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골당에 오는 건 5년만이다. 자전거 여행때는 이런 곳에 들어갈만한 몰골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운하 주변 밤거리를 배회하는 것만이 휴식의 낙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왔지만 여전히 변한 건 없어보인다. 변할 필요가 없는 곳이기도 하고.

 

처음 들어가면 따스한 조명색과 반짝반짝 빛나는 오르골들이 펼쳐진 모습에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5년 전과 달리 중국인 관광객이 매우 많다는 점만이 낯설게 다가온다. 확실히 요즘 중국 관광객의 기세는 확 체감될 정도로 강렬하다.

 

 

 

이곳의 오르골은 정말 다양한 디자인과 수천가지의 음색을 자랑해서

여행와서 기념품을 사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그냥 넘어가기가 힘든 매력을 사방에서 뿜어내고 있다.

 

본인은 여행한 횟수에 비하면 기념품을 정말로 구입하지 않는 축에 들어가기 때문에 매번 이겨내고 있지만.

벽에 걸어놓고 줄을 잡아당기면 음악이 연주되는 단순한 형태의 오르골. 흐르는 음악은 파헬벨의 캐논이다.

주변이 시끄러워서 일행들 모두 줄을 당기고 귀를 갖다대어 음악을 감상한다. 드럼이 워낙 작아서 연주되는 소절이 짧은 게 아쉬운 점.

 

 

 

디자인에 신경쓰지 않고 단순히 음악만을 감상하기 위한 실속형 오르골도 굉장한 종류로 전시중이다.

 

오르골은 드럼이라는 금속통 표면에 작은 돌기를 만들어 놓고 그걸 금속핀에 순차적으로 접촉시켜 음악을 만드는 기계인데

곡을 길게 만들려면 드럼도 자연스럽게 커져야 하고, 장시간 흐트러짐없이 돌기를 정확하게 배열하는 것이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라

고급 오르골은 수백만원은 가볍게 넘는다. 구조가 단순한만큼 맑은 음색과 정확한 리듬을 맞추기 위해서는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이런 기념품용 오르골은 가격도 만원 초반대부터 시작하는 작은 녀석이라 음악적 만족감을 이루기는 어렵다.

그래도 불후의 명곡인 Stand by me 가 적힌 이 오르골만은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사실 자전거 세계일주 준비중인 나침반님한테 선물로 드리려고 생각했지만, 막상 들어보니 길이가 너무 짧아서 포기.

 

 

 

오르골은 작동 구조가 사실상 LP 등의 턴테이블과 완전히 동일하다. 홈을 긁지 않고 금속 돌기를 튕겨서 내는 점만이 다를 뿐.

지금와서는 제작 단가가 비싼 탓에 기념품으로나마 팔리는 녀석들이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이곳 오르골당은 공방에서 직접 만든 오르골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오르골들을 다양하게 전시중이기 때문에

여기를 잘 둘러봤다면 전 세계 오르골의 절반 정도는 다 본것이나 다름없다.

 

 

 

기념품의 범주로 넘어가면 역시 오르골의 음색보다는 받는 쪽에서 좀 더 인상깊을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질 듯.

본인이 써도 괜찮을 법한 모델에서부터 남에게 선물해주면 좋을 법한 것들까지 다양하다.

 

정작 이런 디자인은 드럼 크기가 필연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본인 기준으로는 조금 아쉽지만.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내부가 좀 더 크게 느껴지는 편이다.

목재 뼈대를 사용했지만 석조 건축기술이 융합된 방식이라 내부 공간 활용도가 높다.

2층은 이렇게 넓은 시야대신 공간이 좁은 편이지만, 덕분에 사진 한 장이라도 더 찍게 해 주니 이쪽으로서는 만족스럽다.

 

 

 

거울이 있어서 재미삼아 세 명의 모습을 동시에 담아본다. 코마츠군이 든 오르골은 살짝 가려버리는 바람에 유감이었지만.

오르골은 드럼의 완성도가 가격과 직결되기 때문에 기념품용 오르골은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다.

이쪽 일행은 다들 알뜰한 성격인지 한참을 구경하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도 결국 아무것도 구입하지는 않았다.

 

오르골당이야 가게라기보다는 관광지의 하나로 굳게 자리를 잡아버린 곳이니 굳이 구입하지 않아도 문제없다.

 

 

 

오타루가 유리 공예로 유명한 곳이니 이렇게 유리로 만든 벽걸이형 오르골도 판매중이다.

 

세삼스럽지만 일본사람들의 상업적 센스는 참 꼼꼼하며 기본을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

오타루의 유리 + 오르골에 떡하니 붙여놓은 마데인 저팬 표시까지 있으면 기념품으로는 안성마춤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계획성이 엿보인다.

 

 

 

오르골과 관계 없는 유리 전등도 귀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유리라서 아이들이 만지기엔 좀 위험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고 할까.

 

상품 곳곳에 중국어로 설명된 간판을 보니 정말 중국 사람들의 관광소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실감이 난다.

중국 사람들의 쇼핑은 이런 것보다 대형 백화점을 싹쓸이 해 가는 방식이라, 이런 곳에서는 그 구매력이 잘 살아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설명문은 한 군데도 없이 중국어가 빡빡하게 적혀있는 모습을 보니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돈이 왕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오르골과는 관계 없는 동판 공예품인데, 이게 느낌이 매우 마음에 들어서 하나 구매해볼까 했지만

부피에 비해 상상을 뛰어넘는 가격이라 아무래도 그 정도 지불을 할 만한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가격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참 구매욕구 불러일으키는 제품을 잘도 전시해 놓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악세사리라는 건 결국 예술적 카테고리 속에서 동의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유리 공예와 오르골로 유명한 오타루는 사실 동판을 이용한 모형이나 공업용 나사를 주물러서 만든 희화 캐릭터 등

전반적으로 공예품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루로는 절대 모자랄 정도로 종류도 다양하다.

 

그냥 스윽 바라보고나서 무덤덤하게 지나가는 타입이라면 오타루 관광은 하루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세심함과 꼼꼼함이 듬뿍 느껴지는 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 언저리가 근질근질해지는 사람이라면 후회없는 여행이 될 듯.

 

 

 

이런 녀석들은 조명이 중요해서, 집에 사서 가져다 놓아도 위치 선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왠지 빛이 바랜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은 아늑하고 충분한 조명이 설치되어 있으니 반짝반짝하는 게 참 아름다워 보이지만

하나만 달랑 사들고 가서 조명 위치 생각하지 않고 전시해 놓으면 내가 헛것을 봤나 하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구경하다보니 마침내 오르골도 유리도 동판도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조형도 눈에 들어온다.

센스만 있다면 누구든 모을 수 있고 만들 수 있을법한 녀석이지만, 그렇기에 이렇게 만들어 놓은 센스가 비범하게 느껴진다.

 

 

 

한창 정신이 팔려서 내부를 돌아다니다가 전경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순간.

유리 소재가 많아서 자칫 관광객이 부딪치거나 하면 대사고가 일어날 법도 한데

테이블 배치의 다양함과 꼼꼼한 세팅, 중앙의 통일성있는 스탠드의 디자인 등 기념품 가게의 표본으로 삼고 싶어지는 멋진 모습이 시선을 끈다.

 

오르골 소리도 좋지만 그냥 이렇게 가만히 서서 전경을 바라보는 것도 기분좋은 관광이 된다.

 

 

 

사실 오르골당에 들어오면서부터 Y양과 코마츠군과는 거의 반쯤 개별행동으로 들어가 있었다.

사진 찍을 때 가끔 모이긴 하는데, 각자 찍고싶은 사진도 있고 구도나 관심있는 제품에 대한 흥미도 등을 생각하면

굳이 몰려다니며 볼 필요 없이 이것저것 보면서 다니다 보면 어차피 만나게 되어 있었으니까.

 

 

 

모양이 동일한 오르골이라도 안에 들어있는 노래는 다양하다. 친절하게 곡 리스트도 테이블 중앙에 적어놓았다.

음색까지 판단하기엔 좀 시끄러운 곳이고, 드럼 크기상 단순한 음절밖에 반복하지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쉬울 따름.

 

 

 

유리공예는 일본 사람들의 취향이 가득 담겨서 매우 앙증맞고 귀여운 녀석들로 가득하다.

아무래도 베네치아쪽의 예술품에 가까운 공예와는 방향이 다르지만, 기념품으로 가져가기에 부담없는 상품이 많아서 한참 시선을 뺏긴다.

 

이런 걸 보고 문득 지갑에 손에 가게 될 때는 마음을 다잡고 욕구를 진정시키며 집에 놔둬도 잘 보지 않는다고 되뇌여야 한다.

실제로 쿄토에서 구입한 꼬리 흔드는 고양이 한 마리면 집안 장식으로는 충분하기 때문에 순간의 귀여움으로 엔화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백만원 단위였던 오르골은 이 정도로 섬세하게 제작되어 있으며 미려한 화음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것도 사실 고급 오르골 축에 들어가지는 못하는데, 구입 가능한 녀석들 중에는 보통 5백만원에서 천만원을 호가하는 녀석들이 있는데다가

사진도 찍지 못하고 음악 감상도 직원에게 직접 문의해야 하는 특별한 녀석은 2억원 정도 하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오르골을 구입하려는 마음이 든다면 돈을 좀 모아서라도 조그만 녀석보다는 최소 이 정도를 구입하고 싶긴 하다.

 

 

 

오르골의 개념이 처음 성립된 르네상스 후기의 풍경을 미니어쳐로 만들어 놓은 곳도 사진찍기에 좋다.

단순히 제품 구입만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를 벗어나 오타루의 자랑할만한 문화 공간으로서의 프라이드를 지키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

 

 

 

오르골이란 기계 자체가 미니멀리즘의 추구로 인해 발명된 터라 이런 미니어처의 느낌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역시 세심한 것 좋아하는 일본 답게 미니어처의 수준도 상당하다.

 

17세기 후반부터 사랑을 받은 오르골은 천상의 하모니를 손 안에서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좀 사는 가정에서는 집안 곳곳에서부터 휴대용 소지품에까지 오르골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30~40분 정도밖에 둘러보지 못했지만 마음먹고 천천히 뜯어본다면 오르골에 대해서 전문가가 될 만큼 자료가 풍부한 오르골당.

가벼운 관광이니 너무 깊게 들어갈 일은 없고, 대화도 별로 없이 눈과 귀로만 만끽하며 조용히 건물을 빠져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