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이긴 한데 언젠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 예전 사진들입니다.
서울에 잠깐 일이 있어서 나침반님하고 식사나 한 끼 한다고 만날 약속을 잡았죠.
맛집을 좀 찾아보다가 동대문쪽에 양고기 꼬치구이를 잘한다는 소문을 들어서 그쪽 근처에서 보기로 합니다.
전철역을 조금 잘못 내렸는데 어디선가 많이 보던 캐릭터가 거대하게 서 있어서 놀랐습니다.
성게군으로 시대를 풍미하려다 말았던 모 만화가분의 페르소나 캐릭터죠. 요즘 까페 열었다고 하더니 이 근처였나 싶네요.
인간이 그렇겠지만 애 태어나면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그냥 매너리즘에 빠지는 느낌이라서 요즘엔 안 보고 있죠.
초반엔 꽤나 재미있었던 만화였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당시에 동대문의 명물 똥인 DDP가 완공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맨날 공사만 하더니 갑자기 나타난 부드러운 똥 모양에 놀랐었죠. 완성이 되긴 하는구나 싶어서.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아서, 이 녀석을 찍는다기보다는 카메라 설정을 파악하려고 이리저리 담았습니다.
아침부터 참 더운 날씨였는데 그 넓은 부지가 이런 콘크리트 덩어리로 변해버렸다는 게 참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동대문 운동장 쪽은 옷에 관심이 없는 저한테는 원래 큰 의미를 가지지 않았지만
15년 전쯤엔 이 근처에 만화 도매상가들이 많이 모여있어서 자주 가느라 나름 친숙한 곳이긴 했었죠.
요즘엔 홍대나 건대 근처에 캐주얼한 도매 매장이 많이 생겨서 아저씨 냄새 풍기는 이곳 매장들은 사라졌더군요.
운동장 자체도 이렇게 사라져 버리니 더 이상 이곳에는 제가 발걸음을 옮겨야 할 이유가 남아있지 않네요.
날씨가 화창하지 않는 편이 확실히 더 잘 어울리는 건물이더군요.
무덥긴 했지만 햇빛이 덜해서 그나마 움직일 만 했습니다.
나침반님이 조금 늦으신다고 해서 근처를 돌아다니며 다시는 보지 않을 똥덩어리 모습이나 담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독보적이라 할 만큼 특이한 곡면 비정형 건물이라서 카메라 사진 사람들의 관심은 많이 끌고 있네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열심히 담고 있던데, 이 녀석은 밤에 조명이 켜지면 좀 더 볼만한 모습이 되리라는 예상이 듭니다.
낮에는 어차피 난개발의 상징인 동대문에서 암만 튀어봤자 조금 부드러운 콘크리트 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계획 초기 예산의 10배 가까이 오버된 돈먹는 똥이라서, 그냥 돈을 가져다 발라도 이거보다는 저렴했으리라는 말도 있었죠.
다섯 살짜리 저능아가 굴리는 머리 수준에서라면 대강 이해가 되긴 하지만.
주위 환경과 심각하게 이질적인 건 그냥 넘어가기로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대량 생산이 불가능한 비정형 곡면을 사용한다면 과연 유지보수비가 얼마나 들어갈지 참 궁금합니다.
이런 건 세계의 대예술가가 필을 받아서 자기 사비 다 털어가며 완성시켜야 가치가 있을만한 건물인데
세금을 무식하게 때려박으며 이런 걸 만들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었을까요. 뭐, 대충 어디에 있었을지는 짐작이 갑니다만.
그러고보니 공사 도중 조선시대 유적지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이곳이군요.
어젠가 그저깬가 피카츄 군단을 영접하러 온 서민들이 짓밟았다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미 민족적 자부심이란 게 부자들의 사치품 정도로 전락해버린 한국에서 저런 유적지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만은
설마 피카츄 몇마리에 광란을 일으켜 저 위를 밟고 지나가는 풍경을 연출할 줄은 몰랐습니다.
역시 같은 곳에서 살다 보니 제가 시민의식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걸까요.
저는 이 똥이 태생적으로 잘못 태어난 녀석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일단 우연이라도 이 곳이 완공된 모습을 한 번 봤으니, 나침반님 오시면 어디로든 내부로 한번 들어가서 구경이나 하고 나오려고 생각중이었죠.
입장이 무료인지 유료인지도 모르지만, 유료라면 당연히 들어갈 일이 없고 무료라면 그냥 쭉 통과나 해보려 합니다.
어차피 다시 올 일이 없으니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기도 했고. 아침부터 날씨가 많이 더웠는데 에어콘이라도 가동중인가 기대도 했습니다.
이 때 찍은 사진은 제가 서 있는 자리가 이곳이라 눈 앞에서 찍힌 것들이고
사실은 카메라 적응을 위해 설정 바꿔가며 그냥 셔터만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네요.
왜 이제와서 이런 포스팅을 올리는가 하면
여행기 쓰느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요즘이라 더 미루다간 아예 기억에서 사라져 버릴 것 같기도 하고
더 큰 이유는 직장에 와서 포스팅 하려고 생각했던 여행 사진들이 클라우드 드라이브에 제대로 올라가 있지 않아서 올릴 사진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뭐, 드라이브에 남아있는 사진이라도 활용을 해야겠죠.
구름 잔뜩 흐린 하늘 밑에서 이 녀석을 바라보니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스페이스 자키 우주선이라던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나오는 로난의 거대 함선 등이 생각나더군요.
두 작품 모두에서 그 함선들은 사이좋게 개발살나는 역할이라 그런건지.
시의 예산으로 운용되는 건물에 이런 시대를 초월한 듯한 비정형 곡선 타일을 사용한 뒷감당을 어찌 할런지 기대가 됩니다.
어차피 똥은 싸는 사람고 닦는 사람이 따로 있지만, 항상 똥은 싸 놓고 튄 사람이 나중에 돌아와서 이 똥은 내가 쌌다고 자랑스러워 하는 법이죠.
사실 이 당시 E-M1 카메라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게 없었고
컬러 특성이나 계조, DR 등이 상당히 달라서 파악하는데 애 좀 먹었습니다.
이건 예전 필름 시절에도 엑타100 정도만 줄기차게 쓰다가 후지 벨비아로 넘어갔을 때도 느끼곤 하는 어색함이죠.
요즘엔 그나마 아주 약간 손에 익어서 대강 찍을 정도는 되어가고 있지만 이 때는 참 난감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진 자체보다는 후덜덜한 성능의 손떨림 방지나, 먼지따윈 은하계로 날려버리는 초음파 센서청소 등에 신기해하곤 했었네요.
나침반님이 오셔서 산책하는 겸 건물 내부로 들어갑니다.
밖에서 보면 내부가 어떻게 생긴 건지 짐작하기가 힘든데, 간단히 보면 코엑스 전시회장처럼 독립 공간이 여러 개 존재하는 형태더군요.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유료 입장인 듯한 것들도 몇 개 있었고, 미니어처 제작 체험 정도가 재미있어 보였지만
사람도 많고 해서 그냥 통로를 주욱 통과해서 빠져나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도 새로 지어 깔끔한 내부 곳곳에 기묘한 색상과 모양을 자랑하는 의자 같은 녀석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볼거리는 있더군요.
너무 화려해서 여기 앉아도 되나 싶은데, 한국 문화공간의 특징인 '알려줄 거 없으니 알아서들 판단하시라'는 마인드 때문에
예술 작품인지 그냥 앉아서 쉬라는 의자인지 알 수가 없네요.
완공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내부는 매우 깨끗했습니다.
에어콘은 만족할만큼 팍팍 나와주지는 않지만 틀기 싫어서 안틀어주는 건 아니겠죠.
한국사람보다는 중국사람이 더 많아보였는데, 무슨 드라마 캐릭터들 사진이 얼핏 보였던 걸로 봐서
중국에서도 방영한 드라마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전 드라마를 안 보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까지 알 수는 없었네요.
통로를 따라 반대쪽 밖으로 나오니 생객내기용으로 복원해 놓은 듯한 형태가 눈에 들어오네요.
아직 정착이 덜 된 잔디가 그나마 눈을 씻어줍니다만, 이 시끄럽고 지저분한 동대문 중앙에서 저 잔디에 누워 심신을 쉬게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안합니다.
결국 여기는 저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나침반님도 비슷한 생각이신 듯.
물론 마음에 들어서 찾아가는 사람들이야 제가 뭐라 할 것이 아니니, 그 사람들에게는 좋은 문화공간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죠.
나침반님하고는 만나면 거의 하루종일 걸어다니는게 일입니다.
골목길을 지나고 있으니 화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어쩐지 이런 모습마저도 동대문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런지.
청계천 노점상들과 고가도로가 그대로 남아있던 학생 시절엔 혼돈과 음침함을 즐기러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였기에 그럴까요.
인명피해가 없었기를 바라며 사진을 담습니다.
동대문 쪽은 아직 이런 풍경이 더 자연스럽다고 해야 할지, 딱히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보내던 당시 대구도 이런 골목이 많이 남아 있던 때라
요즘처럼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크나큰 위험이 된다는 그런 인식도 없이
보이지 않는 좁은 골목 너머엔 뭐가 있으려나 궁금해 하며 학교로 향하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 때 학교까지는 애들 걸음으로 30분 정도는 걸어야 하는 조금 먼 거리였는데
어째선지 자동차 다니는 도로가가 아니라 항상 이런 주택가 골목을 통해 학교로 가곤 했습니다. 더 조용했기 때문이었나.
요즘에 초딩 1학년 정도 애를 30분동안 이런 골목 지나서 혼자 등교하라고 하는 학부모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양꼬치 구이는 저녁에 먹기로 하고 점심은 대충 때우기로 했는데
동대문 주위가 원래 일요일은 쉬는 편이라 식사 할 만한 곳이 별로 없었습니다.
배를 많이 채우고 싶은 것도 아니어서 그냥 무작정 걷고 걸으며 가게가 나오면 들어가 먹자는 생각을 했었죠.
중간에 제가 눈독을 많이 들였던 혼다 MSX125 바이크가, 그것도 제가 좋아하는 빨간색 모델이 놓여있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디자인적으로도 마음에 들고 혼다라서 성능은 보장되고 연비도 리터당 50km를 넘어 버스와 지하철보다도 교통비가 적게 나오는 녀석이죠.
모든 것을 다 갖췄지만 덩치가 정말 작아서 저하고는 안 맞는다는 단점 하나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모델입니다.
이 디자인과 성능 그대로에 덩치만 좀 큰 녀석 없을까 하고 찾아보면, 야마하의 MT 시리즈가 좀 비슷해 보이긴 하는데
가격이 그냥 미쳐버린 수준이라서 그건 또 그거대로 의미가 없더군요. 뭔가를 구매한다는 것은 참 100% 만족이란 게 있을수가 없나 봅니다.
곰탕 집인가 갈비탕 집인가에 들어가서 적당히 배를 채웁니다.
나침반님은 손에 문신을 하나 더 추가하셨더군요. 역시 문신이란 건 첫 걸음이 쉽지 않지 한 번 하고나면 두 번째부터는 쉽나 봅니다.
당시 구입했던 E-M1은 나침반님의 E-M5와 동일한 렌즈마운트를 사용하는 형제 모델이라
제 렌즈와 나침반님 렌즈를 바꿔 끼워서 촬영해 봤습니다. 나침반님 렌즈는 조리개값 낮은 망원 렌즈라 실내에서 사용하긴 좀 어렵더군요.
제 렌즈는 성능은 좋은데 좀 큰 편이라 경박단소한 E-M5 와 결합하면 렌즈쪽이 약간 두툼한 느낌이 듭니다.
당시엔 그랬는데 나침반님이 바디 세로그립을 끼워보시더니 그 쪽이 밸런스가 잘 맞는다고 하셔서
세로그립 체결 후에는 저런 렌즈도 딱 적당히 어울릴 것 같습니다.
사진이 많아서 다음 포스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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