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2일 자 사설 - 종교와 정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3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미국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시국미사를 열었다.
미사를 마친 사제와 신자·시민들은 '공안정권 끝을 알지'라는 팻말을 붙인 십자가를 앞세운 채 '고시 철회,명박 퇴진'이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사제단은 서울시청 광장에 천막을 친 뒤 농성에 들어가 매일 시국미사를 열겠다고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도 3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시국기도회를 열고,
4일에는 실천불교승가회와 불교환경연대 등 불교단체들이 중심이 돼 시국법회를 갖는다.
'광우병 대책회의'가 주도하는 불법·폭력 시위가 갈수록 시민의 외면을 받기
시작하자 일부 종교인이 '종교행사'로 그 불씨를 되살리려 대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종교가 본격적으로 시국 문제에 발을 내디딘 것은 10월 유신(維新) 때였다.
국회의원을 잡아다 고문하고,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사실상 박탈하고, 학원 시위를 막는다고 학교 문을 닫고,
기사 한 줄 한 줄을 검열해 반(反)정부 메시지가 숨어 있다며 인쇄용 동판(銅版)을 압수해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저항의 단어를 담고 있다며 시집(詩集)의 발간을 정지시키고, 일부 소설을 금서(禁書)로 규정해 추방하고, 문예지와 종합지를 잇달아 폐간시키던 시절이었다.
사회의 숨구멍이 막혀버린 그 시절 종교와 종교인이 나섰다. 종교밖에 나설 곳이 없었고 종교가 나서야 할 때였다.
정의구현사제단이란 이름에 아직껏 후광(後光) 비슷한 게 서려 있다면
그것은 국민의 입이 틀어 막혔을 때 그 국민의 입을 대신했었다는 유신시대의 잔광(殘光)이 남아 있는 덕일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국회의원의 입을 봉(封)해 국회를 무력화시켰는가, 학교가 문을 닫았는가.
언론의 입이 강제로 틀어 막혔는가, 시와 소설이 불온(不穩)하다며 인쇄를 금지시키는가.
물론 종교도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발언은 때와 장소의 논리(論理)에 맞는 발언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 헌법은 국민의 피눈물이 얼룩진 민주항쟁의 산물이다. 종교도 이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한 역할을 해냈다.
그랬던 종교라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빚어진 이 국가적 위기를 헌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제 구실을 해 합법적 과정을 통해 하루빨리 수습하라고 촉구해야 마땅한 일이다.
헌정질서 자체가 무너지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입헌(立憲)주의와 대의(代議)정치의 원리를 지키라고 호소해야 한다.
(중략)
종교인이 복잡한 정치·외교·경제·사회 문제들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다 발을 헛짚게 되면 종교의 권위는 어찌 되겠는가.
종교도 정치에 발언할 수 있고 때로는 해야 할 때도 있다.
지금 종교와 종교인은 대통령과 정당에는 헌법이 정해준 저마다의 구실을 제대로 해내라고,
국민에겐 감정의 열기(熱氣)를 내리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면서도 이 위기가 헌정의 위기로 번져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이성(理性)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종교는 종교의 위치에서 발언할 때 더 큰 의미와 무게를 지니는 법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설1] 혼돈의 시대에 다시 울리는 교계의 목소리
입력 : 2004.09.16 19:56 / 수정 : 2004.09.16 21:08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가 16일 “지금 우리나라는 과거 어느 때보다 총체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며 시국성명서를 발표했다.
예장(통합)은 새문안교회·영락교회·소망교회·온누리교회 등 전국 6900여개 교회 240만명의 교인이 소속된 국내 기독교의 중추 교단이다.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이 IMF 관리체제 때보다 심하여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정부는 민생문제를 도외시한 채 과거사 들추기, 국가보안법 폐지, 비판 언론에 대한 압박 등 이념적이고 정략적인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민주화 세력이라고 자처하는 현 정권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 못지않게 여론을 무시하고
독선과 비민주, 반대세력에 대한 압박에 나서면서 우리 사회는 과거 어느 때 못지않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나라가 먹고살기도 힘들고 자유민주주의도 위협받는 이중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성명은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행정수도 졸속 이전 반대 및 국민 의견 수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KBS·MBC를 관변화하는 언론 정책 반대 등 5개 항을 요구하고
“정부가 끝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교회는 민주화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각오로 이에 대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시국선언이 잇따른다는 것은 그 사회의 운행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뜻이다.
천주교 김수환(金壽煥) 추기경과 불교 법장(法長) 조계종 총무원장, 길자연(吉自延)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등
종교 지도자들의 잇단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입장 표명에 이어 나온 예장(통합)의 성명은
여론을 무시한 정부의 폭주(暴走)가 도를 넘어선 데 대한 우려가 종교계에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명은 “민족과 국가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적 혼란과 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 사회적 편가르기와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국민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종교인들의 목소리는 결국 교인의 목소리이고 나아가 국민의 목소리다.
교회와 사찰과 성당에서 오가는 이 같은 목소리가 정부에만 들리지 않는다면 국가의 장래는 깜깜하고 국민의 고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