카스카베시(春日部市)에는 만두 속부터 피까지 전부 수제로 만드는 조그만 개인 교자집이 있습니다.
그곳의 교자를 한번 먹어보면 분명 '교자에도 레벨이 있구나' 하실겁니다.


오늘의 마지막을 장식할 행복가득 라멘입니다.
저는 라멘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일본 여행땐 거의 하루중 2,3끼를 라멘으로 때워도 불평이 없는 타입인데
이번엔 친구 일행과 함께 움직이니 저 좋은데로만 먹을거리를 선택할 순 없어서
벼르고 벼른 이번 라멘은 기대가 컸습니다.

이곳 라멘은 진한 돈코츠(돼지뼈) 육수에 쇼유(간장)으로 간을 하는 것까지는 평범한 라멘과 다르지 않지만
사진에 보이는 두 종류의 챠슈(돼지고기를 양념해서 썰어놓은 편육)가 이곳을 유명하게 한 별미중 하나입니다.
왼쪽 챠슈는 한국에서도 익히 보는 삼겹살, 오른쪽의 진한 챠슈는 콜라겐이 다량 함유된 등뼈살(とろこつ)입니다.
특제 소스와 함께 압력솥에서 푸욱 쪄낸 더블 챠슈는 굉장히 부드럽고 맛이 진합니다.
챠슈 뿐 아니라 국물도 그야말로 진국이고 라멘 면발도 인스턴트와는 비교불가로, 이름값은 충분히 하는 가게였습니다.

윗쪽의 김에는 랜덤으로 글자가 들어가더군요. 위에 적힌건 '행복기원'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

돈코츠 쇼유 라멘은 일본의 라멘 중에서도 맛이 가장 진하고 짠 편이라 여성분들 입맛엔 잘 맞지 않는 경향입니다.
저야 뭐, 너무너무 맛있게 잘 먹었지만 동생분 입맛엔 어땠을지 좀 걱정이 됩니다.

야밤에 라멘 사진을 보니 당장 삿포로로 날아가서 라멘공화국의 라멘들을 전부 섭렵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군요...


라멘으로 배를 채우고 도톤보리를 주욱 둘러본 다음 숙소로 돌아갈 일만 남았네요.
일행들이 전부 다 쇼핑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저 둘러보며 구경만 할 뿐.


그래도 저기는 한번 들어가보자고 합니다.
만물상 개념인 일본의 유명 체인점 돈키호테입니다.

1980년대 처음 선을 보인 돈키호테는 그 공격적이고 파격적인 영업 방식으로
최단기간에 최고의 급성장을 보인 업체로 손꼽힙니다.

일본 거의 대부분 지역에 점포가 있으며, 대부분 24시간 영업을 통해 심야 고객을 주로 확보하고
일부러 매장 통로를 좁고 어둡게 만들어 심야 고객들의 '탐험적 쇼핑' 욕구를 잘 파악한 마케팅 방법으로 유명하죠.
식료품, 음식, 잡화, 게임, 전자, 화장품, 스포츠 등등 없는것이 없다는게 최대의 특징입니다.
성인용품은 물론이고 코스프레 의상까지 있으니 뭐... ㅡㅡ;

이곳 도톤보리의 돈키호테는 사진의 저 관람차가 유명한 포인트였는데 작년부터 영업을 중지한 상태더군요.
실컷 둘러보고 물건은 사지 않고 나왔습니다.


밤의 도톤보리 하천은 매우 조용합니다.
주유 패스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 중에는 이곳을 순회하는 도톤보리 리버 크루즈도 있었는데
시간상 여건이 안맞아서 패스하기로... 배는 산타마리아 호를 타봤으니 괜찮아요.


참 특이하게도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스팟이 되어버린 글리코 전광판 앞입니다.
오사카 도톤보리에 들러서 이곳을 찍어오지 않으면 여행 못한 사람처럼 취급받기도... ㅡㅡ;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제과회사인 글리코사가 1935년에 세운 전광판으로, 75년동안 같은 자리에서 달리고 있죠.
지금와서는 조금 촌스러운 쫄쫄이 육상선수 아저씨의 모습이 오히려 매력이 되어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 중 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원래 저 전광판은 글리코 카라멜 선전용이었어요. 글리코 카라멜을 먹으면 힘이 솟아요 라는 느낌으로...

저 곳에서는 저 아저씨를 흉내내서 한쪽 발을 들고 두 손을 치켜든 포즈로 사진을 찍는게 유행입니다.
수줍음 많은 친구 일행은 아무리 협박해도 그 포즈를 취해주지 않네요. ㅡㅡ;

그리고 또 하나, 이곳은 여자 꼬시는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이곳 도톤보리는 남부 오사카의 중심지역인 난바(難波)에 속해있는데요.
이 난바라는 단어가 일본어의 헌팅(난파,ナンパ)와 발음이 비슷해서 이곳을 난파다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도톤보리를 빠져나오며 보였던 한 공연장에서 카나데혼 츄신구라(假名手本忠臣藏)가 상영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예전 일본어과 4학년 마지막 수업때 발표한 것이 이 충신장 이야기라서 감회가 새롭더군요.
겐로쿠 15년(1702년)에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각색해서 카부키극화한 작품인데,

'아무리 관객이 없어도 츄신구라만 공연하면 관객이 꽉 찬다'는 공연업계의 속담이 있을 정도로
1748년 초연 이래 꾸준히 일본인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아온, 카부키의 원조이자 대표격 작품입니다.

그리고 1748년 그 운명의 초연이 바로 이곳 오사카에서 시작되었죠. ^^

여담으로 일본 내에서야 셀 수도 없이 영화, 드라마, 소설 등으로 각색된 작품이지만
현재 헐리우드에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47 로닌'(The 47 Ronin)으로 영화화되고 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해서 얼른 씻고 잠을 청합니다.
욕탕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고 TV 보면서 느긋하게 목욕하다 보니
세 사람 한 바퀴 도는데 거의 1시간 30분이나 걸리더군요.
친구의 코고는 소리에 과연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지 걱정하며 일단 눈을 감고 누워봅니다.
내일은 주유패스로 입장할 수 있는 시텐노지(四天王寺)와 오사카성, 그리고 우메다 스카이빌딩(梅田スカイビル)을 둘러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