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만구로 향하는 길엔 어디나 그렇듯 기념품점과 특산품점이 늘어서 있다.
이런 거리를 걸을 때면 항상 인사동 거리가 머리속에 떠오른다.
시각적인 면에서 인사동과 이런 거리를 비교하는 것은 각각의 필터를 따로 사용해야 한다고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텐만구(天満宮)는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를 모시는 신사를 일컫는 총칭이다.
미치자네는 헤이안 시대의 실존하는 유명한 학자였으며 관직에서 좌천된 후 사망했는데, 그 후 황족들의 돌연사가 이어지자
원인으로 지목된 그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신으로 추대하였다고 한다. 신으로 추대받는 사람치고는 좀 째째한 그릇인가.

예나 지금이나 학문의 성취는 출세의 길로 들어서는 1관문이었으니, 이 사람을 모시는 텐만구가 번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 중에서도 이 다자이후 텐만구는 일본 텐만구의 총본산이기 때문에 그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원래 텐만구는 다른 유명 신사에 비해 규모면에서는 그리 크지 않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텐만구인 호후 텐만구(防府天満宮)와 함께 가장 아름답고 규모가 큰 텐만구로 유명하다.

이런 텐만구 앞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란 어떤 것일까.
집단성이 강해서 문제 일으키면 마을에서 살아가기 힘들었던 일본인들의 의식과 결부되어
다자이후 텐만구의 얼굴 역할을 맡은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과, 그 명성을 더럽혀서는 안된다는 강박 관념이
지금의 정갈하고 수준높은 상가 거리를 만들었다고 개인적으로 추론해 본다.

이걸 단순히 '전통적'이라는 너무나 포괄적인 범주에 함께 놓고 생각해서 인사동 거리와 비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
물론 개인적으로 인사동 거리는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긴 하지만, 그 문제점을 지적할 때 이쪽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애초에 인사동 거리에는 다자이후처럼 집단 최면에 가까운 신비성과 경건함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3.1운동 시발점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지금의 인사동은 어두운 60년대를 힘겹게 보내던 사람들의 추억이 여기저기 모인 자연집합체와 같은 느낌.
각종 약재상, 허름한 잡동사니 가게들, 통금후 갈곳 없는 시민들의 배를 채워주던 막걸리 가게가 그 시발점인 것이다.
시작부터가 경건함을 무기로 한 텐만구 앞의 상점 거리와는 전혀 다른 거리였으니,
훨씬 난잡하고 국적불명의 싸구려 짝퉁들이 판치며, 아무렇게나 비집고 들어오는 자동차들로 혼잡한 인사동의 거리는
원래부터가 그런 시장바닥의 구수함을 느끼며 성장해온 곳이기 때문에 그 점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온다.

문제는 이 거리가 외국인 관광명소로 어찌어찌 알려지다 보니, 괜히 마음에도 없던 전통의 향기를 온 몸에 뿌리려 한다는 점이지.
인사동 거리는 애초에 조선시대 이전의 향기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걸 이제와서 있어보이는 찻집과 미술관 등으로 치장하려 하니
근본 깊숙히 내제되어 있는 무질서의 매력과 충돌하는 바람에 이도저도 아닌 난잡한 거리로 전락해버리고 있는 느낌이다.

신토와 같은 종교도 없었으며, 처절한 근대사의 흔적을 여전히 지우지 못하는 한국에서 이런 식의 상점 거리는 존재하기 힘들다.
인사동같은 경우엔 차라리 도쿄 우에노의 아메요코 시장같은 분위기를 지향하는 편이 본래의 취지에 걸맞는고 생각한다.
아메요코 시장이 텐만구의 상점 거리보다 레벨이 낮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이곳 다자이후 텐만구는 6000그루의 매화나무가 유명하다.
신화에서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숨을 거둘 때 쿄토에서 날아와 하룻밤 사이에 꽃을 피웠다고 한다.
물론 벚꽃도 많이 있어서 2월 말에서 3월 초엔 매화, 3월 중하순에는 벚꽃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원래는 지금쯤 만개했을 벚꽃을 노리고 이곳에 왔지만,
이상기온으로 인해 매화는 대충 저물어가고 벚꽃은 아직 피지 않은 묘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녹색과 분홍, 흰색의 하모니를 즐길 수 있었으니 이걸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로 한다.


하지만 정말로 운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악연이라고 해야 할까.
아침에 코비호에서 담배피던 망할 아저씨 일당들이 여기도 찾아왔다.
흡연가능구역이 아닌 곳에서 자기들끼리 담배 피워대며 사투리로 뭐라뭐라 지껄이고 있다.
하필이면 여기서 또 만나게 되다니... 제때가 아닌 벚꽃보다 이 인간들 얼굴때문에 기분이 팍 내려앉는다.
나는 부디 나이 처먹어도 저런 짓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그 인간들이 담배피던 곳을 한장 담아본다.


꽃을 보는건 좋아하지만 매화와 벚꽃은 역시 구별이 잘 안된다.
구별을 위해 사람이 붙였을 뿐인 명칭이니, 어렸을때부터 이름엔 신경을 안 썼다.
그냥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으며 즐기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


텐만구 정문 앞에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거대한 나무가 서 있다.
신사 앞에 이런 녀석이 서 있으면 그 효과가 톡톡하겠지만, 오래된 녀석이라 그런지 받침대와 보강재로 버티고 있는 모습은 좀 애처롭다.
전체적은 모습은 아직 건장한듯 한데, 가지의 무게가 너무 나가는 바람에 받침대가 없이는 아마 사람 손이 닿을 정도로 내려올 것이다.


잘 죽지 않는 녀석이니 적절하게 보살펴만 주면 텐만구가 없어질 때까지 살아있을 거라 본다.
전체적으로 위로 쑥쑥 뻗는 나무들이 많은 일본은, 그것도 나름대로 기개가 있어 보여 좋은 구경거리가 되는데
그리 굵고 곧지 않아도 부드럽게 휘어 있는 한국의 소나무도 평생 질리지 않을 만큼 매력적이라고 생각.
일본에 와서는 일본 나무를 즐기고, 한국에선 한국 나무를 즐기면 되는 것이겠지.


한국, 중국의 단체 관람객도 상당히 많이 보인다.
후쿠오카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만날 확률은 만나지 않을 확률보다 월등히 높으니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다.
학문의 신을 모시는 곳이지만 날짜 탓인지 관광객의 대다수는 꽤나 나이가 드신 사람들이다.
지금 일본은 졸업시즌이라서, 딱히 이곳에서 소원을 빌 시기는 아니니까.


텐만구라면 꼭 놓여져 있는 황소상. 이 녀석을 만지면 나쁜 기운이 사라지고 소원이 성취된다고 해서 항상 맨들맨들하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사망 후, 그의 시신을 싣고 가던 황소가 이 자리에서 결코 움직이려 하지 않아서
이곳에다가 신사를 짓게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황소의 기원은 바로 그것.

내가 학문의 신이라면, 여기서 황소를 만지며 시험 붙게 해달라고 졸라대는 중생들이 꽤나 답답해 보일텐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지만, 학생들이 하고 있는건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텐만구 정문을 들어서면 연못을 가로지르는 세 개의 다리가 나타난다.
세 개의 다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며, 신사에 들어갈 때 현세와의 경계점 역할을 한다.
사실 여느 텐만구에는 이런 연못과 다리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의 독특함을 더해준다.
그런 설정놀음은 둘째치고, 나무 표면에 가득이 솟아난 풀이 참 인상적.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의 신사 주변 나무들은 대체로 저렇게 풀을 옷처럼 입고 있다.


일본의 전통 공원이나 정원처럼 굉장히 인위적인 냄새를 풍기진 않지만
이 곳의 연못도 잘 둘러보면 미적 배치에 신경을 쓴 모습이 보인다.
광각 단렌즈, 표준 단렌즈, 망원 줌렌즈를 가지고 온 여행이라서
눈에 들어오는 대로 사진을 담으려니 정신없이 렌즈를 바꿔 끼워야 하는 어수룩한 풍경이 연출된다.

똑딱이로 시원시원 잘 찍는 다른 관광객들에겐 사진 좀 찍을 줄 아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 정도 되는 초짜가 그런 식으로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저 부끄러운 일.
똑딱이도 써봤는데 그냥 만족을 못해서 덩치 큰 카메라를 쓸 뿐이고, 능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순한 자기만족.


아무래도 자연물로는 보이지 않는 배 모양의 돌.
900년대 세워진 신사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현존 건물은 1919년에 개축된 후 조금씩 증축하고 있다.
저 바위는 언제쯤 이곳에 놓인 것일지 궁금했지만, 거기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다리를 건너며 본전으로 향하는 도중 만날 수 있는 조그마한 사당이 있다.
지하사(志賀社)라는 이름의 이 사당은 해상안전을 책임지는 바다의 신을 모시는 곳.
다자이후 텐만구 안에서 가장 오래된, 1458년 지어진 사당이며 이는 큐슈 전체에서도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 조그마한 사당의 처마는, 세월의 흐름만이 나타낼 수 있는 부드러운 색과 함께 단정한 배열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실 화려한 본전의 양식보다 이런 쪽을 훨씬 좋아해서, 일단 사진은 뒤로 하고 한참 감상만 한 후 돌아갈 때 다시 찍어보기로 한다.
한국에서 제일 좋아하는 목조 건축물이 부석사니까, 대강 취향은 밝혀졌으려나.


마음 심자를 닮았다 해서 '心字池'라는 이름이 붙은 이 연못은 주변 경관이 훌륭하다.
엄숙하고 정갈한 정원의 연못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 자연적인 배치가 괜한 긴장을 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매화 철은 놓쳤지만 그래도 조금씩 남아있는 분홍의 흔적이 여전히 맛깔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물론 완전히 만개한 건 아니지만 이런 풍경도 충분히 보기 좋지.
이곳의 매화나무는 100종류가 넘어서 피는 시기가 제각각이라고 한다. 한순간에 미어터지는 벚꽃구경보다는 여유가 있다고 할까.
다자이후 텐만구는 내가 가 본 다른 텐만구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부담없이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공원 같은 느낌?
이번엔 휴장중이었지만 이곳에는 큐슈 박물관과 함께 산책로를 겸비한 공원 부지도 있어서, 굳이 신성함을 찾을 필요가 없다.
텐만구의 총본산이라는 역사가 서려 있으면서도 목에 힘을 주지 않은 느낌이 마음에 든다.


마지막 다리를 건너자 넓은 광장과 함께 본전 앞을 장식하는 토리이가 보인다.

일단 본전 안에 들어가기 전에 광장이나 한바퀴 둘러볼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본다.
본전 앞은 돈 던지고 소원 비는 사람들이 많아서 약간 흥미가 떨어지기도 하고.


일본의 정취를 느끼기 쉬워서 신사나 성, 정원 등을 자주 찾곤 하는데
막상 거기서 제일 즐겁게 보고 즐기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주변의 나무 경관이다.
가끔씩 너무 웅장하게 폼 잡고 있는 본전이 오버스럽긴 하지만
신사나 정원 등의 차분한 분위기에는 잘 정비된 주변 자연 환경과의 조화가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건물만으로는 그닥 매력이 없다. 이런 관광지에서 숨은 주역은 이 녀석들이라고 생각.


광장을 둘러보다가 사람들이 모여있길래 가 봤더니 이런 공연중이다.
만담가처럼 구수하고 어눌한 말투로 원숭이에게 재주를 부리게 하는 할아버지.
'매일매일이 지옥입니다'라는 붉은색 셔츠와 함께 펼치는 애교스러운 공연이라. 뭔가 초현실적인 분위기다.


원숭이를 이용한 공연은 대강 분위기가 비슷하다.
처음에 몇번 말 안듣고 딴청피우는 듯 하다가 한방 터트려주는 그런 식.
일본의 만담에는 보케와 츳코미라고 하는 바보짓과 태클거는 방식의 개그가 있는데
굳이 사람끼리가 아니라도 충분히 만담이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뭐, 놀라울 것 하나 없는 굉장히 수수한 묘기 한두가지 보여주는 공연이었는데
망원렌즈로 신나게 담고 있으니 끝까지 성의껏 봐 줘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게 생긴다.


원숭이가 저런 곳에 올라가는 걸 보고 우와~ 해야 하나?
열 살쯤 되는 어린 시절이었다면 이것도 충분히 재미있고 진심으로 박수를 칠 수 있었을지도.
얼마나 오래 공연을 해 왔을지, 키타노 타케시만큼이나 갈라진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되려 서글픈 기분이 든다.


마지막 묘기로 장대타기를 그저 흉내만 슬쩍 내 보는 원숭이.
사실 이렇게 관람하면서 내 머릿속에 생각나는 건 딱 두가지였다.
사진빨 좀 잘 받으려나 하는 것과, 이 콤비는 대체 언제부터, 무엇때문에 이런 공연을 해 오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

무심한 얼굴로 명령받은 행동을 척척 해내는 원숭이와 나이든 할아버지의 만담.
일본의 만담이란 대게 화자가 자신을 능청스럽고 바보같이 묘사함으로써 웃음을 주는 방식이다.
'매일매일이 지옥입니다'라는 티셔츠를 입고 바보 행새를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나로서는 어디서 즐거움을 느껴야 할지 난감함이 느껴진다.



동물을 이용한 묘기라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조금씩 마음이 무거워 지는 것일수도.
어쩌면 저 원숭이는 할아버지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녀석일 수도 있다. 오랜시간 함께 해왔다면 정은 붙었겠지.
이 두 콤비가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을 계속하길 바라며 발걸음을 옮긴다.